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슬 위에서 돌아본 2025, 그리고 2026

혼자 찾은 두 번째 부산

by 십이월

24년도 여름,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일상에 지쳐 아무 계획도 없이 혼자 부산 광안리로 내려왔던 기억이 있다. 그 여행은 내 인생 전체를 통틀어, 어쩌면 앞으로 경험하게 될 모든 휴식과 여행 중에서도 가장 선명한 장면으로 남을 것이다. 루프탑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던 시간, 바다를 품은 카페에 앉아 책장을 넘기던 순간들,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목적지 없이 걷던 밤, 새벽의 해변 한가운데서 맥주 한 캔. 그때의 나는 ’쉰다‘는 말의 정확한 의미를 처음으로 몸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2025년은 나에게 유난히 많은 변화를 안겨준 해였다. 그 변화의 무게를 온몸으로 지나온 지금, 나는 다시 그 여행의 기억을 머금고 부산에 와 있다. 흰여울 문화마을의 작은 카페, ‘페블’. 작년 여름, 끝없이 걷다 더위에 지쳐 우연히 들어갔다가 단번에 마음에 쏙 들었던 곳이다. 유명한 곳도, 일부러 찾아갈 만큼 알려진 곳도 아니지만, 1년 반이 지나 다시 찾은 이곳은 나에게 훨씬 더 특별한 의미를 갖게 되었다. 부산 영도에 온 이유가 사실상 이 카페 하나뿐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흰여울 문화마을의 카페 '페블'. 그리고 광안리 뮤직바 '골방'도 다녀왔다.

탁 트인 창 너머로 윤슬이 반짝이는 바다를 바라보며 멍을 때리고, 책을 읽고, 기억을 꺼내고, 인생에 대해 생각한다. 같은 공간, 같은 풍경이지만 그 안에 잠긴 나의 상념은 1년 전과 사뭇 달랐다.


그때의 나는 입시에서 원하는 목표를 이루기 위해 얼마나 치열하게 버텨왔는지, 대학에 입학한 뒤 목표를 잃고 방황하던 감정이 무엇이었는지를 곱씹고 있었다. 오늘의 나는 그 이후로 내가 어떻게 성장해왔는지, 무엇을 성취했고 어떤 경험을 지나왔는지를 조용히 정리하고 있었다. 한때 소용돌이치던 감정들은 차츰 가라앉았고, 나 자신에 대해 조금 더 알게 되면서 진로 역시 희미하나마 방향성을 갖추게 되었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그리고 앞으로 풀어가야 할 과제들, 그 이후의 계획과 의미를 차분히 되짚었다.


돌아보면 2025년의 나는 꽤 많은 일들을 해냈다. 두 학기 모두 올 A+를 받아보기도 했고, 한없이 보수적이던 내가 번따남을 만나보기도 했다. (나는 지금껏 길거리에서 번호를 묻는 남성들이면 모두 거절해왔다. 하지만 짧은 인생 해보고 싶은 건 다 해봐야 하지 않을까.) 남은 공연 티켓 하나로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동행을 제안해 나란히 앉아 공연을 보는 낭만도 누려봤다. 학점을 올려 원하던 경영학 복수전공에 합격했고, 여름에는 스타트업에서 첫 인턴십을 경험했다. 연말에는 준비해 지원했던 대기업 서포터즈에 합격하기도 했다.


한편으로 2025년은 인간관계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하게 만든 해였다. 누군가의 무거운, 어쩌면 비윤리적인 비밀을 혼자서만 알게 되며 사람이라는 존재를 다시 바라보게 되었다.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체감했고, 그 부작용으로 타인에 대한 의심은 조금 더 늘었다. 결국 하나의 관계를 정리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올해가 나에게 특히 의미 있었던 이유는, 무엇보다 ‘나와 더 가까워졌기 때문’이다. 진로에 대한 막막함과 방황에서 오는 우울함을 이겨내기 위해 시작한 상담은, 예상보다 훨씬 깊은 곳으로 나를 데려갔다. 나의 가정환경, 인간관계,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어떤 꾸밈도 없이 처음으로 타인에게 꺼내놓았다. 그 경험은 나를 낯설게도, 동시에 단단하게 만들었다. 나는 나 자신을 더 정밀하게 이해하게 되었고, 인생을 이전보다 훨씬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커리어와 성취’. 내 인생에서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가치다. 큰 변수가 없는 한, 아마도 죽는 날까지 내 우선순위의 상단에 자리할 것이다. 그러나 2026년을 맞으며, 나는 스스로에게 하나의 바람을 더 보탠다. 그 비중을 인간관계와 조금 나누어 갖자는 것. 상담을 통해 새삼 깨달은 사실은, 내가 생각보다 관계에서 큰 행복을 얻는 사람이라는 점이었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산다’는 것에 몰두한 나머지, 관계에 소홀했던 건 아닐까 반성하게 된다.


이제부터는 한 사람 한 사람을 조금 더 소중히 대하고 싶다. 스쳐 지나간 인연들, 언젠가 전혀 다른 시공간에서 다시 마주칠지도 모를 사람들, 그리고 지금 내 곁에 남아 있는 이들. 모두가 생각보다 훨씬 귀하다. 나는 성취의 순간뿐 아니라, 사람 사이에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었다는 사실을 이제야 인정하게 되었다.


이제는 남의 시선을 덜 의식하고, 나답게 침착하고 야무지게 인생의 단계들을 밟아가고 싶다. 목표는 여전히 분명하고, 반드시 이루고 싶다. 동시에 내 주변 사람들에게 ‘괜찮은 사람’으로 기억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앞으로의 인생이 유난히 기대되고 설레는 요즘이다. 자존감을 조금 더 단단히 세우고, 시간의 속도를 자주 의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싶다. 늘 그래왔던 것처럼. 하지만 이전보다는 조금 더 나 자신과 사람을 아끼는 방식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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