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가 모인 골목
국경 없는 밥상으로의 초대
"안산 원곡동 알아?"
11월의 어느 저녁, 민수가 노트북을 보다가 말했다. 김포 군하리 아카이빙 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잠시 쉬고 있던 참이었다.
"원곡동? 거기 외국인 많은 동네 아니야?"
지혜가 설거지를 하다가 대답했다.
"응. 다문화 거리래. 중국, 베트남, 인도, 우즈베키스탄, 몽골. 온갖 나라 음식점이 다 모여있대."
서연이가 소파에서 책을 덮으며 다가왔다.
"세계 음식 골목?"
"응. 한 골목에서 세계 여행 하는 거."
"오, 재미있겠다!"
준우도 게임을 잠깐 멈추고 왔다.
"무슨 나라 음식이 있어?"
"베트남 쌀국수, 중국 마라탕, 인도 커리, 몽골 양고기, 우즈베키스탄 빵..."
"다 먹어야 해!"
민수가 자료를 더 찾아봤다.
"근데 단순히 음식만 있는 게 아니야. 거기 사는 외국인들의 삶이 있어. 한국에 일하러 온 사람들, 오래 정착한 사람들. 그 이야기가 궁금해."
"의정부 부대찌개 거리랑 비슷한 건가? 시대가 만든 음식 문화."
"비슷하면서 달라. 부대찌개는 전쟁이 만든 거였고, 여기는 노동이 만든 거야. 외국인 노동자들이 고향 음식을 그리워하며 만든 거리."
지혜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그게 더 복잡한 이야기일 수 있겠다. 이주노동자, 다문화, 차별."
"맞아. 그래서 가보고 싶어."
서연이가 말했다.
"나 세계 음식 좋아해. 그리고 그 사람들 이야기도 궁금해."
"좋아. 가자."
다음 주 토요일, 네 식구는 지하철 4호선을 탔다. 안산역까지 서울에서 한 시간 거리였다.
"안산은 처음이야."
"나도."
안산역에서 내려 버스로 갈아탔다. 원곡동까지 10분 거리였다.
버스에 올라타니 이미 분위기가 달랐다. 한국어보다 다른 언어가 더 많이 들렸다. 중국어, 베트남어, 어딘가 낯선 언어들.
"벌써 분위기 다르다."
"응. 외국인들이 많아."
버스 창밖으로 한글과 외국어가 섞인 간판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 중국어 간판이다."
"저건 베트남어?"
원곡동 정류장에서 내렸다.
"와."
첫 번째 인상은 압도적이었다. 골목 입구부터 온갖 나라의 간판들이 보였다. 한글, 중국어, 베트남어, 아랍어, 몽골어. 색색의 간판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냄새. 향신료 냄새, 숯불 냄새, 달콤한 빵 냄새가 뒤섞였다.
"여기 진짜 세계네."
세계의 맛을 찾아서
골목으로 들어섰다. 양쪽으로 식당들이 빼곡했다. 중국집, 베트남 쌀국수집, 인도 커리집, 몽골 양고기집, 우즈베키스탄 식당.
"어디부터 가지?"
준우가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
"일단 둘러보자. 다 보고 나서 먹을 거 정하는 거야."
골목을 천천히 걸으며 식당들을 구경했다.
첫 번째 골목은 중국 음식들이 많았다. 마라탕, 훠궈, 양꼬치.
"마라탕 냄새다!"
"좋아해?"
"응! 매운데 맛있어."
두 번째 골목은 동남아시아 음식들. 베트남 쌀국수, 태국 팟타이, 인도네시아 나시고렝.
"이 냄새는?"
"향신료야. 동남아 음식에 많이 써."
"생소한데 좋은 냄새다."
세 번째 골목은 중앙아시아 쪽이었다. 우즈베키스탄, 몽골, 카자흐스탄.
"저건 뭐야?"
한 식당 앞에 커다란 빵 같은 게 진열되어 있었다.
"난이래. 중앙아시아 빵."
