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란(18)

이산갑과백정치

by 이 범

몇 년 후세월이 흘러 산갑이와 정치는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다. 그 사건 이후 두 아이의 관계는 완전히 달라졌다.


한때 친밀했던 우정은 서먹하고 거리감 있는 관계로 변해버렸다.이제 열여섯이 된 이산갑은 아버지 충헌의 가르침을 받으며 장차 고을을 이끌 인재로 성장하고 있었다.


키도 훌쩍 자라고 얼굴에는 젊은 선비의 기품이 서려있었다


그는 경전을 읽고 글을 쓰며, 때로는 아버지를 따라 관아의 업무를 익히기도 했다.반면 백정치는 여전히 머슴의 아들로 살아가고 있었다. 그 역시 키가 자라고 체격이 튼튼해졌지만, 신분의 벽은 여전했다. 그는 주로 밭일을 돕고, 이 집 저 집의 궂은일을 하며 생계를 이어갔다.두 사람이 마주치는 일은 가끔 있었다.


산갑이가 마을을 둘러볼 때, 혹은 정치가 이 댁에 일을 하러 왔을 때였다.



하지만 그들 사이의 대화는 형식적이고 차가웠다."정치야, 수고하고 있구나." 산갑이가 정중하지만 거리감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네, 도련님. 분부만 해주시면 됩니다.


" 정치도 고개를 숙이며 예의 바르게 답했다.예전처럼 서로의 이름을 부르며 웃고 떠들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이제 산갑이는 '도련님'이었고, 정치는 그저 '머슴'이었다.때로는 정치의 눈에서 그리움과 미안함이 스쳐 지나가기도 했다.


그 사건 이후 그는 수없이 후회했다. 왜 그때 산갑이의 손을 잡지 못했을까, 왜 혼자만 도망쳤을까... 하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산갑이 역시 마음 한편으로는 옛 친구에 대한 그리움이 있었다.



하지만 그 깊은 배신감과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았다. 더욱이 아버지의 가르침을 받으며 신분의 질서와 예의에 대해 깊이 배우면서, 그는 점점 정치와 자신 사이의 거리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산갑아," 어느 날 충헌이 아들에게 말했다.


"네가 이제 어른이 되어가니, 백성들을 대하는 마음가짐에 대해 더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네, 아버지.""정치 그 아이를 보면서 무엇을 느끼느냐?"산갑이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예전에는... 친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신분이 다른 사람이라는 것을 압니다.""그렇다. 하지만 신분이 다르다고 해서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저버려서는 안 된다. 그 아이에게 예의는 지켜주되,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에게 좋을 것이다.


""네, 아버지. 알겠습니다."이렇게 두 사람은 각자의 길을 걸어가며 성장했다. 한 사람은 양반 집 도련님으로, 다른 한 사람은 머슴의 아들로. 어린 시절의 순수했던 우정은 이제 추억 속에서만 존재했다.


가끔 정치가 혼자 있을 때면, 그는 저수지 수문 근처를 지나가곤 했다. 그곳에서 산갑이와 함께 물고기를 잡으며 웃던 날들을 떠올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는 더 이상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음을 알고 있었다.


어느 가을날, 마을에 큰 잔치가 열렸다. 군수의 회갑연이었다. 마을의 모든 양반가와 백성들이 모여 축하하는 자리였다. 산갑이는 아버지 충헌을 따라 상석에 앉았고, 정치는 다른 하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르고 시중을 들었다.



연회가 무르익을 무렵, 군수가 젊은이들에게 재주를 보이라고 권했다. 몇몇 양반 집 자제들이 시를 읊고 글을 썼다. 산갑이도 부름을 받았다.
"이산갑, 네가 한 수 지어보거라."
산갑이는 공손히 일어나 붓을 들었다. 그의 붓끝에서 유려한 글씨가 흘러나왔다.



"옛 친구와 함께 놀던 시냇가,
세월 흘러 각자의 길 걷게 되었네.
신분의 차이는 하늘이 정한 것,
하지만 어린 날의 정은 어찌 잊으리."
좌중에서 감탄의 소리가 터져 나왔다. 하지만 음식을 나르던 정치의 손이 순간 멈췄다.


그는 산갑이가 쓴 글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 글 속에 자신에 대한 이야기가 담겨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연회가 끝나갈 무렵, 정치는 마당을 쓸고 있었다. 그때 산갑이가 혼자 바깥으로 나왔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정치가 먼저 입을 열었다.


"도련님의 시... 잘 들었습니다."
산갑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저는..." 정치가 빗자루를 꽉 쥐며 말을 이었다. "저는 그날 이후 하루도 편히 잔 적이 없습니다."
산갑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제가 비겁했습니다. 도련님을... 아니, 산갑이를 버리고 도망친 것은 평생의 죄입니다." 정치의 목소리가 떨렸다. "하지만 그때 저는 정말 무서웠습니다. 죽을 것 같았습니다."
"알고 있다." 산갑이가 차분하게 말했다. "너도 어린 아이였으니까."
"용서를... 구할 수 있을까요?"
산갑이는 한참을 망설였다. 그의 마음속에서는 여전히 상처와 그리움, 신분의 차이와 옛 우정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정치야," 산갑이가 처음으로 그의 이름을 불렀다. 정치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용서는... 이미 했다. 하지만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어."
"압니다." 정치가 고개를 숙였다. "이미 우리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으니까요."
"그렇다. 너는 네 길을, 나는 내 길을 가야 한다.


하지만..." 산갑이가 잠시 멈췄다. "너를 미워하지는 않는다."
정치는 깊이 허리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도련님."
산갑이는 돌아서서 집 안으로 걸어갔다. 뒤돌아보지 않았지만, 그의 눈가에도 촉촉한 기운이 맺혀 있었다.
정치는 한참을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산갑이의 말이 위로가 되기도 했고, 동시에 더 깊은 상실감을 안겨주기도 했다. 용서는 받았지만, 우정은 돌아오지 않았다. 어쩌면 이것이 그들이 도달할 수 있는 최선이었는지도 몰랐다.


달빛이 마당을 비추고, 정치는 다시 빗자루를 들었다.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져 있었다. 산갑이의 그림자와는 이제 영영 만나지 않을 그림자였다.
집 안에서 산갑이는 창문 너머로 마당의 정치를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조용히 중얼거렸다.
"미안하다, 정치야. 우리가 다른 세상에 태어났다면..."
하지만 그 말은 바람에 흩어져 정치에게 닿지 않았다.

수, 토,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