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th love!
계몽 당하고 싶지 않다.
내가, 그리고 이걸 읽으러 온 우리가 행복을 찾기 위해 학교에 다니고 공부를 하는 건가? 거짓말하지 마. 학교 다니기 싫잖아 당신들. 공부하는 거 재미없잖아 당신들. 천 번 양보해서 견딜 만하다고, 할 만 하니까 한다고 하자. 이제는 스스로에게까지 거짓말을 하고 있잖아. 이 위선적인 인간들. 그렇게 자기 착취를 내면화한 채 살아가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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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무엇인가?>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주는 것, 지위와 권력을 사용해 하급자를 압박하고 강제하는 것. 이들은 폭력의 부분집합일 뿐이다. 한나 아렌트에 따르면 폭력은 ‘원치 않는 행동을 강제하려는 것’이다. 자살하려는 사람을 막아서 남은 수명을 채워 살게 하는 것은 폭력이다. 지옥에 가려고 하는 사람을 구원하는 것은 폭력이다.
계몽 당하기를 원치 않는 사람을 계몽시키는 것 또한 폭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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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Enlightenment: 어리석음을 깨우쳐 널리 알리는 것을 의미한다.>
어둠에 빠져있는 당신들을 빛의 땅으로 끌고 나오는 걸 계몽이라 부른다. 르네상스라는 좋은 예시가 있다. 부패한 종교를 타파하고 인본주의로 나아가 과학과 문화의 혁명적인 발전을 이뤄낸 사건이다. 어쩔 땐 저 방식은 너무 평화적이다. 그냥 더 단순하게 어둠 속 당신들 머리 위에 진리의 빛, 영광의 빛을 내리 쬐어 버릴 수도 있다. 살갗이 익어가든, 일사병에 쓰러져 나가든, 잠깐 그게 무슨 문제지? 난 당신들을 어둠으로부터 구원시켜 주잖아. 계몽시켜 주잖아. 훨씬 쉽고 폭력적이다. 예시로는 대항해 시대와 식민지가 있다. 십자가를 목에 맨 사탄들은 무적함대라 불리우던 배를 타고 신대륙으로 건너갔다. 이방인으로서 그곳에 상륙 하자마자 그들이 처음으로 한 일은 태양신을 믿던 멕시코 원주민들에게 온 세상의 창조주이자 전 민족의 구원자인 예수를 전파한 것이다. 만약 거역하는 사람이 있다면 곧장 죽여 버렸다. 모조리 죽여 버려서 결국 멕시코를 믿음과 구원의 땅으로 만들었다. 스페인 식민주의자들의 목에 힘없이 매달린 십자가는 미개한 민족의 잠재적 피계몽자들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들을 위한 것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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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훈, 자랑스러운 우리 학교 교훈>
민족주체성 교육으로 내일의 밝은 조국을,
출세하기 위한 공부를 하지 말고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자.
출세를 위한 진로를 택하지 말고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하자.
이것이 나의 진정한 행복이고 내일의 밝은 조국이다.
내가 왜? 내가 왜 계몽 당해야 하는데. 계몽 당해서 나한테 좋을 게 뭐가 있는데. 이렇게 빌빌대면서 살아내는 게 육신과 정신 둘 다 가장 편할 수 있는 길인데 도대체 내가 왜. 난 학문을 위한 공부를 하지 않아 출세를 위한 공부를 하지. 난 소질과 적성에 맞는 진로를 택하지 않아 출세를 위한 진로를 택하지. 계몽 당하고 싶지 않은 내가 계몽 당하기를, 심지어 스스로 계몽하기 위해 노력하기를 기대하고 날 뽑은 거야? 내가 거짓말을 잘했나 보네. 이 무능한 학교는 나한테 속은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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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 당하고 싶지 않다.>
계몽 당하고 싶지 않다. 어둠에 사로잡힌 사회에서 어딘가에는 계몽의 빛이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을 인지만 하는 정도, 딱 그 정도에 멈춰 선 상태로, 다시 말해 어둠과 빛의 경계에 갇혀 버린 상태로, 두 발을 양쪽에 하나씩 디디고 서서, 그래 나 그렇듯 너 그렇듯 우리 그렇듯 자기 착취를 내면화한 채로 살고 싶다. 가끔은 완전한 그늘 속에 숨기도 하면서 이렇게 사는 것도 괜찮다고 위로하면서 살고 싶다. 가끔은 완전한 빛의 편에 서 있고 싶지 않냐고? 한 번 계몽 당하면 다시 어둠으로 돌아갈 순 없으니까. 그리고 내가 어둠 속에서 가꿔온 삶이 나한텐 너무 소중하기 때문에.
이유는 많지만 아무거나 하나 들어보자면, (스페인 사람들 때문에 생각난 이유다) 계몽 당하면 다른 사람들을 계몽시켜야 할 거 같은 의무감이 생긴다. 마치 내가 기독교인으로서 다른 사람들을 전도해야 할 의무가 있는 것처럼. 내가 믿는 철학을 다른 사람들도 깨닫기 바라는 것처럼. 근데 난 그걸 하기가 싫다. 이미 크리스천으로서 사람들을 전도해야 한다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가 있다. 특히 나한테 소중한 사람들일수록 스트레스는 더 심하다. 그들을 두고 나만 구원받고 싶지 않아서 다른 사람들을 대할 때보다 더 큰 압박이 있다. 있는지도 없는지도 모르는 신에 대해서도 이런데.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어둠 속의 나 자신과 그 속에서 ‘나’가 일궈낸 것들은 전부 떨쳐내고 빛으로 나아가 계몽 당하는 것이 합리적일 것이다. 그러나 가을이라는 계절에는, 이토록 벅차고 설레는 계절에는 사람이 감성적으로 변해서, 그래서 감성적인 나는 비이성적인 짜증을 부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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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얘기다.>
이건 사상에 관한 얘기가 아니고 제도에 관한 얘기가 아니다. 정치와 경제에도 무관하다. 국가와 사회와 학교에 대한 비판을 하는 것이 아니다.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 일침을 주거나 어떤 메시지를 전하려는 의도도 없다. 다만 이건 순전히 사랑하는 방법에 관한 얘기다.
With love!
p.s. 후… 이렇게 무거운 건 쓰면 안 되겠다. 너무 힘드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