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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가는행인 Oct 28. 2022

망 사용료 법안이 게임 업계에 미치는 영향

1. 인트로 - 망 사용료 법안과 게임

2022년 9월 30일, 아마존의 스트리밍 플랫폼 트위치가 갑작스럽게 대한민국에서 시청 가능한 최대 해상도를 1080p에서 720p로 내리면서 국내 소비자들 사이에 ‘망 사용료’가 빠르게 이슈화되고 있다. 이후 글의 진행을 위해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망 사용료 법안이 통과되면 소비자가 트위치와 같은 CP (content provider, 콘텐츠 사업자)를 사용하면 CP가 데이터 사용량에 따라서 ISP (internet service provider, 인터넷 서비스 제공 사업자) 인 통신사에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여기서 CP는 소비자에게 이 비용을 청구하거나, 담합해서 철수하는 등 어떻게 대응할지 알 수 없어서 소비자 사이에 불안감이 조성되고 있다.

한국 사업에 적극적으로 투자한 CP 입장에서는 갑작스러운 비용 발생이 반가울 수가 없다. 한국의 데이터 비용의 부담을 낮추기 위해 캐시 서버를 설치한 구글, 한국 콘텐츠 산업에 적극적으로 힘쓰고 있는 넷플릭스 등 많은 트래픽이 발생하는 업체들은 직간접적인 피해가 발생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국내 CP는 이미 ISP에 망 사용료를 지불해와서, 법안이 통과되지 않더라도 국내 CP 혹은 소비자에게 비용을 요구할 수도 있어서 소비자도 걱정하고 있다.

우리나라 3대 ISP인 통신사들의 로고

이와 같이 망 사용료 법안이 통과된다면 피해를 가장 많이 보게 될 것으로 예상되는 것은 영상매체에 집중한 CP다. 다만, 게임 업계도 큰 피해를 받을 가능성이 커 보였기에, 이 부분에 대해서 짚고 넘어가고 싶었다.


2. 스트리밍 콘텐츠의 축소 및 내재화

가장 먼저 영향받는 분야는 당연히 스트리밍이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대표적으로 사용되는 게임 스트리밍 플랫폼 2개가 아프리카TV와 트위치인데, 2022년 1월 기준으로 대한민국 아프리카TV MAU(monthly active users, 월간 활성 이용자)는 약 230만 명, 트위치는 약 246만 명이었다 (https://bit.ly/3CGNjCJ). 지금은 둘이 비등비등하지만, 트위치에 대한 불확실성이 유지될수록 스트리머들이 아프리카TV로 넘어갈 수도 있다. 이런 스트리머 대이동 시나리오는 하나의 가정이긴 하지만, 이러면 콘텐츠의 축소와 내재화가 우려된다.


트위치와 아프리카TV가 우리나라 스트리밍의 양대 산맥이지만, 아프리카TV는 국내 기업이 만든 대한민국 내수용 플랫폼이고 트위치는 아마존에서 운영하는 글로벌 플랫폼이다. 그렇다 보니 두 플랫폼의 메인 화면에 노출되는 콘텐츠부터 차이가 난다. 트위치도 대한민국 IP로 들어가기 때문에 한국 스트리머들의 방송이 상단에 나오지만, 하단에 글로벌 게임 대회인 Dota 2: The International 2022가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면, 같은 날 같은 시간대 (2022년 10월 18일 오후 11시경)에 아프리카TV 화면을 살펴보면 이런 대회가 있다는 사실조차 알 수가 없다.

