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구두골목

구두가 걷는 골목

by seungbum lee

제조업 골목의 재발견
"성수동 가본 적 있어?"
7월의 어느 저녁, 서연이가 먼저 물었다. 요즘 그녀는 친구들과 SNS를 보며 서울의 힙한 장소들에 관심이 많았다.
"성수동? 뚝섬 근처?"
민수가 책을 덮으며 대답했다.
"응. 친구들이 거기 카페 진짜 예쁘대. 인스타감성 미쳤다고."
지혜가 부엌에서 나오며 웃었다.
"인스타감성이라는 말은 또 어디서 배웠어."
"친구들 다 그렇게 말해. 근데 진짜 예쁜 것 같아."
서연이가 핸드폰을 보여줬다. 화면에는 높은 천장의 카페, 콘크리트 벽, 빈티지 가구들이 보였다.
"이게 다 옛날 공장이었대. 지금은 카페나 식당으로 바뀌었고."
민수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공장?"
"응. 수제화 공장. 성수동이 원래 구두 만드는 동네였대."
"을지로랑 비슷하네."
민수는 즉시 노트북을 켰다. '성수동 수제화거리'를 검색했다.
"오, 진짜네. 여기 1970~80년대에 수제화 산업으로 유명했대. 한국 수제화의 메카였다고."
"지금은?"
"공장들이 대부분 문을 닫고, 그 자리에 카페나 레스토랑이 들어섰대. 근데 아직 수제화 공장도 남아있고."
지혜가 소파에 앉으며 말했다.
"을지로 패턴이네."
"응. 제조업이 쇠퇴하고, 예술과 카페가 들어오고."
"젠트리피케이션?"
"그것도 있을 것 같아. 근데 성수동은 좀 다르대. 공장과 카페가 나름 공존하고 있다고."
"어떻게?"
"그걸 가서 봐야 알겠지."
준우를 불렀다.
"준우야, 이번 주말에 성수동 갈 건데, 거기 구두 공장 있어."
"구두?"
"응. 손으로 만드는 구두. 신기하지 않아?"
"음... 그냥 그런데. 카페는 있어?"
"있어. 엄청 많대."
"그럼 좋아!"
토요일 오전 11시, 네 식구는 지하철 2호선 성수역에 도착했다.
"여기가 성수동."
역에서 나오니 낯선 풍경이었다. 서울 한복판인데도 낮은 건물들, 넓은 도로, 공장 같은 건물들이 보였다.
"강남이랑 완전 다르네."
"원래 공업 지역이었으니까."
지도를 확인하고 수제화거리 방향으로 걸었다.


구두와 커피의 공존
몇 분 걷자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세련된 간판들이 보였다.
"저기 '대림창고'래. 유명한 카페."
큰 건물이 보였다. 외관은 낡은 창고 그대로인데, 입구만 현대적으로 바뀌어 있었다.
"진짜 창고네."
안으로 들어가니 엄청 넓었다. 천장이 높고, 기둥이 그대로 노출되어 있었다. 공장의 흔적이 역력했다.
"우와, 넓다!"
사람들로 북적였다. 대부분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
"자리 찾기 힘들겠는데."
운 좋게 창가 자리가 비었다. 재빨리 앉았다.
"아메리카노 두 잔, 딸기스무디, 초코쉐이크요. 그리고 와플 하나."
주문을 하고 주변을 둘러봤다. 인테리어는 미니멀했다. 콘크리트 벽, 철제 계단, 산업용 조명.
"을지로 느낌이 나는데?"
"응. 공장을 살린 거니까."
음료가 나왔다. 플레이팅이 깔끔했다.
"예쁘다. 사진 찍자."
서연이가 핸드폰을 꺼냈다. 몇 장 찍더니 SNS에 올렸다.
"친구들이 좋아요 엄청 누를 거야."
커피를 마시며 민수가 말했다.
"근데 신기한 게, 여기가 원래 뭐 하던 곳일까?"
"창고? 공장?"
벽에 오래된 사진이 걸려 있었다. 흑백 사진 속에는 이 건물에서 사람들이 일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저게 뭐야?"
가까이 가서 봤다. 사진 아래 설명이 있었다.
"1978년, 대림제화 공장. 이 건물에서 수제화를 생산했습니다."
"구두 공장이었구나."
사진 속 사람들은 작업복을 입고 기계 앞에서 일하고 있었다. 진지한 표정들이었다.
"지금은 카페가 됐네."
"시간이 참 많이 흘렀다."
