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덕 위에 핀 희망
두 번째 아카이빙을 향하여
"언니, 또 가?"
5월의 어느 주말, 서연이가 가방을 챙기자 준우가 물었다. 대학 생활을 시작한 지 두 달, 서연이는 거의 매주 어딘가로 나갔다.
"응. 이번엔 수암골."
"수암골? 거기 어디야?"
"청주. 벽화마을."
민수가 거실에서 고개를 들었다.
"또 청주?"
"응. 지난번 대성로 122번길 기록하고 나니까, 청주가 더 궁금해져서. 수암골도 있고, 운리단길도 있고."
지혜가 부엌에서 나오며 말했다.
"우리도 같이 갈까?"
"아니, 이번엔 동아리 애들이랑 갈 거야. 우리끼리 프로젝트."
민수는 딸을 보며 뿌듯했다. 이제 완전히 독립적으로 아카이빙을 하고 있었다.
"조심해서 다녀와."
"응. 다음에 엄마 아빠랑도 가자. 가족 여행으로."
"그래. 기다릴게."
서연이는 동아리 친구 다섯 명과 함께 청주로 향했다. KTX에서 만나기로 했다.
"언니!"
역에서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동아리 부원들이었다. 민지, 수빈, 태윤, 현우, 지호.
"다들 왔네. 출발!"
청주역에 도착해 버스를 타고 수암골로 향했다.
"수암골이 뭐래?"
민지가 물었다.
"6.25 때 피난민들이 정착한 달동네였는데, 지금은 벽화마을이 됐대."
"춘천 망대골목 같은 거?"
"비슷한데 규모가 더 크고, 벽화가 훨씬 많대."
버스는 시내를 지나 언덕으로 올라가기 시작했다. 점점 경사가 가팔라졌다.
"여기 진짜 높다."
"달동네니까."
버스 종점에서 내렸다. '수암골 벽화마을' 표지판이 보였다.
"여기부터 걸어야 해."
언덕을 오르는 색채들
골목으로 들어서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우와!"
벽화가 상상 이상이었다. 골목 양쪽, 계단, 담벼락, 심지어 지붕까지. 온통 그림이었다.
"이거 진짜 대박이다."
첫 번째 골목 이름은 '마실길'이었다. 옛날 마을 풍경을 그린 벽화들이 이어졌다.
"이거 봐. 1960년대 달동네래."
벽화 속에는 좁은 골목, 판잣집, 물 길러 가는 아낙들, 뛰어노는 아이들이 그려져 있었다.
"지금이랑 비교가 되네."
서연이는 체계적으로 기록하기 시작했다.
"다들 맡은 역할 기억하지? 민지는 사진, 수빈은 영상, 태윤이랑 현우는 주민 인터뷰, 지호는 역사 자료 조사."
"오케이!"
팀은 흩어져 각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민지는 전문가처럼 다양한 각도로 벽화를 촬영했다. 전체, 디테일, 맥락을 포함한 환경샷까지.
수빈은 드론을 꺼내 골목 전체를 공중에서 촬영했다.
"우와, 위에서 보니까 완전 다르다!"
드론 화면에는 알록달록한 지붕들과 골목들이 마치 팔레트처럼 펼쳐져 있었다.
서연이는 '민화당길'로 올라갔다. 한국 전통 민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벽화들이 있는 골목이었다.
호랑이, 까치, 모란꽃, 해와 달. 전통 민화의 소재들이 밝은 색채로 벽을 채우고 있었다.
"예쁘다."
계단을 올라가며 한 계단 한 계단마다 다른 그림이 그려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이 계단만 100개는 넘겠는데."
숨이 차올랐다. 경사가 가팔랐다.
"달동네가 이런 거구나."
중간쯤 올라가니 작은 쉼터가 있었다. 벤치 몇 개와 자판기가 있었다.
"여기서 쉬자."
앉아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청주 시내가 보이기 시작했다.
"전망 좋다."
쉬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이 장바구니를 들고 계단을 올라오셨다.
"할머니, 도와드릴까요?"
"아니야, 괜찮아. 익숙해."
하지만 숨이 많이 차 보이셨다.
