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곽 아래 피어난 골목
성벽 너머의 새로운 발견
"수원 가본 적 있어?"
8월의 어느 주말, 준우가 먼저 물었다. 요즘 학교에서 조선시대 역사를 배우고 있었다.
"화성? 성곽 있는 데?"
민수가 신문을 내려놓으며 대답했다.
"응. 근데 거기 행리단길이라고 힙한 골목도 있대."
"행리단길?"
서연이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경리단길, 해리단길처럼 '-리단길'이 붙은 거. 수원 화성 남문 근처래."
지혜가 부엌에서 나오며 웃었다.
"요즘 어디나 다 '-리단길'이네. 유행어야, 유행어."
"근데 여기는 좀 특별하대. 성곽 바로 옆이거든."
민수가 검색을 시작했다. '수원 행리단길'.
"오, 정말 성벽 옆이네. 팔달문 바로 앞."
화면에는 거대한 성문과 성벽,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골목의 모습이 보였다. 낮은 건물들 사이로 세련된 카페와 레스토랑 간판들이 보였다.
"조선시대 성곽과 2020년대 카페의 만남?"
"프로방스 마을 같은 건가?"
서연이가 물었다. 프로방스 마을에서 배운 교훈을 기억하고 있었다.
"아니, 거기는 인위적으로 만든 거였잖아. 행리단길은 원래 있던 주택가에 자연스럽게 카페들이 생긴 거래."
"성수동이랑 비슷하네."
"응.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의 공존."
"그럼 가보자."
네 식구는 의견이 모아졌다.
토요일 오전 10시, 수원역에 도착했다. 서울에서 전철로 한 시간 거리였다.
"생각보다 가깝네."
역에서 나와 택시를 탔다.
"팔달문으로 가주세요."
10분쯤 가니 거대한 성문이 보이기 시작했다.
"우와, 저게 팔달문이야?"
높고 웅장한 성문이 도심 한복판에 서 있었다. 주변의 현대식 건물들과 묘한 대비를 이뤘다.
"조선시대 건물이 여기 그대로 있네."
택시에서 내려 성문 앞에 섰다. 올려다보니 더 웅장했다.
"사진 찍자."
가족 사진을 찍었다. 팔달문을 배경으로.
"여기서 행리단길이 어디야?"
"성문 옆 골목이래."
성문을 지나 왼쪽으로 걸었다. 성벽을 따라 좁은 골목이 이어졌다.
"여기부터가 행리단길인가 봐."
성벽 그림자 속의 새로운 문화
골목으로 들어서자 분위기가 확 달라졌다. 오른쪽으로는 높은 성벽이, 왼쪽으로는 2~3층 건물들이 늘어서 있었다.
"성벽이 진짜 가까워."
손을 뻗으면 닿을 듯한 거리에 거대한 돌로 쌓은 성벽이 있었다. 400년 된 성벽이었다.
"신기하다. 조선시대랑 지금이 이렇게 가까이."
골목을 따라 걷기 시작했다. 양쪽으로 카페, 베이커리, 레스토랑들이 보였다.
"진짜 많다."
첫 번째로 들어간 곳은 '성벽 베이커리'였다. 작은 빵집이었는데, 통유리창으로 성벽이 보였다.
"여기요, 크루아상 네 개랑 커피 두 잔, 우유 두 개요."
주문을 하고 창가에 앉았다. 바로 옆에 성벽이 보였다.
"빵 먹으면서 성벽 보는 거 되게 이상한데?"
준우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게. 조선시대 사람들이 보면 뭐라고 할까."
크루아상이 나왔다. 따뜻하고 바삭했다.
"맛있다!"
빵을 먹으며 주인에게 물었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2년 전이요. 처음엔 손님이 별로 없었는데, 요즘은 많이 와요."
"행리단길 언제부터 유명해졌어요?"
"한 3년 전부터요? 작은 카페 몇 개 생기면서 입소문 타기 시작했어요. 지금은 주말이면 사람들 엄청 많아요."
"원래 여기 어떤 동네였어요?"