카페를 나와 골목을 걸었다. 양쪽으로 건물들이 이어졌는데, 간판들이 흥미로웠다.
"저기 봐. '김씨네 제화'."
낡은 2층 건물이었다. 1층에는 '김씨네 제화'라는 오래된 간판이, 2층에는 '성수 브루어리'라는 현대적 간판이 붙어 있었다.
"1층은 구두 공장, 2층은 수제 맥주집?"
"신기하다. 같은 건물에."
1층 유리문 너머로 안을 봤다. 정말 구두를 만들고 있었다. 한 남자가 가죽을 재단하고 있었다.
"들어가봐도 될까?"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갔다.
"안녕하세요."
"어, 어서 오세요. 구두 맞추러 오셨어요?"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작업을 멈추고 일어났다.
"아, 아니요. 그냥 구경 좀 해도 될까요?"
"그래요? 좋아요. 요즘 구경 오는 사람 많아요."
작업장은 작았지만 깔끔했다. 벽면에는 가죽들이 걸려 있고, 테이블에는 각종 공구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직접 만드세요?"
"네. 수제화요. 주문받아서 손으로 만들어요."
"오래 하셨어요?"
"30년 됐어요. 아버지 때부터 하던 거 이어받았으니까 50년 된 가게죠."
"와... 50년."
"성수동이 원래 구두 동네였어요. 여기저기 구두 공장 천지였죠. 근데 지금은 우리 같은 데 몇 군데 안 남았어요."
"왜 다 없어졌어요?"
남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중국산이 들어오면서요. 싸게 대량생산하니까 수제화는 경쟁이 안 돼요. 그래서 다들 문 닫고."
"힘드시겠어요."
"힘들죠. 근데 그래도 버티고 있어요. 수제화 찾는 사람들이 아직 있으니까."
벽에 걸린 구두 하나를 가리켰다.
"이게 제가 만든 거예요. 하나 만드는 데 일주일 걸려요. 손이 많이 가죠."
구두를 자세히 봤다. 가죽의 질감, 바느질 하나하나가 정교했다.
"예술이네요."
"예술이라... 그냥 제 일이에요. 평생 해온 거."
준우가 궁금한 듯 물었다.
"아저씨, 2층에 맥주집 있잖아요. 시끄럽지 않아요?"
남자가 웃었다.
"처음엔 좀 그랬어요. 근데 이제 익숙해졌어요. 오히려 건물이 활기차서 좋아요. 전에는 너무 조용했거든요."
"같이 사는 거네요."
"그렇죠. 공존. 나는 구두 만들고, 위에서는 맥주 만들고."

산업의 기억, 문화의 현재
공장을 나와 더 걸었다. 곳곳에서 비슷한 풍경이 보였다. 1층은 공장이나 작업실, 2층은 카페나 식당.
"을지로랑 비슷한데 다르기도 해."
지혜가 말했다.
"뭐가?"
"을지로는 공장들이 다 문 닫고 사라졌잖아. 근데 여기는 아직 남아서 함께 있어."
"공존하고 있구나."
"응. 더 나은 모델인 것 같아."
한 골목을 돌자 '성수동 구두박물관'이라는 작은 간판이 보였다.
"박물관이다!"
안으로 들어갔다. 입장료는 무료였다.
작은 공간이었지만 알차게 꾸며져 있었다. 1970~80년대 성수동 사진들, 오래된 구두 제작 도구들, 당시 만들어진 구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여기 봐."
한 코너에는 성수동의 역사가 설명되어 있었다.
"1960년대부터 성수동에는 제화 공장들이 들어서기 시작했습니다. 1970~80년대 전성기 때는 1,000개가 넘는 제화 관련 업체가 있었습니다. '성수동에서 못 만드는 구두는 없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1,000개나?"
"지금은?"
다음 패널을 읽었다.
"2000년대 들어 중국산 신발이 밀려오면서 성수동 제화 산업은 급격히 쇠퇴했습니다. 현재는 약 50여 개 업체만 남아 있습니다."
"1,000개에서 50개로."
"거의 다 사라진 거네."
영상 코너에서는 구두 장인 인터뷰가 재생되고 있었다.
"손으로 만드는 구두는 달라요. 기계로 만든 거랑은. 발에 맞춰서 하나하나 정성껏 만들죠. 그게 장인정신이에요."
화면 속 할아버지의 손이 클로즈업됐다. 주름진 손, 굳은살. 평생 구두를 만든 손이었다.
서연이가 영상을 보며 조용히 말했다.
