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구가 향하는 곳

국제평화와 국군의 사명에 바치는 소설

by 이 범


주인공 : 박재형(朴在衡) — 1968년생, 경남 진주 출신 육군 대령·유엔평화유지군 참전용사
배경 : 1968년 진주 ~ 2024년 레바논·서울
주제 : 총은 침략을 위해 드는 것이 아니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총구는 결코 자국민을 향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의 훈장과 아버지의 침묵
1968년 봄, 경남 진주시 상봉동.
박재형은 군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박성대는 6·25 참전용사였다. 낙동강 방어선에서 싸웠고, 인천상륙작전 이후 평양까지 올라갔다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다시 내려왔다. 왼쪽 허벅지에 총상 흔적이 있었다. 재형은 어릴 적 그 흉터를 손가락으로 짚으며 물었다.



"아버지, 이거 뭐예요?"
"총 맞은 거야."
"무서웠어요?"
아버지는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무서웠지. 근데 더 무서운 게 있었어."
"뭐가요?"
"내가 쏜 총에 맞은 사람이 죽는 거 보는 것."
재형은 그 말의 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전쟁에서 적을 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그러나 아버지는 그 이후로 전쟁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다.


훈장은 서랍 깊숙이 넣어두었다. 현충일에도 꺼내지 않았다. 이웃 어른들이 훈장 자랑하라고 하면 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자랑할 게 아니야. 그냥 살아 돌아온 거지."
재형이 고등학생 되던 해, 사회 수업에서 헌법을 배웠다. 선생님이 제5조를 읽었다.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재형은 그 문장을 받아쓰다 멈추었다.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그러면 아버지가 싸운 전쟁은 침략이 아니었다. 아버지는 침략을 막기 위해 총을 들었다. 그렇다면 아버지의 훈장은 자랑스러운 것이 맞다. 그런데 왜 아버지는 그것을 서랍에 넣어두는가.
그 날 저녁, 재형은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헌법에 침략적 전쟁은 안 한다고 씌어 있어요. 그러면 아버지는 나라를 지킨 거잖아요. 왜 훈장을 안 자랑해요?"
아버지는 저녁밥을 먹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오래 생각하다 말했다.


"재형아. 나라를 지킨 건 맞아. 근데 나는 사람을 죽였어. 그 사람도 누군가의 아들이었을 거야. 그게 자랑이 되냐. 전쟁이 자랑이 되면 안 돼. 전쟁은 다시 없어야 해. 그게 훈장의 뜻이야."
재형은 그 말을 평생 가지고 살았다. 전쟁은 자랑이 아니다. 전쟁은 다시 없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위해 군인이 존재한다.


열여덟 살에 재형은 육군사관학교에 지원했다. 아버지는 말리지 않았다. 다만 한 마디 했다.
"총은 평화를 위해 들어라. 그것만 잊지 마라


평화는 총 없이 오지 않는다
1993년 여름, 소말리아 모가디슈.
박재형은 스물다섯 살의 육군 중위였다. 대한민국 최초의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소말리아 내전. 재형이 자원했을 때 상관이 말렸다.
"박 중위, 거기 진짜 위험해. 총 맞아 죽을 수도 있어."
재형은 말했다.
"헌법에 씌어 있습니다.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한다고. 그게 군인의 사명 아닙니까."
상관은 잠시 재형을 바라보다 사인했다.



모가디슈는 지옥이었다. 내전으로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어 있었다. 거리에 총성이 끊이지 않았다. 어린아이들이 총을 들고 다녔다. 식량이 없었다. 물이 없었다. 죽음이 일상이었다.
재형의 부대는 의료 지원과 식량 배급을 맡았다. 전투 임무가 아니었다. 그러나 총은 들고 다녀야 했다. 총 없이는 그 일을 할 수 없었다. 배급 차량을 무장 세력이 약탈하려 했고, 의료 텐트에 총격이 가해졌다.


어느 날 밤, 재형의 부대가 이동하다 검문에 걸렸다. 소말리아 무장 세력. 총구가 겨누어졌다. 재형은 손을 들었다. 옆에 있던 통역관이 말했다. "쏠 것 같습니다." 재형은 천천히 말했다.
"우리는 침략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유엔의 이름으로 평화를 지키러 왔습니다."
통역관이 옮겼다. 무장 세력의 대장이라는 자가 잠시 재형을 바라보다 총구를 내렸다. 이유는 알 수 없었다. 재형의 눈빛 때문인지, 말 때문인지, 아니면 그 자도 지쳐 있었기 때문인지.


부대로 돌아와 재형은 혼자 텐트 안에 앉아 손을 바라보았다. 떨고 있었다. 두려움이 아니었다. 정확히 말하면, 방아쇠를 당기지 않은 것에 대한 안도의 떨림이었다.
일기에 썼다.
오늘 나는 총을 들었다. 그러나 쏘지 않았다. 총을 들었지만 쏘지 않는 것. 그것이 평화유지군이다.


