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세 번째 Part 2
Part 1에 이어 바로 part 2 시작하도록 하겠습니다.
1) 자유로운 토론에 대한 반대
그럼, 이제 자신들의 의견은 옳은 것으로 인정된 반면, 이에 반대하는 개인의 의견이 오류임이 분명할 때, 이를 자유로운 토론을 반대할 만한 근거로 드는 사람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식의 논리를 피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단순한 사고를 하는 일반 사람들은 자신들이 따라야 할 진리와 그 명백한 최소한의 근거만을 배움으로써 오도될 가능성을 없게 하는 것만으로 충분하고, 나머지는 권위자에게 맡기면 된다.’
이에 대해 밀은 이 말의 행간 이면에 숨겨진 의미를 간파하고, 다음과 같은 냉철한 지적을 합니다.
‘이 주장을 잘 살펴보면,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조차도 어떤 의견을 지지하는 자들에게는 어떤 식으로든 그 의견에 대한 모든 반박이 만족스럽게 반박되었다는 이성적인 확신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단지 모든 이들이 이를 다 이해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므로, 자유로운 토론이 있어야 할 필요성 자체가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 밀의 이 반박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어떤 헤게모니를 가진 집단이 그들이 옳다고 믿고, 또 실제로 옳다고 인정되는 사회적 통념을, 그들의 권위를 통해 사람들에게 그냥 믿고 따르라고 하는 것만으로는 사람들이 그것을 따르지는 않는다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이성’이라는 것을 가지고 있으니까요. 그렇기에 동물들과는 달리, 인간을 상대하는 데 있어서는 ‘설득’이라는 게 반드시 수반됩니다.
그러므로 역사를 돌이켜 보면, 아무리 제멋대로인 독재자라도 이 설득의 과정은 그게 시늉이든 아니든 간에 반드시 거칩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토론’이란, 있어도 되고 없어도 되는 게 아니라, 인간 사회에서 필수불가결한 과정이라는 점이 아닐까요?
이에 대해서는 과거와 현재의 두 가지 사례를 언급하는 것으로 설명을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과거의 경우, 마르틴 루터의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은 어떻게 성공할 수 있었을까요? 곰곰이 생각을 해보면, 이는 달걀로 바위를 치는 꼴일 수도 있었는데 말이지요. 왜냐하면 그 당시 로마 가톨릭의 교리에 대한 믿음은, 중세 천 년 동안, 사람들의 의식을 지배해 온 일종의 절대적인 세계관이었을 테니까요. 그런데 이 단단한 세계관에 달걀로 금이 가게 하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 게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의 사례일 겁니다.
하지만 이게 가능했던 이유는 바로 그 바위에 이미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균열이 수없이 나 있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리고 그 균열들은 바로 당시 로마 가톨릭 교회가 보였던, 위에 적혀 있는 저와 같은 태도로부터 기인한 것이지요. 루터의 종교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점을 지적했기 때문입니다.
‘왜 성경을 해석하는 권한이 사제에게만 있는 것인가? 왜 복음을 사제만이 독점하는가?’
라고 말입니다.
이 독점이 결국에는 폐해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사제들이 이를 근거로 ‘십일조’, 즉 돈을 받고 사람들과 ‘천국의 들어갈 기회’를 거래했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신의 말씀을 대놓고 치부의 수단으로 이용했던 겁니다.
그래서 루터가 종교개혁을 하면서 가장 먼저 시작했던 일은 바로 이전에는 최상위 엘리트만이 구사할 수 있었던 고급어, 즉 라틴어 혹은 그리스어로 쓰여 있던 성경을 대중(大衆)어, 즉 당시로는 ‘독일어’로 번역하는 일이었지요. 마침 구텐베르크의 활자 인쇄술이 보편화되기 시작해서, 이 번역된 성경은 말 그대로 계속해서 출판, 보급될 수 있었습니다. 즉, 달걀이 단 하나가 아니라, 수천, 수 만 개가 된 것이지요. 당시 프로테스탄트들 중에 직인(職人)들, 특히 인쇄업자가 많았던 이유도 바로 이러한 까닭일 겁니다.
즉, 아마도 이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어떤 출판물 인쇄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래서 그걸 인쇄하는데 내용을 보니 자기도 읽을 수 있는 언어로 된 <성경>인 겁니다. 그리고 그걸 난생처음 사제의 자의적 해석과 발췌에 의한 것이 아닌, 직접 스스로의 판단으로 읽게 되다보니, 이게 완전히 다른 세상이 열리는 것 같은 기분이었겠지요. 그래서 이를 다른 인쇄업자들하고 그 판본을 공유하고, 그렇게 지식은 계속해서 퍼지고, 그렇게 활자를 통한 간접적 토론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이렇게 달걀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결국 바위에 심각한 금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 아니었을까요?