"주택가였죠. 성벽 옆이라 개발도 못 하고, 조용한 동네였어요. 근데 그게 매력이 된 거예요."
베이커리를 나와 골목을 더 걸었다. 카페마다 특색이 있었다. 어떤 곳은 빈티지 감성, 어떤 곳은 미니멀, 어떤 곳은 레트로.
"밤리단길이랑 비슷한 느낌."
"응. 주택가에 자연스럽게 카페들이 생긴 거."
한 카페 앞에서 멈췄다. '성곽마루'라는 이름이었다.
"여기 2층에서 성벽 전망 좋다고 리뷰 많던데."
2층으로 올라갔다. 창가 자리에 앉으니 성벽이 눈높이로 보였다.
"우와, 여기 진짜 좋다."
"사진 찍기 딱이다."
서연이가 연신 사진을 찍었다. 성벽, 카페 인테리어, 음료.
"언니, 인스타 올릴 거야?"
"당연하지. 친구들 부러워할 거야."
음료를 마시며 민수가 말했다.
"여기는 프로방스 마을이랑 다르네."
"어떻게?"
"프로방스는 유럽을 흉내 낸 거였잖아. 근데 여기는 진짜 역사가 옆에 있어. 400년 된."
"그리고 성벽이 배경이 아니라 일부가 된 거 같아."
창밖으로 성벽을 따라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관광객들도 있고, 동네 주민들도 있었다.
"성벽 위 걸을 수 있어?"
"응. 화성 성곽길이라고, 전체를 한 바퀴 돌 수 있대."
"나중에 걸어보자."
카페를 나와 골목을 계속 탐험했다. 작은 옷가게, 액세서리 샵, 공방들도 있었다.
"여기 핸드메이드 가게다."
한 작은 가게에 들어갔다. '수원공방'이라는 간판이 붙어 있었다.
안에는 도자기, 가죽 제품, 직접 만든 악세서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이거 다 직접 만드셨어요?"
"네. 저랑 남편이요. 여기서 만들어서 여기서 팔아요."
"수원 사세요?"
"네. 원래 서울에서 일하다가 여기로 내려왔어요. 집값도 싸고, 작업 공간도 넓고."
"성수동 패턴이네."
민수가 지혜에게 작게 말했다.
"예술가들이 저렴한 지역으로 이동하는 거."
작은 도자기 그릇을 샀다. 수작업의 온기가 느껴졌다.
역사와 현재의 경계에서
점심 때가 되어 '행리단 국밥'이라는 식당에 들어갔다. 오래된 식당 같았다.
"여기요, 국밥 네 개요."
주문을 하고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식당은 낡았지만 깔끔했다. 벽에는 오래된 수원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사진 봐. 1980년대 수원이래."
사진 속에는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풍경이 담겨 있었다. 낮은 한옥들, 흙길, 그리고 성벽.
"지금이랑 많이 다르네."
국밥이 나왔다. 구수하고 진한 맛이었다.
"맛있다."
밥을 먹으며 주인 할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오래 하셨어요?"
"40년 됐어. 우리 시어머니 때부터 하던 거니까 60년 된 가게야."
"60년이요?"
"그래. 이 자리에서 쭉. 성벽 보면서."
"주변이 많이 변했겠어요. 카페들 생기고."
할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변했지. 엄청. 옛날엔 여기 다 집이었어. 조용한 동네였지. 근데 몇 년 전부터 카페들이 하나둘 생기더니, 이제는 주말마다 사람 천지야."
"힘드세요?"
"힘들기도 하고 좋기도 해. 시끄럽긴 한데, 장사는 더 잘돼. 카페 왔다가 배고파서 우리 가게 오는 사람들 많거든."
"그럼 카페들이 도움이 되는 거네요."
"그렇지. 서로서로 도움 되는 거야. 카페는 젊은 사람 끌어오고, 우리는 그 사람들 먹여주고."
"공존이네요."
"그래, 공존. 그게 중요해."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민수가 말했다.
"여기는 성공적인 것 같아."
"뭐가?"
