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힙스터의 만남
한옥마을 너머 숨은 골목으로
"전주 가본 적 있어?"
1월의 어느 주말, 준우가 물었다. 새해 첫 여행을 계획하던 중이었다.
"전주? 한옥마을?"
민수가 대답했다.
"응. 근데 한옥마을만 가는 게 아니라 객리단길도 가보자."
"객리단길?"
"경리단길처럼 '-리단길' 붙은 거. 전주 객사 근처 골목에 카페랑 맛집들이 생긴 곳이래."
서연이가 검색을 시작했다.
"객리단길. 객사길이라고도 불림. 오래된 골목에 2010년대 후반부터 젊은 감각의 가게들이 들어서며 핫플레이스로 부상."
"한옥마을이랑 가까워?"
"응. 걸어서 10분 정도."
지혜가 관심을 보였다.
"전주는 음식이 유명하잖아. 비빔밥, 콩나물국밥."
"그것도 먹고, 객리단길 카페도 가고."
"좋아. 새해 첫 여행으로 딱이네."
다음 주 토요일 아침, 네 식구는 KTX를 탔다.
"전주역까지 두 시간 반."
"서울에서 가깝네."
기차는 남쪽으로 달렸다. 경부선을 타고 대전을 지나 호남선으로.
"풍경이 평평해지네."
창밖으로 호남평야가 펼쳐졌다.
"전북이구나."
전주역에 도착했다.
"도착!"
역에서 나오니 공기가 상쾌했다.
"서울보다 따뜻한 것 같아."
"남쪽이니까."
택시를 타고 한옥마을로 향했다.
"한옥마을 먼저 보고 객리단길 갈까?"
"좋아."
전통 골목에서 힙한 골목으로
한옥마을에 도착했다.
"우와... 한옥이 진짜 많다!"
끝없이 이어지는 한옥들. 기와지붕, 돌담길.
"여기가 전주 한옥마을이구나."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주말이라 특히 많았다.
"사람 많다."
한복 입은 사람들도 많이 보였다.
"한복 대여하나 봐."
한옥마을을 한 시간쯤 걸었다. 경기전, 오목대, 한옥 카페들.
"예쁘긴 한데 너무 관광지 같아."
"사람도 많고."
"객리단길 가보자. 거기는 좀 다를 것 같아."
한옥마을을 벗어나 북쪽으로 걸었다. 10분쯤 가니 분위기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여기부터가 객리단길인가?"
좁은 골목이 나타났다. 낡은 건물들 사이로 세련된 간판들이 보였다.
"여기다!"
한옥마을과 확연히 달랐다. 관광객은 적고, 분위기는 더 로컬했다.
"완전 다르네."
골목 양쪽으로 가게들이 이어졌다. 카페, 레스토랑, 술집, 빵집.
대부분 젊은 감각으로 꾸며진 곳들이었다.
"경리단길 느낌이다."
"그래서 객리단길이구나."
첫 번째 카페로 들어갔다. '객사 커피'.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카페였다. 노출 천장, 빈티지 가구, 미니멀한 인테리어.
"분위기 좋다."
"아메리카노 네 잔이요."
주인은 30대 젊은 남자였다.
"여기 언제 오픈하셨어요?"
"3년 됐어요."
"왜 객리단길에?"
"서울에서 카페 하다가 전주로 왔어요. 서울은 너무 비싸고 경쟁도 심해서."
"여기는 어때요?"
"좋아요. 임대료도 괜찮고, 손님들도 천천히 늘고 있고."
"객리단길이 언제부터 유명해졌어요?"
"2018년쯤부터요. 그전까지는 그냥 오래된 동네였는데, 젊은 사람들이 하나둘 가게를 열기 시작했어요."
"지역 주민들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처음엔 경계하셨죠. '또 젠트리피케이션 아니냐'고. 근데 저희가 노력했어요. 주민들 존중하고, 가격도 착하게 하고."
커피를 마시며 창밖을 봤다. 골목을 걷는 사람들이 보였다. 대부분 20-30대 젊은 층.
