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한코스
미로의 입구에서
"여보, 이번엔 좀 특별한 코스 어때?"
7월의 어느 저녁, 민수가 지도 앱을 보며 제안했다. 염리동 이후 한 달이 지났다. 그 사이 두 사람은 아카이빙에 대해 더 깊이 고민했고, 이제는 단순한 관광이 아닌 진정한 기록을 남기고 싶었다.
"특별한 코스?"
"응. 을지로에서 시작해서 청계천, 광장시장, 종로까지. 서울 도심 한복판을 관통하는 거야. 근데 큰길이 아니라 골목으로만."
지혜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을지로는 처음 갔던 곳 아냐?"
"맞아. 그때는 인쇄골목만 봤잖아. 이번엔 더 깊숙이, 철공소 골목, 조명 골목, 공구 골목까지. 그리고 세운상가도 제대로 봐야 해."
민수는 검색한 정보를 보여줬다. 세운상가는 1968년에 지어진 한국 현대화의 상징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재개발이 진행 중이고, 주변 골목들도 빠르게 사라지고 있었다.
"재개발..."
지혜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염리동에서 느낀 복잡한 감정이 떠올랐다.
"응. 그래서 더 가봐야 할 것 같아. 사라지기 전에. 이번엔 제대로, 하루 종일 걸으면서."
"좋아. 토요일에 가자. 애들은 할머니 댁에 보내고."
토요일 아침 9시, 두 사람은 을지로3가역에서 만났다. 6개월 전 처음 왔던 그곳이었다.
"그때 기억나?"
"응. 처음으로 둘이 골목 걸었던 날."
두 사람은 잠시 그때를 떠올리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다시 걷기 시작했다.
쇳가루 냄새의 골목
첫 번째 목적지는 철공소 골목이었다. 을지로3가에서 4가 방향으로 걷다가 작은 골목으로 꺾어 들어갔다.
"여기다."
골목에 들어서자 쇳가루 냄새가 코를 찔렀다. 기계 돌아가는 소리, 금속을 자르는 소리, 망치질 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와, 진짜 현장이네."
좁은 골목 양쪽으로 철공소들이 빼곡히 들어서 있었다. 문이 열린 작업장 안에서는 사람들이 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었다.
"죄송한데, 구경 좀 해도 될까요?"
한 철공소 앞에서 민수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50대로 보이는 사장님이 고개를 끄덕였다.
"들어와요. 조심하고."
작업장 안은 온갖 공구와 금속 부품들로 가득했다. 선반, 밀링, 용접기. 오래된 기계들이 여전히 돌아가고 있었다.
"여기서 뭘 만드세요?"
"다 만들어요. 기계 부품, 금형, 맞춤 제작. 대기업에서도 급하면 우리한테 와요. 여기만큼 빠르고 정확하게 만드는 데가 없거든."
사장님의 목소리에는 자부심이 묻어났다.
"여기 오래 하셨어요?"
"30년 됐어요. 아버지 때부터 하던 거 이어받았죠. 근데 이제 끝날 것 같네요. 재개발 들어오면."
"아드님은 안 하세요?"
"아들? 이거 안 해요. 공부 시켜서 대기업 보냈어요. 이런 거 시키려고 공부시킨 게 아니니까."
사장님은 쓸쓸하게 웃었다.
"기술은 어떻게 돼요? 아버지한테 배운 기술이."
"그냥 사라지는 거죠, 뭐. 요즘 젊은 사람들 이런 거 안 배우려고 해요. 힘들고 더럽고."
철공소를 나와 골목을 더 걸었다. 비슷한 작업장들이 끝없이 이어졌다. 어떤 곳은 문을 닫았고, 어떤 곳은 '임대' 팻말이 붙어 있었다.
"빠르게 사라지고 있구나."
지혜가 카메라를 들어 골목을 찍었다. 쇳가루가 날리는 풍경, 낡은 간판들, 기계 소리로 가득한 거리.
골목은 정말 미로 같았다. 한 번 꺾으면 또 다른 골목이 나오고, 그 골목에서 또 갈라졌다. 지도 앱 없이는 절대 빠져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여기가 진짜 서울 중심이 맞나 싶어."
민수가 주위를 둘러보며 말했다. 을지로 대로변은 현대적인 빌딩들이 즐비한데, 골목 안으로 들어오니 완전히 다른 세상이었다.
