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이슈(3)픽션

멈출 수 없는 시간

by seungbum lee


아침 6시, 알람이 울리기 전에 지우는 눈을 뜬다. 이제는 알람보다 몸이 먼저 반응한다. 17세 고등학교 2학년생인 지우의 하루는 또래 친구들보다 두 시간은 일찍 시작된다.지우는 조용히 이불을 걷어내고 일어났다.


작은 투룸 아파트에서 엄마와 8살 동생 민준이와 함께 사는 지우는 발소리 하나에도 신경을 쓴다. 좁은 복도를 지나 거실로 나오자, 소파에 누워 있는 엄마의 모습이 보인다.


"엄마, 일어나셨어요?"엄마는 눈을 뜨고 지우를 바라봤다. 3년 전 교통사고 이후 하반신 마비가 된 엄마는 침대에서 소파로 옮기는 것조차 지우의 도움이 필요했다. 엄마의 눈가에는 미안함과 고마움, 그리고 무력감이 뒤섞인 복잡한 감정이 어려 있었다.


"지우야... 미안해. 엄마가 이러니까...""괜찮아요. 제가 할 수 있어요."지우는 능숙하게 엄마를 휠체어로 옮겼다. 처음에는 어색하고 힘들었지만, 이제는 간병 기술을 익힌 간호사처럼 자연스럽다.


세면을 도와드리고, 아침 약을 챙기고, 식사 준비를 했다.부엌에서 계란을 후라이하고 밥을 데우는 동안, 지우는 동생 민준이를 깨웠다."민준아, 일어나. 학교 가야지."민준이는 칭얼거리며 일어났다. 엄마가 아프기 전까지는 엄마가 해주던 모든 일을, 이제는 지우가 대신한다.


아침 식사를 챙기고, 옷을 입히고, 학교 준비물을 확인하는 것까지.


" 누나, 오늘 체육 있어서 체육복 필요해.""알았어. 가방에 넣어줄게."식탁에서 세 식구가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엄마는 지우가 떠먹여 주는 죽을 조금씩 삼켰다.


TV에서는 아침 뉴스가 흘러나왔다."...가족돌봄 청소년 5명 중 1명이 학업을 포기할 생각을 한 적이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습니다..."지우는 손을 멈추고 화면을 바라봤다. 마치 자신의 이야기 같았다. 엄마가 조용히 말했다.


"지우야, 너도 힘들지? 엄마 때문에...""아니에요. 저 괜찮아요."하지만 지우의 얼굴에는 피로가 가득했다. 밤에는 엄마가 화장실을 가야 할 때마다 깨서 도와드리고, 새벽에는 민준이가 악몽을 꾸면 달래야 한다


제대로 자는 날이 거의 없다.7시 40분, 지우는 민준이를 데리고 집을 나섰다. 학교까지 걸어가며 민준이의 손을 꼭 잡았다.


"민준아, 학교에서 말썽 부리지 말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알았지?""응. 누나, 오늘도 늦게 와?""...응. 학교 끝나고 편의점 알바 있어서. 할머니가 와 계실 거니까 집에서 기다려."민준이를 학교 앞에 내려주고, 지우는 자신의 학교로 뛰어갔다. 이미 지각이다. 오늘로 이번 달만 세 번째 지각이다.


교실에 들어서자 수업은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지우를 보며 한숨을 쉬었다."또 지각이네요, 지우야. 이러면 내신에 영향 있는 거 알지?""죄송합니다."지우는 고개를 숙이고 자리에 앉았다.


옆자리 친구 수진이가 속삭였다."괜찮아? 오늘 아침에 무슨 일 있었어?""응, 괜찮아. 그냥 동생 학교 데려다주느라..."수업 시간 내내 지우는 눈을 뜨고 있기가 힘들었다.


어젯밤 엄마가 배가 아프다고 해서 새벽 2시까지 간병을 했다. 몸이 천근만근 무거웠다."이지우!"선생님의 목소리에 지우는 화들짝 놀라 일어났다


자신도 모르게 졸고 있었던 것이다."수업 시간에 자면 어떡해요? 오늘 방과 후에 상담실로 와요.""...네."쉬는 시간, 지우는 학교 옥상으로 올라갔다. 혼자 있고 싶었다.


