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 있음의 자동화
서울 동작구의 한 아파트 단지.
회색 콘크리트 건물들 사이로 아침 7시의 출근 인파가 쏟아져 나왔다.
김도윤, 만 47세. 중견 보험사 리스크관리팀 팀장이었다.
그의 하루는 늘 같았다.
알람, 샤워, 넥타이, 지하철, 커피, 보고서, 회의, 퇴근.
삶은 마치 잘 짜인 시스템(System)처럼 작동했고, 그는 그 안에서 큰 의문 없이 살아갔다.
도윤은 건강검진 결과표를 서랍에 넣어둔 채 한 번도 다시 보지 않았다.
사망보험금 약관을 다루면서도, 정작 자신의 죽음은 他人事(타인사)였다.
그는 종종 이렇게 생각했다.
“죽음은 노인들이나 병자들의 이야기야. 아직은 아니지.”
그 생각이 바로 죽음 부정(Death Denial)이라는 사실을, 그는 알지 못했다.
균열의 시작
사건은 아주 사소하게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늘 함께 점심을 먹던 동기 박정호가 어느 날 출근하지 않았다.
“오늘 부고 문자 받았어요?”
후배의 낮은 목소리가 회의실을 가르듯 흘렀다.
정호는 심근경색으로 새벽에 갑자기 사망했다.
향년 46세.
장례식장.
국화꽃 냄새와 정적 속에서 도윤은 영정 사진을 오래 바라보았다.
사진 속 정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살아 있을 때와 다를 바 없었다.
도윤의 머릿속에 이상한 질문이 떠올랐다.
“어제까지 회의하던 사람이… 오늘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날 밤, 도윤은 잠을 이루지 못했다.
죽음이 처음으로 개념(Concept)이 아닌 현실(Reality)로 다가왔다.
며칠 후, 그는 병원에서 어머니의 검사 결과를 듣게 된다.
의사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말기입니다. 시간은… 길지 않습니다.”
도윤의 세계가 조용히 흔들리기 시작했다.
메멘토 모리
어머니는 병실 창가에서 햇볕을 쬐며 말했다.
“사람은 다 죽는다. 그걸 잊고 살면, 삶도 헛살게 돼.”
도윤은 물었다.
“무섭지 않으세요?”
어머니는 미소 지었다.
“무섭지. 그래서 더 잘 살아야지.”
그날, 도윤은 어머니의 서랍에서 작은 수첩 하나를 발견했다.
첫 장에는 라틴어 문장이 적혀 있었다.
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그 아래에는 한자로 이렇게 쓰여 있었다.
生者必滅(생자필멸)
有始有終(유시유종)
도윤은 깨달았다.
자신은 죽음을 피하기 위해 바쁘게 살아온 것이 아니라,
죽음을 생각하지 않기 위해 바쁘게 살아왔다는 사실을.
그는 처음으로 자신의 삶을 돌아보았다.
미뤄둔 여행, 하지 못한 사과, 말하지 않은 사랑,
“언젠가”라는 말 뒤에 숨겨둔 모든 것들.
그날 이후 도윤의 행동은 조금씩 달라졌다.
퇴근 후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한강을 걸었다.
아들과 눈을 맞추고 대화했다.
보고서보다 사람을 먼저 보았다.
죽음이 가까워질수록, 삶은 오히려 또렷해졌다.
죽음을 기억하며 사는 삶
어머니는 조용히 세상을 떠났다.
도윤은 임종을 지켰다. 눈물은 있었지만, 후회는 적었다.
장례를 마친 후, 그는 회사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모두가 놀랐지만, 그는 담담했다.
“이제는 내가 진짜로 살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습니다.”
도윤은 보험 상담 봉사와 글쓰기를 시작했다.
죽음과 삶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왜 죽지 않을 것처럼 살까요?
죽음을 생각하면 무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죽음을 인식할 때, 삶은 처음으로 의미를 얻습니다.”
그는 마지막으로 슬라이드에 한 문장을 띄웠다.
Remember death, so you may remember life.
관객들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죽음은 여전히 무섭다.
그러나 도윤은 이제 안다.
죽음을 부정하며 사는 삶은,
사실 삶을 부정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는 오늘도 마음속으로 되뇐다.
메멘토 모리.
그리고, 카르페 디엠(Carpe Diem).
죽음을 기억하는 자만이
비로소 살아 있음을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