"공존. 옛날 가게랑 새 카페가 함께 있잖아. 서로 도우면서."
"성수동이랑 비슷하네."
"응. 근데 규모는 더 작고, 더 친밀한 느낌?"
골목 끝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팔달문 공원'이라는 이름이었다. 성벽을 배경으로 벤치들이 놓여 있었다.
"여기서 쉬자."
벤치에 앉아 성벽을 올려다봤다. 거대한 돌들이 정교하게 쌓여 있었다.
"400년 전에 쌓았다는 게 믿기지 않아."
"정말. 어떻게 이렇게 정교하게 쌓았을까."
준우가 성벽을 만지려고 다가갔다.
"만지지 마. 문화재야."
"아... 알았어."
서연이가 노트를 꺼내 뭔가 적기 시작했다.
"뭐 써?"
"오늘 느낀 거. 역사랑 현재가 이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다는 게 신기해."
"잘 느꼈다."
민수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400년 된 성벽 바로 옆에서 2026년의 사람들이 커피를 마시고 있다는 것.
"시간이 겹쳐지는 느낌이야."
"응?"
"과거와 현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겹쳐져 있는 거. 성벽은 과거고, 카페는 현재고, 우리는 그 사이에."
"심오하다, 아빠."
준우가 웃으며 말했다.
오후가 되어 성곽길을 걷기로 했다. 팔달문 옆 계단으로 성벽 위에 올랐다.
"우와!"
성벽 위에서 보는 풍경은 장관이었다. 한쪽으로는 수원 구도심이, 다른 쪽으로는 신도시가 보였다.
"여기서 보니까 수원이 다 보인다."
성곽길을 따라 천천히 걸었다. 성벽은 잘 보존되어 있었고, 걷기 좋게 정비되어 있었다.
"정조대왕이 이 길을 걸었을까?"
"그랬겠지. 성을 점검하면서."
성곽길을 걷다 보니 아래로 행리단길이 보였다. 작은 카페들, 골목길, 사람들.
"위에서 보니까 또 다르네."
"성벽 입장에서 보는 거지. 400년 동안 아래를 지켜본."
"성벽이 뭘 봤을까?"
서연이가 중얼거렸다.
"전쟁도 보고, 평화도 보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도 보고."
"그리고 지금은 카페 가는 사람들을 보고."
모두 웃었다.
시간을 품은 골목
해가 기울 무렵, 다시 행리단길로 내려왔다. 석양이 성벽을 비추며 따뜻한 빛을 만들었다.
"예쁘다."
"사진 찍자."
석양을 배경으로 성벽과 골목을 찍었다. 400년 된 돌과 2년 된 카페가 같은 빛을 받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한 곳만 더 가자."
'책과 성벽'이라는 작은 서점 겸 카페를 발견했다.
"여기 예쁘다."
안으로 들어가니 한쪽은 책장, 한쪽은 카페였다. 창가에는 독서용 의자가 놓여 있었다.
"아메리카노 두 잔, 핫초코 두 개요."
책장을 둘러봤다. 수원 관련 책들이 많았다. 『화성성역의궤』, 『정조의 꿈, 수원화성』, 『수원 골목 이야기』.
"여기 책 좋다."
『수원 골목 이야기』를 집어 들었다. 행리단길에 대한 내용도 있었다.
"이거 봐."
책에는 행리단길이 생기기 전 모습이 사진으로 실려 있었다. 조용한 주택가, 빈 건물들.
"5년 전만 해도 이랬구나."
"완전히 변했네."
음료를 마시며 책을 읽었다. 행리단길의 형성 과정, 상인들의 이야기, 주민들의 반응.
한 구절이 눈에 들어왔다.
"행리단길의 성공 비결은 '절제'였다. 과도하게 상업화되지 않고, 성벽이라는 역사적 자산을 존중하며, 천천히 자라났다."
"절제라..."
민수가 구절을 소리 내어 읽었다.
"맞는 말인 것 같아. 여기는 과하지 않아. 적당해."