"먹어봐도 돼요?"
식당 아주머니에게 물었다.
"그럼요. 맛봐요."
한 조각 받아 먹었다.
"맛있다! 고소해."
"사워도우 비슷한 맛이야."
골목을 한 바퀴 돌고 나서 가족회의를 했다.
"어디서 먹을까?"
"나는 마라탕!"
"나는 쌀국수."
"나는 커리."
"다 먹자."
"다?"
"응. 여기까지 왔는데. 조금씩."
첫 번째로 베트남 쌀국수 집에 들어갔다. '포하노이'라는 간판이었다.
"어서 오세요."
베트남어 억양이 섞인 한국어였다. 주인은 40대 베트남 여성이었다.
"쌀국수 네 개요."
주문을 하고 앉으니 주변을 둘러봤다. 손님들이 다양했다. 베트남 사람들, 한국 사람들, 다른 나라 사람들.
벽에는 베트남 풍경 사진이 걸려 있었다. 하노이 거리, 하롱베이, 베트남 사람들.
"저 사진이 그리우시겠다."
지혜가 작게 말했다.
쌀국수가 나왔다. 맑은 국물, 쌀로 만든 면, 신선한 허브들.
"먹어봐. 라임 즙 넣으면 더 맛있어."
한 모금 마셨다. 깊고 진한 국물이었다.
"맛있다!"
"이게 진짜 베트남 맛이야."
먹으면서 주인에게 물었다.
"한국에 오신 지 오래 됐어요?"
"15년 됐어요."
"여기서 계속 식당 하셨어요?"
"처음엔 공장에서 일했어요. 10년. 그다음에 돈 모아서 식당 열었어요."
"힘드셨겠어요."
주인은 담담하게 웃었다.
"힘들었죠. 근데 괜찮아요. 지금은 좋아요. 내 식당이니까."
"베트남 그립지 않으세요?"
"그립죠. 근데 여기가 이제 내 집이에요. 애들도 한국에서 태어났고."
쌀국수를 다 먹고 나왔다. 다음은 인도 커리 집이었다.
'봄베이 스파이스'라는 간판의 식당이었다.
"나마스테."
인도 남자가 합장하며 맞아줬다.
"나마스테."
준우가 따라 했다.
"커리 추천해주세요."
"버터치킨 커리 어때요? 안 매워서 아이들도 좋아해요."
"좋아요."
커리가 나왔다. 진한 황금색 소스, 부드러운 닭고기, 난과 함께.
"우와, 색깔 예쁘다."
첫 맛을 보니 풍성한 향신료 향이 입 안을 가득 채웠다.
"맛있어!"
"서양 커리랑 완전 달라."
주인에게 물었다.
"인도 어디서 오셨어요?"
"뭄바이요."
"한국에 언제 오셨어요?"
"20년 됐어요. 처음엔 IT 회사에서 일했어요. 지금은 식당."
"IT에서 왜 식당으로?"
"내 음식이 최고니까요."
자신감 있는 웃음이었다.
"한국 생활은 어때요?"
"좋아요. 안전하고, 깨끗하고. 근데 외로울 때 있어요. 인도 사람들 많이 없으니까."
"여기 원곡동은요?"
"여기는 좀 나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라도 외국인들이 있으니까. 연대감 같은 거?"
국경 너머의 이야기들
커리를 다 먹고 골목을 더 걸으며 사람들을 관찰했다.
원곡동은 단순한 음식 거리가 아니었다. 슈퍼마켓에는 각국의 식재료가 가득했다. 베트남 쌀국수 재료, 인도 향신료, 중국 소스들.
"여기 식재료 마트다."
안으로 들어갔다. 한국 마트와는 완전히 달랐다.
"이게 다 뭐야?"
준우가 낯선 향신료들을 보며 물었다.
"각 나라 요리에 쓰는 거야. 저건 인도 강황, 저건 베트남 피쉬소스, 저건 중국 두반장."
마트 주인은 중국 동포였다.
