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슬지 않는 나침반

공무원의 봉사와 중립성에 바치는 소설

by 이 범


주인공 : 오승원(吳承遠) — 1969년생, 충북 청주 출신 행정고시 출신 공무원·지방자치단체 부단체장
배경 : 1969년 청주 ~ 2024년 세종·서울
주제 : 공무원의 주인은 국민이다. 권력이 아니다. 그 나침반이 녹슬지 않는 한, 나라는 바로 선다



아버지의 민원
1978년 겨울, 충북 청주시 사직동 구청 민원실.
오승원은 아홉 살이었다. 아버지 오태석이 그를 데리고 구청에 갔다. 아버지는 동네 하수도 공사 때문에 집 앞 담장이 무너졌는데, 구청에서 석 달째 보상을 미루고 있었다. 그 날이 네 번째 방문이었다.



민원실에는 형광등이 깜박거렸다. 나무 의자가 줄지어 있었고, 사람들이 번호표를 들고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번호표를 뽑고 앉았다. 한 시간을 기다렸다. 번호가 불렸다. 창구 너머에 젊은 공무원이 앉아 있었다.


"오태석 씨 건, 아직 검토 중입니다."
"검토 중이 석 달째입니까? 담장이 무너진 게 장마 때인데, 이제 눈이 오려고 합니다."
공무원이 서류를 들여다보며 말했다.
"절차가 있어서요. 담당자가 바뀌면서 좀 늦어졌습니다. 다음 주 중으로 연락드리겠습니다."
"지난번에도 다음 주라 하셨는데요."
공무원은 말없이 다른 서류를 꺼냈다. 대화가 끝난 것이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일어섰다. 승원은 아버지의 손을 잡고 구청을 나왔다. 찬 바람이 불었다. 아버지의 손이 차가웠다.
집으로 오는 길에 승원이 물었다.
"아버지, 저 아저씨 왜 저래요?"
아버지는 한참 걷다가 말했다.



"저 사람들은 나랏일 하는 사람이야. 우리 세금으로 월급 받는 사람이야. 근데 가끔 그걸 잊어버려."
"나랏일이 뭐예요?"
"우리 같은 사람 도와주는 일이지. 담장 무너진 거 고쳐주고, 길 닦고, 학교 만들고. 그게 나랏일이야. 근데 오늘 저 사람은 나랏일을 한 게 아니야. 그냥 자기 일 귀찮아서 미룬 거야."
승원은 그 말을 오래 생각했다. 나랏일은 우리 같은 사람 도와주는 일이다. 그런데 그것을 귀찮아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면 귀찮아하지 않는 사람이 하면 되지 않는가.


중학교 사회 시간에 헌법을 배웠다. 선생님이 제7조를 읽었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승원은 그 문장 아래에 밑줄을 그었다. 봉사자. 봉사자라는 말이 마음에 들었다. 공무원은 국민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국민을 위해 일하는 사람이었다. 그렇다면 네 번째 방문에도 담장을 고쳐주지 않는 것은 봉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배신이었다.


승원은 그 날 일기에 썼다.
나는 나랏일 하는 사람이 될 거야. 아버지 같은 사람이 구청에 네 번씩 오지 않아도 되는 나라를 만들 거야.
고3이 되던 해, 승원은 행정고시를 목표로 삼았다. 선생님이 말렸다.


"승원아, 너 성적이면 의대나 법대 갈 수 있어. 왜 공무원이야?"
승원은 말했다.
"공무원이 제일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어요."
선생님은 잠시 승원을 바라보다 고개를 끄덕였다.
"그것도 맞는 말이네."


봉사자의 자리
1995년 봄, 내무부 지방행정국.
오승원은 스물여섯 살에 행정고시를 패스했다. 동기들 중 가장 어린 축이었다. 첫 발령은 내무부 지방행정국 사무관. 작은 책상, 높은 서류 더미, 끝없는 결재 라인.
첫 달이 지나갈 무렵, 승원은 이상한 것을 발견했다.


지방 소도시의 수해 복구 지원금 배분 내역이었다. 숫자가 맞지 않았다. 실제 피해 규모와 지원금 배분이 어긋나 있었다. 어떤 지역은 피해가 크지 않은데 지원금이 많았고, 어떤 지역은 피해가 심한데 지원금이 적었다.