트위치 메인 화면
아프리카TV 메인 화면

게다가 트위치는 글로벌 플랫폼이라 그런지 추천 영상/게임 항목에 우리나라에선 크게 주목받지 못하는 게임도 꽤 많이 올라오는데, 이런 식의 노출은 한국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게임을 소개하는 좋은 통로다. 반면, 아프리카TV의 인기 게임 순위를 보면 한국인 맞춤으로 준비되어 있다는 느낌이 든다. 물론 이런 맞춤형 콘텐츠가 더 편한 것은 맞지만, 새로운 것에 대해 노출될 가능성이 작기 때문에 콘텐츠의 고착화를 불러일으킬 우려가 있다. 알고 있지만 안 보는 것과 몰라서 못 보는 것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고, 트위치의 화질 저하가 지속돼서 스트리머와 시청자가 점점 아프리카TV로 이동하게 된다면 고착화는 더욱 빨리 일어날 것이다.

트위치 추천 카테고리(상)과 아프리카TV 추천 카테고리 (하)

게다가, 트위치와 아프리카TV 스트리밍의 방향도 많이 다르다. 2022년 10월 18일 기준 트위치 탑5 개인 채널 중 4개는 다양한 게임을 하면서 인기를 끌고 있는 반면, 아프리카TV 탑5 개인 채널은 대부분 게임 외 콘텐츠 (합방, 미션, 토크쇼 등 콘텐츠)를 진행하거나, 이런 게임 외 콘텐츠를 하나의 게임과 잘 엮어서 재미를 이끌어내고 있다. 예를 들어서, 아프리카TV에서 인기 많은 BJ들이 스타크래프트 전 프로 출신들과 ‘대학’ 콘텐츠로 새로운 BJ들을 유입해서 마치 실제 대학인 것처럼 대학리그, MT 등 콘텐츠를 진행하는 것이 한동안 인기를 끌었다. 그 반면, 트위치에서는 개인이 여러 게임을 돌아가면서 해보고, 경우에 따라서 다른 스트리머와 디스코드 등으로 의사소통하는 콘텐츠가 제일 잘되고 있다. 다르게 표현하면, 게임 콘텐츠 시청자들이 트위치에서는 ‘이것저것’ 하는 것에서 재미를 찾고, 아프리카TV에서는 ‘익숙한 것에 조금의 변화’를 주는 것에서 재미를 찾는다.


한 마디로, 현재 지켜지고 있는 스트리밍 플랫폼 간의 밸런스가 무너진다면, 우리나라에서 제작되는 게임 관련 스트리밍 콘텐츠 또한 한쪽으로 치우치게 될 우려가 있다.


3. 게임 접근성 저하

망 사용료 법안은 게임 스트리밍뿐만이 아니라 다운로드와 플레이에도 영향을 끼칠 수 있다. 포트나이트와 언리얼 엔진 개발사인 에픽 게임즈는 2018년 12월, PC게임 1등 플랫폼인 스팀을 넘어서기 위한 PC 게임 플랫폼 에픽게임즈 스토어를 출시했다. 그리고 유저를 유치하기 위해 지속해서 무료 게임을 나눠주고 있는데, 2020년에는 무려 94기가나 되는 인기 게임 GTA5를 줬었다. 그러나 국내 통신사들은 GTA5 때문에 갑자기 늘어난 트래픽에 불만을 가졌고, 에픽 게임즈와의 분쟁으로 이어졌다(https://bit.ly/3Scsgh1).  그러나 이 문제는 에픽 게임즈만의 것이 아니다. 앞서 말한 스팀에서 게임을 다운로드 받으면, 대한민국에서는 속도 제한이 걸려 있다. 심지어 스팀 내에 이런 내용이 공지되어 있지 않아서, 따로 찾아보지 않는 이상 알 수도 없다.

에픽게임즈 (좌)와 스팀(우)

GTA5가 출시되던 2013년에는 94기가가 예외적인 대용량 게임이었지만,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은 게임 용량도 더 커졌다. 각각 2016년, 2018년 플레이스테이션 독점작이었던 호라이즌 제로 던, 갓 오브 워의 PC판은 각각 67기가와 70기가로, 흔히 말하는 ‘AAA’ 게임은 점점 100기가 근처에 접근하고 있고, 이미 넘어선 게임도 꽤 있다. 극단적인 예시로 2016년, 2018년, 2019에 출시된 퀀텀 브레이크, 레드 데드 리뎀션 2, 콜 오브 듀티: 모던 워페어는 각각 178, 150, 175기가나 된다..!


