어차피 살아야 100년인것을 (102)낙엽의 계절에

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을까요?

by 이 범

Q: 왜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을까요?
A: 금기이자 두려움이기 때문입니다. 해법은 "잘 죽는 것도 잘 사는 것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유언장을 쓰고, 하고 싶은 일 목록을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세요. 죽음을 준비하는 것은 삶을 더 충만하게 사는 방법입니다.



낙엽의 계절에
침묵의 무게
서울의 강남역 지하철 역사는 언제나 붐볐다. 아침 8시 30분, 승객들이 물결처럼 밀려내렸다. 그중에 김준호가 있었다. 서른 살의 회사원, 외모는 그럴듯했고 직급도 차장이었으며 연봉도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회색빛이 맴돌았다. 누군가 "어때?" 하고 물으면 "괜찮아"라고만 대답했다. 그것이 그의 전부였다.
준호는 카톡 알람을 보고 한숨을 쉬었다. 엄마였다. '준호야 언제 집에 와? 엄마 병원 검진 결과 얘기할 게 있어.' 문장 끝의 마침표가 자꾸 눈에 걸렸다. 며칠 전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입원으로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는데, 엄마의 문자는 뭔가 다른 무게감이 있었다. 준호는 휴대폰을 주머니에 넣고 업무를 시작했다. 죽음. 그런 건 나중에 생각해도 된다. 아니, 생각하지 않아도 된다.
사실 현대인들, 특히 준호 같은 2000년대 초반 생까지는 죽음을 말하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나이 들면 자연스레 나올 텐데, 지금은? 20대, 30대에 죽음을 운운하면 뭔가 병들어 보이고 우울해 보였다. 죽음은 노인의 것이고, 깊은 밤 혼자만의 생각거리였고, 절대로 친구들 앞에서 꺼내면 안 되는 금기였다. 우리는 이것을 배우지 못했다. 학교에서도, 부모에게서도, 누구에게서도.
저녁 6시, 준호는 병원으로 향했다. 301호실. 아버지는 침대에 누워 있었고, 엄마는 아버지 곁에 의자를 놓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의 얼굴은 텔레비전의 푸른 빛이 물들였다. 모두가 침묵했다. 아무도 중요한 것을 말하지 않았다.

만남의 기적
그 날은 기묘한 날이었다.
준호가 회사 카페에서 아메리카노를 마시고 있을 때, 한 여자가 옆자리에 앉았다. 이지은. 같은 부서 마케팅팀의 직원이었다. 준호와는 달리 그녀는 항상 뭔가를 소리 내어 웃었다. 실수로 파일을 엎질렀을 때도, 상사에게 질책을 받을 때도. 그 웃음이 이상했다. 아니, 용감했다.
"어? 준호 오빠 요즘 자주 봐요. 근데 혼자만 보네?" 지은이 말을 걸었다.
"응. 그냥."
"그냥?" 지은이는 웃음을 터뜨렸다. "오빠, 우울증 있어?"
"없어."
"거짓말하지 마세요. 얼굴에 다 나와요. '나는 지금 죽음을 생각하고 있다'는 글씨가 이마에 써있어." 지은이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준호는 놀랐다. 누군가가 자신의 마음을 정확히 짚은 것 같았다.
"내가 왜 그렇게 보여?"
"저 같은 경우는 더 심했어요." 지은이가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작년까지 저도 죽음을 생각하지 않는 척했어요. 아, 애초에 죽음은 말도 안 되는 거라고 믿으려고 했죠. 그런데 이 생각이 자꾸 튀어나오는 거예요. 밤에 자려고 눕으면, 회의실에 앉아있으면."
"뭐가 바뀌었어?"
"할머니가 돌아가셨어요. 암으로. 3개월 만에."
침묵이 내렸다.
"저는 그 3개월 동안 할머니를 11번 만났어요. 처음에는 '인사'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마지막 만남 때쯤엔 달랐어요. 매 순간이 마지막이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거든요. 그래서 할머니와 밤새 이야기했어요. 할머니 젊었을 때 이야기, 할아버지와의 사랑 이야기, 자식들을 기르면서 한 실수들... 모든 것이 다. 그리고 할머니는 그때 진짜 행복해 보였어요."
"그 후로는?"
"그 후로는 죽음이 약간 덜 무서워졌어요. 왜냐하면 죽음은 결국 끝이 아니라, 그 전까지 얼마나 진실되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마지막 문장'처럼 느껴졌거든요. 그래서 지금은 죽음을 피하는 대신, 죽음 전에 뭘 해야 할지를 생각해요."
준호는 처음으로 다른 사람의 말이 귀에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다음날, 준호는 병원으로 향했다. 그러나 이전과는 다른 마음으로.