<마르틴 루터>
<루터 성경>
그럼 이제, 요즘의 경우를 예로 들어볼까요? 인터넷이나 유튜브, 그리고 이제는 AI까지 혁신적인 매체가 등장하기 이전에는, 고도의 지식과 훈련을 필요로 하는 전문 직군, 예를 들어, 의사, 변호사, 약사 등이 저기서 말하는 ‘권위자 군(群)’에 속했습니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은 매우 전문적인 것이기에, 문외한인 일반인들은 그저 그들이 하는 말을 그저 맞겠거니 하면서 따르는 것 밖에는 다른 방법이 거의 없었지요. 엄밀하게 말해서, 이는 정보의 완전한 불균형에서 기인하는 자율적 판단의 결핍 상황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인터넷의 보급과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유튜브라는 새로운 플랫폼, 그리고 AI라는 혁신까지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자, 이런 정보의 불균형은 과거에 비해 훨씬 개선되었습니다. 그 결과, 이제 이 전문직 군들에게는 새로운 의무가 생겼지요. 그것은 바로 사람들에게 ‘설명’을 하고, ‘설득’을 하는 과정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장사가 되질 않을 지경에 이르렀으니까요. 이것 역시 새로운 매체를 통해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자유로운 토론의 결과가 아닐까요? 그리고 그 결과, 사람들이 누리는 이런 전문 서비스의 질은 분명 과거에 비해 상당히 나아졌다는 건 분명한 사실일 겁니다. 즉, ‘효용’이 증가한 것이지요.
② 밀이 제시하는 두 가지 대조되는 사례들
a. 가톨릭교회의 사례: 자유로운 토론을 반대하는 입장의 사례
신자들을 크게 두 부류로 구분함. 한쪽 부류, 즉 성직자들에게는 이성적인 확신에 의거해서 교리들을 받아들이는 것을 허용함. 반면 다른 쪽 부류, 즉 평신도에게는 오직 믿음에만 의거해서 교리들을 받아들이는 것만을 허용함.
b. 개신교의 사례: 자유로운 토론을 따르는 사례
이론상으로 가톨릭과는 달리 신앙을 선택할 책임이 개인에게 주어져 있음. 그래서 그 문제를 가르치는 자들(성직자들)에게 떠넘길 수 없음. 그 결과, 출판의 자유가 장려되었음.
⇨ 이는 위에서 제가 부연으로 설명해드린 사례들을 참조하시면 쉽게 이해가 되실 겁니다.
(2) 토론이 허용되지 않을 때 나타나는 문제
① 사람들이 그 의견들의 근거를 알지 못하는 데만 그치지 않고, 그 의견들의 의미 자체를 알지 못하게 되는 경우가 허다함.
② 그 의견들은 사람들 속에서 생생한 진리의 실체가 되지 못하고, 그저 기계적인 암기의 대상이 될 뿐임.
⇨ 이에 대해서는 비근한 예를 하나 드는 것으로 설명을 마무리하겠습니다. 흔히 소크라테스가 한 말 중 가장 유명한 말은 ‘너 자신을 알라.’라는 말이지요. 원래 이 말은 소크라테스 본인의 말이 아니라, 아폴론이었나? 아무튼 12신 중 한 명을 모시는 신전 정문에 새겨진 말이었습니다. 그것을 소크라테스가 의미를 확장시킨 것인데, 여기서 제가 말하고 싶은 건, 저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는 점입니다.
그렇다면 그 까닭은 무엇 때문일까요? 바로 이와 관련된 ‘토론의 부재’ 때문일 겁니다. 물론 이 토론은 허용이 되고, 안 되고의 맥락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런 고려의 대상조차 안 되고 있기 때문이지요. 말하자면, 무관심의 대상이어서 토론의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철학이 무관심의 대상인 것은 씁쓸하지만 사실이니까요.
아무튼, 이렇게 토론이 이루어지 않게 되자, 사람들은 그저 ‘너나 잘해!’ 정도의 의미로 저 말을 쓸 뿐입니다. 즉 ‘그 의미 자체를 알지 못하고, 그저 그것을 기계적으로 암기해서 관용구처럼 써먹을 뿐’이지요. 그 결과, 소크라테스의 철학의 정수(精髓)가 녹아있는 저 말의 생생한 의미는 깊은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마치 그리스의 신들이 올림포스에서 더 이상 내려오지 않고, 인간 세계와 영원히 손절한 것처럼 말이지요.