난간에 기대어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는데, 핸드폰이 울렸다."여보세요?""지우씨, 김 사장입니다. 오늘 저녁 알바 가능하세요? 직원 한 명이 급하게 못 나온다고 해서...""아, 저... 오늘은 좀..."


"시급 두 배로 해드릴게요. 정말 급해서 그러는데."지우는 잠시 망설였다. 이번 달 엄마 병원비가 아직 부족하다. 민준이 학원비도 내야 한다.


"...알겠습니다. 몇 시까지 가면 될까요?""6시요. 고마워요!"전화를 끊고 지우는 한숨을 쉬었다. 오늘 저녁 학원은 또 빠져야겠다. 이번 달만 벌써 세 번째다.점심시간, 식당에서 친구들과 밥을 먹는데 수진이가 물었다.


"지우야, 다음 주 수학여행 신청했어?""...아니.""왜? 고등학교 마지막 수학여행인데!"지우는 대답하지 않았다. 수학여행비 30만 원이 없어서라고 말할 수 없었다. 그 돈이 있으면 엄마 물리치료 한 번을 더 받을 수 있다.


" 너 요즘 너무 안 좋아 보여. 무슨 일 있어?""...아니야. 그냥 좀 피곤해서."수진이는 더 묻지 않았지만,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지우를 바라봤다.방과 후, 지우는 상담실로 갔다.


담임 선생님이 진지한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앉아요, 지우야.""...네.""솔직히 말해볼래요? 집에 무슨 일 있어요? 지각도 잦고, 수업 시간에 자고, 성적도 많이 떨어졌어요. 1학년 때만 해상위권이었는데..."지우는 입술을 깨물었다.


말하고 싶었다. 매일 밤 3시간도 못 자고, 엄마 간병하고, 동생 돌보고, 알바하느라 공부할 시간이 없다고. 하지만 말이 나오지 않았다.


집안 사정이... 좀 어렵습니다.""어떻게 어려운데요? 말해야 학교에서도 도울 수 있어요.""...엄마가 아프세요. 제가 돌봐야 해요.


"선생님의 표정이 부드러워졌다."그랬구나. 그런데 지우야, 너도 중요해. 네 미래도 중요하고. 이러다가 대학은 어떻게 갈 거예요?""...모르겠어요.""학교 복지사 선생님께 연결해드릴게요. 도움받을 수 있는 제도가 있을 거예요.""...감사합니다."


상담을 마치고 나오는데, 지우는 울컥했다. 복도 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소리 없이 눈물을 흘렸다. 힘들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러면 안 될 것 같았다. 엄마가 더 미안해할까 봐, 동생이 불안해할까 봐.


저녁 6시, 지우는 편의점에서 일하고 있었다. 계산대에 서서 손님을 맞이하고, 진열대를 정리하고, 바닥을 닦았다. 몸은 자동으로 움직였지만, 머릿속은 복잡했다.


'대학은 가야 하는데... 이러다가 정말 포기해야 하나?'9시, 알바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핸드폰에 엄마에게서 문자가 와 있었다."지우야, 미안해. 민준이가 열이 나. 약 좀 사올 수 있어?"지우는 다시 약국으로 향했다.


열이 나면 해열제, 기침하면 기침약. 이제는 지우도 어떤 약을 사야 할지 다 안다.집에 도착하자 민준이가 소파에 축 늘어져 있었다. 이마에 손을 대보니 뜨겁다."민준아, 괜찮아?"


누나... 머리 아파..."지우는 재빨리 해열제를 먹이고, 미지근한 물수건으로 이마를 닦아줬다.


엄마는 휠체어에 앉아 미안하고 무력한 표정으로 바라보고만 있었다."지우야, 병원 데려가야 하는 거 아니니?""조금 지켜볼게요. 열이 안 내리면 내일 아침에 데려갈게요.


