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산객의 안식처
산 아래 마을로
"도봉산 가본 적 있어?"
7월의 어느 주말, 준우가 물었다. 여름방학이 시작된 참이었다.
"도봉산? 등산?"
"응. 근데 등산만 하는 게 아니라 두부골목도 있대."
"두부골목?"
민수가 관심을 보이며 다가왔다.
"도봉산 입구에 두부 식당들이 모여 있는 골목이 있대. 등산객들이 많이 가는 곳."
"아, 거기! 나 옛날에 가본 적 있어."
지혜가 말했다.
"언제?"
"대학생 때. 친구들이랑 등산하고 두부 먹었어."
"어땠어?"
"맛있었어. 그리고 분위기도 좋았어. 산 아래 시골 마을 같은."
서연이가 노트북을 펼쳤다.
"찾아볼게. '도봉산 두부골목'... 있다!"
"어떤 곳이래?"
"도봉산역 근처 도봉공원입구에 형성된 식당 골목. 1970년대부터 등산객들을 위한 두부 요리 전문점들이 모여있대."
"50년 넘었네."
"그리고 지금도 영업 중이고."
"좋아. 가자. 등산도 하고 두부도 먹고."
다음 주 토요일 아침 일찍, 네 식구는 지하철 1호선을 탔다.
"도봉산역까지 얼마나 걸려?"
"한 시간?"
"괜찮아. 지하철이 편해."
도봉산역에 도착하니 이미 등산복 입은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등산 가는구나."
"주말이니까."
역에서 나와 도봉공원 방향으로 걸었다.
"두부골목이 어디야?"
"도봉공원 입구래."
5분쯤 걸으니 식당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저기다!"
등산 전 두부의 맛
골목 입구부터 두부 식당들이 줄지어 있었다.
'원조할머니두부', '도봉두부', '산골두부', '옛날두부집'...
"진짜 많다."
"다 두부 전문점이네."
첫 번째 식당 앞에 메뉴판이 있었다.
"순두부찌개, 두부전골, 두부김치, 두부구이..."
"두부 요리가 이렇게 많아?"
"등산 전후에 단백질 보충하려고 먹나 봐."
시간이 아직 이르지만(오전 9시) 이미 손님들이 있었다.
"등산객들은 일찍 오나 봐."
가장 사람이 많은 '원조할머니두부'에 들어갔다.
"여기요, 네 명이요."
"네, 앉으세요."
안으로 들어가니 넓은 홀이었다. 테이블이 20개는 넘었다.
"크다!"
벽에는 오래된 사진들이 걸려 있었다. 1970-80년대 도봉산 등산객들.
"저 사진 좀 봐. 옛날 등산복."
"완전 레트로다."
메뉴를 주문했다.
"순두부찌개 두 개, 두부전골 하나, 두부김치 하나요."
"네. 금방 나옵니다."
기다리는 동안 주인 할머니가 반찬을 가져왔다.
"등산 가세요?"
"네. 처음인데요."
"그래요? 천천히 오르세요. 더우니까."
"두부 먹고 가면 힘 나죠?"
"그렇죠. 두부가 단백질이 많아요. 등산에 좋아요."
음식이 나왔다. 순두부찌개는 하얀 두부가 가득했다.
"우와, 두부 양 많다."
한 숟가락 먹었다.
"부드러워!"
"그리고 고소해."
두부전골도 맛있었다. 여러 가지 채소와 함께 끓인 두부.
"이거 맛있다."
"등산 전에 배 든든하게 채우는 거네."
식사를 하며 할머니께 여쭤봤다.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40년 했어요."
"40년!"
"네. 1983년부터."
"그럼 도봉산 두부골목 역사를 다 아시겠네요."
할머니는 골목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처음엔 집 몇 개 없었어요. 우리 집이 제일 먼저 시작했고. 그다음에 하나둘 늘어나서 지금 10개쯤 돼요."
"왜 두부였어요?"
"등산객들한테 좋으니까. 가볍고, 단백질 많고, 소화도 잘 되고."
"지금도 손님 많으세요?"
"주말엔 많아요. 평일은 좀 뜸하지만. 근데 괜찮아요. 40년 했으니까."
산을 오르고, 골목을 기억하며
식사를 마치고 등산로로 향했다.
"배불러. 진짜 든든해."
"이제 등산 가자."
도봉공원을 지나 본격적인 등산로가 시작됐다.
"여기서부터 산이야."
"어디까지 갈 거야?"
"망월사까지만. 초보 코스."
등산로는 잘 정비되어 있었다. 계단과 난간이 설치되어 있었다.
"오르기 편하네."
하지만 날씨가 더웠다. 7월의 뙤약볕.
"더워!"
"그늘 있는 데서 쉬자."
중간중간 쉬면서 올라갔다. 30분쯤 오르니 망월사가 나왔다.
"도착!"
작은 절이었지만, 경치가 좋았다.
"여기서 보는 풍경 좋다."
서울 북부가 한눈에 보였다.
"저기 우리 집도 보이려나?"
"너무 멀어서 안 보일 걸."
망월사에서 참배하고 다시 내려왔다.
"내려갈 때가 더 힘들다."
"무릎 조심해."
한 시간쯤 걸려 다시 두부골목에 도착했다.
"다리 아파."
"두부 한 번 더 먹을까?"
"좋아!"
이번에는 다른 식당에 들어갔다. '산촌두부'.
"순두부 네 개요."
"등산 다녀오셨어요?"
"네. 망월사 다녀왔어요."
