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돌다리 문화마을

축제 속에 핀 골목

by seungbum lee

축제의 초대
"골목축제래."
5월의 어느 금요일 저녁, 지혜가 스마트폰을 보며 말했다. 민수는 소파에서 책을 읽다가 고개를 들었다.
"골목축제? 어디?"
"파주 법원읍. 돌다리 문화마을에서 주말에 한대."
화면을 보여줬다. '모두의 골목축제'라는 제목 아래 플리마켓, 체험부스, 먹거리, 공연 사진들이 있었다.
"막걸리 시음회도 있고, 어린이 벼룩시장도 있대."
민수가 관심을 보였다.
"돌다리 문화마을? 거기 어떤 곳이야?"
"검색해보니까 오래된 주택가인데, 최근에 문화마을로 조성됐대. 작은 갤러리들이랑 공방들이 있고."
"프로방스 마을 비슷한 건가?"
프로방스 마을 경험 이후, 민수는 신중해졌다.
"아니, 거긴 진짜 주민들이 사는 동네래. 오래된 집들을 그대로 살려서 문화 공간으로 만든 거."
"그럼 서촌이나 성북동처럼?"
"비슷한데 규모가 작고, 아직 덜 알려진 곳. 그래서 더 조용하고 여유롭대."
서연이와 준우를 불렀다.
"애들아, 내일 축제 갈까?"
"축제?"
준우의 눈이 반짝였다.
"응. 골목축제. 벼룩시장도 있고, 먹을 것도 많고."
"가고 싶어!"
"서연이는?"
"나는... 막걸리 만들기 체험 해보고 싶어."
"너 미성년자인데."
"만들기만 하는 거잖아. 마시는 건 아니고."
지혜가 웃으며 예약 사이트를 확인했다.
"막걸리 만들기 체험, 사전 예약 필요하네. 지금 신청하자."
토요일 오전 11시, 네 식구는 법원읍에 도착했다. 한적한 시골 마을 같은 풍경이었다.
"여기가 맞아?"
네비게이션이 안내한 곳은 낮은 주택들이 모여 있는 조용한 동네였다.
"사임당로 888번길..."
표지판을 따라 들어가자 분위기가 달라졌다. 골목 입구에 '모두의 골목축제'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여기다!"


축제가 열린 골목
주차는 골목 주변 노상에 했다. 이미 차들이 여러 대 서 있었다.
"사람 많네."
골목으로 들어서자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졌다. 좁은 골목 양쪽으로 부스들이 늘어서 있었다.
"우와!"
플리마켓 부스에는 빈티지 옷, 수제 악세서리, 그림, 도자기 등이 진열되어 있었다. 삼송 그래피티 골목에서 본 것보다 더 다양하고 알찼다.
"여기 봐. 핸드메이드래."
한 부스에서는 젊은 작가가 직접 만든 도자기를 팔고 있었다.
"이거 다 손으로 만드셨어요?"
"네. 제가 파주에서 공방 운영하는데, 축제 때 나왔어요."
"예쁘다."
지혜는 작은 찻잔 세트를 샀다. 문발리 블루박스에서 산 앤틱 찻잔이 생각났다.
"이건 새 거지만, 그것만큼 의미 있을 것 같아."
준우는 어린이 벼룩시장에 정신이 팔렸다.
"저기 레고 파는데!"
한쪽 구석에는 동네 아이들이 직접 물건을 내놓은 벼룩시장이 있었다. 장난감, 책, 문구류들을 파는 초등학생들.
"이거 얼마예요?"
"천 원이요!"
준우는 레고 세트를 샀고, 서연이는 오래된 소설책 몇 권을 샀다.
"애들이 직접 파는 거 보니까 재미있다."
체험부스도 다양했다. 캘리그라피, 천연비누 만들기, 꽃다발 만들기.
"막걸리 만들기는 2시부터래. 그때까지 구경하자."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부스들을 둘러봤다. 프로방스 마을과는 완전히 달랐다. 여기는 인위적으로 꾸민 것이 아니라, 진짜 사람들의 삶이 있는 골목에서 자연스럽게 열린 축제였다.
