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강이 만나는 곳

평화적 통일 정책에 바치는 소설

by 이 범

주인공 : 윤서하(尹瑞河) — 1970년생, 강원도 철원 출신 통일부 남북회담 전문위원

배경 : 1970년 철원 ~ 2024년 판문점·평양 접경

주제 : 통일은 지도 위의 선을 지우는 것이 아니다. 두 강이 하나의 바다로 흘러가는 것이다.


철조망 너머의 두루미

1970년 겨울, 강원도 철원군 동송읍.

윤서하는 눈 속에서 태어났다. 어머니 최인순의 말에 따르면, 그 해 겨울은 유난히 눈이 많았고, 아이가 태어나던 날 새벽 철원 들판에 두루미 떼가 내려앉았다고 했다.


산파가 창문 너머로 그 광경을 보며 말했다. "좋은 날이네. 두루미가 왔어." 두루미는 철원에 겨울마다 오는 새였다. 북쪽에서 왔다가 봄이 되면 북쪽으로 돌아가는 새.


서하의 아버지 윤치호는 철원 토박이였다. 한국전쟁 때 열두 살이었던 아버지는 전쟁이 끝난 뒤 고향이 두 동강 난 것을 보았다. 철원은 원래 하나의 군이었다. 전쟁 전에는 북철원, 남철원이 따로 없었다.


그런데 휴전선이 그어지면서 철원의 절반이 북쪽이 되었다. 아버지의 친구들 중 일부는 북철원에 남았다. 편지 한 장 못 쓰는 거리에.

서하가 일곱 살 되던 겨울, 아버지가 그를 들판으로 데려갔다. 철원 평야. 드넓고 평평한 들판. 그리고 들판 끝에 철조망. 철조망 너머로 또 들판이 이어졌다.


아버지는 말없이 그 철조망을 가리켰다.

"저기 너머가 어딘데요?"

"철원이야."

"여기도 철원인데요?"

아버지는 잠시 있다가 말했다.


"응. 저기도 철원이야. 같은 철원인데 못 가."

서하는 그 말이 이해되지 않았다. 같은 이름인데 못 가는 곳. 그때 철조망 너머 하늘에서 두루미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유유히 북쪽으로 날아가는 두루미. 서하는 그 새를 오래 눈으로 쫓았다.


"아버지, 두루미는 저기 가도 돼요?"

"그래. 두루미는 돼."

"왜요?"

"새한테는 선이 없거든."

서하는 그 날 이후 두루미를 볼 때마다 생각했다.


새한테는 선이 없다. 바람한테도 선이 없다. 강물한테도 선이 없다. 그런데 왜 사람한테만 선이 있는가.

그것이 서하가 평생 안고 살아갈 질문이었다.


초등학교 사회 시간에 선생님이 헌법을 가르쳤다. 제4조.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서하는 그 문장을 공책에 받아 썼다. 그리고 밑에 혼자 한 줄을 덧붙였다.


두루미처럼.

선생님이 공책을 보다 그 글씨를 발견하고 물었다. "이게 무슨 말이야?" 서하는 설명했다. 두루미는 철조망을 넘어가는데 사람은 못 간다고. 통일이 되면 두루미처럼 갈 수 있다고. 선생님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네."


말이 총보다 무겁다

1995년 봄, 판문점 평화의 집.

서하는 스물다섯 살에 통일부에 들어갔다. 철원 출신 아이가 행정고시를 패스하고 통일부 사무관이 된 것이었다. 첫 발령지는 남북회담 준비팀. 서하는 그 날 첫 출근하며 생각했다. 이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것 같다고.



그러나 현실은 달랐다.

회담 준비는 끝도 없는 문서 작업이었다. 의제 조율, 용어 통일, 의전 협의. 가장 어려운 것은 용어였다. 남북은 같은 한국어를 쓰면서도 다른 언어를 쓰고 있었다.


남쪽에서 '민주주의'라 하면 북쪽에서는 다른 의미였다. 남쪽에서 '자유'라 하면 북쪽에서는 또 다른 맥락이었다. 같은 글자, 다른 뜻. 50년의 분단이 언어를 갈라놓았다.

선임 위원 김대영이 말했다.


"서하 씨, 회담장에서는 말 한 마디가 총 한 발이야. 잘못된 단어 하나가 회담을 깰 수 있어. 그래서 우리가 이 문서 작업을 몇 달씩 하는 거야."

서하는 그 말을 가슴에 새겼다. 통일은 총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말로 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말은 정확해야 했다. 정확하면서도 따뜻해야 했다. 정확하면서도 상대를 배려해야 했다. 그것이 평화적이라는 말의 뜻이었다.

2000년 6월, 남북정상회담. 서하는 실무팀의 막내였다. 평양 백화원 영빈관.


서하는 그 공간에 들어서는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한반도 지도가 그려진 양탄자 위를 걸었다. 분단선이 없는 한반도 지도. 하나의 땅으로 그려진 한반도. 서하는 그 양탄자를 내려다보며 발걸음을 멈추었다.