"밤 10시, 지우는 쌓여 있는 숙제를 꺼냈다. 수학 문제집, 영어 독해, 국어 논술. 해야 할 것은 산더미인데 눈은 감긴다.'조금만... 조금만 버티자.'하지만 30분도 안 돼서 지우는 책상에 엎드려 잠들었다.


새벽 2시, 민준이의 울음소리에 지우는 깼다."누나... 토할 것 같아..."지우는 재빨리 일어나 민준이를 화장실로 데려갔다. 등을 쓰다듬어주며 토하는 민준이를 돌봤다.


그리고 토한 것을 치우고, 민준이를 씻기고, 옷을 갈아입혔다."괜찮아, 민준아. 누나가 여기 있어."아침 6시, 지우는 다시 눈을 떴다. 몸이 납덩이처럼 무겁다.


거울을 보니 눈 밑에 다크서클이 짙게 깔려 있다.'학교... 가야 하는데...'하지만 민준이의 열이 아직 있다. 병원에 데려가야 한다. 지우는 학교에 전화를 걸었다."선생님, 죄송한데요... 오늘 조퇴 신청할 수 있을까요? 동생이 아파서..."


"지우야, 오늘 중간고사 전 마지막 모의고사 보는 날이야. 안 보면 성적 반영 안 돼.""...알겠습니다.


그럼 늦게라도 가겠습니다."민준이를 병원에 데려가고, 약을 받고, 집에 데려다주고. 지우가 학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1시였다. 모의고사는 끝나 있었다.복도에서 담임 선생님을 마주쳤다."지우야, 모의고사 봤어?"

"...못 봤습니다.""그럼 성적 반영 안 되는 거 알지? 이번 달만 결석 3일, 지각 4번이야. 이러면 생활기록부에도 안 좋게 나와.""...죄송합니다."


"죄송하다고 해결돼요? 진학 어떻게 할 건데?"지우는 대답할 수 없었다. 선생님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지우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날 저녁, 지우는 집에 돌아와 소파에 주저앉았다. 더 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았다."엄마... 저 못하겠어요."처음으로 지우가 무너졌다."너무 힘들어요. 학교도 가야 하고, 알바도 해야 하고, 민준이도 돌봐야 하고, 엄마도 돌봐야 하고... 저 혼자 다 할 수가 없어요."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지우를 안았다."미안해, 지우야.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이러지만 않았어도..."


"엄마 잘못이 아니에요. 저도 알아요. 근데... 너무 힘들어요."두 사람은 한동안 안고 울었다.


다음 날, 학교 복지사 선생님이 지우를 찾았다."지우야, 담임 선생님께 이야기 들었어요. 와서 상담 좀 할까요?"복지실에서 선생님은 차분하게 물었다.


"집안 상황을 자세히 말해줄 수 있어요?"지우는 처음으로 모든 것을 털어놨다. 엄마의 사고, 경제적 어려움, 동생 돌봄, 알바, 수면 부족, 학업 포기 고민까지.선생님은 진지하게 들었다.


"지우야, 혼자 다 감당하려고 했구나. 정말 힘들었겠다.""...네.""우선 신청할 수 있는 지원이 몇 가지 있어요. 가족돌봄 청소년 지원 사업, 교육비 지원, 그리고 학교에서도 도울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선생님은 자료를 꺼내 보여줬다."이 프로그램은 가족돌봄을 하는 청소년에게 간병 도우미를 일주일에 3일 지원해줘요.


그리고 이건 생활비 지원, 이건 학습 지원이에요.""...정말요?""그리고 학교에서는 지우의 상황을 고려해서 출결과 과제에 대해 조정할 수 있어요. 물론 공부는 해야 하지만, 좀 더 유연하게."지우는 처음으로 희망을 느꼈다.


일주일 후, 간병 도우미 아주머니가 집에 왔다. 주 3일, 하루 4시간씩 엄마를 돌봐주기로 했다."어머니, 제가 세면 도와드릴게요.""감사합니다..."지우는 아주머니가 엄마를 돌보는 모습을 보며 가슴이 뭉클했다. 처음으로 짐을 나눌 수 있게 됐다.