"여기 집들 봐."
골목 양쪽의 집들은 오래됐지만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어떤 집은 담벼락에 화분을 걸어놓았고, 어떤 집은 작은 갤러리로 문을 열었다.
"저 집 들어가 봐도 될까?"
한 한옥 대문이 열려 있었다. '갤러리 돌다리'라는 작은 간판이 붙어 있었다.
"들어가보자."
안으로 들어가니 마당이 있고, 그 너머로 전시 공간이 보였다.
"어서 오세요."
60대 정도의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여기 갤러리예요?"
"네. 제 집인데, 축제 때는 동네 작가들 작품 전시해요."
벽에는 파주 풍경을 그린 수채화들이 걸려 있었다. 법원읍의 들판, 임진강, 오래된 돌다리.
"이 그림 제가 그렸어요. 여기서 50년 살았거든요."
"50년이요?"
"네. 시집와서 쭉. 이 동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다 봤죠."
"많이 변했어요?"
"옛날엔 정말 시골이었어요. 논밭뿐이고. 근데 점점 사람들 떠나고, 빈집 늘어나고. 그러다가 몇 년 전부터 예술가들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예술가들이요?"
"네. 서울에서 작업실 구하기 힘드니까, 여기 싼 집 얻어서 오는 거예요. 그 사람들이 갤러리도 만들고, 공방도 만들고. 그래서 문화마을이 됐죠."
"좋으세요?"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미소 지었다.
"좋죠. 동네가 살아나니까. 예전엔 조용하긴 한데 쓸쓸했거든요. 지금은 축제도 하고, 사람들도 오고. 시끄럽긴 해도 활기차서 좋아요."
갤러리를 나오며 민수가 말했다.
"프로방스 마을이랑 비슷한 면도 있네."
"뭐가?"
"예술이 쇠퇴하는 동네를 살린 거."
"근데 방식이 달라. 프로방스는 관에서 만든 거고, 여기는 자연스럽게 형성된 거."
"어느 쪽이 더 나을까?"
"모르겠어. 둘 다 나름의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막걸리 향기 속에서
오후 2시, 막걸리 만들기 체험에 참가했다. 한 공방 마당에 테이블이 차려져 있었다.
"안녕하세요. 파주 전통 막걸리를 만드는 양조장 주인입니다."
40대 남자가 앞에 섰다.
"오늘은 막걸리 만드는 과정을 체험해보시고, 시음도 하실 거예요. 미성년자는 시음은 안 되고 만들기만 하셔야 해요."
재료들이 나왔다. 쌀, 누룩, 물.
"먼저 쌀을 씻어서..."
과정을 설명하며 직접 시연을 보여줬다. 가족들도 따라 했다.
"생각보다 어렵네."
"맞아. 온도도 중요하고, 시간도 중요하고."
"옛날 사람들은 이걸 다 손으로 했다는 게 대단해."
한 시간쯤 체험하고 나니 막걸리가 완성됐다. 물론 바로 마실 수 있는 건 아니고, 발효 과정을 거쳐야 했지만, 미리 만들어둔 막걸리를 시음할 수 있었다.
"성인분들만 시음 가능합니다."
민수와 지혜는 작은 잔에 막걸리를 받았다.
"건배."
한 모금 마셨다. 달콤하고 고소했다. 시판 막걸리와는 다른 깊은 맛이었다.
"맛있다."
"진짜. 이게 전통 방식으로 만든 맛이구나."
양조장 주인이 설명을 이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막걸리를 잘 안 마셔요. 구식이라고 생각하죠. 근데 제대로 만든 막걸리는 정말 맛있거든요. 그걸 알리고 싶어서 이런 체험도 하고, 축제에도 참여하는 거예요."
"힘드시겠어요. 전통 방식 고집하시면."
"힘들죠. 돈도 안 되고. 근데 누군가는 해야 할 것 같아요. 안 그러면 다 사라지니까."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에서 만난 할머니가 떠올랐다. 을지로 철공소 사장님도. 전통을 지키려는 사람들.