"여기 앉으세요."
할머니는 벤치에 앉으시며 말씀하셨다.
"고마워. 요즘은 힘들어. 나이 먹으니까."
"여기서 오래 사셨어요?"
"60년 살았어. 피난 와서."
"6.25 때요?"
"그래. 스물 살 때 왔어. 지금 팔십."
서연이는 노트를 꺼냈다.
"혹시 여쭤봐도 될까요? 그때 이야기."
할머니는 흔쾌히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1950년, 평양에서 왔어. 가족이랑 피난 내려왔는데, 청주에서 발이 묶였어. 갈 데가 없더라고. 그래서 이 언덕에 판잣집 지었지."
"힘드셨겠어요."
"힘들었지. 겨울엔 얼어 죽을 것 같고, 여름엔 비 새고. 근데 살아야 했으니까."
"지금은 어떠세요? 벽화마을 되고."
할머니는 알록달록한 벽들을 둘러보셨다.
"좋지. 예쁘잖아. 옛날엔 다 회색이었는데. 근데 한 가지 아쉬운 건..."
"뭐예요?"
"관광객들이 와. 사진 찍고 가. 근데 우리 이야기는 안 들어. 그냥 예쁜 벽화로만 봐."
서연이는 깊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우리가 왔어요. 할머니 이야기 듣고 기록하려고."
할머니의 눈이 촉촉해졌다.
"고마워. 누가 우리 이야기를 기억해줘야 하는데."
벽화 너머의 삶
할머니와 헤어지고 더 올라갔다. 가장 높은 곳에 '수암골 전망대'가 있었다.
"와, 여기다!"
전망대에서 보는 청주는 장관이었다.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사진 찍어야지."
팀원들이 모두 전망대에 모였다.
"다들 어땠어?"
"대박이었어. 주민 세 분 인터뷰했어."
태윤이가 보고했다.
"나는 영상 엄청 찍었어. 편집하면 멋질 것 같아."
수빈이 드론 영상을 보여줬다.
"이거 봐. 공중에서 보면 완전 미로 같아."
정말 그랬다. 좁은 골목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역사 자료는?"
지호가 태블릿을 꺼냈다.
"수암골은 1950년대에 형성된 피난민 정착촌이야. 최대 3천 명까지 살았대. 근데 2000년대 들어 인구가 급격히 줄어서 빈집이 많아졌어. 그래서 2007년부터 벽화마을 프로젝트를 시작한 거야."
"그럼 지금은?"
"관광객은 늘었는데, 주민은 계속 줄고 있대. 특히 젊은 사람들은 거의 없어."
서연이는 생각에 잠겼다.
"벽화로 관광지가 됐지만, 정작 주민들은 떠나고 있다는 거네."
"그런 셈이지."
"그럼 이게 성공한 재생인가?"
"복잡한 문제네."
점심을 먹으러 수암골 안의 작은 식당에 들어갔다.
"여기요, 된장찌개 여섯 개요."
식당 주인은 60대 아주머니였다.
"많이 시켰네. 학생들?"
"네. 대학생이에요. 수암골 기록하러 왔어요."
"기록? 고마워라. 우리 동네 관심 가져줘서."
된장찌개를 먹으며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30년 됐어. 벽화 생기기 전부터."
"벽화 생기고 나서 장사 잘 되세요?"
"주말엔 좀 되지. 근데 평일은 예전이랑 비슷해. 원래 주민들이 손님이거든."
"원래 주민들이 많이 남아 계세요?"
아주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많이 줄었지. 젊은 사람들은 다 나갔어. 남은 건 노인들뿐이야. 나도 곧 나가려고."
"왜요?"
"나이 들면 여기 못 살아. 계단이 너무 많아. 장 봐오는 것도 힘들고, 병원 가는 것도 힘들고."
"그럼 벽화마을이 된 게 의미가 있나요?"
아주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있지. 적어도 우리 동네가 잊히진 않잖아. 예전엔 그냥 가난한 달동네였는데, 지금은 사람들이 와. 그것만으로도 의미 있어."
식사를 마치고 '제빵왕 김탁구' 촬영지로 향했다.