승원이 선임 사무관 정해윤에게 물었다.
"선배님, 이 배분 내역 좀 이상하지 않아요? 제가 잘못 봤나요?"
정 사무관이 서류를 보더니 눈짓을 했다. 복도로 나왔다.
"승원 씨, 그거 알면서 모르는 척해야 해."
"왜요?"
"위에서 정해진 거야. 선거구 관리야. 그냥 넘어가."
승원은 그날 밤 혼자 사무실에 남아 생각했다. 선거구 관리. 표를 의식한 자원 배분. 그것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가 아니었다. 일부 국민에 대한 봉사였다. 아니, 봉사도 아니었다. 표를 사는 것이었다.


헌법 제7조.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전체. 그 단어가 중요했다. 수해 피해를 입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하게. 선거구와 무관하게.
승원은 다음 날 아침, 직속 과장에게 보고서를 올렸다. 피해 규모와 지원금 배분의 불일치를 수치로 정리한 보고서였다. 과장은 보고서를 한참 들여다보다 말했다.


"오 사무관, 이거 어디 보여줬어?"
"과장님한테 처음 보여드리는 겁니다."
"다른 데 보내면 안 돼. 알아?"
"과장님이 처리해 주신다는 뜻이죠?"
과장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 보고서는 결국 재검토되었다. 배분이 일부 조정되었다. 승원은 나중에야 알았다. 과장이 혼자 윗선과 싸운 것이었다. 말없이.
과장이 어느 날 승원을 불렀다.


"오 사무관, 이 일 오래 하려면 두 가지를 지켜야 해. 첫째, 원칙은 절대 팔지 마. 둘째, 싸울 때는 조용히 싸워. 시끄럽게 싸우면 당신도 다치고 국민도 다쳐."
승원은 그 말을 수첩에 받아 적었다. 원칙은 팔지 말 것. 싸울 때는 조용히.
세월이 흘렀다. 승원은 여러 부처를 거쳤다.



기획예산처, 행정자치부, 국무조정실. 사무관에서 서기관으로, 부이사관으로 올라갔다. 올라갈수록 느끼는 것이 있었다. 위로 올라갈수록 원칙을 지키기가 더 어려워졌다. 힘이 커질수록 그 힘을 올바른 곳에 쓰는 것이 더 어려워졌다.


2008년, 승원은 광역자치단체 국장이 되었다. 서른아홉 살. 그 자리에서 그는 아버지가 구청에 네 번 방문했던 날을 떠올렸다. 자신은 지금 그 구청 공무원과 같은 자리에 있다. 다만 국장실이라는 더 높은 자리에서.
승원은 부임 첫 날 팀장들을 모아 놓고 말했다.


"민원인이 같은 민원으로 두 번 이상 오면 그건 우리 잘못입니다. 첫 번에 제대로 처리했어야 했다는 뜻이니까요. 우리는 국민의 봉사자입니다. 그 말의 뜻을 잊지 맙시다."


나침반이 흔들릴 때
2017년 가을, 세종특별자치시 정부청사.
오승원은 마흔여덟 살이었다. 국무조정실 정책조정관. 정권이 바뀐 지 반년이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서 각 부처에 인사 바람이 불었다. 전임 정부 사람이라는 이유로, 또는 충성도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잘 나가던 공무원들이 한직으로 발령되었다.



승원에게도 신호가 왔다. 직속 상관인 조정실장이 불렀다.
"오 조정관, 위에서 관심이 있어. 차관 후보로 검토 중이래."
승원은 기다렸다. 그 다음 말이 있을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다음 달 예산안에서 A 사업 예산을 좀 늘려줬으면 해. 위에서 관심 있는 사업이야."
승원은 서류를 펼쳤다. A 사업. 이미 검토한 사업이었다. 예산 대비 효율이 낮았다. 타당성 검토에서 우선순위가 낮게 나온 사업이었다. 그 예산을 늘리려면 다른 사업 예산을 깎아야 했다. 그 다른 사업은 저소득층 주거 지원 사업이었다.



