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장 세 번째 part 1
지난주에 이어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 2장의 대한 리뷰 및 설명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지난주까지 다루었던 내용은 사상과 토론의 자유에 관한 논의 중, ‘억압하고자 하는 개인의 의견이 옳은 것일 경우’에 관한 것이었지요. 이번 주부터는 나머지 한 경우, 즉 ‘억업하고자 하는 개인의 의견이 오류일 경우’에 관한 내용을 다뤄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할게요.
2) 억압받는 (개인의) 의견이 오류일 경우
① 이 논증의 시작을 위한 전제: ‘그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의견들이 모두 옳다.’는 가정.
이 경우의 논의를 시작하면서, 우선 분명히 인지하고 있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우선, 지난주까지 다루었던 첫 번째의 경우, ‘억압받는 개인의 의견이 옳은 것일 경우,’의 상황을 먼저 대조적으로 짚어보도록 할까요?
이를 위해 질문을 하나 던져보도록 하겠습니다. 억압받는 어떤 의견이 옳다면, 그것과 ‘다른’ 그 외의 의견들은 전부 틀리다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것과 ‘다른’ 의견들 중에는 틀린 것도 있을 수 있고, 옳은 것도 있을 수 있다는 뜻일까요?
답은 물론 후자입니다. 전자의 경우는 전형적인 ‘비약’ 즉, ‘흑백논리’이지요. 그럼 이제, 첫 번째 경우의 상황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겠지요.
‘한 사회에서 제시될 수 있는 그 어떤 의견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라고 말입니다. 그리고 이로부터 연역적으로 도출되는 것이 바로 밀의 표현한 바대로,
‘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그 어떤 의견도 잘못된 것일 수 있다.’
일 것입니다.
자, 이게 첫 번째 경우를 논하기 위한 기본 전제였습니다.
그럼, 이제 이 두 번째 경우, 즉 ‘억압받는 개인의 의견이 오류일 경우’의 상황은 어떻게 정리될 수 있을까요? 이 경우는 접근을 좀 달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억압받는 개인의 의견이 ‘오류’라는 게 확실하기 때문에, 첫 번째 경우와는 대조적으로 ‘억압을 정당화시킬만한 근거’가 분명히 있는 것 같아 보이거든요.
그래서 이 경우에는 상황을 이렇게 봐야 합니다. 어떤 개인의 의견이 오류인 것이 분명해서 그것을 억압하고자 할 때, 우선 전제되어야 할 것은 그 의견이 오류라는 것을 밝히는 일이겠지요. 그리고 이러한 진리치의 판정은 그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이 분명히 옳은 것으로 판정이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한편, 한 사회에서 이런 개인의 의견을 억압하고자 하는 주체는 대개 그 사회의 헤게모니를 잡고 있는 의견, 즉 한 사회에서 지배적으로 인정을 받고 있는 의견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조건을 종합해보면, 밀이 표현한 바대로 다음과 같은 전제가 도출됩니다.
‘한 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는 의견들이 모두 옳은 경우가 있을 수도 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이번 논의의 전개를 위한 가정입니다. 이것은 앞으로의 논의를 이해하기 위해 반드시 인지하고 있어야 할 내용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미로에서 길을 잃듯이, 논리의 맥을 놓치게 되니까요.
물론, 이에 대해 다음과 같이 의문을 제기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즉, ‘사회 통념도 오류이고 그에 반대되는 개인의 의견도 오류일 경우’도 있을 수 있지 않느냐고 말이지요. 하지만 이 경우는 논의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둘 다 오류인 게 분명하므로, 논의의 대상에서 제외하는 것이 합리적이니까요.
반면, ‘사회 통념도 옳고 그에 반대되는 개인의 의견도 옳은 경우’도 있을 수 있지요. 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이는 2장의 끝부분에서 밀이 부연적으로 다루고 있는 경우이니까요.^-^
② ①에서 가정한 전제 아래에서 그 의견들의 옳고 그름을 자유롭게 공개 토론하는 것이 금지되어 있는 경우
이에 대해 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회의 통념으로 인정되는 의견이 아무리 옳다고 할지라도, 그 의견의 옳고 그름에 대한 전면적으로 자유로운 토론이 허용되지 않으면, 그 의견은 살아있는 진리가 아니라, 단지 죽은 독단적인 의견으로 취급받을 뿐이다.’
