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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는행인 Jul 13. 2022

'할로우 나이트'라는 장르의 탄생

할로우 나이트 게임 디자인 리뷰

1. 할로우 나이트 첫인상, 최종 소감

스팀에서 “압도적으로 긍정적”(Overwhelmingly positive)인 평가를 받은 게임은 소수이며, 특히 그중에서 할로우 나이트처럼 20만 개 이상의 리뷰를 받으며 이런 평가를 유지한 게임은 극히 드물다.

출처: 할로우 나이트 스팀 페이지

사실 할로우 나이트에 대한 얘기는 몇 년 전부터 들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미루게 되었었다. (이후에 다시 언급하겠지만) 고착화 된 장르의 게임이기도 하고, 초반에 불친절하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다른 게임을 우선시했었다. 특히 주변에 아는 사람이 할로우 나이트에 대한 안 좋은 평가를 했어서 더욱 망설여졌지만, 최근에 좋은 평가를 하는 친구들의 후기를 듣고 시간 내서 도전해봤다. 결과부터 말하자면 예상했던 것보다 더 정교하고 재미있는 게임이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이쁘장하지만 평범했던 이 게임이 어째서 이만큼 사랑받게 되었을까? 먼저 할로우 나이트의 장르인 메트로베니아부터 살펴보자.


2. 메트로베니아 (Metriodvania) 설명

메트로베니아란, 해당 장르의 대표적 예시인 메트로이드와 캐슬베니아를 합친 용어다. 메트로베니아의 기본은, 탐색에 기반한 2D 플랫포머 액션-RPG다. 영어권에서는 “guided non-linearity”라는 표현을 쓰는데, 의역하자면 “자유도가 있으나 게임 진행하기 위한 순서는 정해져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게임의 메인 스토리를 진행하기 위한 순서가 정해져 있더라도, 맵을 탐험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이 핵심 재미 요소다.

좌) 슈퍼 메트로이드 / 우) 캐슬베니아

그중에서도 메트로베니아를 정의하는 독특한 특징이 backtracking (되돌아오기)인데, 새로운 기술을 얻으면 이전에 지나갔던 곳 중에 못 가던 곳을 새로 갈 수 있게 되는 것을 뜻한다. 할로우 나이트를 예시로 들면, 일부 지역은 물 위를 걷는 능력, 이중 점프 능력, 벽타기 능력이 있어야지 갈 수 있고, 이런 장소들은 게임을 시작하는 지역부터 후반부까지 골고루 분포되어 있다.

할로우 나이트의 이동 스킬


3. 할로우 나이트만의 독창적인 시스템

메트로베니아 장르는 30년 넘는 긴 역사가 있는 장르다 보니 유저들도 메트로베니아 장르의 게임에 기대하고 예상하는 요소들이 있다. 그래서 이런 요소를 게임 개발자들은 착실하게 도입한다. 그중에서도 빛나는 할로우 나이트만의 특별한 무언가는 어떤 요소일까? 필자가 느끼기에는 크게 3가지가 있다:


3-1. 간단한 규칙 - 직관적이며 능동적인 공격 방식

할로우 나이트에서 주로 공격하는 방식은 칼을 휘두르는 것이다. 심지어 연타한다고 효과가 달라지지도 않아서, 매우 간단한 공격 방식이다. 여기에 조금의 개성을 가미해서 넉백 (knockback: 공격을 맞추면 캐릭터가 뒤로 밀리는 현상)과 패리 (parry: 칼을 맞부딪치면 공격이 상쇄되는 것) 기믹을 추가했지만, 이것이 할로우 나이트의 간단하면서도 독창적인 시스템을 만들어준다.


이 넉백 메커니즘은 ‘공중 튕기기’(영어권에서 ‘pogo’라고 부른다) 라는 응용법을 만들어준다. 공중에서 맞춰도 튕기기 때문에, 공중에 계속 떠 있는 채로 적을 때릴 수도 있고, 트랩을 공격으로 튕기면서 새로운 지역을 발견할 수 있다.

튕기면서 공격하는 예시

게다가 2D로 모든 게 한 화면에 들어오고, 칼 휘두르는 간단한 방식에 기반을 둔 전투라서 다양한 보스 구도와 템포 빠른 전투가 가능하다. 탄막 (bullet hell) 느낌 나는 전투, 칼싸움으로 진검승부 보는 전투, 다크소울처럼 피하면서 중간중간에 때리는 전투 모두 가능하고, 플레이어가 불공평하게 느끼지 않고 오히려 새로운 재미를 주는 이유는 그 기본이 되는 규칙이 간단하기 때문이다.