"을지로 철공소 할아버지 생각나."
"나도."
박물관을 나오며 민수가 말했다.
"성수동도 결국 같은 이야기네."
"뭐?"
"기술이 사라지는 것. 장인들이 늙어가는 것. 그리고 그 자리를 새로운 문화가 채우는 것."
"근데 여기는 조금 다른 것 같아. 완전히 사라지는 게 아니라 함께 있잖아."
"그게 희망적이긴 해."
점심 때가 되어 '성수연방'이라는 레스토랑에 들어갔다. 역시 공장을 개조한 곳이었다.
"여기도 옛날 공장이래."
천장에는 옛날 공장의 호이스트(기중기)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인테리어의 일부가 된 것이었다.
"파스타 두 개, 리조또, 스테이크요."
음식을 기다리며 창밖을 봤다. 맞은편에는 여전히 가동 중인 제화 공장이 보였다. 사람들이 분주히 일하고 있었다.
"저 공장은 아직 살아있네."
"버티고 있는 거지."
음식이 나왔다. 맛있었다. 플레이팅도 예쁘고, 맛도 훌륭했다.
"맛있다."
"비싸긴 한데."
식사를 하며 지혜가 말했다.
"생각해보면 아이러니해."
"뭐가?"
"저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아마 여기서 못 먹을 거야. 너무 비싸서."
민수도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들이 만든 동네에서 그들은 소외되는 거지."
"젠트리피케이션의 아이러니."
식사를 마치고 다시 골목을 걸었다. 오후의 햇살이 따가웠다.
"저기 작은 카페 있다."
'구두방 커피'라는 간판이 보였다. 정말 작은 카페였다. 들어가니 주인 혼자 운영하는 곳이었다.
"안녕하세요."
"어서 오세요."
30대로 보이는 여자가 반갑게 맞았다.
"아이스아메리카노 네 잔이요."
커피를 내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벽에는 성수동 풍경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여기 사진 직접 찍으신 거예요?"
"네. 제가 사진작가예요. 성수동 기록하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기록?"
"네. 성수동이 너무 빨리 변하고 있어서요. 옛날 모습을 남기고 싶었어요."
민수와 지혜는 눈을 마주쳤다. 같은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저희도 비슷한 일 해요. 서울 골목 아카이빙."
"아, 진짜요? 반가워요!"
여자의 눈이 반짝였다.
"저도 『골목, 그 안의 시간들』 읽었어요. 혹시 그 책 쓰신 분들?"
"네, 맞아요!"
"와, 진짜 반가워요. 팬이에요!"
커피를 마시며 한참 이야기를 나눴다. 그녀는 5년 전부터 성수동을 사진으로 기록하고 있었다.
"처음엔 그냥 예쁜 동네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알아보니까 역사가 있더라고요. 구두 장인들의 이야기, 사라지는 공장들."
"그래서 카페를 여기에?"
"네. 카페 하면서 사진도 찍고, 장인들도 만나고. 이 동네를 제대로 알고 싶었어요."
"공장 사람들이랑은 어떠세요?"
"처음엔 경계하셨어요. '또 카페 하나 생겼네' 이러시면서. 근데 제가 관심 있어 하고, 사진도 찍어드리고, 이야기도 듣다 보니까 이제는 친해졌어요."
"공존하는 법을 찾으신 거네요."
"그렇죠. 저는 이 동네 역사를 존중하고, 그분들은 제가 여기 있는 걸 인정해주시고."

서로를 비추는 시간들
오후 4시쯤, 네 식구는 '성수동 수제화거리' 표지석 앞에 섰다.
"여기가 중심부네."
표지석 뒤로 골목이 이어졌다. 양쪽으로 제화 공장들과 카페들이 섞여 있었다.
"사진 찍자."
가족 사진을 찍었다. 표지석을 배경으로.
"이번엔 어떤 느낌이야?"
민수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재미있었어."
준우가 대답했다.
"나는 신기했어."
서연이가 이었다.
"뭐가?"
"옛날 것이랑 새것이 함께 있는 게. 을지로는 옛날 것만 있었고, 프로방스는 새것만 있었잖아. 근데 여기는 둘 다 있어."
민수는 딸을 보며 놀랐다. 16살이 된 서연이는 이제 완전히 자신만의 관점을 가지고 있었다.
"잘 봤다."
"그리고..."
서연이가 말을 이었다.
"을지로는 슬펐는데, 성수동은 희망적인 것 같아. 아직 살아있으니까. 함께 있으니까."