대화의 문
병원 301호실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약의 영향인지 자고 있었고, 엄마는 종이에 뭔가를 끄적이고 있었다.
"엄마."
엄마가 고개를 들었다.
"아빠가 어어... 괜찮아?"
이건 준호가 처음 하는 질문이었다. 정말로 '괜찮아?'라는 질문이 아니라, 상황을 제대로 알고 싶다는 질문.
엄마는 잠시 준호를 바라봤다.
"의사 말로는... 좋아." 엄마가 종이를 내려놨다. "암 수술이 성공적이었대. 회복만 잘하면."
"그럼... 괜찮네."
"응, 괜찮아. 하지만..."
엄마가 다시 종이를 들었다. 그것은 유언장이었다.
"아빠가 이것을 쓰라고 했어. 수술 전에. 만약의 경우가 있을까 봐." 엄마의 목소리가 떨렸다. "너희 엄마도 이것을 써야 할 것 같아."
준호는 그 종이를 봤다. 단순했다. 자산 분배, 장례식 방식, 그리고 한 줄의 메모: '내가 너희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줬으면 좋겠다.'
준호의 눈이 뜨거워졌다.
"엄마, 아빠 깨어나면... 내가 말해주고 싶은 게 있어."
"뭔데?"
"고마워, 라고."
병실이 울었다.
다음 주, 아버지는 깨어났다. 준호는 그 날 처음으로 아버지에게 말했다.
"아빠, 내가... 자꾸 죽음을 생각해. 뭐 하는 거야?"
아버지는 초록색 산소마스크를 쓰고 있었지만, 눈빛이 깨어났다.
"그게... 좋은 신호야, 준호."
"왜?"
"죽음을 생각할 때만... 뭐가 중요한지 보인다."
그 말이 준호의 가슴에 박혔다.
지은이는 카톡을 보냈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어요. 병원에서. 마지막까지 우리 손 잡고 있었어요. 할머니 때문에 준비가 됐나 봐요. 오빠, 우리가 죽음에 대해 말할 수 있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어요.'
준호는 화면을 보면서 생각했다. 지은이가 맞다. 우리는 죽음을 말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사실 죽음을 말할 때만 진정으로 살 수 있었다.