다음은 조명 골목으로 향했다. 철공소 골목에서 몇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우와."
조명 가게들이 모여 있는 거리에 들어서자 온갖 조명들이 반짝이고 있었다. 샹들리에, LED, 스탠드, 공업용 조명까지.
"여기는 환하네."
철공소 골목의 어두운 분위기와는 정반대였다. 가게마다 조명을 켜두어서 골목 전체가 밝았다.
한 가게에 들어가 구경했다. 천장에는 수십 개의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었고, 벽면에는 각종 조명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찾는 거 있으세요?"
주인 아주머니가 물었다.
"아니요, 그냥 구경하러 왔어요."
"그래요? 요즘 구경 오는 사람 많아요. 사진 찍으러. 마음대로 봐요."
허락을 받고 둘러봤다. 1970년대 스타일의 레트로 조명부터 최신 LED까지, 시대별 조명의 역사가 한자리에 있는 것 같았다.
시간의 층위들
조명 골목을 빠져나와 세운상가로 향했다. 거대한 건물이 골목 위를 가로지르고 있었다.
"1968년에 지어졌다니 믿기지 않아."
세운상가는 한때 최첨단 복합상가였다. 주거, 상업, 업무가 결합된 혁신적인 건축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낡고 텅 빈 공간이 많았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 정원이 조성되어 있었고, 거기서 을지로 일대가 한눈에 보였다.
"저기가 우리 걸어온 골목들이네."
아래로 미로 같은 골목들이 펼쳐져 있었다. 철공소, 조명 가게, 인쇄소들이 다닥다닥 붙어 있는 풍경.
"저 골목들이 다 사라진다는 거지?"
"대부분은. 재개발되면 고층 빌딩이 들어서겠지."
잠시 침묵이 흘렀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게 마지막 모습일 수도 있겠네."
지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서 더 제대로 봐야 해. 기억해야 하고."
세운상가를 내려와 인쇄골목으로 향했다. 6개월 전 처음 왔던 그곳이었다.
"대림인쇄, 여기 아직도 있네."
처음 들어갔던 인쇄소가 그대로 있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그때 그 사장님이 계셨다.
"어? 전에 왔던 사람들 아니에요?"
사장님이 기억하고 계셨다.
"네, 기억하세요?"
"그럼요. 사진 찍던 젊은 부부. 어쩐 일이에요?"
"또 왔어요. 이 동네가 좋아서."
사장님은 흐뭇하게 웃었다.
"고마워요. 요즘 같은 세상에 이런 데 찾아와주는 사람이 있다는 게."
"여기 어떻게 되세요? 재개발."
"아직은 모르겠어요. 언젠간 나가야겠지만. 그전까지는 여기서 일할 거예요. 다른 데 가봤자 이런 일 할 데도 없고."
인쇄소를 나와 골목을 더 걸었다. 복잡하고 미로 같은 길이었다. 한 번 들어가면 방향 감각을 잃을 정도로.
"진짜 미로네. 여기서 길 잃으면 큰일이겠다."
하지만 이 미로가 매력이었다. 구석구석 오래된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낡은 간판, 페인트가 벗겨진 벽, 오래된 계단.
정오가 되어 '우래옥'으로 향했다. 1948년에 문을 연 서울미래유산 평양냉면 전문점이었다.
"여기 줄 엄청 길다던데."
가게 앞에 도착하니 이미 사람들이 줄을 서 있었다. 30분쯤 기다린 후에야 자리를 잡았다.
"평양냉면 두 그릇이요."
냉면이 나왔다. 깔끔하고 시원한 육수에 얇게 썬 고기가 올라가 있었다.
"맛있다."
"70년 넘게 이 맛 지켜왔다는 게 대단해."
냉면을 먹으며 두 사람은 오전에 본 풍경들을 되짚었다.
"을지로는 정말 시간의 층위들이 겹쳐져 있는 것 같아."
민수가 말했다.
"층위?"
"응. 196070년대 산업화 시대, 198090년대 전성기, 2000년대 쇠퇴기, 그리고 지금 재개발 직전. 모든 시간대가 한 공간에 공존하고 있어."
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곧 다 사라지겠지. 새로운 층위로 덮여서."
