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고 있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그래봐야 출세를 목표로 공부하면서, 바쁘다는 핑계로 추석 내내 이것저것 미루는 습관이 생겼다. 미루는 핑계가 공부이니 공부를 안 한 아니고, 쓰는 걸 멈췄다. ‘추석에 쓸 만한 이야기’라는 리스트를 만들어 생각날 때마다 적어 두었지만 결국 뭐 하나 시작조차 안 했다.
미안해. 일찍 자야 되는데, 일찍 자야 금방 낫는 거 나도 아는데, 침대에 누워서 자려고 해 봤는데, 지금 안 쓰면 다시는 똑같은 말로 쓰지 못할 것 같아서 써. 걱정마. 자고 나면 괜찮아질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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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괄, 흐름은 이렇다. 가을에는 이문세를 들어야 한다. 난 이문세를 들었다. 이문세를 틀어놓고 정신을 판 사이 어느새 자동생성 된 유재하가 나오고 있었다. 그 지나칠 수 없는 기분을 알아? 처음 들었는데도 내가 이 노래를 찾아올 때까지, 지금까지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만 같은. 2008년 봄, 어쩌면 1987년부터.
하여 추석 연휴 동안 내내 같은 노래를 들었다. 그러다 어젯밤 침대에서 잠들기 전에 잔나비와 이하이가 그 노래를 부르는 영상을 찾았다. ’안들어도좋네‘ 듣지 않아도 좋은 그들의 노래를 들으며 잠을 청하다가 본 댓글이 참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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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이하이가 중간에 화음을 쌓는 부분이 귀에 거슬렸다. 틀리지 않았지만 가장 아름다운 것도 아닌, 그런 숨결이었다. 알고 보니 어느 댓글이 말하길 “원래 화음은 예정에 없었는데” 이하이의 즉흥적인 판단이었다고 한다. (아니 도대체 왜..?)
또 다른 댓글을 보고는 모든 게 다 이해되었다. 있는 그대로보다 더 아름다운 상상과 해석, 그런 걸 해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자라 버린 어린왕자와 장미같다…..“
어린왕자를 (소년 어린왕자) 좋아하는 이유는 아주 짧은 여행을 하면서도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우가 때문이다. 어린왕자를 (책 어린왕자) 좋아하는 이유는 그 배움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져 결국 하나의 이야기를 하기 때문이다. 사막에 누워서 가장 밝게 빛나는 별부터 눈에는 잘 보이지 않아 마음으로만 느껴야 하는 차분히 존재하는 별까지, 하나씩 세다 보면 결국 그것들이 하나의 별자리가 된다. 어린왕자가 그려본 별자리는 아름다운 장미 모양이었겠지.
계절마다 그를 만나는 내 생각엔, 생택쥐페리 아저씨가 가르쳐 주려고 한 건 사랑하는 방법이다.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이야기다. B-612로 돌아간 어린왕자와 장미는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이제는 서로를 조금 더 이해해 주고 아껴주면서 친구 같은 사랑을 하고 있겠지. 돌아오는 가을마다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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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영상을 보니 보이지 않던 어린왕자와 장미가 보였다. 잘 자랐구나. 어느새, 정말 어느새 어른이 되어 버렸구나. 이제는 어른이 된 어린왕자가 부르기 시작한 노래에 장미가 갑자기 목소리를 얹으면, 그들은 눈을 마주치고 장미는 미소를 짓는다. 서툴기에 그 미소는, 그걸 바라보는 어린왕자의 눈빛은 더 아름답다.
장미가 노래를 이어받아 부를 때도 어린왕자는 계획에도 없었지만 장미가 했던 그대로의 선율을 불러준다. 장미의 목소리가 잘 들리도록, 잔잔히 조용히. 어쩜 둘이 그리도 초록색 스웨터를 입고 빨간 리본을 달았는지.
어린왕자가 고향 별로 돌아간 날 밤, 장미와 나눈 대화였을지도 모르겠다. 그 내용을, 그날 밤의 공기를 그대로 노래를 만들어 부르던 건 아닐까.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어버린 어느 겨울날에, 그 노래를 불러주러 잠깐 한옥마을에 왔구나. 그렇게 안부 인사하러 왔다 갔구나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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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왕자 얘기할 거 하나 더 있었는데 그거나 짧게 해야겠다. 요즘 여우가 좋다. 그래봐야 좋아한 지 오래된 건 아니고 추석 때 부쩍 좋아졌다. 여우가 해준 말 덕분에 기다리는 게 재밌다. 기다리면서도 행복하다. 기다릴 수 있다는 건 축복이고, 그래서 기다린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야. 이제 2-3일 후면 볼 수 있겠네.
“Si tu viens, par exemple, à quatre heures de l'après-midi, dès trois heures je commencerai d'être heureux.” 배운 프랑스어가 아까워서 한 번 써봤다. (당연히 복붙했다. 그나저나 이제 저 정도는 읽어서 이해는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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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2시 반이야. 벌써 한 시간이나 덜 자게 생겼어. (허ㅓ) 사실 난 꽤 자주 감기 걸리는 편이라 익숙해서 괜찮을거야. 마법의 알약 먹으면 안 아파져서.
노래가 너무 좋다. 가사 없는 연주만 들어도 아름답다. 연주 없이 가사만 읽어도 아름답다. 언젠가 꼭 연주해주고 싶고 읊어주고 싶은 그런 선율이고 그런 시야.
아프지 말자. 아프지 마. 안 아픈 게 최고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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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th much love and longing!
p.s. 사진은 그냥 인스타에 있는 걸 봐주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