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나밖에 없었다는 걸

by 까밀

자취를 시작한 지 한 달이 넘었다. 생각보다 제법 견딜만하다. 일단 바쁘게 몸을 움직이니까 우울의 빈도가 많이 줄었다. 할게 태산이라 감상에 젖을 여유가 없어져서 그런 것 같다. 그렇게 나를 굴리면서 사는데도, 아까처럼 극심한 자살 충동이 찾아올 때가 있다. 집에서 나오면 좀 편안해질 줄 알았는데 역시 백 퍼센트라는 건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나를 2년이 넘도록 괴롭히는 일이 있다. 그때만 생각하면 아찔하고... 꽤 여러 사람을 난처하게 했다. 오늘은 이 일에 대해서 얘기해보고자 한다.


2년 전 여름이었다. 나는 친구들과의 연주회 준비가 한창이었다. 연습실을 빌려야 하는데, 예산이 모자라서 우리 집에서 연습하게 되었다. 나는 엄마와 집에 있는 동생에게 허락을 구했다. 동생도 허락했고, 엄마는 그때 굳이 우리 집에서 연습을 해야겠냐 했지만 어쨌든 결국엔 허락했다. 그때 차라리 엄마 말대로 바깥에서 할 걸 그랬나 싶지만... 아무튼. 친구들이 도착했고 연습을 한창 하고 있었다.


동생이 문자로 왜 친구들을 상의도 없이 데려오냐고 문자를 보냈다. 분명 나는 허락의 대답을 들었고, 얘가 잠결에 들어서 제대로 기억을 못 하나 싶었다. 분명히 허락을 구했다고 하자 동생은 거짓말 치지 말하며 문자로 조롱하는 투로 답장했다. 그때 당시 이루 말할 수 없는 스트레스에 동생의 가끔씩 시비 거는 그 투가 몹시 언짢아서 연습하는 도중에 나와 동생 방문을 걷어차며 말했다. "불만이 있으면 말로 해!"


난데없는 내 행동에 동생이 나와서 별 지X을 하기 시작했고, 내게 점점 위협하듯이 다가왔다. 나는 가까이 오는 동생을 밀쳤다. 그랬더니 자기를 쳤냐면서 동생이 헤드락을 걸고 내 얼굴을 주먹으로 가격했다. 나도 나름 발버둥을 치고, 반격을 하려고 했는데... 이야~ 어렸을 때랑 참 다르더라. 군대도 다녀와서 몸이 제법 좋아진 데다가 성인 남성을 이기기에는 나도 역부족이었다. 그렇게 다 맞고 주저앉았는데, 동생이 여기서 말로 일격을 날렸다. "정신병 걸려서 아무것도 못하는 주제에 어디서 지X이야." 감히 상상하지도 못한 말에 나는 옥상으로 뛰쳐 올라갔고, 거기서 죽으려다가 친구가 나를 붙잡아서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결국에는 얼굴에 잔뜩 멍이 들고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는 수준까지 됐다. 창피했다. 친구들 앞에서 못 볼 꼴 다~ 보이고, 맞은 것도 문제지만 동생에게 그런 소리까지 들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으니. 맘이 말이 아니었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돌아온 엄마와 아빠의 태도가 문제였다.


엄마랑 아빠는 나름대로 동생을 나무랐다고는 하는데, 큰소리 한 번 치지도 않고 둘이 단순히 싸운 것 아니냐는 듯이 행동했다. 내가 동생 얼굴을 보고 싶지 않아서 바깥에 나가 있었는데, 나에게 유난 떨지 말라는 듯이 아빠는 나를 다그쳤다. 엄마도 그때 내 얼굴의 멍을 잠깐 보고서는 별로 심하지 않은데? 라며 상황을 축소했다. 난 그때 눈 양쪽이 다 크게 멍이 들었는데, 점점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상태였다. 엄마도 아빠도 동생으로부터 날 보호할 생각이 없구나. 그렇게 깨달았다.


나는 결심하자마자 곧바로 600만 원 비상금 대출을 받았다. 그리고 집에 있는 온 짐을 싸서 택시에 짐을 실었고, 이런 집에서는 도저히 강아지를 키울 수 없을 거 같아서 크림이도 택시에 태웠다. 그리고 텅 빈 책상 위 가운데에 아빠가 준 신용카드를 내려놓고 나왔다.