기억의 여정
점심을 먹고 청계천을 건넜다. 청계천 북쪽은 남쪽과 또 다른 분위기였다.
"광장시장이다."
환하게 불을 밝힌 광장시장에 들어섰다. 옷가게, 먹거리, 포목점들이 빼곡했다.
"여기는 활기차네."
을지로의 쇠락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광장시장은 여전히 북적였다. 관광객들과 상인들로 가득했다.
"빈대떡 먹고 갈까?"
유명한 먹자골목에서 빈대떡과 막걸리를 주문했다. 기름에 바삭하게 부쳐진 빈대떡이 맛있었다.
광장시장을 빠져나와 종로 쪽으로 걸었다. 신진시장 골목 안으로 들어섰다.
"여기가 매미골목이래."
좁은 골목 양쪽으로 작은 공구점들이 늘어서 있었다. 드라이버, 렌치, 펜치 같은 공구들을 파는 가게들이었다.
"왜 매미골목이래?"
"여름에 매미처럼 시끄럽다고. 공구 파는 사람들이 큰 소리로 호객하거든."
하지만 지금은 조용했다. 예전만큼 손님이 없는 모양이었다.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전태일다리'에 도착했다.
"여기구나."
다리 옆에는 전태일 열사 동상이 서 있었다. 1970년, 22살 청년이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분신했던 곳이 이 근처였다.
"평화시장이 저기 있었대."
안내판을 읽으며 두 사람은 숙연해졌다. 50년 전 이 골목에서 한 청년이 목숨을 바쳐 외쳤던 것들. 노동자의 권리, 인간다운 삶.
"지금은 많이 나아졌겠지?"
"어떤 면에서는 그렇고, 어떤 면에서는 여전하고."
민수가 조용히 대답했다.
전태일다리를 지나 동대문으로 향했다. DDP(동대문디자인플라자)의 은빛 건물이 저녁 햇살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여기는 완전 미래네."
초현대적인 DDP 건물과 오래된 동대문시장이 공존하는 풍경. 을지로에서 본 시간의 층위가 여기서도 보였다.
"오늘 하루 동안 몇 십 년을 왔다 갔다 한 것 같아."
지혜가 DDP 앞 계단에 앉으며 말했다.
"맞아. 1948년 우래옥에서 2014년 DDP까지. 거의 70년."
해가 지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DDP 계단에 앉아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미로 같은 하루였어."
"진짜 미로였지. 골목도 미로, 시간도 미로."
"근데 신기한 게..."
지혜가 말을 이었다.
"이 미로에서 길을 잃는 게 나쁘지 않았어. 오히려 좋았어. 예상 못 한 걸 발견하고, 만날 생각 없던 사람들을 만나고."
"그게 골목의 매력이지. 계획할 수 없는 것들."
두 사람은 손을 맞잡았다.
"오늘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야?"
민수가 물었다.
"철공소 사장님. 30년 기술이 사라진다고 했을 때... 가슴이 아팠어."
"나도. 그리고 대림인쇄 사장님이 우리 기억하고 계셨던 것도."
"응. 우리가 기억하는 것만큼, 그분들도 우리를 기억하는구나 싶었어."
저녁을 먹으러 동대문 근처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동대문 손칼국수'라는 간판이 걸린 오래된 식당이었다.
"칼국수 두 개요."
따뜻한 칼국수를 먹으며 두 사람은 웃었다.
"오늘 엄청 걸었다. 몇 킬로미터나 됐을까?"
"한 15킬로는 된 것 같아. 다리 아파."
"근데 후회 안 해. 진짜 제대로 봤어, 을지로를."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지혜가 말했다.
"이번 기록은 좀 특별할 것 같아."
"왜?"
"한 동네가 아니라 여러 동네를 관통했잖아. 을지로, 세운상가, 청계천, 광장시장, 종로, 동대문. 다 이어져 있더라."
"맞아. 서울 도심이 하나의 유기체 같았어. 다 연결되어 있고."
집에 도착해서 발이 너무 아파 한참을 쉬었다. 하지만 마음은 가득 차 있었다.
"사진 한번 볼까?"
지혜가 카메라를 꺼냈다. 오늘 찍은 사진만 300장이 넘었다.
"많이 찍었네."
"응. 놓치고 싶지 않았어. 이 풍경들이."