체험이 끝나고 다시 골목을 걸었다. 푸드트럭에서는 다양한 음식을 팔고 있었다.
"타코 먹을까?"
"나는 핫도그!"
음식을 사서 골목 한쪽 벤치에 앉아 먹었다. 축제 분위기가 무르익고 있었다. 음악이 흘러나오고, 사람들이 웃고, 아이들이 뛰어다녔다.
"여기 좋다."
서연이가 타코를 먹으며 말했다.
"왜?"
"사람 냄새 나. 프로방스 마을은 예쁘긴 했는데 뭔가 차가웠거든. 근데 여기는 따뜻해."
민수는 딸을 보며 놀랐다. 15살이 되며 서연이는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됐다.
"맞아. 사람 냄새."
지혜도 동의했다.
"축제라는 게 원래 그런 거 아닐까?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즐기고, 나누는 것."
오후 4시쯤, 작은 무대에서 공연이 시작됐다. 동네 아이들의 댄스 공연, 어쿠스틱 밴드 공연.
"저기 앉아서 보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공연을 봤다. 전문적이진 않았지만, 진심이 느껴지는 공연들이었다.
"엄마, 나도 저기서 공연하고 싶어."
서연이가 무대를 보며 말했다.
"뭐 할 건데?"
"시 낭송? 윤동주 시."
"좋은데. 다음 축제 때 신청해보자."
해가 기울 무렵, 골목에 가로등이 켜지기 시작했다. 프로방스 마을처럼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노란 불빛이었다.
"야경도 예쁘네."
"응. 자연스러워."


골목에 남은 온기
저녁 6시, 축제가 끝나갈 무렵 네 식구는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부스들이 하나둘 정리되고 있었다.
"정리 도와드릴까요?"
한 부스 주인에게 물었다.
"아, 괜찮아요. 고마워요."
"축제 자주 해요?"
"1년에 두 번이요. 봄, 가을. 동네 사람들이랑 예술가들이 함께 준비해요."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근데 재미있어요. 동네가 하나 되는 느낌이랄까. 요즘 세상에 이런 경험 흔치 않잖아요."
주차한 곳으로 걸어가며 민수가 말했다.
"오늘 어땠어?"
아이들이 먼저 대답했다.
"재미있었어!"
"나도. 막걸리 만들기 신기했어."
민수와 지혜는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법원 돌다리는 좋았어."
"나도. 뭔가... 진짜 같았어."
"프로방스 마을이 무대 세트 같았다면, 여기는 실제 삶이 있는 곳."
"그리고 축제가 그 삶을 더 풍성하게 만드는 것 같아."
차에 오르며 지혜가 오늘 산 물건들을 정리했다. 도자기 찻잔, 핸드메이드 비누, 아이들이 산 책과 장난감들.
"물건보다 기억이 더 많이 남을 것 같아."
"응. 막걸리 만든 것, 할머니 갤러리, 공연 본 것."
집으로 가는 길, 아이들은 뒷좌석에서 오늘 산 물건들을 구경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나 이 레고 조립하면 사진 찍어서 친구들한테 보여줄 거야."
"나는 이 책 다 읽고 서평 쓸 거야."
민수는 백미러로 아이들을 보며 미소 지었다.
"우리 아카이빙이 아이들한테도 영향을 주고 있어."
"응. 단순히 구경만 하는 게 아니라, 직접 참여하고, 기록하고."
집에 도착해서 오늘의 사진을 확인했다. 플리마켓 부스, 막걸리 만들기, 공연 무대, 그리고 가족 사진들.
"사진이 생생하다."
"축제라서 그런가 봐. 움직임이 많고, 표정이 다양하고."
민수는 노트를 펼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법원 돌다리 문화마을, 축제 속에 핀 골목'.
"골목축제는 단순한 이벤트가 아니다. 그것은 공동체가 함께 숨 쉬는 시간이다. 법원 돌다리 문화마을에서 본 것은 화려한 볼거리가 아니라, 사람들의 온기였다."
