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럴지 모르지만 내가 자랐던 어린 시절의 동네는 영등포 시장 입구의
공구상가가 밀집해 있는 마을이었다.
새벽이면 인근 지역에서 농사를 짓는 사람들이 조금씩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가져왔고 그래서 채소시장이 서고 그 시장은 우리 동네 바로 앞까지 끝도 없이 펼쳐졌다. 그 새벽에 어디서부터 어떻게 왔는지 모를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의 좌판이 모여 있던 기억이 어린 나에게도 오래 기억되던 풍경이었다. 어디선가 들었던 모세의 기적 같다는 생각이 어린 내게도 들은걸 보면,
어린 내게도 그 풍경이 재미있었던지 새벽에 일어나 확인을 하고 다시 잠이 들곤 했다. 그리곤 학교를 갈 때쯤 다시 그 길을 따라 쭉 걸어보면 언제 그 긴 줄이 없어졌는지도 모를 정도로 다시 가게들은 문을 열었다. 심지어는 주변이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일정 시간이 지나고 나면 가게 앞들은 깔끔해졌고, 어린 내게는 그런 광경도 마냥 신기하기만 했다. 새벽과 아침만 신기한 것은 아니었다.
그렇게 큰 시장이 하나씩 하나씩 문을 닫기 시작하면 시장은 온통 우리들의 놀이터가 되었다. 가게가 따로 없는 노점이 많은 탓에 천막천으로 간신히 물건만 덮어 놓으면 그때부터 우리에겐 숨바꼭질의 최고의 장소가 되었다.
나와 함께 사방을 뛰어다녔던 친구들은 그렇게 채소가게 아이, 시장 통 골목에 냉면을 만들어 파는 냉면집 아이, 아니면 시장 내 허름한 여인숙에 살았던 아이였다. 그때는 지금처럼 여인숙에 산다고 이상한 눈으로 보지도 않았고 달로 끊어서 지내는 그런 집도 있는 듯했다
동네 누구랄 것도 없이 아이들은 모였고 그렇게 모인 아이들은 모여 함께 놀다가 해가 어슴프레 지기 시작하면 누구랄 것도 없이 숨바꼭질을 시작한다. 술래가 된 아이가 영역을 정하면 우리는 작은 노점상 사이사이로 작은 의자 사이로 몸을 비집고 들어가 숨을 참았다.
그렇게 숨어버리면 들키기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 우리들은 늦은 밤 엄마가 찾으러 오기 전까지는 마음껏 뛰어다니며 시장 안을 우리의 기지로 만들곤 했다.
물기가 축축하게 있는 바닥과 쓰레기가 모여 있는 더미 사이로도 얼마나 신나게 뛰어다니고 아이들에게 들키지는 않을까 가슴 콩닥거리며 어둠 속에 숨어 있었는지, 난 아직도 시장을 보면 그 옛날 아이들과의 추억이 먼저 떠올려진다.
요즘은 좋은 교육환경을 찾기 위해 이사를 가고 학군에 따라 집값이 좌우되기도 하지만, 사실은 아이들에게 더 맘껏 뛰어다니고 더 자유롭게 뛰어다닐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 스스로 상상하고 때때로 설렐 수 있는 것들이 된다는 걸 , 그때를 돌아보면 그런 생각이 들곤 한다.
그렇게 가난했던 어린 시절이 부끄러웠던 것보다는 그 속에서도 함께 했던 추억이 때때로 어렵던 오늘을 살아가는데 기다리고 버틸 수 있는 힘으로 자리 잡을 수 있는 걸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