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열사의 어머니(?)
인민군이 점령한 지역이었지만, 조심해야 했다. 국군의 잔류 병력이나 우익 청년단이 숨어 있을 수 있었다.
영광에 도착한 것은 새벽 무렵이었다.
거리는 고요했다. 집집마다 인공기가 걸려 있었다.
인민군의 지배 하에 있다는 표시.
백호신은 자신이 머슴으로 일했던 집을 찾아갔다. 십오 년 만이었다.
집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하지만 주인은 바뀌어 있었다. 양반 주인은 도망갔고, 이제는 인민위원회가 관리하고 있었다.
뒷마당 행랑채에 어머니의 시신이 모셔져 있었다.
관 속에 누워 있었다. 야윈 얼굴. 백발.
백호신은 무릎을 꿇었다.
"어머니..."
처음으로 제대로 된 목소리로 불렀다. 십오 년 만에.
눈물이 났다. 그는 울었다. 소리 없이.
'미안합니다... 버리고 갔습니다... 도망쳤습니다...'
그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굳은 손이었다. 평생 일만 한 손.
'이 손으로 저를 키우셨습니다... 머슴의 자식을... 아무도 돌보지 않는...'
백호신은 이마를 바닥에 댔다.
'용서하십시오... 불효자를... 용서하십시오...'
장례
다음 날, 간소한 장례를 치렀다.
인민위원회에서 관을 내주었다. "혁명 열사의 어머니"라는 이름으로.
백호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혁명 열사. 자신을 그렇게 부르다니.
몇 명의 마을 사람들이 왔다. 대부분 늙은 사람들. 어머니와 함께 일했던 머슴들이었다.
"정치야... 네가 정치구나..."
한 노인이 그를 알아봤다.
"송 영감님..."
"그래... 네 어미가... 너를 그리워했다... 죽을 때까지..."
백호신은 고개를 숙였다.
산에 묻었다. 마을 뒷산. 이름 없는 산.
비석도 세우지 못했다. 돈도 없었고, 시간도 없었다.
그저 흙을 덮었다. 그것으로 끝이었다.
백호신은 무덤 앞에 서서 마지막 인사를 했다.
"편히 쉬십시오, 어머니. 이제 고생 끝났습니다."
그리고 돌아섰다.
김산돌을 찾아서
장례를 마친 후, 백호신은 한 사람을 찾아야 했다.
김산돌.
어머니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찾았던 사람이라고 했다. 송 영감의 말에 따르면, 어머니는 김산돌에게 무언가를 전했다고 했다.
"정치에게 전하라고... 어미가 마지막으로..."
백호신은 김산돌이 누군지 몰랐다. 하지만 찾아야 했다.
인민위원회에 물었다.
"김산돌? 아, 그 자..."
한 간부가 말했다.
"잡혀 있습니다. 반동 분자로."
"어디 있습니까?"
"감옥에. 곧 처형될 겁니다."
백호신은 감옥으로 갔다.
옛 경찰서 건물이었다. 이제는 인민위원회 보안서가 되어 있었다.
지하 감방에 김산돌이 갇혀 있었다.
쇠창살 너머로 한 사내가 보였다. 마흔대 중반쯤. 수척하고 상처투성이였다. 고문당한 흔적이었다.
"김산돌입니까?"
사내가 고개를 들었다. 경계하는 눈빛이었다.
"누구요?"
"백정치입니다. 아니... 백호신입니다."
김산돌의 얼굴이 굳었다.
"백정치... 박씨 부인의..."
"예. 제 어머니를 아십니까?"
김산돌은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당신 어머니는... 좋은 분이셨소."
"어머니가 당신에게 뭔가를 전했다고 들었습니다."
김산돌이 일어나 창살에 다가왔다.
"당신은... 빨치산이요?"
"예."
"중대장이라고 들었소."
"맞습니다."
김산돌은 백정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당신 어머니는... 당신이 살아 있기를 바랐소. 혁명가가 되기를 바란 게 아니라... 그저 살아 있기를..."
백호신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김산돌이 주머니에서 작은 보자기를 꺼냈다. 간수들이 빼앗지 않은 유일한 물건이었다.
"이것을... 당신에게 주라고 했소."
창살 사이로 보자기를 내밀었다.
백호신이 받았다. 펼쳐보니 낡은 천 조각이었다. 어머니가 평생 간직했던 것 같았다.
천에 무언가 수놓아져 있었다. 서툰 글씨로.
"정치야 잘 살거라"
백호신의 손이 떨렸다.
"어머니가... 직접..."
"그렇소. 글을 몰랐지만... 당신 이름 석 자만은... 수를 놓았소..."
백호신은 천을 꼭 쥐었다. 눈물이 흘렀다.
김산돌이 말을 이었다.
"당신 어머니는... 당신을 자랑스러워했소. 머슴의 자식이지만... 멀리 나가 큰 사람이 되었다고..."
"큰 사람..."
백호신은 쓴웃음을 지었다.
"저는... 큰 사람이 아닙니다..."
"알고 있소." 김산돌의 목소리가 차가워졌다. "당신은 살인자요. 혁명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죽이는."
백호신은 고개를 들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왜 어머니를 알고..."
"나는 한도회 사람이었소. 이산갑 선생을 섬겼던."
그 이름을 듣자 백호신의 가슴이 철렁했다.
"이산갑..."
"그렇소. 이산갑 선생. 영광의 양반이자 독립운동가. 당신 어머니가 머슴살이했던 집의..."
김산돌이 창살을 움켜쥐었다.
"당신은 그분을 죽일 거요. 아니... 이미 계획하고 있을 거요."
백호신은 부인하지 않았다.
"이산갑은... 지주요. 계급의 적입니다."
"계급?" 김산돌이 비웃었다. "이산갑 선생이 무슨 잘못을 했소? 그분은 평생 조선의 독립을 위해 싸웠소! 한도회를 지원하고, 한선단을 조직하고, 일제와 맞섰소!"
"그래도 양반입니다. 착취 계급입니다."
"당신 어머니도 그렇게 생각했을 것 같소?"
백호신은 대답할 수 없었다.
김산돌이 계속 말했다.
"당신 어머니는... 이산갑 선생 댁에서 일했소. 그리고 그분은... 당신 어머니를 사람으로 대했소. 머슴이 아니라 사람으로."
"..."
"당신 어머니가 병들었을 때... 약을 구해준 것도, 장례비를 마련해준 것도 이산갑 선생이었소."
백호신의 손이 떨렸다.
"거짓말..."
"거짓말이 아니오! 당신 어머니는 죽기 전에 말했소. '이산갑 도련님께 감사하다'고. '우리 정치가 잘 되기를 빌어달라'고!"
김산돌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런데 당신은... 그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 하는 거요!"
백호신은 뒤로 물러섰다.
"아니... 아니오..."
"당신은 혁명가가 아니오. 당신은 그저... 자신의 신분을 부정하고 싶었던 비겁자일 뿐이오!"
김산돌이 소리쳤다.
"당신 어머니는... 당신이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지 않았소!"
백호신은 귀를 막고 싶었다. 하지만 김산돌의 목소리는 계속 들렸다.
"당신은 후회할 것이오. 이산갑 선생을 죽이면... 평생 후회할 것이오!"
백호신은 돌아서 감옥을 나왔다.
밖에 나오니 햇빛이 눈부셨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어두웠다.
손에 쥔 천 조각. 어머니의 마지막 선물.
"정치야 잘 살거라"
'잘 산다는 것이... 무엇입니까, 어머니...'
백호신은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