"젊은 사람들이 많네."
"전주대, 전북대 학생들도 많이 와요."
카페를 나와 골목을 더 걸었다.
"저기 빵집이다."
작은 베이커리였다. '객사 베이커리'.
들어가니 갓 구운 빵 냄새가 났다.
"맛있겠다."
크루아상, 바게트, 식빵... 종류가 다양했다.
"크루아상 네 개요."
주인은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2년 됐어요."
"빵 만드는 거 배우셨어요?"
"네. 서울에서 5년 배우고, 전주로 왔어요."
"왜 전주로?"
"고향이에요. 서울에서 일하다가 고향에서 제 가게 하고 싶었어요."
"장사 잘 되세요?"
"아직은 빠듯해요. 근데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단골들도 생기고."
세대가 공존하는 골목
빵집을 나와 골목 안쪽으로 들어갔다.
신식 가게들 사이로 오래된 가게들도 보였다.
"저기 철물점이네."
'객사 철물점'. 낡은 간판, 오래된 쇼윈도.
들어가니 70대로 보이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구경하세요."
"네. 여기 오래 하셨어요?"
"50년 했지."
"50년!"
"객리단길 생기기 훨씬 전부터. 그때는 여기 그냥 동네였어."
"지금 많이 바뀌었죠?"
할아버지는 창밖 골목을 가리키셨다.
"많이 바뀌었지. 카페, 음식점 많이 생기고. 젊은 사람들 많아지고."
"어떠세요? 좋으세요?"
"글쎄... 복잡하네.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고."
"어떤 게 좋으세요?"
"동네가 살아났어. 예전엔 조용하고 사람도 별로 없었는데, 지금은 활기차."
"나쁜 건요?"
"임대료가 올라. 장사 안 되는 가게들은 못 버티고 나가."
"할아버지는 괜찮으세요?"
"나는 집주인이라 괜찮아. 근데 세 들어서 하는 가게들은 힘들지."
철물점을 나와 점심 먹으러 갔다.
"전주 음식 먹자. 비빔밥?"
"콩나물국밥도 유명하대."
골목 끝에 오래된 식당을 찾았다. '할머니 콩나물국밥'.
들어가니 소박한 동네 식당이었다.
"콩나물국밥 네 개요."
"네."
주인은 60대 할머니였다.
콩나물국밥이 나왔다. 뜨끈한 국물에 콩나물이 가득.
"맛있다!"
"시원해."
"이게 전주 콩나물국밥이구나."
식사를 하며 할머니께 여쭤봤다.
"여기서 오래 하셨어요?"
"30년 했어."
"객리단길 생기기 전부터시네요."
"그렇지. 그때는 동네 사람들만 왔어. 지금은 젊은 사람들도 오고."
"장사 잘 되세요?"
"예전보다는 나아. 근데 임대료가 올라서 걱정이야."
"얼마나 올랐어요?"
"3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많이 올랐네요."
"그래서 버티기 힘들어.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 모르겠어."
변화와 보존 사이에서
식사를 마치고 객사를 보러 갔다.
객리단길의 '객'이 여기서 온 것이었다.
전주 객사. 조선시대 관청 건물.
"여기가 객사구나."
웅장한 한옥 건물이었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었다.
"600년 됐대."
객사 마당에 앉아 골목을 바라봤다.
"600년 된 건물 옆에 3년 된 카페가 있네."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거지."
서연이가 노트를 펼쳤다.
"객리단길 어땠어?"
"복잡해."
"무슨 뜻이야?"
"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어. 젊은 가게들이 들어와서 동네가 활기차진 했는데, 임대료가 올라서 원래 있던 가게들이 힘들어하고."
"전형적인 젠트리피케이션이네."
"응. 그리고 한옥마을이랑 대조적이야. 한옥마을은 완전 관광지고, 객리단길은 로컬과 힙스터가 섞여 있고."
해가 기울기 시작했다.
"저녁도 여기서 먹고 가자."
골목에 있는 와인바에 들어갔다. '객사 와인'.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작은 바였다.