"성벽이 있어서 그런 것 같아. 함부로 못 하게 하는."
"역사가 브레이크 역할을 하는 거네."
해가 완전히 지고 가로등이 켜졌다. 성벽에도 조명이 들어왔다.
"야경 보고 가자."
밖으로 나오니 성벽이 은은한 조명을 받아 빛나고 있었다. 프로방스 마을의 화려한 조명과는 달랐다. 차분하고 우아했다.
"멋지다."
"사진 찍자."
야경을 배경으로 마지막 가족 사진을 찍었다.
수원역으로 걸어가며 민수가 물었다.
"오늘 어땠어?"
"좋았어."
아이들이 동시에 대답했다.
"나는 성벽이 제일 인상적이었어."
서연이가 말했다.
"400년 동안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게. 그리고 지금도 있다는 게."
"나는 국밥!"
준우가 웃으며 말했다.
"역시 먹는 게 제일이지?"
전철을 타고 집으로 가며 민수와 지혜는 조용히 대화를 나눴다.
"행리단길은 좋았어."
"나도. 균형이 잘 잡힌 것 같아."
"뭐?"
"역사 존중과 현대 문화. 옛것과 새것. 관광과 일상."
"성벽이 있어서 가능한 것 같아. 역사가 눈앞에 있으니까 함부로 못 하는 거."
"그게 답일 수도 있겠다. 역사를 가까이 두는 것."
집에 도착해서 사진을 정리했다. 팔달문, 성벽, 카페들, 골목, 그리고 야경.
"사진이 다 예쁘게 나왔다."
"성벽이 배경이라 그런가 봐."
민수는 노트를 펼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수원 행리단길, 성곽 아래 피어난 골목'.
"행리단길은 성벽 옆에 있다. 400년 된 거대한 돌 성벽 바로 옆에서 2020년대 카페들이 커피를 내린다. 이것이 이상해 보일 수도 있지만, 실제로 보면 놀랍도록 자연스럽다."
"왜일까? 아마도 '절제' 때문일 것이다. 행리단길은 과하지 않다. 성벽을 압도하려 하지 않고, 그저 곁에 있다. 역사를 배경으로 삼지 않고, 이웃으로 대한다."
"을지로에서 우리는 사라짐을 봤다. 해방촌에서는 밀려남을 봤다. 성수동에서는 공존을 봤다. 수원 행리단길에서는 '존중'을 본다. 역사에 대한 존중, 그것이 현대 문화와 함께하는 방법."
"60년 된 국밥집 할머니가 말했다. '서로서로 도움 되는 거야. 카페는 젊은 사람 끌어오고, 우리는 그 사람들 먹여주고.' 이것이 공존이다. 그리고 그 공존 위에는 400년 된 성벽이 지켜보고 있다."
글을 다 쓰고 지혜에게 보여줬다.
"좋다. 희망적이면서도 깊이가 있어."
"수원이 그랬어. 가볍지 않았어."
며칠 후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수원 사는데 행리단길을 이렇게 보신 분은 처음이에요."
"다음 주말에 꼭 가보겠습니다. 성벽과 카페, 멋진 조합이네요."
"역사 존중이라는 말이 와닿아요."
그리고 한 특별한 댓글이 달렸다.
"저는 수원시 문화재과에서 일하는 공무원입니다. 선생님 글 감동 깊게 읽었습니다. 사실 행리단길 개발할 때 고민이 많았습니다. 성벽 훼손 없이 어떻게 활성화시킬까. 선생님 글을 보니 잘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역사와 현대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 같아서요."
민수는 답글을 달았다.
"수원시의 노력이 느껴졌습니다. 성벽을 살리면서도 골목을 살렸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잘 해내셨습니다. 다른 도시들도 배울 점이 많을 것 같습니다."
한 달 후, 수원시로부터 이메일이 왔다.
"『골목, 그 안의 시간들』 저자 선생님께. 수원시에서 내년에 '골목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시작합니다. 행리단길을 비롯한 수원의 역사적 골목들을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작업입니다. 선생님께서 자문위원으로 참여해주시면 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민수는 흥분해서 지혜에게 이메일을 보여줬다.