동료가 등을 쳤다. "야, 빨리 가."

서하는 걸음을 옮기며 생각했다. 이 양탄자 위의 지도가 진짜가 되는 날. 그 날을 위해 자신이 여기 있는 것이라고.

정상회담이 끝나고 공동선언이 발표되었다.


남북이 통일 문제를 자주적으로 해결한다는 내용. 서하는 그 선언문을 손으로 받아 쥐었다. 종이 한 장이었다. 그러나 그 종이 안에 얼마나 많은 말들이 싸우고, 설득하고, 양보하고, 합의했는지를 서하는 알고 있었다.


통일은 총성 없이 이루어지는 가장 긴 전쟁이었다. 그 전쟁의 무기는 언어였다. 그리고 서하는 그 언어를 다루는 사람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서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밤의 한반도. 남쪽에는 불빛이 가득하고, 북쪽은 어두웠다.


그 경계선이 또렷했다. 서하는 그 경계선을 손가락으로 유리 위에 그었다가, 천천히 지웠다.

아직은 지울 수 없는 선이었다. 그러나 언젠가.


회담이 멈추는 날들

2010년 가을, 통일부 서울 청사.

서하는 마흔 살이었다. 어느새 남북회담 수석대표 자문위원이 되어 있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남북 관계는 급속히 냉각되었다. 금강산 관광이 중단되었다. 개성공단이 흔들렸다. 서하의 책상 위에 쌓이는 것은 회담 준비 문서가 아니라 회담 중단 보고서였다.



그 해 11월, 연평도 포격. 서하는 뉴스를 보며 책상 앞에 앉아 꼼짝도 하지 못했다. 섬이 불타는 장면. 민간인이 대피하는 장면. 군인들이 부상당한 장면. 서하는 오랜 시간 그 화면을 보다가 혼자 화장실로 가서 울었다.


평화적이라는 말이. 통일을 지향한다는 말이. 그 말들이 얼마나 멀리 있는지를 확인하는 날이었다.

밤에 혼자 사무실에 남아 서하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서울의 불빛. 저 불빛들 중에 북쪽 어딘가의 불빛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같은 언어를 쓰고, 같은 음식을 먹고, 같은 산을 보며 자란 사람들이 총을 쏘는 것을. 서하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이해해야 했다. 이해해야 다음이 있었다.

서랍에서 낡은 공책을 꺼냈다. 초등학교 때 공책이었다. 헌법 제4조를 받아쓰고, 그 아래 혼자 쓴 두 글자가 있는 공책. 두루미처럼. 서하는 그 글자를 한참 바라보다 공책을 덮었다.


포기하지 않겠다고. 멈추더라도 끝내지 않겠다고. 회담이 중단되어도 준비는 계속하겠다고.

헌법은 말한다. 통일을 지향하며. 지향한다는 것은 방향이다.


방향은 당장 도달하지 못해도 잃지 않는 것이다. 눈이 쌓여 길이 보이지 않아도, 나침반이 가리키는 방향은 변하지 않는 것처럼.


2016년, 개성공단이 전면 중단되었다. 서하는 개성공단에서 함께 일했던 북측 실무자 리철수의 얼굴을 떠올렸다. 회담 때마다 마주쳤던 얼굴. 말투는 달랐지만, 김치찌개를 좋아하고, 딸 이야기를 할 때 눈빛이 부드러워지던 사람. 리철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서하는 그 날 밤 일기에 썼다.

통일은 제도가 먼저가 아니다. 사람이 먼저다. 리철수 같은 사람과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날이 통일이다. 그 날을 위해, 오늘도 이 자리에 있는 것이다.


두 강이 만나는 곳

2024년 봄, 판문점 자유의 집.

윤서하는 쉰네 살이었다. 남북 고위급 실무접촉이 3년 만에 재개되는 날이었다. 서하는 남측 수석대표의 자문위원 자격으로 회담장에 들어갔다.


판문점은 언제 와도 이상한 공간이었다. 지구상에서 가장 긴장된 곳이면서, 동시에 지구상에서 가장 많은 대화가 이루어진 곳. 이 작은 공간에서 수십 년 동안 수백 번의 회담이 열리고 닫혔다.


회담장에 북측 대표단이 들어왔다. 서하는 눈을 들어 그들을 바라보았다. 낯선 얼굴들. 그러나 낯설지 않은 얼굴들. 같은 이목구비. 같은 눈매. 50년을 갈라서 살았지만 뿌리가 같은 사람들의 얼굴.