"뭐 찾으세요?"
"그냥 구경이요."
"구경도 좋아요. 여기 없는 나라 재료가 없어요."
"손님들이 다양하겠어요."
"그렇죠. 한국 사람도 오고, 외국인도 오고. 요즘은 한국 사람들도 동남아 요리 많이 해 먹어서 재료 사러 와요."
마트를 나와 계속 걸었다.
한 골목 모퉁이에서 흥미로운 장면을 봤다. 베트남 여성과 몽골 남성이 서로 스마트폰 번역기를 켜서 대화하고 있었다.
"저 봐. 다른 나라 사람들인데 번역기로 얘기해."
"여기선 그게 일상이겠지."
공통 언어가 한국어도, 영어도 아닌 스마트폰 번역기라니.
한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세계카페'라는 이름이었다. 들어가니 젊은 한국인 여자가 운영하고 있었다.
"여기 좀 특이하네요. 다국적 음식 골목에 한국인 카페."
"네. 저 여기서 5년째예요."
"왜 여기에?"
"처음엔 호기심으로 왔다가, 여기 분위기가 너무 좋아서 눌러앉았어요."
"좋은 게 뭔데요?"
젊은 여자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다양함? 여기서는 매일 다른 언어 들리고, 다른 냄새 나고, 다른 사람들 만나고. 한국 안에 세계가 있는 것 같아서."
"원주민들이랑 외국인들 사이에 갈등은 없어요?"
"없다고는 못하죠. 문화 차이도 있고, 언어 문제도 있고. 근데 음식 앞에서는 다 친구가 되더라고요."
"음식이 언어네요."
"맞아요. 여기서는 음식이 소통이에요."
카페를 나와 민수가 말했다.
"여기가 특별한 이유를 알 것 같아."
"뭔데?"
"의정부 부대찌개는 전쟁이 만든 음식이었잖아. 슬픔에서 시작한 거야. 근데 여기는 그리움이 만든 음식이야."
"그리움?"
"응. 고향을 그리워하는 마음. 베트남 아주머니가 한국에서 베트남 쌀국수를 만드는 건, 고향이 그리워서야. 그리고 그게 음식이 된 거지."
지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움이 문화가 된 거네."
"맞아. 그게 원곡동의 본질인 것 같아."
골목 안쪽으로 더 들어가니 광장이 나왔다. 작은 공원이었는데, 여러 나라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한쪽에서는 베트남 사람들이 음식을 나눠 먹고 있었고, 다른 쪽에서는 중국 사람들이 장기를 두고 있었고, 아이들은 국적에 상관없이 함께 뛰어놀고 있었다.
"여기 봐."
아이들 놀이터에서 한국 아이, 베트남 아이, 몽골 아이가 함께 놀고 있었다. 말은 통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웃음은 같았다.
"아이들은 국경이 없네."
"그래. 그냥 같이 노는 거야."
서연이가 그 모습을 사진으로 찍었다.
"이게 다문화야."
한 할아버지가 공원 벤치에 앉아 계셨다. 한국인처럼 보였다.
"안녕하세요."
"오, 구경 왔어요?"
"네. 여기 자주 오세요?"
"매일 오지. 집이 근처야."
"여기 오래 사셨어요?"
"30년 살았어. 외국인들 오기 전부터."
"어떻게 달라졌어요?"
할아버지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처음엔 좀 이상했어. 갑자기 외국인들이 많아지니까. 말도 안 통하고, 문화도 다르고."
"지금은요?"
"익숙해졌지. 그리고 솔직히 말하면... 좋아."
"왜요?"
"음식이 맛있잖아."
민수가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
"그것뿐이에요?"
할아버지도 웃으며 말씀하셨다.
"아니. 저 사람들 열심히 살아.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고. 한국 젊은이들보다 더 열심히 하는 것 같아. 보면서 배우는 거 있어."
경계가 없는 골목
저녁이 되어 마지막 식사를 하러 들어간 곳은 우즈베키스탄 식당이었다.