"봐! 수원시에서!"
"대박! 우리 아카이빙이 공식 프로젝트가 되는 거야?"
"그런 것 같아. 어떻게 할까?"
"당연히 해야지!"
그날 저녁, 가족 회의를 열었다.
"아빠가 수원시 프로젝트에 참여하면 주말마다 수원 가야 할 수도 있어. 우리 가족 아카이빙은 좀 줄어들 수도 있고."
"괜찮아."
서연이가 먼저 말했다.
"수원도 우리 같이 가면 되잖아. 가족 아카이빙이면서 동시에 공식 프로젝트 하는 거지."
"그래! 나도 도울 수 있어."
준우도 동의했다.
"그럼 다 같이 하는 거네."
지혜가 웃으며 말했다.
"우리 가족 아카이빙이 이제 진짜 일이 되는 거야."
3개월 후, 수원시 골목 아카이빙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민수는 자문위원으로, 지혜는 사진작가로, 서연이와 준우는 청소년 기록단으로 참여했다.
첫 미팅이 열린 곳은 행리단길의 한 카페였다. 성벽이 보이는 곳.
"이 프로젝트는 단순히 골목을 사진으로 기록하는 게 아닙니다."
프로젝트 책임자가 설명했다.
"역사와 현재가 어떻게 공존하는지, 그 과정을 기록하는 겁니다. 수원만의 모델을 만드는 거죠."
"좋습니다."
민수가 동의했다.
"행리단길이 좋은 예시가 될 것 같아요. 성벽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골목을 살렸으니까."
1년간의 프로젝트였다. 행리단길뿐 아니라 수원의 다른 골목들도 기록했다. 팔달문 시장, 지동 시장, 남창동 옛 골목들.
그리고 1년 후, 『수원, 성곽 안의 골목들』이라는 책이 나왔다. 수원시가 공식 발행한 책이었다.
책에는 민수 가족의 시선으로 본 수원 골목들이 담겼다. 사진, 인터뷰, 역사 자료, 그리고 가족의 경험.
특히 행리단길 챕터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었다.
"400년 된 성벽 옆에서 커피를 마신다는 것. 그것은 과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함께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다."
책은 전국의 지자체에 배포됐다. 많은 도시들이 참고 자료로 활용했다.
"이거 대단한데?"
지혜가 신문 기사를 보여줬다.
"우리 프로젝트가 모범 사례로 소개됐어. 전주, 경주, 강릉에서도 비슷한 걸 하겠대."
"정말?"
"응. 역사 도시의 골목 보존 모델로."
서연이가 옆에서 말했다.
"우리가 시작한 게 이렇게 커질 줄 몰랐어."
"그러게. 3년 전 을지로 인쇄소 구경 간 게 엊그제 같은데."
부부의 골목 아카이빙은 이제 개인의 취미를 넘어 사회적 운동이 되고 있었다. 사라지는 골목을 기억하는 것에서, 골목을 지키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수원 행리단길은 그 전환점이 되었다. 역사와 현재가 공존할 수 있다는 것을, 과거를 존중하면서도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곳.
오늘도 행리단길에서는 사람들이 커피를 마신다. 400년 된 성벽을 바라보며. 그리고 성벽은 오늘도 그 자리에 서 있다. 400년 전처럼, 400년 후에도 그럴 것처럼.
민수는 가끔 수원을 찾아간다. 프로젝트는 끝났지만, 마음은 여전히 그곳에 있다.
성벽 아래를 걸으며 생각한다. 시간이란 무엇일까.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정말 따로 있는 걸까.
행리단길에서는 모든 시간이 함께 있다. 조선시대의 성벽, 일제강점기의 흔적, 현대의 카페, 그리고 미래를 꿈꾸는 사람들.
골목은 시간을 품는다. 그리고 한 가족은 그 시간을 기록한다.
끝나지 않는 여정. 계속되는 기록. 이어지는 이야기.
수원 행리단길처럼, 역사를 곁에 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