학교에서는 지우를 위한 특별 학습 프로그램을 만들어줬다. 방과 후 개별 지도, 온라인 보충 수업, 그리고 과제 제출 기한 조정."지우야, 포기하지 마. 천천히 가도 괜찮아. 네가 할 수 있는 만큼 하면 돼."담임 선생님의 말에 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지역아동센터에서는 민준이를 방과 후에 돌봐주기로 했다. 학교 끝나고 저녁 7시까지 센터에서 숙제도 하고, 저녁도 먹고, 놀 수 있다."누나, 여기 재미있어! 친구들도 많고!"민준이의 밝은 얼굴을 보며 지우는 안도했다.


한 달 후, 지우는 교실에서 모의고사를 보고 있었다. 여전히 어렵고, 여전히 피곤하지만, 이제는 조금씩 숨 쉴 공간이 생겼다.


쉬는 시간, 수진이가 물었다."지우야, 많이 좋아진 것 같아. 요즘 얼굴에 생기 돌아.""응. 도움을 많이 받고 있어.""다행이다. 나도 도와줄 거 있으면 말해.""고마워, 수진아."저녁, 집에 돌아온 지우는 식탁에 둘러앉은 가족을 바라봤다.


간병 도우미 아주머니가 만들어주신 저녁, 센터에서 돌아온 민준이, 휠체어에 앉아 있지만 웃고 있는 엄마."엄마, 오늘 모의고사 봤어요. 생각보다 잘 본 것 같아요.""그래? 잘했네, 우리 딸.""민준아, 센터에서 뭐 했어?""그림 그렸어! 선생님이 잘 그렸대!"


"우와, 대단한데?"식사를 마치고, 지우는 자기 방에서 책상에 앉았다. 오늘 밤은 좀 더 공부할 수 있을 것 같다. 여전히 힘들지만, 이제는 혼자가 아니다.


지우는 노트에 적었다.'나의 꿈: 사회복지사가 되어 나 같은 청소년들을 돕기'창밖을 보니 별이 빛나고 있었다. 지우는 오랜만에 미소를 지었다.


에필로그

6개월 후, 지우는 지역 청소년센터에서 열린 '가족돌봄 청소년 지원 정책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했다."저는 고등학교 2학년 이지우입니다. 3년 동안 엄마를 간병하고 동생을 돌보면서, 여러 번 학교를 그만두고 싶었습니다. 혼자 감당하기에는 너무 힘들었습니다."청중들이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하지만 학교와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저는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가족돌봄 청소년에게 필요한 것은 경제적 지원뿐 아니라, 심리적 지원, 시간적 여유, 그리고 꿈을 꿀 수 있는 기회입니다.


"지우는 당당하게 말을 이어갔다."우리는 돌봄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가족이니까요. 하지만 우리의 미래도 포기할 수 없습니다. 우리도 청소년이니까요. 사회가 우리를 발견하고, 손을 내밀어주기를 바랍니다."발표가 끝나고 박수가 터져 나왔다.


관객석에서 엄마와 민준이가 응원하고 있었다.그날 밤, 지우는 일기를 썼다.'오늘 많은 사람들 앞에서 우리의 이야기를 했다. 부끄럽지 않았다. 오히려 자랑스러웠다.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힘들어도, 지쳐도, 나는 계속 갈 것이다. 왜냐하면 나는 아직 살아있고, 꿈이 있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지우는 책상 위 달력을 보았다. 다음 주에는 대학 입시 설명회가 있다. 그리고 그다음 주에는


민준이 학예회가 있다. 바쁘지만, 행복하다.창밖에서 봄바람이 불어왔다. 지우는 창문을 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시간은 멈출 수 없다. 하지만 그 시간 속에서 우리는 계속 걸어간다. 때로는 넘어지고, 때로는 쉬면서, 그러나 계속.지우의 시간도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