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매일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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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서 나고 자란 나에게 신문이라 함은,

등교하기 전에 집앞에 덩그러니 놓여져 있던 "부산일보"가 그 첫 기억 이었다.


초등학교를 지나 대학에 들어가기까지 우리집은 부산일보를 구독했다.

자식들이 20살이 되어 집에 있는 시간이 적어지고 독립을 할 즈음,

아버지는 "부산일보 사절"이라는 글씨를 적은 종이를 집앞에 붙이라고 했다.


당시 나는 그 "부산일보 사절"이라는 문구가 "이제 더 이상 부산일보를 구독하지 않겠습니다."

라는 의미라는 걸 정확하게 알지 못했다.


전화로 하면 될일을, 아니 잠깐 기다렸다가 배달하시는 분이 오셨을때 말을 전해도 될것을

지금도 대면의 거절이 힘든 시절이지만 수십년 전에도 거절은 쉬운일은 아니었나 보다.


대학을 진학하고 군대를 다녀오고 취업에 임박했을때 나는 다시 신문을 구독하기 시작했다.

그때의 선택은 매일경제와 중앙일보, 그리고 한국경제였다.

같이 공부하는 친구들과 각 신문사에게 구독신청을 했고 오전내로 본 후로 서로 돌려보기로 했다.

그렇게 20대 후반부터 자연스럽게 신문이라는 것을 다시 구독하고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에겐 내가 구독을 해서 돌려봤던 매일경제 신문사가 그대로 남았다.


어떤 한주는 일이 바쁘다는 핑계로 단 하루치도 읽지 못하던 때가 많았고,

어떤 한주는 출장으로 몇일을 비워 집앞에 신문이 그대로 쌓이던 때도 많았다.

그래도 어릴적 아버지가 나에게 부탁했던 "00일보 사절"이라는 문구를 붙이지도,

전화로 구독을 그만두겠다는 말도 하지 않았다.


주말이 되면 밀린 신문을 들고 근처 카페로 가서 몰아서 보고는 했는데,

그래도 꾸준하게 신문을 보면서 세상엔 어떤 소식들이 있는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는

알아야 했기 때문에 그 습관을 포기하지 않았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내가 신문을 보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흔히들 말해 알고리즘이라는 "나의 선호도에 따라" 선택적 기사를 보게하는 (컨텐츠도 마찬가지로)

나쁜 습관을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여기서 나쁜이라 함은, 음식을 먹을때의 편식과도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것같다.


2. 마케터로서 회사와 브랜드, 그들이 만드는 제품과 서비스가 무엇이 있는지를 빠르게 알수 있고,

이를 대중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에 대한 소식을 빠르게 접할수 있기 때문이다.


3.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당장 나의 내일과 상관이 없다고 하더라도) 내용을 접하면서

그래도 한번 더 생각하고 비판적 사고를 해보는 계기를 가질수 있기 때문이다.



한줄로 정리해보면, 신문을 통해 다양한 영역에서의 기사와 정보를 접하며 마케터로서 얻을수 있는

회사와 브랜드의 소식을 얻고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에 대한 관심을 가져보자 정도로 요약될 수 있겠다.


20대 후반부터 신문을 보기 시작했지만 지금은 활자신문보다는 e신문을 구독하여 보고 있다.

지금 나의 아버지 세대와 여전히 나의 세대에게는 활자신문이 편할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든 모바일 디바이스만 있으면 볼수 있는 e신문이 어느순간 편해진 건, 활자 신문을

보지 못하고 쌓여가는 그것을 볼때의 불편한 마음을 견디지 못한 이유라는 걸 부인하지는 않겠다.


매일경제 e신문을 구독하고 매일매일의 이야기를 확인한다.

대부분의 기사들을 이미지로 저정한 후,

goodnote에서 이 이미지들을 불러온 후,

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는 순서를 매일 반복하고 있다.


활자신문은 아니지만 활자신문처럼 읽을수 있는 아날로그 감성을 그대로 느껴보고 싶은 아이러니가 아닌가 싶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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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것이 빠르게 지나간다.

모든 정보 역시 우리곁을 빠르게 스쳐 지나간다.

취할것과 그러지 않아야 할것을 구분할 시간조차 주지 않는듯하다.


아날로그 감성은 그 단어로서 감성적이다라는 감탄을 하는 시대가 되었고

디지털을 넘어 AI시대로 진입하는 지금 시점에 활자신문을 운운하는것 조차 시대에 맞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AI조차 그들이 가져오는 정보는 모두 이미 만들어 진, 정보와 기사에서 오는 것이다.


소위 말해 환각율이라는 것이 있다. 이는 AI가 인간이 주문한 질문 혹은 원하는 정보의 결과를

제공함에 있어서 맞지않는 정보, 즉 오인할 수 있는 정보를 얼마나 가지고 오는지를 나타내는 값인데,

이 환각율이 높을수록 인간은 잘못된 사고와 잘못된 의사결정을 할 가능성 또한 높다.

자 그렇다면, AI를 믿지 말아야 하는 극단적인 생각을 하기 보다는

이 환각율을 정확하게 판단하고 결과를 정정하기 위한 나 스스로부터 정확한 정보와

사실에 기반한 명확한 질문을 할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어찌되었든 읽고 배우고, 사고하는 인류의 기본적인 학습 방식이 없어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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