안 그래도 대한민국에서 리그 오브 레전드 (롤), 로스트 아크, 피파 등에 비해 싱글 플레이어 PC 게임 인지도가 떨어지는데, 만약 스트리머를 통한 노출도 적어지고 속도 제한이라는 불편함까지 추가된다면, 굳이 번거로움을 감수하고 이런 해외 PC 플랫폼을 통해서 게임을 할 이유는 더욱 적어진다.


만약 이런 제약이 심해져서 해외 게임사들이 국내 서버를 없애면, 앞서 말한 다운로드 속도를 포함한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는 속도가 전반적으로 느려진다. 느린 통신 속도는 특히 온라인 게임 플레이에 악영향을 주는데, 쉬운 예시로 한국에서 롤 북미 서버로 게임을 하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특히 온라인 게임은 주로 PVP (플레이어 대 플레이어) 위주이며 대다수의 이런 게임은 반응속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자신의 실력이 아니라 인터넷 속도 때문에 지면 플레이어들 (특히 프로 선수나 프로 준비생들)은 불만을 가지면, 자연스럽게 한국 게이머들이 플레이하는 게임이 점점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추가로, (구글 스태디아는 실패했지만) 마이크로소프트의 엑스박스 클라우드 게이밍과 같은 클라우드 게이밍 서비스가 지속해서 출시되고 있는데, 네트워크 지연 속도가 높을수록 대한민국에서 클라우드 게이밍과 같은 게임 업계의 새로운 트렌드를 따라가기 버거워질 수도 있다.


4. 국내 게임 업계의 내재화

위에 언급한 문제들이 지속되면 한국 게이머들이 자연스럽게 글로벌 게임에 대한 관심과 이해도가 낮아질 것이고, 이어서 게임 개발사들은 자연스럽게 익숙했던 게임 위주로 개발하게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발된 내수용 게임의 현황이 유저 친화적이라고 보기엔 어렵다. 2021년 모바일 게임 중 국내 매출 5등 이내에 리니지라이크가 4개 이상 선점하고 있었으며, 해당 게임들의 악랄한 BM, 유저를 기만한 행동,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런 행동을 개선하지 않아도 유지되는 탄탄한 매출과 유사품의 출시가 이슈 되었다. 특히 우리나라 게임 업계가 새로운 도전을 성공적으로 이루어내고 있는 시점이라 더욱 그렇다. 2017년 출시한 PUBG: BATTLEGROUNDS (배그)와 2022년 글로벌 서버 론칭한 로스트 아크는 2022년 10월 기준 Steamcharts에서 나란히 역대 스팀 최대 동시 접속자 1, 2등을 하고 있다.

출처: steamcharts.com

게임 업계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성향을 띄고 있어서, 많은 재직자들이 게임을 즐겨하는 게이머들이고, 그렇다 보니 게이머들이 다양한 장르와 플랫폼의 게임에 노출되고 즐긴 세월이 누적되면 자연스럽게 이 지식이 업계인들의 것이 되어왔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는 이제 막 글로벌 AAA 게임에 도전할 수 있는 인사이트와 기술력을 갖췄고, 이제 막 적극적으로 글로벌 AAA 시장에서 경쟁하려는 단계다. 내년 출시 예정인 네오위즈의 P의 거짓은 세계 3대 게임쇼 중 하나인 Gamescom (게임스컴)에서 3개 부분에 수상했고,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 또한 트레일러 영상이 높은 조회 수를 자랑하며 꽤 많은 게이머의 관심을 받고 있다. 이제서야 본격적으로 세계 무대에 발을 디디기 시작했는데, 제약이 생겨서 방해받으면 너무 슬프지 않은가.

네오위즈의 P의 거짓 (좌)와 시프트업의 스텔라 블레이드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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