'타슈켄트'라는 이름이었다.
"우즈베키스탄 음식은 처음이야."
안으로 들어가니 낯선 분위기였다. 인테리어가 중앙아시아 스타일이었다. 화려한 무늬의 천들, 낮은 테이블, 쿠션 좌석.
"신기하다!"
"아시아인데 중동 같기도 하고."
"중앙아시아니까."
주인은 30대 우즈베크인 남성이었다.
"뭐 드실래요?"
"뭘 추천하세요?"
"플로프 어때요? 양고기 볶음밥이에요. 우리나라 전통 음식."
"좋아요. 그걸로요."
기다리는 동안 주인과 이야기를 나눴다.
"한국에 오신 지 얼마 됐어요?"
"10년 됐어요. 처음엔 건설 현장에서 일했어요."
"지금은 식당이요?"
"네. 4년 전에 열었어요. 우즈베키스탄 음식 파는 데가 없어서. 고향 음식이 그리워서 시작했어요."
"장사 잘 돼요?"
"요즘은 돼요. 처음엔 힘들었어요. 한국 사람들이 우즈베키스탄 음식을 모르니까."
"어떻게 알리셨어요?"
"우즈베키스탄 사람들부터 시작했어요. 여기 우즈베키스탄 사람들 2천 명 정도 살거든요. 그 사람들이 오고, 입소문 타고, 나중에 한국 사람들도 오기 시작했어요."
플로프가 나왔다. 큰 접시에 볶음밥처럼 보이는 음식이었다. 양고기와 당근, 건포도가 들어간 쌀요리였다.
"맛있다!"
"달콤하면서 고소해."
"건포도가 들어간 게 독특하다."
먹으면서 준우가 말했다.
"우즈베키스탄이 어디야?"
"중앙아시아. 카자흐스탄 옆에."
"거기서 여기까지 왜 와?"
주인이 들었는지 웃으며 대답했다.
"돈 벌러요. 우즈베키스탄은 일자리가 적어요. 그래서 한국에 와요. 한국은 일이 많으니까."
"한국 좋아요?"
"좋아요. 열심히 하면 돈 벌 수 있으니까. 그리고 안전하고."
"고향 그립지 않아요?"
주인은 잠시 표정이 흐려졌다.
"그립죠. 부모님도 있고, 친구들도 있고. 근데 어떡해요. 가족 먹여 살려야 하니까."
식사를 마치고 나오며 민수가 말했다.
"여기 사람들은 다 비슷한 이야기를 가지고 있어."
"뭐가?"
"그리움. 고향이 그립고, 가족이 그립고. 근데 살아야 하니까 여기 있는 거야."
"그게 음식이 됐고."
"응. 그리움이 밥이 된 거지."
공원 벤치에 잠시 앉았다. 어두워진 골목에 불빛들이 켜지고 있었다.
각국의 간판들이 밤에 더 화려했다. 중국어 붉은 간판, 베트남어 노란 간판, 아랍어 초록 간판.
"예쁘다. 이 야경."
"서울이지만 서울 같지 않아."
"응. 어딘가 다른 나라 같기도 하고."
서연이가 말했다.
"아빠, 여기 사람들도 언젠가 책에 써줄 거야?"
"왜?"
"여기도 역사잖아. 외국인들이 모여 산 역사. 나중에 사라질 수도 있고."
민수는 딸을 바라봤다. 19살 서연이는 이제 완전히 아카이버의 눈을 가지고 있었다.
"맞아. 당연히 써야지."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민수와 지혜는 이야기를 나눴다.
"원곡동은 어땠어?"
"복잡했어."
"어떻게?"
"맛은 있었어. 너무 좋았어. 근데 그 뒤에 있는 이야기들이 복잡하더라."
"이주노동자들의 삶?"
"응. 그리움, 고단함, 차별. 그게 다 음식 안에 담겨 있는 것 같아."
"부대찌개도 그랬잖아. 전쟁의 고통이 음식이 된 거."