③ 역사적 사례
이 문제와 관련해서 밀은 다음과 같은 역사적 사례를 들고 있습니다.
‘거의 모든 종교적 신조와 윤리적 가르침이 겪게 되는 패턴은 다음과 같다. 초창기 교설(교리)이 창시될 때에는 창시자와 그 직계 제자들에게는 의미와 활력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왜냐하면 다른 교설들과의 끊임없는 논박을 주고받는 과정을 통해, 해당 교설의 의미가 한층 더 생생하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논쟁이 점차 수그러들고, 그 교설이 헤게모니를 잡아 지배적인 도그마로서 안착되게 되면, 이때의 지지자들은 선대로부터 대물림 받은 사람들일 뿐이며, 그 교설을 그저 수동적으로 받아들이기만 하게 된다. 그 결과, 해당 교설의 생명력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한다.’
④ “확정된 결론이 불러오는 깊은 잠”
멋있는 말이지요? 품위 있고, 절제되어 있으면서도, 매우 날카로운 의미를 가진 이 말을 하면서 밀은 다음과 같이 부연을 답니다.
‘사람들은 어떤 일에 대해 더 이상 아무런 의심도 제기되지 않게 되는 경우에는 그 일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을 그만두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이 저지르는 잘못들 중 절반은 그들의 이런 경향에서 비롯된다.’
⑤ 논박을 통해 얻게 되는 이익
a. 인간은 어떤 진리를 그것에 반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에게 설명하거나, 그들의 반론을 반박하는 과정을 통해 그 진리를 지성적으로 더욱 생생하게 이해하게 됨.
b. 대표적인 예들: 소크라테스의 문답법, 중세 변론 수업
⇨ 논박의 목적은 서로를 모욕주기 위해서도 아니고, 조롱하기 위해서도 아니며, 토론을 일종의 게임으로 보고, 이기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도 아닙니다. 토론과 논박의 과정을 이런 식으로 보고,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자들이 바로 소피스트들, 즉 궤변론자들이겠지요. 그들의 교묘한 논리는 설득을 목적으로 하는 게 아닌, 현혹과 혼란을 주어 판단을 흐리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니까요.
반면, 소크라테스가 변증론을 사용했던 이유는, 제자들에게 그 과정 속에서 스스로 진리를 더욱 깊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깨닫게 된 진리는 단순히 암기를 해서 얻게 된 것과는 질적으로 완전히 다릅니다. 이 진리는 토론의 과정을 통해 자율적으로 깨닫게 된 것이기에, 새로운 해석학적 지평으로 가득하며, 그렇게 지식의 내용은 점차 풍부해집니다. 그리고 이런 게 바로 ‘효용’이겠지요.
토론의 목적은 현재 보다 나은 효용, 진리에 대한 더욱 깊은 이해,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한 또 다른 진리에의 모색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가장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것은 바로 올바른 논박의 과정이지요. 이는 경험을 해보신 분들은 잘 알 것입니다. 내가 이미 잘 알고 있으며, 그 이상 알 것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도, 이에 대한 밀도 있고 진지한 논박의 과정을 거치고 나면, 그 과정 속에서 또 다른 새로운 것을 깨닫게 되고, 더욱 넓고 깊은 앎으로의 모색의 길이 훨씬 더 구체적으로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리 옳은 의견일지라도 토론의 과정을 통해 그것을 반박하는 것으로 얻게 되는 효용은 그렇지 않을 때 얻게 되는 효용보다 훨씬 더 큽니다. 인간의 자신의 경험과 자신의 타고난 경향성과 자신의 시야, 살아온 환경 등에서 쉽게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관성의 법칙’은 자연의 법칙일 뿐만 아니라 인간의 법칙이기도 한 것 같아요. 그렇기에 부단한 의견의 교환이 없으면 쉽게 안주하고, 그렇게 고여서 썩게 됩니다.
인류의 발전은 바로 ‘교환’을 통해서였지요. 물물교환이 없었더라면, 화폐는 발생하지 않았을 겁니다. 또한 화폐가 없었더라면, 지금과 같은 풍요도 있을 수 없었을 겁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실크로드가 없었더라면, 헬레니즘 문화가 없었더라면........ 이런 식으로 ‘교환’이 결핍되었을 경우, 그리고 나아가 ‘올바른 토론’이 부재할 경우, 그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결과들을 한번 상상해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리뷰는 이 정도로 끝마치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주에는 ‘사회의 통념과 그것에 반대하는 개인의 의견 모두가 옳은 경우’라는 『자유론』 2장의 마지막 부분을 다뤄보도록 할게요. 그럼 다음주에 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