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신동 절벽골목

수직으로 쌓인 시간

by seungbum lee


가파른 언덕을 오르며
"창신동 가본 적 있어?"
8월의 어느 주말, 서연이가 물었다. 여름방학 프로젝트를 준비하던 중이었다.
"창신동? 봉제 공장 많은 곳?"
민수가 대답했다.


"맞아. 근데 거기 절벽골목이 있대. 완전 가파른 언덕에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절벽골목?"
지혜가 관심을 보였다.
"응. 경사가 너무 가파라서 절벽처럼 보인대. 그리고 계단도 엄청 많고."
민수가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창신동. 동대문 뒤편 낙산 자락에 형성된 달동네. 1960-70년대 봉제 산업이 발달하면서 노동자들이 모여 살았고..."
"해방촌, 망대골목이랑 비슷한 거네?"
"비슷해. 근데 더 가파르대. 경사가 거의 45도."
준우가 놀라며 물었다.


"45도? 그럼 거의 서 있는 거잖아?"
"그래서 절벽골목이래."
"가보고 싶다!"
다음 주 토요일, 네 식구는 지하철 1호선을 탔다.


"동대문역에서 내려."
"거기서 얼마나 걸어야 해?"
"15분 정도?"
동대문역에서 내려 낙산 방향으로 걸었다.


동대문시장을 지나니 풍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부터 창신동이야."
거리가 급격히 오르막이 되었다.
"경사 진짜 가파르다."
양쪽으로 봉제 공장들이 보였다. 재봉틀 소리가 들렸다.


"따다다닥, 따다다닥."
"아직도 봉제 공장이 많네."
"창신동이 한국 봉제 산업의 메카래."

계단을 따라 오르는 마을
본격적인 절벽골목 입구에 도착했다.


"여기부터네."
눈앞에 가파른 계단이 펼쳐졌다.
"우와... 진짜 가파르다."
계단이 끝없이 이어졌다. 양쪽으로 집들이 빼곡하게 붙어 있었다.


"사진으로 봤을 때보다 훨씬 가파른데?"
"조심해서 올라가자."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숨이 찼다.
"힘들다..."
중간중간 작은 쉼터가 있었다. 벤치가 놓여 있었다.
"여기서 쉬자."
벤치에 앉아 아래를 내려다봤다. 동대문 일대가 한눈에 보였다.


"전망 좋다."
"그러게. 높이 올라온 게 실감 나."
쉼터 옆 안내판을 읽었다.
"창신동 절벽골목. 1960-70년대 봉제 산업 노동자들이 모여 살면서 형성된 달동네입니다. 가파른 경사 때문에 절벽골목이라고 불립니다."


계단을 계속 올라갔다. 50개, 100개, 150개...
"계단이 몇 개나 돼?"
"수백 개는 될 것 같아."
중간쯤 올라가니 작은 슈퍼가 있었다.


"여기 슈퍼네."
들어가니 50대 아주머니가 계셨다.
"물 네 개 주세요."
"네. 올라오시느라 힘드셨죠?"
"네. 진짜 가파르네요."
"그렇죠. 여기 사는 사람들은 매일 올라요."
"힘들지 않으세요?"
"힘들죠. 근데 익숙해요. 30년 살았으니까."
"30년이나!"
"네. 시집와서 쭉. 처음엔 정말 힘들었는데, 이제는 괜찮아요."
물을 마시며 아주머니와 이야기를 나눴다.


"요즘도 사람들이 많이 사세요?"
"예전보단 줄었죠. 젊은 사람들은 다 나가고. 노인들만 남았어요."
"왜 안 나가세요?"
"어디 가겠어요. 여기가 집인데. 그리고 임대료도 싼 편이에요."
슈퍼를 나와 계속 올라갔다. 골목이 미로처럼 갈라졌다.


"어디로 가야 해?"
"저 위로 계속 올라가면 낙산공원이 나온대."
골목 양쪽 집들을 보며 걸었다. 대부분 낡았지만, 살림살이가 보였다.
"사람들이 살고 있네."
한 집 마당에서 할머니가 빨래를 널고 계셨다.