"그래. 결국 사람의 아픔이 음식을 만드는 것 같아."
집에 도착해서 사진을 정리했다. 다국적 간판들, 쌀국수, 커리, 플로프, 공원에서 뛰노는 아이들.
"사진이 화려하다."
"여기가 그랬어. 색깔도 많고, 냄새도 많고."
민수는 노트를 펼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안산 원곡동, 세계가 모인 골목'.
"원곡동 골목에 들어서면 세계가 펼쳐진다. 베트남어, 중국어, 아랍어, 우즈베크어. 향신료 냄새, 숯불 냄새, 달콤한 빵 냄새. 한국 안에 있지만 한국이 아닌 곳."
"이 골목을 만든 것은 무엇일까? 그리움이다. 고향을 떠나 한국에 온 사람들의 그리움. 베트남 아주머니는 하노이를 그리워하며 쌀국수를 끓이고, 우즈베크 아저씨는 타슈켄트를 그리워하며 플로프를 볶는다."
"그리움이 음식이 되고, 음식이 문화가 되고, 문화가 골목이 됐다. 의정부 부대찌개가 전쟁의 고통에서 태어났다면, 원곡동 음식들은 이주의 그리움에서 태어났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이 맛있는 음식들 뒤에 고단한 삶이 있다는 것을.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사람들, 말이 안 통해 외로운 사람들, 가족이 그리운 사람들."
"공원에서 아이들이 뛰어놀고 있었다. 한국 아이, 베트남 아이, 몽골 아이. 말은 달라도 웃음은 같았다. 어쩌면 그것이 원곡동의 미래일지도 모른다. 경계 없는 세계."
글을 다 쓰고 지혜에게 보여줬다.
"따뜻하면서도 현실적이야."
"원곡동이 그랬어."
며칠 후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반응은 즉각적이었다.
"원곡동에 이런 의미가 있는 줄 몰랐어요."
"그리움이 음식을 만든다는 말이 너무 와닿아요."
"다음 주에 가보겠습니다. 음식도 먹고, 그 사람들 이야기도 들어볼게요."
그리고 특별한 댓글이 달렸다.
"저는 원곡동에서 10년째 식당을 하는 베트남 사람입니다. 선생님 글 읽고 눈물이 났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이렇게 써주는 한국 사람은 처음이에요. 한국 사람들이 우리를 그냥 외국인 노동자로만 보는 것 같아서 슬플 때가 많았는데, 선생님 글을 보니 우리도 사람이라고 봐주는 것 같아서 감사해요."
민수는 댓글을 읽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리고 답글을 달았다.
"댓글 감사합니다. 당신들은 당연히 사람입니다. 그리고 당신들의 이야기는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가 더 제대로 기록하겠습니다."
일주일 후, 민수는 혼자 원곡동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기록을 위해서였다.
베트남 쌀국수 집 아주머니, 인도 커리 집 주인, 우즈베크 식당 사장, 세계카페 한국인 여성, 그리고 30년 거주 한국인 할아버지.
다섯 사람을 인터뷰했다. 각자의 원곡동 이야기를.
베트남 아주머니는 말했다.
"처음 왔을 때 한국말 하나도 몰랐어요. 손짓 발짓으로 살았어요. 공장에서 10년 일하면서 조금씩 배웠어요. 지금은 한국이 편해요. 근데 죽을 때는 베트남에 묻히고 싶어요."
인도 커리 집 주인은 말했다.
"인도 사람들은 한국에서 차별 많이 받아요. 피부 검다고. 근데 음식은 좋아해요. 그게 웃기기도 하고 슬프기도 해요."
우즈베크 사장은 말했다.
"우리 아들이 한국에서 태어났어요. 한국말이 더 잘해요. 우즈베크어보다. 우리 아들은 한국 사람인지, 우즈베크 사람인지 모르겠어요."
한국인 여성은 말했다.
"여기 있으면 내가 소수자가 되는 느낌이에요. 외국인들이 더 많으니까. 그 느낌이 좋아요. 평소엔 느끼지 못했던 거니까."