북측 실무위원 한 명과 눈이 마주쳤다. 상대도 잠시 눈을 맞추었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서하는 그 찰나의 눈빛 속에서 무언가를 보았다. 경계. 그러나 경계 너머에 있는 또 다른 무언가. 피로, 또는 그리움, 또는 서하가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


회담은 여섯 시간 동안 진행되었다. 의제는 이산가족 상봉 재개와 민간 교류 활성화. 말 한 마디 한 마디가 조율되고, 문서 한 줄 한 줄이 합의되었다. 중간에 두 번 정회했다. 한 번은 남측이 제안한 표현에 북측이 이의를 제기했고, 한 번은 북측 표현에 남측이 유보 의사를 밝혔다. 서하는 그 모든 과정을 옆에서 지켜보며 메모했다.


정회 시간에 서하는 잠시 회담장 밖으로 나갔다. 판문점 마당. 봄이었다. 군사분계선 표지판 너머로 북쪽의 봄 들판이 보였다. 나무에 새 잎이 돋아 있었다. 바람이 불었다. 그 바람이 남쪽에서 온 것인지 북쪽에서 온 것인지, 바람은 구분하지 않았다.


그때 하늘에서 두루미 두 마리가 날아갔다. 군사분계선 위를, 아무렇지 않게.

서하는 멈추어 그 새들을 바라보았다. 일곱 살 때 철원 들판에서 보았던 두루미. 새한테는 선이 없다던 아버지의 말. 두루미처럼, 하고 공책에 혼자 썼던 그 두 글자.

서하는 눈을 감았다가 떴다.


아직은 아니야. 그러나 방향은 저기야.

회담장으로 돌아갔다. 자리에 앉았다. 북측 위원과 다시 눈이 마주쳤다. 이번에는 상대가 먼저 시선을 거두지 않았다. 서하도 거두지 않았다. 1초, 2초. 그리고 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서류로 눈을 내렸다.



회담은 결렬되지 않았다. 완전한 합의도 아니었다. 이산가족 상봉 시범 실시에 관한 원칙적 합의. 구체적 일정과 방식은 추후 협의. 문서에 도장이 찍혔다.

회담이 끝나고 서하는 판문점을 나오며 뒤를 돌아보았다. 군사분계선 표지판. 저 너머에 방금 전까지 같은 공간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돌아가고 있었다.


서하는 차에 오르기 전 잠시 서서 북쪽 하늘을 바라보았다. 두루미가 날아간 방향. 봄 구름이 느리게 흘렀다. 구름도 선을 모른다. 바람도 선을 모른다. 두루미도 선을 모른다. 그리고 강물도 선을 모른다.


임진강이 북쪽에서 내려와 한강으로 합류하는 곳이 있었다. 두 강이 만나는 곳. 서하는 언젠가 그 강물처럼 두 개였던 것이 하나가 되는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오늘이 아닐 수 있었다. 내일도 아닐 수 있었다. 그러나 방향은 변하지 않았다.


헌법은 말한다. 통일을 지향한다고. 지향은 도달이 아니다. 도달하지 못해도 지향을 멈추지 않는 것이다. 그것이 이 나라가 스스로에게 한 약속이었다. 그리고 서하는 그 약속을 이어가는 사람이었다.


차가 출발했다. 판문점이 멀어졌다. 서하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앞을 바라보았다. 서울 방향. 그리고 언젠가, 서울 너머 평양 방향.

두 강은 아직 만나지 않았다. 그러나 같은 바다를 향해 흐르고 있었다.


에필로그

그 해 가을, 이산가족 상봉이 금강산에서 시범 실시되었다.

서하는 실무팀의 일원으로 현장에 있었다. 상봉장에서 70년 만에 만난 남매가 서로의 손을 잡고 우는 장면을 보았다. 말이 없었다. 말이 필요 없었다. 손을 잡고 우는 것으로 충분했다.


서하는 그 장면을 보며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눈물을 참으려 했지만 참지 못했다. 옆에 있던 동료가 휴지를 건넸다. 서하는 받지 않았다. 이 눈물은 닦으면 안 될 것 같았다. 이 눈물이 이 일을 계속할 이유였다.

밤에 숙소로 돌아와 서하는 오래된 공책을 꺼냈다. 초등학교 때 공책. 헌법 제4조 아래에 쓴 두 글자.

두루미처럼.


그 아래, 서하는 오늘 날짜를 쓰고 한 줄을 덧붙였다.

오늘 두 강이 조금 더 가까워졌다.

공책을 덮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금강산의 밤. 달빛이 산 능선을 따라 흘렀다. 저 산이 남쪽에도 있고 북쪽에도 있었다. 산은 선을 모른다. 달빛도 선을 모른다.


통일은 오늘 완성되지 않았다. 내일도 아닐 것이다. 그러나 방향은 여기 있었다. 이 방에서, 저 상봉장에서, 손을 잡고 우는 두 사람의 손에서.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한다. 지향은 현재형이다.


완료형이 아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지향하는 것이다. 그것이 이 나라가 헌법에 새긴 약속이었다.

대한민국은 통일을 지향하며,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평화적 통일 정책을 수립하고 이를 추진한다.


— 헌법 제4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