지혜가 딸을 안아줬다.
"맞아. 이게 우리가 배워야 할 거야. 어떻게 공존하는지."
해가 기울 무렵, 다시 그 구두 공장 앞을 지났다. 2층 맥주집에서는 손님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1층 공장에서는 여전히 기계 소리가 났다.
"두 소리가 섞이네."
"응.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데, 의외로 어울려."
"그게 성수동이구나."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민수가 말했다.
"오늘 뭘 배웠을까?"
"공존?"
"그것도 있고... 존중?"
"존중?"
"응. 아까 그 카페 사장님처럼. 새로 온 사람이 옛것을 존중하고, 옛날 사람이 새것을 인정하는 것."
"그게 답인 것 같아."
"을지로는 그걸 못 해서 다 사라졌고, 성수동은 그걸 하고 있어서 함께 있는 거."
집에 도착해서 사진을 정리했다. 대림창고, 김씨네 제화, 구두박물관, 성수연방, 그리고 구두방 커피.
"사진이 다양하다."
"공장과 카페가 번갈아 나오네."
민수는 노트를 펼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성수동, 구두가 걷는 골목'.
"성수동은 을지로와 닮았다. 제조업의 역사가 있고, 장인들이 있고, 그 기술이 사라지고 있다. 하지만 한 가지가 다르다. 성수동에서는 아직 장인들이 일하고 있다. 카페 옆에서, 레스토랑 아래에서."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무엇일까? 구두방 커피 사장님이 말했다. '존중'. 새로 온 사람들이 옛것을 존중하고, 오래 있던 사람들이 새것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공존의 비결이다."
"성수동은 완벽하지 않다. 여전히 임대료는 오르고 있고, 작은 공장들은 버티기 힘들어하고 있다. 하지만 적어도 시도는 하고 있다. 함께 살아가려는."
"을지로에서 우리는 사라짐을 봤다. 해방촌에서는 밀려남을 봤다. 성수동에서는 공존을 본다. 불완전하지만 희망적인."
글을 다 쓰고 지혜에게 보여줬다.
"좋다. 희망적이야."
"응. 오랜만에 희망적인 글을 쓰는 것 같아."
며칠 후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반응은 뜨거웠다.
"저도 성수동 자주 가는데 이런 의미가 있는 줄 몰랐어요."
"공존의 모델로 성수동을 주목해야겠네요."
"다음에 가면 공장도 한번 들러봐야겠어요."
그리고 한 댓글이 민수를 울컥하게 했다.
"저는 성수동에서 30년째 구두 만드는 장인입니다. 이 글 읽고 눈물이 났습니다. 누군가 우리를 기억해준다는 게, 우리 일을 가치 있게 봐준다는 게. 감사합니다. 다음에 성수동 오시면 꼭 들러주세요. 제가 정성껏 만든 구두 한 켤레 드리고 싶습니다."
민수는 즉시 답글을 달았다.
"댓글 감사합니다. 꼭 찾아뵙겠습니다. 그리고 구두 한 켤레의 가치를 알기에, 선물보다는 정당한 가격을 드리고 사고 싶습니다. 30년의 기술을 존중하는 마음으로."
일주일 후, 민수는 혼자 성수동을 다시 찾았다. 댓글을 남긴 장인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안녕하세요. 블로그에 댓글 주신 분이시죠?"
"어, 오셨어요!"
60대 초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반갑게 맞아줬다.
"여기 앉으세요."
작은 작업실에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30년 동안 여기서 일하셨다고요?"
"네. 스무 살 때 시작했으니까. 아버지한테 배워서."
"성수동의 변화를 다 보셨겠네요."
"다 봤죠. 전성기 때는 정말 바쁘았어요. 주문이 밀려서 밤샘 작업도 많이 했고. 근데 2000년대 들어 중국산이 들어오면서... 주변 공장들이 하나씩 문 닫는 걸 봤어요."
"힘드셨겠어요."
"힘들었죠. 저도 몇 번 그만둘까 생각했어요. 근데 이게 제 인생이잖아요. 그냥 버텼어요."
"그리고 지금은 카페들이 들어오고."
남자는 창밖을 바라봤다. 맞은편에 새로 생긴 카페가 보였다.
"처음엔 기분이 이상했어요. 우리가 힘들게 버티는데 젊은 애들은 와서 커피 마시고 사진 찍고. 근데 시간이 지나니까... 나쁘지 않더라고요."
"왜요?"