가을의 선물
그 계절은 가을이었다. 낙엽이 빛으로 타고 있었다.
준호는 카페에서 노트북을 펼쳤다. 제목: '내가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
1. 엄마, 아빠에게 진심으로 고마워하기
2. 친구들을 모아서 우리가 정말 생각하는 것들 말하기
3.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하고 싶은 일 찾기
4. 지은이와의 관계를 명확히 하기 (그녀가 자신에게 소중하다는 것)
5. 할머니, 할아버지의 인생 이야기를 기록하기
목록은 길었지만, 불안하지 않았다. 오히려 설렜다.
준호는 휴대폰을 들었다.
"지은아. 우리 이번 주말에 만날까? 정말로... 중요한 얘기 하고 싶어."
전화 너머에서 지은이가 웃었다. 그 웃음이 이전과는 달랐다. 더 깊었다.
"좋아요, 오빠. 저도 있어요. 할 말이."
병원에서 퇴원한 아버지는 거실에 앉아 있었다. 창밖으로 서울의 야경이 보였다.
엄마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수술 전에 죽음을 생각했어? 무서웠어?"
아버지가 오래 침묵했다.
"무섭기도 했지. 하지만 그 무서움이... 날 깨웠어. 지난 20년을 너랑 지은이, 준호와 같이 있었는데, 그게 얼마나 소중한 건지 그때 비로소 알았어."
아버지의 목소리가 떨렸다.
"만약 그 수술이 없었다면, 난 평생 '내일'이라고 말하면서 살았을 거야. 내일 여행 가자, 내일 대화하자, 내일 고백하자... 그런데 내일은 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걸 깨달았어. 그래서 난 오늘을 선택했어. 이 순간을 선택했어."
가을 바람이 창을 두드렸다.
철학은 항상 이런 거였다. 죽음에 대한 생각에서 비롯되는 것. 플라톤도 '철학은 죽음을 배우는 것'이라 했다. 그것은 비관주의가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죽음을 마주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순간의 무게를 안다. 떨리는 손으로 사랑하는 사람의 손을 잡을 때, 그 온기가 얼마나 절대적인지. 누군가의 눈빛을 제대로 본다는 게 얼마나 거대한 사건인지. 밥을 먹는 것, 걷는 것, 숨을 쉬는 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우리가 죽음을 피했던 이유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죽음을 마주할 때만 진정한 용기가 생긴다.
겨울이 오기 전, 준호는 회의실에서 사직서를 내렸다. 상사는 놀라며 물었다.
"왜?"
준호가 대답했다.
"제 목록을 만들었거든요. '죽기 전에 해야 할 일들'. 회사에 남아있는 것은 그 목록에 없었어요."
상사가 웃었다. 기묘한 웃음이었다. 자조적인 웃음이 아니라, 존경하는 웃음.
"그런데 말이야, 나도... 그런 목록을 만들어 본 적이 없다."
"지금 만들어 보세요."
가을이 깊어갔다.
준호는 지은이와 손을 잡고 낙엽을 밟았다. 그들은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말할 필요가 없었다. 이 순간이 충분했다.
병원의 301호실에서는 여전히 누군가가 회복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회복은 단순히 신체의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영혼의 회복이었다. 죽음의 문을 통과했을 때만 가능한 깨달음이었다.
준호의 아버지는 아들을 바라봤다.
"준호."
"네, 아빠."
"내가 죽음이 무서웠을 때는, 미래만 봤어. 하지만 지금은 현재를 본다. 그리고 이 현재는... 참 아름답다."
아들이 아버지를 안았다. 그들은 모두 울었다.



에필로그: 봄을 향하며
그 다음 계절은 봄이었다.
준호는 작은 카페를 열었다. 이름은 '낙엽'. 여기서 사람들은 죽음을 말했다. 자신의 두려움을, 후회를, 혹은 아름다운 기억들을 말했다. 누구도 '괜찮아'라고만 답하지 않았다.
지은이는 거기서 일했다. 그녀의 웃음은 여전히 용감했다.
한 번은, 한 노인 손님이 들어왔다.
"여긴... 뭐 하는 곳인가?"
준호가 대답했다.
"사람들이 진짜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는 곳이에요."
노인이 앉았다. 그리고 울었다. 그것은 슬픔의 눈물이 아니었다. 뭔가 놓친 것을 찾았을 때의 눈물이었다.
"내 나이 75야. 어째서... 이제야 이런 곳을 찾을까."
"늦지 않았어요."
노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늦지 않았다니... 그럼, 내가 해야 할 일 목록을 만들까?"
"네. 할 수 있어요."
밤이 깊어 가면서, 카페는 아주 많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 모두 다른 이유로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같은 것을 발견했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삶에 진정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
준호는 지은이와 함께 창밖을 바라봤다. 봄의 벚꽃이 흩어지고 있었다.
"오빠."
"응?"
"우리는... 같이 있을 거야, 죽을 때까지?"
준호가 그녀의 손을 잡았다.
"응. 함께 할 일 목록에 올렸어."
지은이가 웃었다. 그 웃음이 카페 전체를 채웠다.
모두가 함께 웃었다.

우리는 죽음에 대해 말하지 않으려고 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이 무서운 것이라고 배웠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준호가 아버지의 수술을 통해 깨달았듯이, 죽음을 직시할 때만 우리는 진정으로 산다. 죽음은 삶을 끝내는 것이 아니라, 삶에 절대성을 부여하는 선물이다.
우리가 피해야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도 깨어나지 않는 삶이다. 준호, 지은이, 아버지, 할머니의 이야기는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한다: 죽음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잘 산다'는 게 뭔지 알게 된다.
유언장을 쓰고, 해야 할 일 목록을 만들고, 사랑하는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나약함이 아니라 용기다. 그것은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알고도, 그래서 더욱 소중히 여기겠다는 선언이다.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 우리는 비로소 배운다. 모든 것은 아름답다는 것을. 그 아름다움은 끝나갈 때 가장 눈부신 것을. 그리고 그 눈부심이 우리의 삶을 진정으로 살아가게 만든다는 것을.

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