"안녕하세요."
"오, 어디서 왔어?"
"서울이요. 창신동 보러 왔어요."
"그래? 고마워. 우리 동네 찾아와줘서."
"여기서 오래 사셨어요?"
"50년 살았어. 처음엔 판잣집이었는데, 조금씩 고쳐서 지금 모습이 됐어."
"계단 오르내리기 힘드시겠어요."
할머니는 웃으셨다.


"힘들지. 근데 어쩌겠어. 살아야지."


절벽에 새겨진 삶들
계단 끝에 도착하니 낙산공원이 나왔다.
"드디어 정상!"
공원에서 보는 서울 전경이 장관이었다.
"우와!"
동대문, 청계천, 종로 일대가 한눈에 보였다.


"여기서 이렇게 보이네."
낙산 성곽을 따라 걸었다. 조선시대 한양도성의 일부였다.
"성곽 옆에 달동네가 있는 게 신기하다."
"역사의 층이 겹쳐있는 거지. 조선시대 성곽, 1960년대 달동네, 그리고 지금."
성곽을 한 바퀴 돌고 다시 절벽골목으로 내려왔다.


"내려갈 때도 조심해야겠다."
내려오는 길에 벽화를 발견했다.
"벽화가 있네."
"이화벽화마을이랑 비슷한 거 아니야?"
"비슷한데 규모는 작아."
벽화는 창신동의 역사를 그린 것이었다. 봉제 공장, 재봉틀, 노동자들.


"의미 있는 벽화다."
한 벽화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젊은 커플을 봤다.
"사진 찍으러 오는 사람들도 있나 봐."
"인스타 감성?"
중간쯤 내려오니 작은 카페를 발견했다.


"여기 카페네. '절벽 위 카페'."
낡은 집을 개조한 카페였다.
"들어가보자."
안으로 들어가니 아담한 공간이었다. 테이블이 네 개.
"아메리카노 네 잔이요."
주인은 30대 젊은 남자였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2년 됐어요."
"왜 창신동에?"
주인은 창밖을 가리켰다.
"전망 때문이요. 여기서 보는 서울이 예뻐서."
정말 카페 창에서 보는 전망이 좋았다. 동대문 일대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전망 진짜 좋네요."
"그리고 창신동 분위기가 좋아요. 낡았지만 진솔해요."
"손님 잘 와요?"
"아직은 많지 않아요. 근데 천천히 알려지고 있어요. 입소문으로."
커피를 마시며 주인과 더 이야기를 나눴다.


"창신동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젊은 사람들이 카페 같은 거 열면."
"처음엔 경계하셨어요. '젠트리피케이션 아니냐'고. 근데 제가 노력했어요. 주민들 존중하고, 가격도 착하게 하고."
"지금은요?"
"좋아지셨어요. 가끔 어르신들도 오시고. 공짜로 드리면 좋아하세요."


수직의 마을, 수평의 연대
카페를 나와 마지막으로 골목을 천천히 내려왔다.
"처음 올라올 때랑 느낌이 다르다."
"어떻게?"
"올라올 땐 힘들었는데, 내려오니까 마을이 보여."
"사람들의 삶이?"
"응."
계단 중간에 작은 쉼터가 또 있었다. 거기서 동네 할머니 몇 분이 앉아 계셨다.


"안녕하세요."
"오, 또 왔네. 내려가는구나?"
"네. 힘들었어요."
"그렇지. 우린 매일 오르내려."
"대단하세요."
한 할머니가 말씀하셨다.


"대단한 게 아니야. 살아야 하니까. 여기가 우리 집이거든."
"앞으로도 여기 사실 거예요?"
"그럼. 어디 가겠어. 죽을 때까지 여기."
할머니들과 헤어지고 마지막 계단을 내려왔다.