총구가 향하는 방향은 항상 평화의 반대편이어야 한다. 평화를 위해 총을 드는 것과, 힘 때문에 총을 드는 것은 다르다. 아버지가 그것을 가르쳐주셨다. 전쟁은 자랑이 아니라고.
소말리아에서 6개월. 재형은 살아 돌아왔다. 부대원 중 두 명은 돌아오지 못했다. 재형은 그들의 이름을 수첩에 적었다. 이충호. 김민규. 스물셋과 스물넷. 재형은 그 이름들을 평생 지우지 않았다.


귀국하고 아버지를 만났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재형을 안았다. 오래. 재형은 아버지의 등에서 그제야 울었다. 전쟁터에서 흘리지 못했던 눈물을.
아버지가 말했다.
"잘 했어. 총 쏘지 않고 돌아왔구나."
총 쏘지 않고 돌아왔다는 것이 칭찬이었다. 그것이 아버지의 군인관이었다. 그리고 이제 재형의 군인관이 되었다.


총구가 향해서는 안 되는 곳
1996년 겨울, 서울.
재형은 스물여덟 살에 소령 진급을 눈앞에 두고 있었다. 그 해 겨울, 군 내부에서 이상한 소문이 돌았다. 정치 상황이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어느 고위 장성이 병력을 서울로 이동시키는 것을 검토한다는 말이 들렸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분위기는 심상치 않았다.


재형의 직속 상관 강철우 대령이 재형을 불렀다.
"박 소령, 상부에서 대기 명령이 내려올 수 있어. 준비해 놔."
"무슨 대기입니까?"
강 대령이 말을 얼버무렸다.
재형은 그 날 밤 혼자 생각했다. 병력을 서울로.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군인이라면 몰랐을 리 없었다.


재형은 소말리아에서 들고 다니던 총을 떠올렸다. 그 총의 총구가 향했던 곳은 소말리아의 무장 세력이었다. 그 총구가 서울 시민을 향한다면.
헌법 제5조 제2항.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정치적 중립성. 그 문장이 이럴 때를 위해 씌어진 것이었다. 군은 정치에 개입하지 않는다. 군의 총구는 외부의 침략을 막기 위한 것이지, 내부의 정치적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재형은 다음 날 아침 강 대령을 찾아갔다.
"대령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말해."
"만약 상부의 명령이 병력을 서울 시내에 투입하는 것이라면, 저는 따를 수 없습니다."
강 대령의 눈빛이 굳었다.
"그게 무슨 말이야. 군인이 명령을 거부해?"
재형은 물러서지 않았다.


"헌법 제5조입니다. 국군의 사명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입니다. 정치적 목적으로 병력을 사용하는 것은 그 사명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헌법은 군의 정치적 중립성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저는 헌법에 충성하는 군인입니다. 특정 개인이나 정파에 충성하는 군인이 아닙니다."
강 대령은 오래 침묵했다. 그리고 말했다.


"박 소령, 넌 군인이 아니라 법학자 해야겠어."
그러나 웃음 안에 무언가가 있었다. 재형은 그것이 동의의 눈빛임을 알았다.
다행히 그 명령은 내려오지 않았다. 정치 상황이 다른 방향으로 수습되었다. 재형은 그 일을 일기에 썼다.
군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은 총을 드는 것이 아니다. 총을 들어서는 안 될 때 들지 않는 것이다. 명령에 복종하는 것이 군인의 덕목이지만, 헌법보다 높은 명령은 없다. 총구가 향해서는 안 되는 곳이 있다.


그것은 자국민이다. 그것은 민주주의다. 그것은 평화다.
2003년, 이라크 파병. 재형은 자원했다. 소말리아처럼. 이번에는 중령이었다. 자이툰 부대. 아르빌 재건 지원. 재형의 부대는 학교를 짓고, 우물을 파고, 의료 지원을 했다. 총을 들었지만 그 총구는 항상 평화를 향해 있었다.


아르빌에서 재형은 이라크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쳤다. 간단한 인사말.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아이들이 서툰 발음으로 따라 했다. 재형은 그 소리가 가장 좋았다. 총성보다 그 소리가.


총이 없어도 되는 날을 위해
2024년 봄, 레바논 티르.
박재형은 쉰여섯 살이었다. 대령. 유엔 레바논 평화유지군(UNIFIL) 한국군 부대장. 마지막 해외 파병이었다. 내년에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레바논 남부 티르 지역.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사이의 완충 지대. 세상에서 가장 오래된 분쟁 지역 중 하나. 재형의 부대는 이 땅에서 유엔의 깃발 아래 평화를 유지하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어느 날 오후, 부대 인근 마을에서 총성이 들렸다. 재형은 부대원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갔다. 무장 세력이 민간인 마을에 진입한 것이었다. 재형의 부대가 사이에 섰다. 총구가 양쪽에서 재형의 부대를 향했다.
재형은 손을 들었다. 31년 전 소말리아에서 했던 것처럼.
아랍어 통역관이 옮겼다.


"우리는 유엔 평화유지군입니다. 우리는 어느 편도 아닙니다. 우리는 이 마을 사람들을 지키기 위해 있습니다. 총을 내리십시오."
양측이 멈추었다. 1분. 2분. 3분. 재형은 움직이지 않았다. 총구가 자신을 향해 있었지만, 시선은 흔들리지 않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총은 평화를 위해 들어라.