"수고하셨어요. 두부 드시고 기력 회복하세요."
이 집 순두부도 맛있었다.
"집집마다 맛이 조금씩 다르네."
"두부 만드는 방법이 다른가 봐."
식사를 하며 주인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15년 됐어요."
"원조할머니두부보다는 늦게 하셨네요."
"네. 저는 후발주자죠."
"경쟁 안 되세요?"
아주머니가 웃었다.
"경쟁 안 해요. 우리끼리는. 손님이 많으면 서로 나눠요."
"어떻게요?"
"예를 들어 우리 집이 만석이면 옆집 추천해줘요. 옆집도 마찬가지고."
"협력하시는구나."
"네. 그래야 골목이 유지돼요. 서로 죽이면 다 망해요."
산과 골목, 사람과 두부
식사를 마치고 골목을 천천히 걸었다.
"등산 안 하고 그냥 두부만 먹으러 와도 되겠다."
"그러게. 분위기도 좋고."
골목 끝에 작은 공원이 있었다. '도봉공원'.
"여기서 쉬자."
벤치에 앉아 골목을 바라봤다.
"50년 된 골목이라는 게 신기해."
"서울 안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
"도봉산 덕분이지. 등산객들이 있으니까."
준우가 말했다.
"근데 왜 하필 두부야?"
"그러게. 다른 음식도 많은데."
서연이가 검색을 했다.
"찾았다. 1970년대에 도봉산 일대에 콩밭이 많았대.
그래서 자연스럽게 두부를 만들게 됐고."
"아, 지역 특산물이었구나."
"그리고 두부가 등산객들한테 좋으니까 인기를 얻은 거고."
"자연스러운 발전이네."
한참을 앉아 있다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돌아가는 길, 골목을 한 번 더 둘러봤다.
"이 골목도 언젠가 사라질까?"
"모르지. 근데 등산객들이 있는 한 유지되지 않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집에 도착해서 민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도봉산 두부골목, 등산객의 안식처'.
"도봉산 입구에 두부골목이 있다. 1970년대부터 형성된 식당가로, 지금도 10여 개의 두부 전문점이 영업 중이다."
"왜 두부일까?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도봉산 일대가 콩 산지였다. 둘째, 두부가 등산에 좋다. 가볍고, 단백질이 풍부하고, 소화가 잘 된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는 것 같다. 사람들의 필요. 등산 전에 든든하게 배를 채우고, 등산 후에 기력을 회복하고 싶은 사람들의 필요."
"40년 된 원조할머니두부 주인은 말했다.
'두부가 등산객들한테 좋으니까.' 15년 된 산촌두부 주인은 말했다. '우리끼리는 경쟁 안 해요. 협력해요.'"
"이것이 두부골목이 50년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다. 손님의 필요를 채우고, 서로 협력하는 것."
"도봉산은 변하지 않는다. 1,000년 전에도, 지금도, 앞으로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그리고 산 아래 두부골목도 계속될 것이다. 등산객들이 있는 한."
글을 다 쓰고 블로그에 올렸다.
댓글들이 달렸다.
"도봉산 두부골목 추억이에요. 20년 전에 자주 갔었는데."
"이번 주말에 가족들과 가보겠습니다."
"협력하는 골목 상인들 모습이 인상적이네요."
일주일 후, 한 독자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저는 도봉산 두부골목 상인회장입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혹시 우리 골목 홍보에 도움 주실 수 있나요?"
민수는 답장을 보냈다.
"물론입니다. 어떤 도움이 필요하신가요?"
"골목 역사를 정리하고 싶습니다. 50년 역사를 기록으로 남기고 싶어서요."
"좋습니다. 함께 하겠습니다."
3개월 동안 도봉산 두부골목을 여러 번 방문했다.
10개 식당 주인들을 모두 인터뷰했다. 각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40년 된 원조할머니두부, 35년 된 도봉두부, 30년 된 산촌두부...
가장 최근에 오픈한 곳도 10년이 넘었다.
"다들 오래 하셨네요."
"이 골목이 좋아서요. 서로 도우니까."
그리고 옛 사진들을 모았다. 1970-80년대 도봉산과 두부골목.
3개월 후, 『도봉산 두부골목 50년사』가 출간됐다.
작은 책이었지만, 골목의 모든 것이 담겼다.
출판 기념회가 두부골목에서 열렸다.
10개 식당 주인들이 모두 참석했다.
"고맙습니다. 우리 이야기를 책으로 만들어주셔서."
원조할머니두부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셨다.
"40년 동안 두부만 만들었는데, 이렇게 책이 되니 감회가 새롭네요."
행사가 끝나고 민수 가족은 도봉산에 한 번 더 올랐다.
이번에는 정상까지.
"힘들지만 해보자."
3시간 걸려 정상에 도착했다.
"우와!"
서울 전체가 보였다.
"저 아래 어딘가에 두부골목이 있겠지."
"작지만 의미 있는 골목."
하산해서 다시 두부를 먹었다.
"역시 등산 후 두부가 최고야."
"몸에 딱 스며드는 느낌."
도봉산 두부골목은 오늘도 등산객들을 맞이한다.
새벽부터 저녁까지, 주중에도 주말에도.
50년 동안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산이 있는 한, 등산객이 있는 한, 두부가 필요한 한.
민수 가족의 아카이빙은 계속된다. 서울 외곽의 이야기도, 작은 골목의 이야기도.
도봉산 두부골목처럼. 소박하지만 든든하게.
등산객들의 안식처처럼,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