"실장님, A 사업 타당성 검토 결과를 다시 보여드려도 될까요?"
"이미 봤어. 그래도 위에서 하라는 거야."
"저소득층 주거 지원 예산을 깎아야 합니다."
"그게 안 되면 다른 데서 찾아봐."
"검토해봤는데 마땅한 재원이 없습니다."
실장이 펜을 내려놓았다.


"오 조정관, 솔직히 말할게. 이 일 하면 차관 가는 거야. 안 하면 인사 장담 못 해."
승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저 사람들은 나랏일 하는 사람이야. 근데 가끔 그걸 잊어버려. 과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원칙은 절대 팔지 마.
승원은 눈을 뜨고 말했다.


"실장님, 저는 공무원입니다. 헌법 제7조는 공무원이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라고 말합니다. 저소득층 주거 지원을 깎고 타당성이 낮은 사업에 예산을 배정하는 것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가 아닙니다. 차관 자리를 포기하더라도 이 결정은 바꿀 수 없습니다."
실장의 얼굴이 굳었다.


"오 조정관, 그 말 후회할 거야."
"후회하더라도 그게 맞는 일입니다."
예상대로였다. 한 달 뒤, 승원은 외청(外廳) 산하 연구원 파견 발령을 받았다. 사실상 한직이었다.




동기들이 차관, 본부장으로 올라가는 동안 승원은 연구원에서 보고서를 쓰고 있었다.
연구원 생활 1년. 승원은 오히려 그 시간이 귀했다. 정책 현장에서 벗어나, 진짜 국민이 무엇을 원하는지 자료로 들여다볼 수 있었다. 저소득층 주거 문제. 농촌 의료 공백. 지방 소멸. 승원은 두꺼운 보고서를 썼다.

아무도 당장 읽지 않는 보고서. 그러나 언젠가 누군가는 읽을 보고서.



헌법 제7조 제2항.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정치적 중립성. 그것은 정치에 무관심한 것이 아니었다. 어느 정권이 들어와도 국민을 위한 원칙은 바꾸지 않는 것이었다. 그 나침반이 녹슬지 않는 것.
승원은 그 1년이 자신의 나침반을 다시 닦는 시간이었다고 나중에 말했다.


국민 전체의 공무원
2024년 봄, 충북 청주시청 부시장실.
오승원은 쉰다섯 살이었다. 고향 청주로 내려와 충북 부시장이 된 지 1년이었다. 차관은 되지 못했다. 본부장도 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이 자리가 가장 맞는 자리 같았다. 청주. 아버지가 담장 무너진 것 때문에 구청에 네 번 갔던 그 도시.



그 날 아침, 민원 처리 현황 보고를 받다가 승원은 멈추었다.
"이 민원인, 같은 민원으로 몇 번째예요?"
담당 주무관이 말했다.
"세 번째입니다."
"왜 세 번이 됐어요?"
"담당자가 바뀌면서 인수인계가 늦어졌습니다."



승원은 잠시 눈을 감았다. 1978년 겨울. 아버지의 차가운 손. 구청 복도의 깜박거리는 형광등.
"오늘 중으로 처리해 주세요. 그리고 담당자 바뀔 때 민원 인수인계 시스템 다시 점검합시다. 같은 민원으로 두 번 이상 오는 일이 없어야 합니다."
주무관이 메모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후에 승원은 혼자 청사를 나와 걸었다. 청주 시내. 어릴 때 다니던 길과 많이 달라져 있었지만, 어딘가 같은 냄새가 났다. 고향의 냄새. 사직동 쪽으로 걸어갔다. 아버지의 집이 있던 곳. 지금은 헐리고 빌라가 들어서 있었다. 그러나 골목은 남아 있었다. 담장이 있던 자리.
승원은 그 골목 앞에 잠시 섰다.



아버지, 저 왔어요. 청주에요.
아버지는 2015년에 세상을 떠났다. 그 전에 아들이 행정고시 패스했다는 소식을 들었고, 국장이 됐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러나 차관이 됐다는 소식은 듣지 못했다. 승원은 그것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그런데 지금 이 골목 앞에 서니 다른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원한 것이 차관이었을까. 아버지가 구청에 네 번 간 것을 아들이 기억하고, 그 기억으로 자신의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것으로 충분했을까.
승원은 수첩을 꺼냈다. 내무부 시절부터 가지고 다니는 수첩. 첫 장에 과장의 말이 적혀 있었다. 원칙은 절대 팔지 말 것. 싸울 때는 조용히. 그 아래 승원이 나중에 덧붙인 한 줄. 공무원의 주인은 국민이다. 국민 전체다.