"힘들었지만 의미 있었어."
"응. 서울 안에 이런 곳이 있는 줄 몰랐어."
저녁을 먹으러 창신동 아래 식당에 들어갔다.
"여기요, 칼국수 네 개요."
식사를 하며 오늘 하루를 정리했다.


"창신동 어땠어?"
준우가 먼저 대답했다.
"힘들었어. 계단."
"나는... 놀라웠어."
서연이가 말했다.


"뭐가?"
"저렇게 가파른 곳에서 사람들이 50년을 산다는 게. 그리고 지금도 살고 있다는 게."
"그게 삶이지."
집으로 돌아가는 지하철 안에서 서연이가 노트를 펼쳤다.


"뭐 써?"
"창신동 기록. 내 프로젝트."
"어떻게 쓸 거야?"
"수직의 마을이라는 주제로. 가파른 계단, 절벽 같은 골목. 그리고 그 안에서 수평으로 연대하며 사는 사람들."
"좋은 관점이다."
집에 도착해서 민수도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창신동 절벽골목, 수직으로 쌓인 시간'.
"창신동은 수직이다. 45도 경사의 가파른 언덕. 끝없이 이어지는 계단. 절벽처럼 쌓인 집들."
"1960년대, 동대문 봉제 공장 노동자들이 이 언덕에 모여 살았다.


평지는 비쌌으니까. 경사진 곳에 판잣집을 짓고, 계단을 만들고, 살았다."
"60년이 지났다. 판잣집은 시멘트 집이 됐고, 계단은 콘크리트가 됐다. 하지만 경사는 그대로다. 여전히 가파르다."
"50년을 산 할머니가 말했다. '힘들지. 근데 어쩌겠어. 살아야지.' 30년을 산 슈퍼 아주머니가 말했다.

'익숙해요.'"
"이것이 창신동이다. 가파르지만 산다. 힘들지만 익숙해진다. 그리고 서로 돕는다."
"30대 카페 주인이 할머니들께 커피를 공짜로 드린다. 할머니들은 쉼터에 모여 이야기를 나눈다. 수직의 마을에서 수평의 연대가 이루어진다."
"창신동은 변하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떠나고, 카페가 들어오고. 하지만 본질은 남는다. 가파른 경사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글을 다 쓰고 서연이의 글과 함께 블로그에 올렸다.



제목은 '세대별 시각: 창신동 절벽골목'.
댓글들이 달렸다.
"창신동의 가파름이 느껴져요."
"수직의 마을, 수평의 연대. 좋은 표현이네요."
"이번 주말에 가보겠습니다."
일주일 후, 서연이는 동아리 친구들과 창신동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주민 인터뷰 프로젝트였다.
10명의 주민을 만났다. 50년을 산 할머니, 30년을 산 슈퍼 아주머니, 2년 된 카페 주인, 그리고 봉제 공장 노동자들.
각자의 창신동 이야기를 들었다.
한 달 후, 서연이는 『창신동 사람들: 절벽 위의 삶』이라는 소책자를 만들었다.
대학 프로젝트로 제출했고, A+를 받았다.


"축하해!"
"고마워, 아빠. 아빠가 아카이빙 하는 거 보고 배운 거야."
"네가 잘한 거지."
서연이의 소책자는 창신동 주민센터에도 비치됐다.
주민들이 읽고 좋아했다.


"우리 이야기를 이렇게 예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창신동은 계속 변하고 있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젊은 사람들이 떠나지만, 또 다른 젊은 사람들이 온다.

카페를, 작업실을, 새로운 꿈을 가지고.
그리고 할머니들은 여전히 계단을 오르내린다.

50년째, 60년째.
가파른 절벽 위에서, 수평으로 손을 잡으며.
민수와 서연이의 아카이빙은 이제 완전히 세대를 잇는 작업이 되었다.


아버지와 딸이 함께, 각자의 시각으로, 하나의 골목을 기록한다.
창신동처럼. 수직으로 쌓이고, 수평으로 이어지며.
절벽 위의 마을처럼, 가파르지만 굳건하게.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