"할머니의 갤러리, 양조장 주인의 열정, 아이들의 벼룩시장, 동네 밴드의 공연. 모든 것이 진심이었다.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함께 즐기기 위한 것."
"우리는 을지로에서 산업의 역사를, 서촌에서 문학의 흔적을, 배다리에서 책의 온기를 봤다. 법원 돌다리에서는 공동체의 힘을 봤다. 쇠퇴하던 시골 마을이 예술과 축제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글을 다 쓰고 지혜에게 보여줬다.
"좋다. 긍정적이고 따뜻해."
"프로방스 마을 글이 좀 비판적이었다면, 이번엔 희망적으로 쓰고 싶었어."
"균형이네."
며칠 후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저도 다음 축제 때 꼭 가보고 싶어요!"
"이런 골목축제가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공동체의 힘, 공감합니다."
그리고 뜻밖의 댓글이 하나 달렸다.
"저는 법원 돌다리에서 갤러리를 운영하는 할머니입니다. 축제 때 오셨던 분들이시죠? 글 감사히 읽었어요. 우리 동네를 이렇게 따뜻하게 봐주셔서 고마워요. 다음 축제 때 또 오세요."
민수는 즉시 답글을 달았다.
"할머니,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가을 축제 때 꼭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그때는 저희 딸이 무대에서 시 낭송하게 해주세요."
"좋아요. 기다릴게요."
그날 저녁, 서연이에게 말했다.
"서연아, 가을 축제 때 진짜로 시 낭송할 거야?"
"진짜야?"
"응. 할머니가 좋다고 하셨어."
"우와! 뭐 읽을까?"
"네가 제일 좋아하는 거."
"윤동주 '서시'!"
"좋아. 그럼 지금부터 연습하자."
그날부터 서연이는 매일 '서시'를 연습했다. 골목 아카이빙은 이제 단순한 관찰을 넘어 참여가 됐다.
6개월 후, 가을 축제가 열렸다. 가족은 다시 법원 돌다리를 찾았다.
"할머니!"
갤러리 할머니가 반갑게 맞아주셨다.
"어머, 정말 오셨네요. 그리고 딸이 시 낭송한다고?"
"네. 준비 많이 했어요."
오후 3시, 서연이가 무대에 올랐다.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시작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점점 목소리가 안정되고, 감정이 실렸다. 윤동주의 시가 가을 오후 골목에 울려 퍼졌다.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마지막 구절을 마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서연이는 얼굴이 빨개져서 무대에서 내려왔다.
"잘했어!"
민수와 지혜가 딸을 꼭 안아줬다.
할머니도 다가오셨다.
"정말 잘했어요. 윤동주 시인도 기뻐하실 거예요."
그날 저녁, 축제가 끝나고 가족은 골목 벤치에 앉았다.
"서연아, 기분 어때?"
"떨렸는데... 좋았어. 사람들 앞에서 읽으니까 시가 더 살아나는 것 같았어."
"그게 공동체의 힘이야. 혼자가 아니라 함께하면 더 의미 있어지는 것."
민수가 노트를 꺼냈다.
"오늘도 기록해야지."
"이번엔 관찰자가 아니라 참여자로."
"맞아. 더 특별하네."
법원 돌다리 문화마을은 그렇게 가족의 아카이빙에 새로운 의미를 더했다. 보는 것에서 참여하는 것으로, 기록하는 것에서 만들어가는 것으로.
부부의 골목 아카이빙은 계속 진화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는 아이들도 함께 만들어가는 가족의 프로젝트가 되었다.
법원 돌다리의 골목들은 오늘도 조용히 숨 쉬고 있다. 봄과 가을, 1년에 두 번 축제로 활기를 띠고, 평소에는 예술가들과 주민들이 함께 어울려 사는 곳.
그리고 한 가족에게는, 관찰에서 참여로 나아간 특별한 배움의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골목은 계속된다.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와 함께. 그리고 축제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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