결국 양측이 물러났다. 마을 사람들이 살아남았다.
그 밤, 재형은 막사에 혼자 앉아 수첩을 꺼냈다. 30년째 가지고 다니는 수첩. 첫 장에 이름 두 개. 이충호. 김민규. 소말리아에서 돌아오지 못한 두 사람.
재형은 그 이름들을 손으로 덮었다. 손바닥 아래에서 글자가 따뜻했다.



너희가 지키려 했던 것을, 나도 지키고 있어.
레바논에서의 마지막 임무를 마치고 귀국하는 날, 재형은 인천공항에 내렸다. 전역까지 석 달이 남아 있었다. 공항을 나오는 길에 재형은 잠시 멈추었다. 서울의 봄 하늘이 보였다. 파랗고 평화로웠다.


이 하늘이 평화로운 이유가 있었다. 누군가 총을 들고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 총구는 이 하늘을 향해 있지 않았다. 이 하늘 아래 사는 사람들을 향해 있지 않았다. 그것이 헌법이 말하는 군인의 사명이었다.



진주의 어머니 집으로 갔다. 아버지는 이미 2010년에 돌아가셨다. 어머니 혼자 살고 있었다. 어머니가 서랍에서 낡은 상자를 꺼냈다.


"재형아, 이거 니 아버지 훈장이야. 니가 가져가라."
재형은 그 상자를 받아 들었다. 열었다. 훈장이 있었다. 그리고 훈장 아래, 아버지의 작은 메모 하나가 있었다. 낡고 누런 종이에 연필로 쓰인 글씨.
전쟁은 다시 없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총을 들었다.



재형은 그 메모를 오래 바라보았다. 아버지의 전쟁. 자신의 소말리아. 이라크. 레바논. 총을 들었지만 침략하지 않은 모든 날들. 정치적 명령을 거부한 그 겨울. 총구를 내리고 손을 들었던 그 순간들.
재형은 훈장 옆에 자신의 수첩을 넣었다. 이충호. 김민규. 그 이름들이 아버지의 훈장 옆에 있는 것이 맞는 것 같았다.
상자를 닫았다.



"어머니, 이거 제가 잘 보관할게요."
어머니가 말했다.
"니 아버지가, 군인은 전쟁을 막는 사람이지 전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했어. 재형이 너도 그렇게 살았지?"
재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렇게 살았습니다."
창밖으로 진주의 봄 하늘이 보였다. 남강이 흘렀다.


전쟁의 기억이 없는 강. 지금 이 순간 총성이 없는 강.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당연한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사람이 총을 들었기 때문에, 그리고 그 총구를 올바른 곳에 향했기 때문에, 이 강이 이렇게 조용히 흐를 수 있었다.
총이 없어도 되는 날을 위해. 그 날이 올 때까지, 총은 평화를 향해 들어야 한다.



에필로그
박재형은 그 해 가을 전역했다.
전역식에서 그는 짧은 소감을 말했다.
"저는 36년간 군인이었습니다. 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 헌법이 말하는 것을 기억하며 총을 들었습니다. 대한민국은 침략적 전쟁을 부인합니다. 국군의 사명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입니다.


군은 정치적으로 중립입니다. 이 세 문장이 제 36년의 나침반이었습니다."
"저는 소말리아에서, 이라크에서, 레바논에서 총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총으로 침략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그 총으로 평화를 지키려 했습니다.


그것이 군인의 자랑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전쟁의 자랑이 아니라, 전쟁을 막은 것의 자랑."
"마지막으로, 소말리아에서 돌아오지 못한 이충호 하사, 김민규 하사에게 이 자리를 바칩니다. 그들은 침략자가 아니었습니다. 평화를 지키러 갔다가 쓰러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기억되어야 합니다."
전역식이 끝나고 재형은 아버지의 훈장을 꺼냈다.


그리고 옆에 자신의 수첩을 놓았다. 이충호. 김민규. 두 이름이 박힌 수첩.
그것을 국가보훈처에 기증했다. 아버지의 훈장과 자신의 수첩이 나란히.
전시된 그 유물 옆에 작은 설명 카드가 붙었다.



박성대(1929~2010), 6·25 참전용사.
박재형(1968~ ), 유엔 평화유지군 파병 3회.
두 사람의 군인관 : 전쟁은 자랑이 아니다. 전쟁이 다시 없어야 한다. 그래서 우리는 총을 들었다.
그리고 그 아래, 헌법 조문 두 개.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 대한민국 헌법 제5조 —
어느 날 초등학생 하나가 그 앞에 서서 오래 읽었다. 그리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군인은 왜 총을 들어요?"
선생님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총이 없어도 되는 날을 만들기 위해서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또 물었다.



"그 날은 언제 와요?"
"우리가 만드는 거야."
대한민국은 국제평화의 유지에 노력하고 침략적 전쟁을 부인한다.
국군은 국가의 안전보장과 국토방위의 신성한 의무를 수행함을 사명으로 하며,
그 정치적 중립성은 준수된다.
— 헌법 제5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