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와의 관계
산갑이는 젖은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왔다. 온몸이 물에 젖어 있고, 옷은 진흙투성이었으며, 얼굴에는 절망과 충격이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어머, 산갑아! 이게 무슨 일이니?" 지영이 아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며 달려왔다.산갑이는 어머니를 보자 참고 있던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하지만 울음소리는 내지 않고, 그저 조용히 눈물만 흘렸다."산갑아, 무슨 일이 있었니? 다친 곳은 없니?" 지영이 아들을 꼭 안으며 걱정스럽게 물었다."어머니..." 산갑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저수지에서... 갑자기 비가 와서... 물이 불어나서..."지영은 아들의 젖은 옷을 벗겨주며 따뜻한 수건으로 몸을 닦아주었다. 산갑이의 입술이 파랗게 질려 있는 것을 보고 더욱 걱정이 되었다.
"천천히 말해보렴. 무슨 일이 있었는지..."산갑이는 한참을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물에... 물에 빠졌어요. 그런데 정치가..."말이 막혔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가장 믿었던 친구가 자신을 버리고 도망갔다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정치가 어떻게 했다는 거니?""정치가... 정치가 저를 버리고 혼자 도망갔어요." 산갑이의 목소리가 더욱 작아졌다. "제가 도와달라고 손을 내밀었는데... 정치는 무서워서..."지영은 아들의 말을 듣고 깊은 한숨을 쉬었다. 아이의 상처가 단순히 몸의 상처가 아니라 마음의 상처임을 깨달았다."그래서 누가 너를 구해준 거니?""마을 어른 한 분이요... 길다란 막대기로..." 산갑이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바로 그때 충헌이 방 안으로 들어왔다.
아들의 처참한 모습을 본 충헌의 얼굴이 순간 굳어졌다."이게 무슨 일이냐?" 충헌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섞여 있었다.지영이 충헌에게 상황을 간략히 설명했다. 충헌은 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점점 얼굴이 어두워졌다."그래서 정치 그 녀석은 어디 있느냐?" 충헌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모르겠어요... 도망갔어요..." 산갑이가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충헌은 잠시 아무 말 없이 아들을 바라보았다. 그의 마음 속에는 복잡한 감정들이 교차했다. 한편으로는 아들이 다치지 않았다는 안도감이, 다른 한편으로는 자신의 우려가 현실이 되었다는 씁쓸함이 있었다."아버지..." 산갑이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버지 말씀이 맞았어요. 정치는... 정치는 정말 저에게 도움이 안 되는 아이였어요."충헌은 아들의 말을 듣고 마음이 아팠다. 자신이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틀렸기를 바랐던 것인데..."산갑아," 충헌이 부드러운 목소리 로 말했다. "사람은... 때로 두려움 앞에서 자신도 모르는 선택을 할 때가 있단다.""하지만 아버지, 정치는 저를 버렸어요. 제가 죽을 뻔했는데도...""그렇다. 그 아이는 잘못했다." 충헌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아들아, 이 일로 모든 사람을 불신하게 되어서는 안 된다. 세상에는 정치 같은 사람도 있지만, 너를 구해준 어른처럼 선한 사람들도 많단다."산갑이는 아버지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가슴 깊은 곳의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을 것 같았다."이제 충분히 쉬어라." 지영이 아들의 이마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따뜻한 죽을 끓여줄 테니, 몸을 따뜻하게 하고...""어머니," 산갑이가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말했다. "저는... 저는 이제 정치와 만나고 싶지 않아요."지영은 아들의 마음을 이해했다. 어린 나이에 친구의 배신을 경험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충격인지..."그래, 당분간은 그 아이와 만나지 않아도 된단다." 지영이 다정하게 말했다.충헌은 창밖을 바라보며 깊은 생각에 잠겼다. 이 일이 아들에게 어떤 교훈을 줄지, 그리고 정치라는 아이는 지금 어떤 마음일지...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저녁 무렵, 산갑이는 따뜻한 죽을 먹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지만, 여전히 멍한 표정으로 방 한구석에 앉아 있었다. 창밖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는 상실감이 가득했다.
충헌은 아들 옆에 조용히 앉았다. 한동안 아무 말 없이 함께 창밖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산갑아, 아버지가 어렸을 때 이야기를 해줄까?"
산갑이는 아버지를 돌아보았다. 충헌의 표정에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어려 있었다.
"아버지에게도 어렸을 때 친구가 한 명 있었단다. 이름은 석규였지. 우리는 형제처럼 지냈지. 함께 공부하고, 함께 놀고, 모든 것을 나눴단다."
"그런데요?" 산갑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런데 과거 시험을 보던 날, 석규는 아버지의 답안을 훔쳐보고 자기 것처럼 썼단다. 결국 석규는 합격하고, 아버지는 떨어졌지."
산갑이의 눈이 커졌다. "그래서 아버지는... 그 친구를 용서하셨어요?"
충헌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다. 한동안은 용서할 수 없었지. 배신감에 분노했고, 모든 사람을 의심하게 되었단다. 그래서 아버지가 너에게 정치와의 우정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럼 지금은요?"
"지금은..." 충헌이 깊은 한숨을 쉬었다. "지금은 그때의 아픔이 아버지를 더 신중하게 만들었다는 것을 안단다. 하지만 동시에 그 일로 인해 진정한 친구들을 알아보는 눈도 생겼지."
산갑이는 아버지의 말을 곱씹었다.
"아들아, 오늘 정치가 한 일은 분명 잘못이다. 변명할 여지가 없지. 하지만..."
충헌은 아들의 어깨에 손을 얹었다.
"그 아이도 분명 지금 괴로워하고 있을 거다. 두려움에 너를 버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고 있을 게다. 그것도 하나의 벌이란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아버지?"
"급하게 결정할 필요는 없다. 지금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것이 먼저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네 마음이 너에게 답을 줄 게다. 용서할 수도 있고, 거리를 둘 수도 있지. 그것은 네가 선택할 일이란다."
지영이 방문을 열고 따뜻한 차를 들고 들어왔다.
"산갑아, 이 쑥차를 마시렴. 몸을 따뜻하게 해줄 거야."
산갑이는 어머니가 건넨 차를 받아 한 모금 마셨다. 따뜻한 차가 목을 타고 내려가며, 얼어붙었던 가슴도 조금씩 녹는 것 같았다.
"어머니, 저는... 정치가 미운데, 한편으로는 걱정도 돼요. 정치도 무서웠을 거 아니에요?"
지영이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네 마음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란다. 상처받았어도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너의 마음이 건강하다는 뜻이지."
밤이 깊어갔다. 산갑이는 부모님의 위로를 받으며 조금씩 마음을 추스렸다. 오늘의 일은 분명 평생 잊지 못할 상처로 남을 것이다. 하지만 그 상처가 그를 더 현명하게 만들지, 아니면 세상을 불신하게 만들지는 이제부터의 선택에 달려 있었다.
창밖에서는 빗소리가 그치고, 맑은 달빛이 방 안을 비추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