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선택의 자유에 바치는 소설
주인공 : 강준혁(姜俊赫) — 1982년생, 경남 거제 출신 요리사·사회적 셰프
배경 : 1982년 거제 ~ 2024년 서울·파리·거제
주제 : 직업은 밥벌이가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말하는 방식이다. 그 선택이 자유로울 때, 사람은 온전해진다
판사가 되어야 한다
1997년 봄, 경남 거제시 고현동.
강준혁은 열다섯 살이었다. 아버지 강철민은 거제 조선소에서 일하는 용접공이었다. 어머니 박미화는 시장에서 생선 좌판을 했다. 두 사람 모두 준혁에게 같은 말을 했다.
"공부해서 판사 되어라."
판사. 그 단어가 집 안에서 주문처럼 반복되었다. 밥 먹을 때도 판사, 잠자리에 들기 전에도 판사. 준혁은 그 단어가 싫지 않았다. 그러나 자신이 판사를 원하는지도 알지 못했다.
준혁이 원한 것은 다른 것이었다. 요리였다.
어머니의 생선 좌판 옆에서 자란 준혁은 어릴 때부터 생선 손질하는 것을 보았다. 비늘 치는 소리, 칼 가는 소리, 내장을 꺼내는 냄새. 그 모든 것이 좋았다. 두렵지 않았다. 어머니가 고등어 조림을 만들 때, 준혁은 옆에서 숟가락을 쥐고 기다렸다가 맛을 보았다
. 그리고 무언가 달라지면 알아챘다. "엄마, 오늘 간장을 더 넣었어요." 어머니가 놀랐다. "어떻게 알았어?"
중학교 가정 시간에 처음으로 칼을 잡고 요리를 했다. 선생님이 말했다. "준혁이는 칼 솜씨가 남다르네." 그 말이 좋았다. 칭찬이 좋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잘 한다는 확인이 좋았다.
"아버지, 저 요리사 되고 싶어요."
저녁 밥상에서 준혁이 말했다. 아버지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어머니가 멈추었다. 잠시 침묵.
아버지가 말했다.
"요리사가 밥은 먹고 살겠냐."
"제가 좋아하는데요."
"좋아하는 걸로 다 먹고 사는 게 아니야."
어머니가 말했다.
"준혁아, 요리사가 뭐가 좋아? 힘들잖아. 주방에서 평생 서서 일하는 거야."
"그게 좋아요."
"왜?"
"만들면 바로 결과가 나오거든요. 맛있으면 맛있고, 맛없으면 맛없고. 그게 솔직해서 좋아요."
아버지가 한참 준혁을 바라보다 말했다.
"고등학교 졸업하고 다시 생각해봐라."
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음은 바뀌지 않았다.
사회 시간에 헌법을 배웠다.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딱 한 문장이었다. 준혁은 그 문장을 읽으며 손이 조금 떨렸다. 직업선택의 자유. 자신이 어떤 일을 할지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 국가도, 부모도, 그 선택을 막을 수 없다.
그러나 준혁은 동시에 알았다. 자유가 있다고 선택이 쉬운 것은 아니었다. 부모의 기대, 사회의 시선, 경제적 현실. 법적으로 자유가 있어도 현실에서 그 자유를 행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공책에 썼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있다. 그런데 왜 선택이 이렇게 어려운가.
그것이 준혁의 질문이었다. 그리고 그 질문이 그의 평생을 이끌었다.
칼과 불 사이에서
2003년 가을, 서울 압구정동 레스토랑.
강준혁은 스물한 살에 조리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아버지는 반대했다. 어머니는 울었다. 준혁은 가방 하나를 들고 거제를 떠났다.
서울에서 처음 들어간 레스토랑은 압구정동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인턴 요리사. 월급은 적었다. 일은 많았다. 새벽 다섯 시에 출근해서 밤 열한 시에 퇴근했다. 설거지, 채소 손질, 스톡 만들기. 주방의 막내가 하는 모든 일.
한 달이 지나도 칼을 잡지 못했다. 수석 셰프 이민준이 말했다.
"너 요리하러 왔어, 설거지하러 왔어?"