한국인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말했다.
"처음엔 싫었어요. 솔직히. 우리 동네가 외국인 동네가 된 게. 근데 30년 보다 보니 알겠더라고. 다 살려고 온 거야. 우리도 옛날에 독일에 광부로 갔고, 중동에 노동자로 갔잖아요. 그 사람들이랑 뭐가 달라요."
민수는 인터뷰를 마치고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다 살려고 온 거야."
할아버지의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맞았다. 1960~70년대 한국 사람들이 독일, 중동으로 떠났듯, 지금 이 사람들은 한국으로 온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고향 음식이 그리워 식당을 열었듯, 이 사람들도 고향 음식이 그리워 이 골목을 만들었다.
역사는 반복된다.
그리고 그 반복 속에서 인간은 연결된다.
3개월 후, 『원곡동, 그리움이 밥이 된 골목』이 출간됐다.
단순한 맛집 소개가 아니었다. 다섯 명의 이주민 이야기, 원곡동의 형성 역사, 한국 다문화 사회의 현실.
책은 예상치 못한 반응을 얻었다.
학교 교사들이 교육 자료로 사용했다. 이주민 지원 단체들이 홍보 자료로 활용했다. 그리고 원곡동 식당들에도 책이 비치됐다.
그리고 한 방송사에서 연락이 왔다.
"다문화 특집 프로그램을 만들려고 합니다. 원곡동 이야기를 담고 싶은데, 자문을 부탁드려도 될까요?"
방송이 나간 후 원곡동을 찾는 사람이 늘었다.
단순히 맛집을 찾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오는 사람들이.
베트남 아주머니에게서 전화가 왔다.
"손님이 많이 늘었어요. 그리고 손님들이 물어봐요. 제 이야기를."
"좋으세요?"
"좋죠. 우리 이야기에 관심 가져주니까. 그냥 음식만 먹고 가는 게 아니라."
민수는 전화를 끊고 지혜에게 말했다.
"우리 아카이빙이 또 바뀌고 있어."
"어떻게?"
"처음엔 사라지는 것을 기록했어. 을지로, 배다리처럼. 그다음엔 저항의 역사를 기록했어. 해방촌, 군하리처럼. 이번엔 살아있는 현재를 기록하는 거야."
"현재?"
"응. 지금 이 순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이주민들의 삶이 언젠가는 역사가 될 테니까."
"거안사위네."
"맞아. 평안할 때 위기를 생각하듯, 현재에 있을 때 미래를 생각하는 거야."
서연이가 옆에서 말했다.
"아빠, 나도 이주민 친구들 인터뷰해도 돼?"
"물론이지. 왜?"
"학교에 다문화 학생들 있거든. 베트남, 중국, 필리핀. 걔네 이야기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이번에 해보고 싶어."
민수는 딸을 안아줬다.
"잘 생각했어. 그게 진짜 아카이빙이야."
원곡동 골목은 오늘도 붐빈다. 다양한 언어, 다양한 냄새, 다양한 사람들.
그리고 그 골목의 음식들은 오늘도 그리움을 품고 있다. 고향의 맛, 어머니의 손맛, 잊을 수 없는 기억.
민수 가족의 골목 아카이빙은 이제 완전히 새로운 단계로 들어섰다. 과거의 역사를 기록하는 것을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는 것으로.
언젠가 원곡동도 변할 것이다. 개발이 들어오거나, 사람들이 떠나거나, 또 다른 사람들이 오거나.
하지만 기록은 남는다. 2026년 원곡동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들의 그리움이 만들어낸 음식들이. 그리고 국경 없이 뛰어놀던 아이들의 웃음이.
골목은 세계를 품는다. 그리고 세계는 한 골목 안에 모인다.
원곡동처럼, 경계 없이.
끝나지 않는 여정. 계속되는 기록. 이어지는 이야기.
그리고 그 모든 것의 시작은 언제나 사람이다.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