"동네가 살아나니까. 예전엔 너무 죽어있었거든요. 공장들 다 문 닫고, 사람도 없고. 근데 지금은 사람들이 와요. 젊은 사람들이. 그중에 몇몇은 우리 공장에도 관심 가져주고."
"구두 주문도 들어오나요?"
"가끔요. 많진 않지만. 그래도 예전보단 나아요. 수제화의 가치를 아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남자는 작업대로 가서 구두 한 켤레를 가져왔다.
"이게 제가 만든 거예요. 손님 주문받아서."
구두를 자세히 봤다. 광택 나는 가죽, 정교한 스티칭, 완벽한 형태.
"정말 아름답네요."
"아름다움보다는... 견고함이 중요해요. 오래 신을 수 있게."
"한 켤레 만드는 데 얼마나 걸려요?"
"일주일쯤. 손이 많이 가요."
"가격은 얼마예요?"
"50만 원이요."
"백화점 수입 구두보다 싸네요."
"수제화가 비싸다고 생각하는데, 사실 가성비로 따지면 더 나아요. 10년은 신을 수 있거든요."
민수는 지갑을 꺼냈다.
"한 켤레 주문하고 싶습니다."
"진짜요?"
"네. 제 발에 맞춰서 만들어주세요."
남자의 눈이 촉촉해졌다.
"감사합니다. 정성껏 만들겠습니다."
발 치수를 재고, 디자인을 상의하고, 선금을 냈다. 2주 후에 완성품을 받기로 했다.
작업실을 나오며 남자가 말했다.
"선생님 같은 분이 더 많아지면 좋겠어요. 우리 일을 가치 있게 봐주는 사람."
"아니에요. 제가 감사하죠. 이런 기술을 지켜주셔서."
2주 후, 구두가 완성됐다. 다시 성수동을 찾아 구두를 받았다.
"신어보세요."
발에 신어보니 완벽했다. 딱 맞는 핏, 편안한 착용감.
"정말 좋습니다."
"잘 신으세요. 오래 가실 거예요."
그날 밤, 민수는 새 구두를 신고 집 앞을 걸었다. 발걸음이 편했다.
"새 구두?"
지혜가 물었다.
"응. 성수동에서 주문한 거."
"예쁘다. 비쌌겠다."
"50만 원. 근데 가치 있어."
"그 장인분한테 산 거야?"
"응. 2주 기다렸어."
"의미 있네."
민수는 구두를 보며 생각했다. 이 구두 한 켤레가 30년 기술의 결과물이고, 성수동 역사의 일부이고, 장인과 고객의 만남이라는 것을.
"이게 공존의 시작인 것 같아."
"뭐가?"
"새로 온 사람(나)이 옛것(수제화)의 가치를 인정하고,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
"그리고 장인도 새로운 고객을 받아들이는 것."
"그렇지."
3개월 후, 『골목, 그 안의 시간들 3』이 출간됐다. 이번에는 성수동이 중심이었다. 구두 장인들의 이야기, 변화하는 동네의 모습, 그리고 공존의 가능성.
책에는 민수가 주문한 구두 제작 과정이 사진으로 상세히 실렸다. 가죽 선택부터 완성까지.
책은 예상보다 큰 반응을 얻었다. 특히 성수동을 찾는 젊은이들 사이에서 화제가 됐다.
"성수동 가면 카페만 갈 게 아니라 공장도 가봐야겠어요."
"수제화 하나 주문하고 싶어졌어요."
"이게 진짜 힙한 거네요. 장인 존중."
그리고 뜻밖의 변화가 생겼다. 수제화 주문이 늘기 시작한 것이었다. 책을 읽은 젊은이들이 성수동 공장을 찾아가 구두를 주문했다.
"요즘 20~30대 손님이 많아졌어요."
그 장인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책 덕분인 것 같아요. 감사합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좋은 구두 만들어주셔서."
성수동은 그렇게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단순히 카페만 가는 동네가 아니라, 제조업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동네로.
부부의 골목 아카이빙은 이제 단순한 기록을 넘어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사라지는 것을 기억하는 것에서, 남은 것을 지키는 것으로.
성수동의 구두 공장들은 오늘도 일한다. 카페 옆에서, 레스토랑 아래에서. 그리고 그 구두를 신은 사람들이 골목을 걷는다.
구두가 걷는 골목. 과거와 현재가 함께 걷는 길.
민수는 그 구두를 신고 오늘도 골목을 기록한다. 한 걸음씩, 한 이야기씩.
끝나지 않는 여정은 계속된다. 성수동처럼, 공존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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