⇨ 이에 대한 설명을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구체적인 사례를 드는 것이 효과적일 것 같습니다.
뉴턴의 역학은 아인슈타인 등장 이전까지 200년에 가까운 긴 시간 동안 자연에 관한 가장 완벽한 이론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물론 지금도 여전히 그 설명력은 유효하지요. 하지만 그것의 진리치가 담보되는 치역의 범위는 한정되어 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그 이전 시대까지 세계의 끝이라고 여겼던 그 치역의 한계 너머에 더 큰 치역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고, 이후 양자역학은 또 아인슈타인이 밝힌 치역 너머에 훨씬 더 큰 치역이 있다는 것을 밝혀냈지요.
이런 식의 올바른 지식의 확장은, 밀이 지적하고 있는 저 말의 반대 경우가 그대로 적용되는 사례일 겁니다. 즉, 오랜 기간 ‘법칙’으로 인정받아 왔던 뉴턴의 이론이 옳다는 것에 대해 경험적으로 매우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음에도, 이를 무조건적인 진리를 간주하지 않고, 이에 대해 계속해서 새롭게 논의하는 것 역시 배척하지 않았기에,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이 나올 수 있었던 것이지요.
또한 아인슈타인은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다.’라고 말하며, 자연의 원리를 확률적으로 바라보는 양자역학에 대해 죽을 때까지 비판적인 의견을 견지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양자론이 발전하는 것을 자신의 권위로 누르지도 않았지요. 오히려 ‘브라운 운동’에 대한 논문을 통해 양자론의 실험적 근거를 제시해 준 사람은 바로 아인슈타인 자신이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논문으로 노벨상을 수상했지요.
하이젠베르크의 『부분과 전체』라는 유명한 에세이를 보면, 그가 ‘불확정성 원리’를 발표했을 때에도, 아인슈타인은 “나는 자네의 이론을 좋아하지는 않네.”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원래는 수학도였던 그가 그렇게 젊은 나이에 양자 물리학의 대가가 될 수 있었던 데는, 젊은 시절 그의 아이디어를 진지하게 들어주던 당시의 자유로운 토론의 분위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분위기의 중심에는 바로 아인슈타인이나 닐스 보어와 같은 훌륭한 스승들이 있었지요.
양자론의 아이디어는 인간의 상식과 오랜 세월 견지된 믿음, 그리고 무엇보다도 ‘경험’을 뒤집는 생각이지요. 그렇기에 하이젠베르크가 ‘불확정성의 원리’를 제안했을 때, 슈뢰딩거는 그 유명한 “슈뢰딩거의 고양이”이라는, ‘상자 속의 고양이’ 사고 실험을 비유로 들며, 이 아이디어가 얼마나 어불성설인지를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비판은 자유로운 토론 속에서 나오는 정당한 의문 제기였습니다.
당시 양자론에 대해 당대 최고의 물리학자들이 이런 문제를 제기했던 것은, 그것이 인간 지식의 불확실성을 극단으로까지 몰고 갔기 때문일 겁니다. 즉, 철학적으로 보면, 회의주의의 극이라고 할 수 있지요. 하지만 결과를 보세요. 그래서 현재 우리가 20세기 초보다 더 적은 지식을 축적하고 있나요? 전혀 아니지요. 양자론은 세계를 보는 우리의 시야를 기존과는 비교가 안 되는 수준까지 넓혀주었습니다. 즉, 인간 지식의 불완전성을 과학적으로 이론화함으로써, 역설적이게도 인류의 지식과 기술의 수준은 훨씬 더 넓고 깊어졌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했던 것은, 바로 자유롭고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토론의 환경으로 인해 그 어떤 도그마도 자리 잡을 수 없었기 때문일 겁니다.