"와인 한 잔씩 하자."
와인을 마시며 하루를 정리했다.
"객리단길... 어떻게 생각해?"
민수가 물었다.
"나는 좋은 것 같아."
서연이가 대답했다.
"왜?"
"젊은 사람들이 지역으로 돌아오잖아. 서울에서 배우고 고향으로 와서 가게 여는 거. 그게 의미 있는 것 같아."
"근데 원래 있던 사람들은 밀려나는데?"
"그게 문제지. 균형을 찾아야 해.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되, 옛것도 지키고."
"쉽지 않을 텐데."
"그래도 노력해야지. 아니면 청담동처럼 되거나 창신동처럼 되거나."
집으로 돌아가는 KTX 안에서 민수는 글을 쓰기 시작했다.
제목은 '전주 객리단길, 전통과 힙스터의 만남'.
"객리단길은 전주 객사 근처 오래된 골목이다. 2018년쯤부터 젊은 감각의 카페와 레스토랑이 들어서며 핫플레이스가 됐다."
"서울의 경리단길을 본떠 '객리단길'이라 불린다. 하지만 경리단길과는 다르다. 규모도 작고, 로컬 색채도 강하다."
"30대 카페 주인은 서울에서 왔다.
'서울은 너무 비싸고 경쟁도 심해서.' 20대 베이커리 주인은 고향으로 돌아왔다. '고향에서 제 가게 하고 싶었어요.'"
"하지만 50년 철물점 할아버지는 걱정한다. '임대료가 올라. 장사 안 되는 가게들은 못 버티고 나가.' 30년 콩나물국밥 할머니도 마찬가지다. '3년 사이에 두 배 가까이.'"
"이것이 객리단길의 현실이다. 활기와 불안이 공존한다. 새로운 것과 오래된 것이 충돌한다."
"600년 된 객사 옆에 3년 된 카페가 있다. 전통과 현대, 로컬과 힙스터. 그 사이에서 객리단길은 균형을 찾아가고 있다."
"성공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시도는 의미 있다. 젊은이들이 지역으로 돌아오고, 오래된 골목에 새 생명을 불어넣는 것."
글을 다 쓰고 블로그에 올렸다.
댓글들이 달렸다.
"객리단길 몰랐는데 가보고 싶어요."
"전통과 현대의 균형... 어려운 문제네요."
"지역 청년들이 돌아오는 건 좋은 현상 같아요."
일주일 후, 전주시청에서 연락이 왔다.
"객리단길 상생 발전 방안을 연구 중입니다. 자문해주실 수 있나요?"
민수는 수락했다.
3개월 동안 객리단길을 여러 번 방문했다.
신규 입점 가게 주인들, 오래된 가게 주인들, 건물주들, 지역 주민들.
모두의 이야기를 들었다.
그리고 '객리단길 상생 가이드라인'을 만들었다.
핵심은 세 가지였다.
임대료 상한제 도입 (급격한 인상 방지)
오래된 가게 보호 구역 지정
신규 입점자 지역 기여 의무화
6개월 후, 가이드라인이 시행됐다.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시작이었다.
객리단길은 계속 변한다. 천천히, 조심스럽게.
새로운 가게가 들어서지만, 오래된 가게도 남는다.
젊은이들이 오지만, 할머니 할아버지들도 계신다.
전통과 현대가 충돌하지만, 공존을 모색한다.
민수 가족의 아카이빙도 새해를 맞았다.
2년차로 접어들었다.
"올해는 뭘 할까?"
"지역을 더 깊이 보자. 서울만이 아니라."
"좋아."
객리단길의 밤은 활기차다.
카페 불빛, 와인바 음악 소리, 젊은이들의 웃음소리.
하지만 그 옆에는 조용한 철물점도 있고, 할머니 국밥집도 있다.
600년 된 객사는 묵묵히 지켜본다.
변화를, 충돌을, 공존을.
그리고 기록자들은 계속 기록한다.
변화의 순간들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객리단길처럼. 전통과 현대 사이에서.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