"요리하러 왔습니다."
"그럼 이 스톡 맛 봐봐."
준혁이 스톡을 한 모금 마셨다.
"월계수 잎이 한 장 더 들어가야 합니다. 그리고 불을 조금 더 낮춰야 할 것 같고요."
이민준 셰프가 준혁을 바라보았다.
"다시 한번 말해봐."
"월계수 잎 한 장, 불 온도 낮춤."
이민준이 직접 스톡을 맛보았다. 그리고 말없이 월계수 잎을 한 장 넣고 불을 낮추었다.
그 날 오후 준혁은 처음으로 칼을 받았다.
요리는 고된 일이었다. 주말도 없었다. 명절도 없었다.
주방은 뜨거웠다. 기름이 튀었다. 손에 화상 자국이 생겼다. 손가락이 베이기도 했다. 그러나 준혁은 지치지 않았다. 접시에 음식이 담기고, 그것이 손님에게 나가고, 손님이 맛있다고 할 때의 그 느낌. 그것이 준혁을 움직이게 했다.
3년 후, 준혁은 파리로 갔다. 요리를 더 배우기 위해. 아버지는 이번에도 반대했다.
"프랑스까지 왜 가냐. 한국에서도 요리할 수 있잖아."
"더 배우고 싶어서요."
"판사 됐으면 이런 고생 안 해도 됐을 텐데."
준혁은 웃었다.
"아버지, 저 고생하는 거 아니에요. 하고 싶은 거 하는 거예요."
아버지가 한참 준혁을 바라보다 말했다.
"…다쳐서 오지 마라."
파리에서 2년을 있었다. 리옹의 폴 보퀴즈 레스토랑에서 스타지를 했다. 다르게 보는 법을 배웠다. 같은 재료가 어떻게 다른 음식이 되는지를. 전통이 어떻게 현재와 만나는지를.
그리고 파리에서 준혁은 한 가지를 더 배웠다. 요리는 문화라는 것. 음식은 한 사람의 이야기라는 것. 주방 동료 피에르가 말했다.
"준혁, 너의 요리는 어디서 온 거야?"
"거제요."
"거제가 어떤 곳이야?"
"바다가 있어요. 조선소가 있어요. 그리고 어머니가 생선 좌판을 했어요."
피에르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너의 요리야. 그걸 접시 위에 올려봐."
준혁은 그 말을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자유가 빼앗길 때
2016년 겨울, 서울 마포구.
강준혁은 서른네 살이었다. 서울 마포구에 작은 레스토랑을 열었다. 이름은 '거제'. 거제의 식재료를 서울에서 요리하는 레스토랑. 고등어, 멍게, 굴, 거제의 채소들. 그것들을 프랑스에서 배운 기법으로 재해석했다.
레스토랑은 입소문을 탔다. 손님이 늘었다. 잡지에 실렸다. 그러나 준혁의 마음 한 켠에 항상 불편한 것이 있었다.
레스토랑 일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 주방 직원들. 설거지하는 아주머니, 홀 서빙 아르바이트생, 식재료를 납품하는 소규모 농부들.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준혁은 생각했다.
직업선택의 자유. 그것이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있는가.
아르바이트생 이진아는 스물두 살이었다. 대학을 다니면서 레스토랑에서 일했다. 그녀가 어느 날 말했다.
"저 사실 셰프 되고 싶어요. 근데 조리학교 학비가 너무 비싸요. 부모님이 지방에서 농사짓거든요."
"조리학교 안 가도 배울 수 있어."
"취업하려면 자격증이 있어야 하잖아요."
준혁은 그 말에 멈추었다. 자신은 조리학교에 갔다.
어렵게 갔지만 갔다. 파리에도 갔다. 그 과정에서 경제적 어려움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헤쳐나갔다. 그러나 진아는 그 첫 번째 계단에서 막혀 있었다.
직업선택의 자유는 법으로 보장된다. 그러나 그 자유를 실질적으로 행사하려면 교육의 기회, 경제적 기반, 사회적 네트워크가 필요했다. 그것들이 불평등하게 분배되어 있을 때, 자유는 형식에 그쳤다.