3-2. 간단한 규칙 2 - 보스 전투에서의 응용

간단한 규칙의 적용은 메인 캐릭터에 그치지 않고, 보스 전투에도 그대로 쓰인다. 대표적인 예시로는 ‘사마귀 군주들’ 보스가 있다. 전투가 처음 시작할 때, 3명의 사마귀 군주 중 한 명이 좌석에서 일어나서 싸운다. 이때 주목해야할 것은, 남은 2명의 군주는 불길하게 전투를 가만히 지켜본다. 그리고 그 불길한 기운은 현실이 된다. 힘들게 군주 한 명을 쓰러트리면, 남은 군주 둘이 일어서서 동시에 공격하기 시작한다. 재미있는 포인트는, 두 군주가 동시에 공격한다고 해서 보스의 새로운 공격 패턴이 생기지 않는다. 같은 공격 패턴을 두 명이 동시에 쓰는 것만으로 전투는 새로운 느낌을 주면서, 동시에 한 마리와의 싸움에서 배운 부분을 활용할 수 있도록 지나치게 큰 변화를 주지는 않는다.

같은 공격을 왼쪽에선 1명이, 오른쪽에선 2명이 하는 '사마귀 군주들'

같은 맥락으로, 할로우 나이트의 보스 재도전 컨텐츠에도 이 공식을 지킨다. 같은 보스에 재도전하면 기존의 공격 패턴에 소수의 새로운 공격을 추가하거나, 공격 속도를 높이거나, 개체수를 늘리면서 첫 전투 때 배운 것이 도움은 되지만, 새로운 경험을 느낄 수 있게 해준다.

할로우 나이트 내 보스러쉬 컨텐츠 즐기는 지역인 “신들의 고향”

3-3. 화려한 아트

오래된 장르와 고전 명작에 대한 향수 때문인지, 놀랍게도 대부분의 최근 메트로베니아도 과거 슈퍼 메트로이드, 캐슬베니아의 도트 아트와 유사한 느낌을 유지하려고 한다. 최근에 성공한 액시옴 버지 (Axiom Verge, 2015), 엔더 릴리즈: 콰이터스 오브 더 나이트 (Ender Lilies: Quietus of the Knights, 2021)만 봐도 최신 게임답지 않은 고전풍의 아트 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다.

좌) 액시옴 버지 / 우) 엔더 릴리즈. 출처: 각 게임의 스팀 페이지

사실 이처럼 이미 익숙한 것을 선호하는 장르에서 새로운 스타일을 시도하는 것은 큰 리스크를 짊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할로우 나이트는 손 그림이라는 강한 카드와, 일관된 그림체와 지역마다 특색이 있는 색감, 특히 각 지역의 테마에 맞는 아트, 캐릭터 디자인으로 몰입감을 높였다. 전투는 간단한 룰 속에서 약간의 변형을 줬다면, 아트는 완전히 새로운 도전을 해서 크게 성공했다.

출처: Hollow Knight Fan Wiki

3-4. 본인의 게임을 정말 사랑한 개발자

할로우 나이트는 킥스타터로 펀딩 받는 작은 게임으로 시작했고, 수많은 킥스타터 게임이 그러듯이 펀딩 금액에 맞게 여러 가지 공약을 내세웠었다. 아직도 개발진이 킥스타터 페이지에 올린 약속 목록이 있는데, 놀랍게도 여기에 나와 있는 공약 중 목표액에 도달하지 못한 것들도 최종 게임에 추가되었다. https://www.kickstarter.com/projects/11662585/hollow-knight

게다가 개발진은 무료 DLC를 (downloadable content: 다운로드 가능 컨텐츠) 총 4개 내면서 할로우 나이트에 대한 모든 약속을 지켰고, 그 이상을 해냈다. 비슷한 예시로는 엔터 더 건전 (Enter the Gungeon, 2016)정도가 있는데, 이 게임도 마찬가지로 압도적인 호평을 받으며 유저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출처: 엔터 더 건전 스팀 페이지

4. 마치며

게임 개발에 있어서 전설과도 같은 1인/소규모 팀 개발 성공 사례가 있는데, 할로우 나이트를 만든 팀 체리 또한 그 반열에 올랐다. 할로우 나이트가 자기만의 독자적인 위치를 잡은 만큼, 그 스타일을 참고한 게임도 제작되고 있다. 그중 현재 가장 주목받고 있고, 필자가 개인적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은 블러드본과 할로우 나이트를 참고해서 만들고 있다는 Crowsworn(크로우스원)이다 (https://store.steampowered.com/app/1614330/Crowsworn/). 향후 메트로베니아, 그리고 소규모 개발팀이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기대될 수밖에 없는, 게이머로서 흥미로운 새로운 막이 열린 것 같다.

출처: Crowsworn 스팀 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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