"여기가 그 유명한 계단이래."
드라마에 나왔던 긴 계단이었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었다.
"근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어?"
현우가 물었다.
"드라마 촬영지니까 사람들이 오는 거지."
"그럼 진짜 의미는 없는 거네. 그냥 관광 상품."
"그것도 하나의 의미 아닐까?"
"모르겠어. 복잡해."
희망의 색깔들
오후가 되어 '운리단길'로 이동했다. 수암골에서 버스로 30분 거리였다.
"운리단길이 뭐래?"
"직지 골목길이라고도 해. 직지심체요절 박물관 근처 골목."
"직지? 세계 최초 금속활자?"
"맞아."
운리단길은 수암골과는 완전히 달랐다. 평지였고, 세련된 카페들과 소품샵들이 있었다.
"여기는 성수동 같은데?"
"그러네. 힙한 골목."
'직지체험관'에 먼저 들렀다.
"들어가보자."
안에서는 금속활자를 직접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우와, 신기하다!"
자신의 이름을 금속활자로 만들어 종이에 찍었다.
"민서연. 예쁘게 나왔다."
체험관을 나와 골목을 걸었다. 작은 카페들이 많았다.
"저기 카페 들어가자."
'직지다방'이라는 레트로 감성의 카페였다.
"아메리카노 여섯 잔이요."
카페 안은 직지를 테마로 꾸며져 있었다. 벽에는 직지 내용이 적혀 있고, 인테리어는 인쇄소 느낌이었다.
"분위기 좋다."
커피를 마시며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수암골이랑 운리단길, 완전 달랐지?"
"응. 수암골은 진짜 역사가 있고, 운리단길은 만들어진 문화 같아."
"둘 다 의미 있는 것 같아. 다르지만."
서연이가 노트에 정리를 시작했다.
"수암골: 6.25 피난민의 역사가 담긴 곳. 벽화로 재생했지만, 주민들은 떠나고 있음. 아름답지만 복잡한 곳."
"운리단길: 직지라는 문화유산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곳. 계획적이고 세련됐지만, 깊이는 덜한 느낌."
"결론?"
서연이는 펜을 멈추고 생각했다.
"결론은... 둘 다 필요하다는 거. 수암골 같은 진짜 역사도 중요하고, 운리단길 같은 새로운 문화도 중요하고. 문제는 균형."
"어떤 균형?"
"역사를 존중하면서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 주민을 배려하면서 관광객을 맞이하는 것. 그게 진짜 재생 아닐까?"
팀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서울로 돌아가는 기차 안에서 서연이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청주 수암골, 언덕 위에 핀 희망'.
"수암골은 아름답다. 알록달록한 벽화들이 옛 달동네를 뒤덮고 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 뒤에는 복잡한 이야기가 있다."
"60년 전, 이곳은 피난민들의 마지막 보루였다. 갈 곳 없던 사람들이 가파른 언덕에 판잣집을 짓고 살았다. 가난했지만, 살아있었다."
"2007년, 벽화마을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빈집이 늘어가는 달동네를 살리기 위해. 예술가들이 와서 벽에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관광객들이 오기 시작했다."
"성공일까? 반은 성공이고 반은 실패다. 동네는 유명해졌지만, 주민들은 떠나고 있다. 아름다워졌지만, 살기는 여전히 불편하다."
"팔십 살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관광객들이 와. 사진 찍고 가. 근데 우리 이야기는 안 들어.' 이것이 문제의 핵심이다. 우리는 벽화는 보지만, 사람은 보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은 있다. 벽화는 대화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사람들이 벽화를 보러 와서, 그 벽화 너머의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것이 진짜 재생이 아닐까."
"운리단길은 다른 접근이다. 역사(직지)를 현대 문화로 재해석했다. 세련되고 접근하기 쉽다. 하지만 깊이는 조금 부족하다."
"두 골목 모두 필요하다. 수암골의 진정성과 운리단길의 접근성. 둘을 결합할 수 있다면, 그것이 완벽한 도시재생이 될 것이다."
글을 다 쓰고 동아리 단체 채팅방에 올렸다.