준혁은 그 해 겨울, 레스토랑 수익의 일부로 요리 장학금을 만들었다. 이름은 '거제 장학'. 저소득층 요리 지망생에게 조리학교 학비를 지원하는 프로그램.
그리고 더 나아갔다. 레스토랑 한 켠에 '오픈 키친'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요리사가 되고 싶지만 기회가 없는 청년들에게 주방을 열어주었다. 배우고 싶으면 와서 배울 수 있는 주방.
사람들이 물었다.
"사업이에요, 봉사예요?"
"그 경계가 있나요."
"돈이 돼요?"
"천천히요."
"왜 하세요?"
준혁은 잠시 생각했다.
"직업선택의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진짜여야 하거든요."
상대가 무슨 뜻인지 잘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준혁은 설명했다.
"법적으로 직업은 자유롭게 고를 수 있어요. 근데 현실에서는 돈이 없으면 꿈꾸는 직업을 선택할 수 없어요. 그 격차를 조금씩 메우고 싶어요."
아버지가 서울에 처음으로 레스토랑을 방문했다. 준혁이 직접 요리해서 내놓았다. 거제 고등어 조림. 어머니의 레시피에 파리에서 배운 기법을 더한 것.
아버지가 한 모금 먹었다. 말없이 먹었다. 밥 한 공기를 다 비웠다. 그리고 말했다.
"맛있네."
그 두 글자가 준혁에게는 세상 어떤 미슐랭 별보다 무거웠다.
"아버지, 제가 옳게 선택한 거죠?"
아버지가 잠시 창밖을 바라보다 말했다.
"그래. 옳게 선택했어. 아버지가 틀렸어."
준혁은 고개를 숙였다. 울지 않으려 했지만 눈물이 났다. 아버지도 고개를 돌렸다. 두 사람이 각자 고개를 돌리고 각자 눈물을 닦았다.
선택이 자유로운 나라
2024년 봄, 거제와 서울.
강준혁은 마흔두 살이었다. 레스토랑 '거제'는 이제 서울에 두 곳, 부산에 한 곳이 있었다. 거제 장학으로 조리학교를 간 청년이 17명이 되었다. 오픈 키친 프로그램을 거쳐 요리사가 된 사람이 31명이었다.
그 해 봄, 준혁은 거제로 내려갔다. 거제에 새 레스토랑을 열기 위해서였다. 고향에서 요리하고 싶다는 오랜 꿈이었다.
거제 시장. 어릴 때 어머니의 생선 좌판이 있던 자리.
지금은 다른 사람이 좌판을 하고 있었다. 준혁은 그 앞에 서서 잠시 바라보았다. 생선 냄새. 비늘 치는 소리. 그것이 자신의 첫 번째 요리 학교였다.
레스토랑 자리를 구하러 다니다가 준혁은 한 청년을 만났다. 스물세 살. 거제 토박이. 이름은 강동현.
"혹시 셰프님 아세요? 서울에서 '거제' 하시는."
"제가 그 사람인데요."
동현이 눈이 커졌다.
"진짜요? 저 셰프님 때문에 요리 시작했어요."
"어떻게요?"
"거제에서 자라면서 요리사 하고 싶었는데, 다들 조선소 가라고 했거든요. 근데 거제 출신 셰프가 있다는 거 알고,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준혁은 그 말을 듣고 오래 말이 없었다.
"지금 어디서 일해요?"
"여기 횟집에서요. 근데 더 배우고 싶어요."
"우리 레스토랑에 와요."
"거제에 생기는 거요?"
"응. 곧 열어요."
동현이 빛나는 눈으로 말했다.
"거제에 그런 레스토랑 생기면… 저 여기 있어도 되는 거네요."
준혁은 그 말에 멈추었다. 여기 있어도 되는 거네요. 그것이 직업선택의 자유의 또 다른 의미였다. 서울에 가지 않아도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다면, 머물 수 있다. 떠나야만 꿈을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고향에 남는 것도 선택이 된다.
