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정치의 고통
윤서영의 부고 소식이 전해지자 영광 지역 전체가 슬픔에 잠겼다. 이산갑의 인품과 서영의 덕망을 아는 사람들이 하나둘 조문을 위해. 찾아왔다.
이산갑은 마을 입구에 큰 영정사진을 모시고 상주로 앉았다. 서영의 온화한 미소가 담긴 사진 앞으로 끊임없이 조문객들이 줄을 이었다."삼가 조의를 표합니다."일본인 상인들도 고개를 숙이며 조문했다. 서영이 학당에서 일본 아이들까지도 차별 없이 보살펴왔기 때문이었다."선생님... 선생님..."서영에게 글을 배웠던 아이들이 어머니 손을 잡고 와서 영정 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우리 선생님이 왜 돌아가셨어요?"아이들의 순진한 질문에 어른들은 답할 말을 찾지 못했다.
사흘째 되는 날, 성당의 김 신부가 도착했다."이산갑 형제님, 서영 자매를 위해 성사를 드리겠습니다."김 신부는 촛불을 밝히고 성수를 뿌리며 조용히 기도를 올렸다."주님, 당신의 종 윤서영을 당신의 품으로 받아주소서. 그녀가 이 땅의 아이들을 위해 바친 사랑을 기억해 주소서."영정 앞에서 신부의 라틴어 기도가 울려 퍼졌다. 조문객들도 함께 고개를 숙이고 묵념했다. 하지만 이 모든 장면을 멀리서 지켜보는 한 사람이 있었다. 백정치였다. 그는 마을 뒷산 바위틈에 숨어 장례식장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서영의 관이 묘지로 향하는 행렬을 보며 그의 가슴은 찢어질 듯 아팠다.'내가... 내가 죽인 거야...'백정치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며칠째 제대로 잠도 자지 못하고 밥도 넘기지 못했다.'서영이... 미안해... 정말 미안해...'그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렸다. 어린 시절 서영이 자신에게 한글을 가르쳐주던 모습, 따뜻하게 웃어주던 그녀의 얼굴이 계속 떠올랐다. 장례 행렬이 지나간 후에도 백정치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못했다. 해가 지고 달이 뜰 때까지 그는 바위에 기대앉아 울음을 삼켰다."어머니... 저 때문에... 저 때문에 서영이 누나가..."집으로 돌아온 백정치는 어머니 앞에서 무너져 내렸다."얘야, 무슨 소리냐?""제가... 제가 밀고를 했어요. 그래서 서영이 누나가 잡혀간 거예요..."백정치의 어머니는 아들의 고백에 충격을 받았다."네가... 네가 그런 일을...""어머니, 저는 어떻게 해야 해요? 어떻게 해야 해요?"백정치는 바닥에 엎드려 통곡했다. 그의 양심은 이미 지옥의 고통을 맛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