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왕조실록 1부(2)

왕자들의겨울

by seungbum lee

왕자들의 겨울

온조는 칼을 휘둘렀다. 한 번, 두 번, 백 번. 추운 겨울 날씨에도 그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동생, 그만 쉬어라. 손이 얼어붙겠다."

형 비류가 말했다. 그는 한쪽 구석에서 술을 마시고 있었다. 스물두 살의 비류는 이미 고구려 최고의 용사 중 하나였다. 하지만 그의 눈빛에는 언제나 불만이 가득했다.
"쉬십시오, 태자님."
늙은 병사가 온조에게 다가섰다.


온조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칼을 거두었다.그의 손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비류는 빈 술잔을 내려놓고 일어섰다. 눈밭 위로 그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졌다.
"쉬기는 무슨. 이래서는 결코 그들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없을 터인데."
비류의 목소리에는 차가운 비수가 박혀 있었다.'그들'은 분명 주몽과 유리였다.


고구려의 하늘 아래, 그들의 존재는 두 형제에게 거대한 산과 같았다. 온조는 형의 눈빛을 읽었다. 비류의 불만은 단지 술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자신들이 설 곳이 없다는 절망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온조는 자신의 굳은살 박힌 손바닥을 내려다보았다.


그는 형처럼 타고난 무예의 천재는 아니었지만, 끈기와 노력으로는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았다. 어머니 소서노의 지혜와 강인함, 그리고 아버지 주몽의 용맹함이 자신에게도 흐르고 있음을 온조는 믿었다. 그러나 그 믿음만으로는 현실의 벽을 넘을 수 없음을 그는 알고 있었다."형님, 언젠가 우리도 우리의 땅에서 우리의 칼을 휘두를 날이 올 것입니다."
온조의 목소리는 낮았지만, 단호했다. 비류는 피식 웃었다. 그 웃음에는 비웃음보다는 체념이 더 짙게 배어 있었다.



"그 땅이 어디에 있단 말이냐. 이 넓은 고구려에 우리 두 아들이 설 자리는 이제 없다는 것을 아직도 모른단 말이냐."
비류는 눈발이 휘몰아치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눈빛은 멀리 남쪽 어딘가를 응시하고 있는 듯했다. 온조는 말없이 다시 칼을 들었다. 차가운 쇳덩이의 감촉이 그의 결의를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 칼이 다시 공기를 가르고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 쉬지 않고 움직이는 온조의 모습은, 언젠가 자신들의 땅에서 백 번이고 천 번이고 칼을 휘두를 미래를 예고하는 듯했다.


"형님은 어찌 연습을 하지 않으십니까?" 스무 살의 온조가 물었다.
"이대로는 안 돼." 비류는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의 시선은 온조에게서 벗어나 멀리, 눈 덮인 산맥 너머의 흐릿한 지평선을 향했다. 그곳에 자신들이 설 수 있는 땅이 있을까? 고구려라는 거대한 그림자 아래에서, 그들은 과연 벗어날 수 있을까? 비류의 불안과 절망은 그의 얼어붙은 표정 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온조는 잠시 칼을 멈추고 형을 바라보았다. 형의 눈빛 속에서 자신과 같은 고민을 읽었다. 주몽과 유리가 드리운 거대한 산, 그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서 두 형제는 각자의 방식으로 고통받고 있었다. 온조는 칼자루를 더욱 굳게 쥐었다. 자신에게 필요한 것은 형의 체념이 아닌, 새로운 길을 개척할 용기임을 그는 깨달았다. 아직 보이지 않는 그 땅을 향해, 그는 칼을 다시 휘둘렀다. 눈보라 속에서 그의 칼날은 번뜩이며 희미한 희망을 그리는 듯했다.


"연습? 무엇을 위한 연습인가?" 비류가 비웃었다. "태자는 이미 정해졌고, 우리는 영원히 그의 그림자일 뿐이다. 아무리 칼을 잘 휘둘러도 소용없는 일이지."

"그래도..."

"그래도? 동생아, 현실을 직시해라. 우리 어머니는 재가한 여인이고, 우리는 선왕의 친아들도 아니다. 아니, 어쩌면..." 비류는 말을 멈추었다.



온조는 형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고 있었다.궁궐에 떠도는 소문들. 그들이 실은 주몽의 아들이 아니라 어머니의 전 남편 우태의 아들이라는 이야기. 그 소문이 사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믿는다는 것이었다.

"형님."

"뭐냐?"
"우리가 이곳을 떠난다면 어떻겠습니까?"

비류가 술잔을 내려놓았다.


"떠나? 어디로?"

"남쪽으로. 새로운 땅으로."




형제는 한동안 서로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이것이 그들의 유일한 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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