"다들 수고했어. 이번 프로젝트 성공적이었어."
"언니 글 잘 썼다!"
"다음은 어디 갈까?"
"다음 주 회의 때 정하자."
집에 도착해 부모님께 이야기했다.
"수암골 어땠어?"
"복잡했어. 아름답지만 슬프기도 하고."
민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가 갔던 해방촌, 망대골목이랑 비슷하구나."
"응. 피난민 달동네라는 점에서. 근데 해결책은 다르게 찾은 거지. 벽화로."
"어느 쪽이 더 나아?"
서연이는 생각하다가 대답했다.
"모르겠어. 정답은 없는 것 같아. 각 동네마다 다른 방법이 필요한 것 같아."
지혜가 딸을 안아줬다.
"잘 생각했어. 그게 아카이빙의 목적이야. 정답을 찾는 게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것."
한 달 후, 서연이의 동아리는 수암골 프로젝트 결과를 학교에서 전시했다.
사진, 영상, 인터뷰, 역사 자료, 그리고 서연이의 글.
전시 제목은 '언덕 위의 이야기들: 청주 수암골과 운리단길'.
전시 오픈일에 많은 학생들이 왔다. 그리고 놀랍게도 수암골에서 인터뷰했던 할머니도 오셨다.
"할머니!"
"왔다. 네가 한 거 보러."
할머니는 전시를 천천히 둘러보셨다. 자신의 인터뷰가 적힌 패널 앞에서 한참을 서 계셨다.
그리고 눈물을 흘리셨다.
"고마워. 우리 이야기를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줘서."
서연이도 울컥했다.
"제가 감사하죠. 이야기 들려주셔서."
전시는 일주일 동안 이어졌다. 그리고 마지막 날, 청주시 문화재생과에서 연락이 왔다.
"학생, 혹시 우리 프로젝트에 자문 참여할 수 있나요? 수암골 재생 2단계를 계획 중인데, 젊은 세대 시각이 필요해서요."
서연이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정말요? 제가요?"
"네. 전시 보고 감명받았어요. 주민 중심 재생이 뭔지 정확히 파악하고 계시더라고요."
그날 저녁, 서연이는 부모님께 소식을 전했다.
"엄마, 아빠! 청주시에서 연락 왔어!"
"뭐래?"
"수암골 재생 프로젝트 자문 해달래!"
민수와 지혜는 딸을 꼭 안아줬다.
"자랑스럽다. 진짜."
"이제 시작인데."
"시작이 중요해. 그리고 너는 잘하고 있어."
3개월 후, 서연이는 청주시 재생 프로젝트 회의에 참석했다.
가장 어린 참석자였지만, 당당하게 의견을 냈다.
"벽화도 중요하지만, 주민들의 실제 삶의 질 개선이 먼저입니다. 계단에 난간 설치, 엘리베이터 증설, 주민 휴게 공간 확충. 그것이 선행되어야 관광과 공존할 수 있습니다."
회의실의 나이 든 공무원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입니다. 그 부분을 간과했네요."
서연이의 제안은 프로젝트에 반영됐다. 그리고 1년 후, 수암골 재생 2단계가 시작됐다.
주민 중심 재생.
벽화도 유지하되, 실제 거주 환경 개선에 초점을.
서연이는 가끔 수암골을 찾아갔다. 변화를 기록하기 위해.
그리고 할머니를 만났다.
"할머니, 어떠세요? 요즘."
"좋아졌어. 계단에 난간 생기고, 엘리베이터 생기니까 훨씬 나아."
"다행이에요."
"다 네 덕분이야."
"아니에요. 할머니가 이야기해주셔서 가능했던 거예요."
할머니는 서연이의 손을 잡았다.
"고마워. 우리를 잊지 않아줘서."
청주 수암골은 오늘도 변하고 있다. 벽화는 여전히 아름답지만, 이제는 주민들의 삶도 나아지고 있다.
그리고 한 젊은 아카이버의 기록이 그 변화의 일부가 되었다.
민서연의 여정은 계속된다. 기록하는 것을 넘어, 변화를 만드는 것으로.
수암골처럼, 언덕 위에 희망을 피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