사진을 보며 오늘의 여정을 되짚었다. 철공소의 쇳가루, 조명 골목의 샹들리에, 세운상가에서 본 미로 같은 골목들, 우래옥의 냉면, 전태일다리, 그리고 DDP.
"글 쓰기 힘들겠다."
민수가 노트를 펴며 말했다.
"왜?"
"내용이 너무 많아. 하루에 너무 많은 걸 봤어."
"나눠서 써도 돼. 여러 편으로."
"그것도 좋겠다."
그날 밤, 민수는 오랫동안 글을 썼다. 을지로의 미로 같은 골목, 사라져가는 기술들, 시간의 층위들, 그리고 기억의 책임.
지혜는 사진을 분류하며 앨범을 만들었다. '을지로 철공소', '세운상가', '광장시장', '전태일다리'. 각각의 장소가 하나의 챕터가 되었다.
"여보."
한참 후 민수가 불렀다.
"응?"
"오늘 우리 뭘 한 거 같아?"
"기록?"
"그것도 맞는데... 나는 증인이 된 것 같아."
"증인?"
"응. 사라져가는 것들의 증인. 을지로가 이랬다는 걸, 여기서 사람들이 이렇게 살았다는 걸, 증언하는 사람."
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게 우리 역할인 것 같아. 예쁜 사진 찍는 게 아니라, 진짜 모습을 증언하는 것."
두 사람은 창밖을 바라봤다. 어딘가에 을지로가 있었다. 오늘도 기계가 돌아가고, 사람들이 일하고, 골목이 숨 쉬고 있을 것이다.
며칠 후, 민수는 완성된 글을 지혜에게 보여줬다.
"제목이 뭐야?"
"'을지로, 미로 속의 시간들'."
"좋은데. 미로라는 표현이 딱 맞아."
"응. 공간적으로도 미로고, 시간적으로도 미로니까. 그리고 우리가 그 미로 속에서 길을 찾았으니까."
글은 긴 편이었다. 하루의 여정을 따라가며, 만난 사람들과 본 풍경들을 담았다. 하지만 단순한 여행기가 아니었다. 재개발과 보존, 기술의 전승, 노동의 가치에 대한 성찰이 담겨 있었다.
"이거 어디 발표할 거야?"
"블로그에 올릴까 해. 그리고 나중에 책으로 묶어도 좋을 것 같아."
"책?"
"응. 우리 아카이빙을 모아서. '서울 골목 아카이빙' 이런 식으로."
지혜가 웃었다.
"좋다. 우리 아이들도 나중에 읽을 수 있겠네."
블로그에 글을 올리자 반응이 뜨거웠다. 을지로를 기억하는 사람들, 재개발을 걱정하는 사람들,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댓글이 달렸다.
"감사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을지로에서 40년 철공소 하셨는데, 이제 문 닫으셨어요. 이렇게 기록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을지로가 사라지기 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었는데, 이 글 보니 더 가고 싶어졌어요."
"저도 거기서 일했었습니다. 추억이 새록새록 나네요."
댓글을 읽으며 민수와 지혜는 뿌듯함을 느꼈다. 자신들의 기록이 누군가에게 의미가 되고 있었다.
다음 주말, 두 사람은 다시 을지로를 찾았다. 이번에는 아이들과 함께.
"애들아, 여기가 아빠 엄마가 얘기한 을지로야."
서연이와 준우는 신기한 듯 골목을 둘러봤다.
"여기서 뭐 해?"
"옛날 물건들 만들어. 쇠로, 종이로, 여러 가지로."
가족은 함께 미로 같은 골목을 걸었다. 아이들은 처음 보는 풍경에 눈을 빛냈다.
"이것도 기록할 거야?"
서연이가 물었다.
"응. 엄마 아빠랑 너희들이 여기 왔다는 것도 우리 가족 역사니까."
그렇게 을지로는 가족의 기억 속에 자리 잡았다. 부부의 데이트 장소에서 가족의 추억 장소로.
을지로의 미로는 계속 이어졌다. 공간의 미로, 시간의 미로, 기억의 미로. 그리고 그 미로 속에서 한 가족은 자신들의 길을 찾아가고 있었다.
사라질지도 모르는 골목들을 걸으며, 영원히 남을 기억을 만들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