수첩을 덮고 다시 걸었다. 청사 방향으로. 아직 결재해야 할 서류가 있었다. 내일은 현장 방문이 있었다. 다음 주는 예산 심의가 있었다.
청사로 돌아오는 길에 민원실 앞을 지났다. 잠시 멈추어 안을 들여다보았다. 번호표를 들고 앉아 있는 사람들. 형광등은 더 이상 깜박거리지 않았다. 의자도 나무가 아니라 쿠션이 있었다.


그러나 앉아서 기다리는 사람들의 표정은 1978년과 같았다. 무언가를 기대하고,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표정.
저 사람들이 자신의 주인이었다. 월급을 주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자신이 섬겨야 하는 사람들이었다.
승원은 민원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창구 뒤에 젊은 주무관이 앉아 있었다. 이름표를 보니 입사 2년차였다.
"잠깐 나와볼 수 있어요?"
주무관이 놀라며 나왔다.


"부시장님, 무슨 일이십니까?"
승원은 민원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민원인들 불편한 것 없었어요? 기다리는 시간이나, 설명이 부족하다거나."
주무관이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어르신 한 분이 서류 작성이 어려우셔서 좀 시간이 걸렸습니다."
"도와드렸어요?"
"네, 옆에 앉아서 같이 썼습니다."
승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잘 했어요. 그게 우리 일이에요."
주무관의 얼굴에 무언가 환해지는 것이 있었다. 승원은 그것을 보며 생각했다. 이 사람도 누군가 제대로 된 말을 해주기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당신의 일이 맞다고. 당신이 하는 것이 봉사라고.
청사를 올라오며 승원은 헌법 제7조를 나직이 중얼거렸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그 문장은 의무였다. 그러나 의무가 몸에 배면 자유가 되었다. 이것이 자신의 일이기 때문에, 이것이 자신이 선택한 길이기 때문에, 그 의무는 짐이 아니라 나침반이었다.



나침반이 녹슬지 않는 한, 방향을 잃지 않는다.
나침반이 녹슬지 않는 한, 공무원은 국민의 봉사자이다. 그리고 그 나침반을 닦는 것이 공무원 스스로의 의무였다.


에필로그
오승원이 부시장으로 재직하는 동안, 청주시 민원 처리 만족도가 충북 도내 최고를 기록했다.
퇴임식에서 그는 짧게 말했다.


"저는 아홉 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구청에 갔습니다. 아버지는 담장 무너진 것 때문에 네 번 오셨어요. 그 날 아버지의 차가운 손을 기억하며 이 일을 했습니다. 오늘 청주 시민 중 저희 때문에 같은 민원으로 두 번 이상 오신 분이 있다면,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그리고 저 때문에 단 한 번에 해결이 된 분이 있다면, 그것이 제 보람입니다."
퇴임식이 끝나고 승원은 민원실 앞에 다시 섰다.


기념사진 찍는 것도 잊고, 꽃다발 받는 것도 잊고. 민원실 안에 번호표를 들고 앉아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저 사람들이 자신의 주인이었다. 30년 동안 그랬다. 앞으로도 그래야 했다. 자신이 공무원을 그만두어도, 이 나라의 공무원들이 그 사실을 잊지 않아야 했다.
승원은 수첩에 마지막으로 한 줄을 썼다.



공무원의 주인은 국민이다. 그것이 헌법이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나라가 서는 방법이다.
수첩을 덮었다. 그리고 돌아섰다. 청주의 봄 하늘이 높고 맑았다.
민원실 안에서 누군가의 번호가 불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의자에서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창구 앞에 서는 사람의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그 작고 평범한 소리들이 승원에게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소리로 들렸다.



나랏일이 돌아가는 소리였다.
공무원은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이며,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진다.
공무원의 신분과 정치적 중립성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보장된다.
— 대한민국 헌법 제7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