② ‘도덕을 포함한 인간과 관련된 모든 문제의 진실에 대한 이해는 양쪽의 의견을 똑같이 경청을 하고 나서, 모든 사항을 알고 있는 상태에서 양쪽이 제시하는 근거들을 심혈을 기울여 살펴보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 맞는 말이지요. 이 말이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은 있어도, 틀렸다고 논박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겁니다. 이와 관련해서 밀은 다음의 사례를 듭니다.
“고대 로마의 키케로(Cicero)의 경우, 자신의 논증을 연구하는 일 못지않게, 논쟁 상대의 주장을 연구하는 것에도 언제나 똑같이 힘을 기울였다.”
키케로는 로마 공화정 말기 유명한 철학자이자 웅변가, 문필가, 변호사, 그리고 정치가입니다. 또한, 여담이지만, 제 기억이 맞다면, 부동산 투자의 달인이었다고도 해요. 그래서 그가 포룸 로마노, 즉, 현(現) 서울의 광화문 광장 같은 곳에 나오면, 사람들이 그 주변으로 모여와서, 투자에 관한 자문을 묻고는 했다는 말도 있습니다. 여러 방면에서 상당히 다재다능했던 사람이었던 것 같아요.
<포룸 로마노>
하지만 카이사르와 정치적 대적(對敵) 관계에 있었고, 그 결과, 잠시 하방(下方)을 해 있는 동안 <의무론>이나 <덕에 관하여> 등등 한국어로도 번역이 되어 있는, 여러 유명한, 다수의 저서들을 집필했습니다. 그러다 카이사르가 암살당한 후, 다시 정치 무대에 복귀했지만, 결국에는 현대인들에게는 클레오파트라의 연인으로 더 유명한 장군, 바로 그 안토니우스에 의해 죽임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거의 동시에 로마의 공화정도 끝나게 되지요. 이후 안토니우스를 처치한 카이사르의 양자 옥타비아누스가 로마 제1대 황제, 아우구스투스로 등극하게 되니까요.
아무튼 그는 당대에도, 그 이후에도 인정을 받는 지식인이자 지성인이었고, 많은 이들이 그의 수사학적 기술을 참고합니다. 영화 <다키스트 아워>를 보면, 윈스턴 처칠(게리 올드먼 分)이 연설문을 준비하다 어딘가에서 막히자, 거의 속옷 차림인 채로 벌떡 일어서며, “Cicero! Cicero!”하고 외치며, 서재로 정신없이 달려가는 장면이 나오지요.
그리고 키케로의 이런 뛰어난 설득력의 밑바탕에는 바로 밀이 언급했던 것처럼, ‘자신의 논증을 연구하는 일 못지않게, 논쟁 상대의 주장을 연구하는 것에도 언제나 똑같이 힘을 기울이는 꾸준한 노력’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원로원에서 논박 중인 키케로>
③ “기하학의 공리들에 대해 어느 누구도 그 진리성을 부인하지 않는다고 해서, 기하학을 배우는 사람들이 굳이 그 근거들을 배우고 증명하는 법을 알 필요는 없다고 말하는 것은 터무니없다.”
⇨ 어떤 진리가 이미 증명되었다고 해서, 그것에 관해 배울 필요가 없다는 말만큼 어불성설은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학도 있을 필요가 없고, 철학도 있을 필요가 없으며, 단지, 백과사전처럼 된 암기를 위한 책 몇 권만 있으면 되겠지요. 그러면 궁극적으로 교육도 필요 없습니다. 단지 이런 책 하나 던져주고 외우라고 하면 되니까요. 그렇다면 그 결과, 인간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결론적으로 말해, 그 어떤 ‘효용utility’도 더 이상 발생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런 식의 단순 암기를 통한 지식의 축적은 단지 기존 질서에 순응하는 말 잘 듣는 일꾼은 충분히 양성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에 그 사회는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이 정체될 겁니다. 왜냐하면 새로운 진리의 발견을 위한 자율적 움직임이 점차 사라지게 될 것이니까요. 그리고 이는 인간의 남을 억압하고 지배하고자 하는 본능만큼이나 강한, 항구적으로 진보하고자 하는 인간의 경향성에 위배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이런 식의 시도는 결국에는 결코 성공할 수 없습니다. 이는 역사가 이미 증명해주고 있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