때마침 친구 Y의 건물 반지하방이 나왔대서 거기에 들어가려고 그 근처에서 반려동물과 숙박이 가능한 모텔에서 지냈다. 약 먹으면 마음이 약해질 것 같아서 약도 며칠 동안 먹지도 않고, 새벽 내내 제대로 자지도 못하면서 지냈다. 학교는 자퇴하거나 적게 수업을 듣고 나머지 시간에 일을 할 계획이었다. 내가 없는 동안 크림이를 강아지 유치원에라도 보내야 했으니까, 마음을 단단히 먹었다.


엄마 아빠의 연락을 며칠 동안 끊었다가 한 번 받았다. 엄마가 오열하면서 전화를 했다. 거기에 마음이 약해졌으면 안 되는데... 한 번 얼굴 보고 얘기하자고 했다가 결국엔 그다음 날 아빠가 잘못했다고 말해서 집에 들어오게 됐다. 크림이가 환경이 바뀌어서 불안했는지 잠도 못 자고 있던 영향도 있었다.


엄마는 그 이후로 좀 변한 부분이 있지만, 아빠는 며칠 지나더니 원래의 태도를 고수하기 시작했다. 그냥 단순히 싸운 걸로 유난 떨지 말라는 식으로. 나는 그날 일로 원래 있던 연주를 못하게 된 바람에 친구도 셋이나 잃었다. 중간에 싸우기도 했고... 그러다가 문득 깨닫게 되었다. 결국 그날에 날 보호해 준 사람은 한 명도 없었구나, 하는. 결국 나를 보호할 수 있는 건 나뿐이라고.


그 사실이 나를 많이 힘들게 한 것 같다. 최근 몇 년 동안 유독 더 힘들었던 이유가 그 일 때문이었다. 떠난 사람도 아깝고, 그 이후로 가족 관계성도 변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아빠의 마인드를 어떻게든 고쳐보려고 했는데.. 그러다 또 일이 터졌다.


그때 일이 트라우마처럼 나를 괴롭히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그 일을 가끔 얘기할 때, 아빠가 유난 떨지 말라는 식으로 나올 때마다 너무 힘들었다. 그래서 한참을 울고, 말해도 어차피 화만 내니까 울기만 하고 아빠한테 얘기하지 않았다. 집을 잠깐 나가있기도 했다. 그런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는지 아빠도 좀 힘들어했다. 결국 화해모드를 하려고 크림이 간식을 사고 돌아오는 길에, 아빠에게 그냥 단순히 싸웠다고 생각하지 말아 달라고 했는데...


아빠가 그럼 내가 동생을 반 죽였어야 됐냐는 듯이 흥분해서 되물었다. 결국은 또 아빠가 길거리에서 흥분해서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고, 나는 아빠와 도저히 같이 집에 갈 수가 없어서 집 밖에 있겠다고 했는데 그것마저 거절당하고 아빠가 나를 붙잡기 시작했다. 손에 있던 크림이 간식을 아빠가 길거리에 던져서 길바닥에 나뒹굴었고, 아빠는 여기서 죽자느니 끝을 보자느니 너를 강제 입원 시키겠다느니 심한 말을 연신해서 뱉어냈다.


결국 나 스스로 감당이 안되어서 주변 사람에게 부탁해 경찰을 불렀다. 경찰이 적절히 개입해 줘서 어찌어찌 끝나긴 했지만 결론적으로 해결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아빠는 내가 어렸을 때부터 분노 조절을 잘 못하던 사람이었다. 평소에는 상냥하게 말을 잘하다가도, 한 번 돌변하면 아무도 아빠를 감당하지 못했다. 물건을 부수는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고, 사람들 다 보는 데에서 윽박지르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그런 일로 내가 상처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닌데.. 고치라고 몇 번을 말해도 아빠는 상담 한 번을 받지 않았었다.


또 이런 일이 있으면 경찰에서는 신고하라고 했고, 기관 연결을 통해서 아빠가 상담을 받게끔 해준다고 했다. 내가 치료받자고 했을 때는 한 번 가고 말더니, 경찰이 개입하고 나서야 가겠다는 듯이 나오는 상황이 씁쓸하고 힘들었다. 치료받으면 아빠도 고칠 수 있다고 엄마가 그랬는데, 난 사실 조금도 기대하지 않는다. 내 우울증도 몇 년이 걸려도 안 고쳐지는데 아빠라고 고쳐지겠냐고. 그냥 희망이 없다.


가정사에 대해선 최대한 쓰고 싶지 않았었다. 그리고 이런 글을 쓰면 불편해할 사람도 있다고 생각했고. 그렇지만 내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도저히 견딜 수가 없어서... 나도 어쩔 줄을 모르겠다. 그냥.. 위로가 필요한 날인 것 같다.

일요일 연재
이전 22화그만큼만 안고 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