레스토랑 개업 준비를 하면서 준혁은 아버지의 조선소 동료들을 만났다. 나이 든 분들이 많았다. 조선소가 어려워지면서 일자리가 줄어들었다. 그 중 한 분이 말했다.
"준혁아, 니가 여기 레스토랑 열면 우리 아들 취직 시켜줄 수 있나? 요리 배우고 싶다 카더라."
"몇 살이에요?"
"스물여섯."
"데려오세요."
그 날 밤, 준혁은 거제 바닷가에 앉아 파도 소리를 들었다. 어릴 때 어머니와 앉았던 그 바닷가. 파도는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소리를 냈다.
헌법 제15조.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이 짧은 문장이 얼마나 많은 것을 담고 있는지를 준혁은 지금 알았다. 직업은 밥벌이가 아니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말하는 방식이었다.
준혁에게 요리는 거제였고, 어머니의 생선 좌판이었고, 파리의 주방이었고, 접시 위에 담긴 자신의 이야기였다.
그 이야기를 할 자유. 그것이 직업선택의 자유였다.
그리고 그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실질적으로 있어야 했다. 부모의 직업과 무관하게. 태어난 지역과 무관하게. 경제적 형편과 무관하게.
준혁은 파도 소리를 들으며 생각했다. 자신이 그 자유를 위해 무엇을 더 할 수 있는지.
레스토랑을 열면, 거제 청년들에게 주방을 열어주겠다. 거제 어부들의 생선을 가격을 제대로 받고 사겠다. 조선소를 떠난 노동자들의 자녀에게 요리를 가르치겠다.
그것이 자신의 직업이었다. 요리사이면서 동시에 직업선택의 자유가 모든 사람에게 닿도록 돕는 사람.
직업은 밥벌이가 아니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세상에 말하는 방식이다. 그 선택이 자유로울 때, 사람은 온전해진다.
에필로그
2024년 가을, 거제 레스토랑 '거제' 개업식.
준혁의 레스토랑이 문을 열었다. 조선소 내음이 나는 거제 바닷가 옆. 메뉴판에는 거제의 생선들이 있었다. 어머니의 레시피와 파리의 기법이 만난 요리들.
개업식에 아버지가 왔다. 어머니도 왔다. 어머니는 시장에서 생선 좌판을 접고 몇 년 전에 은퇴했다.
어머니가 메뉴판을 보다가 웃었다.
"준혁아, 이거 엄마 고등어 조림이잖아."
"영감 받은 거예요."
어머니가 눈물이 고였다.
아버지는 홀을 둘러보다 주방 쪽을 바라보았다. 동현이 주방에서 칼질을 하고 있었다. 그 옆에 준혁이 서서 뭔가를 가르쳐주었다.
아버지가 말했다.
"저 아이는 거제 애냐?"
"네."
"거제서도 저런 일 할 수 있구나."
"그게 제가 여기 온 이유예요, 아버지."
아버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없었다. 그러나 그 침묵이 긍정이었다.
손님들이 들어왔다. 거제 사람들, 서울에서 내려온 사람들, 외국인 관광객도 있었다. 준혁이 직접 서빙했다. 요리가 나갔다. 사람들이 먹었다. 맛있다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가 준혁에게는 가장 좋은 소리였다. 어릴 때부터, 언제나.
주방으로 돌아오면서 준혁은 잠시 문 앞에 멈추었다. 거제 바다가 보였다. 어릴 때 어머니 생선 좌판 옆에서 바라보던 그 바다. 조선소 굴뚝이 있는 그 하늘.
내가 선택한 일이다. 내가 선택한 자리다.
헌법이 보장하는 그 자유를 자신은 15년 동안 싸워서 얻었다. 앞으로는 그 싸움이 더 쉬워지길 바랐다. 다음 동현이, 다음 진아가 자신보다 더 쉽게 그 자유를 행사할 수 있기를.
준혁은 주방으로 들어갔다. 불이 켜져 있었다. 칼이 빛났다. 재료들이 준비되어 있었다.
오늘도, 내가 선택한 일이 시작되었다.
모든 국민은 직업선택의 자유를 가진다.
— 대한민국 헌법 제15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