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정신
머리가 복잡했는데, 마침 효주가 7공주의 love song을 꼭 들어야 한다며 추천해 줬다. ‘꼭 잡은 두 손에 아주 소박한 약속을 모두 다 모아서 간직할 거’로 사랑은 묘사된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사랑이야. 무엇이든 결국 돌고 돌아오면 종착지는 항상 사랑이다. 서로 사랑하라. 인을 실천하라. 수천 년 전 인류 문명이 태동하던 시절에도 그들은 사랑을 외쳤다.
학생회 선거 질의응답에서 love song을 전파하고 혼정 끝에 방에서 피아노 치고 놀았다. 그러다가 갑자기 두영이가 전에 보내준 릴스가 생각나서 이찬혁의 멸종위기사랑을 찾아들었다. 보았다고 해야 하나? 경험했다고 하자.
옛날 생각이 났다. 어릴 적 차에 타면 엄마 아빠는 CD에 담긴 음악을 틀어주었다. 또봇 OST, 뽀로로 극장판 OST, 아니면 어린이용 찬송가 같은 거 것들. 엄마는 가끔 클래식도 틀어줬고 정말 그 이외의 대중가요를 절대 틀어주지를 않았다. 그래서인지 아빠는 미치는 알았다고 나중에 말했다. 뽀로로가 자기를 고문하는 것 같았다고.
어느 날 아빠랑 같이 차를 타고 어딘가에 가고 있었다.아빠가 우리한테 뽀로로 또봇 말고 다른 노래 한 번 들어보겠냐고 권유했다. 뽀로로 또봇이 아니라면 우리의유일한 대안은 코코몽이었다. 그게 아니라고, 아빠가 말했다. “아빠가 듣는 노래 한 번 틀어줄게 한 번만 들어봐 제발…“ 어른의 음악 세계에 발 들이는 것이 무서웠는지 계속 거부감이 들었었다. 거부의사도 적극 표현해 봤지만 나는 아빠가 노래를 틀어주는, 아빠가 운전하는, 아빠가 소유하는 차에 타고 있었고 달리 방도가 없었다.
만약 그날 들은 게 에미넴이었다면 난 지금 외힙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그게 프랭크 시나트라였다면 오아시스였다면 이문세였다면 지금 난 다른 음악을 듣고 있었을지도 모르는 것이다. (지금은 가끔씩 다 듣긴 한다만) 그야말로 나의 음악 취향이 결정당하는 순간이었다.
이만큼 살아오고 생각해 보면, 생각할 때마다 그날 내가 들은 노래가 마이클 잭슨의 heal the world였던 것이 참 감사하다. 언젠가 아빠한테 물어봤었다. 그날 왜 하필 그 노래를 들려줬냐고. “처음으로 듣게 되는 노래라 팝의 황제라 불리는 사람의 노래를 들려주고 싶었어.” 그래 그래 무대에서 혼자 보여줄 수 있는 퍼포먼스의 상한선을 재정립한 사람이지. “heal the world 가사가 되게 좋아서 그걸 골랐고.” 그래 그래 예술의 끝은, 모든 것의 끝에는 맑고 하이얀 사랑이고 사랑이 있으니까.
덕분에 나는 한동안 billie jean의 존재에 대해서 몰랐었고 마이클 잭슨하면 곧바로 heal the world를 떠올렸었다. 점점 그의 음악에 빠져들었다. 마이클 잭슨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는 팝의 황제, 무대의 지배자, 음악을 청각 매체에서 시청각 종합 예술로 승화시킨 혁신가, 상처받은 이들에게 사랑을 나누는 위로자, 먼저 거울 속 자신부터 변화시키는 사람… 이랍니다.
다시, 내가 처음 들은 대중가요가 마이클 잭슨이 노래하는 사랑이라니. 이렇게 낭만적일 수가.
멸종위기사랑을 경험하는 동안 계속해서 마이클 잭슨의 이미지가 눈앞에 아른 거렸다. 눈에 보이는 것들, 귀에 들리는 것들, 마음으로 느껴지는 것들 전부 마이클 잭슨의 그것을 닮아있다. 누가 뭐라 해도 자신의 음악을 꿋꿋이 고수하는 단단한 사람, 예술의 본질적 가치를 아는 멋진 사람, 음악 예술의 틀을 넓혀가는 혁신적인 사람, 그런 사람들인 것 같다. 그래서 옛날 생각이 났다.
이찬혁이 연출한 무대에 이렇게 당해버릴 줄이야. 제대로 반해버렸다. 청각적으로 그 시대의 향을 풍기고 시청각적으론 그 시대를 재현해 낸다. 그러나 가사는 옛 시대의 관념에 갇혀있는 것이 아니다. 우리 시대를 정확히 진단하고 또 고쳐 나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처방전이다. 앞으로의 우리 음악은, 우리 예술은, 우리는 서로 조금 더 아껴주고 사랑할 수 있기를 바라는.
그래서 언젠가 내 자식에게 첫 대중가요를 들려줄 때가 온다면 멸종위기사랑을 들려주고 싶다.
우리는 바야흐로 혐오와 갈등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이찬혁 마저도 이유 없는 혐오와 차별의 피해자였던가. 더 이상 힙합은 멋지지 않다고 호소한 이후 천방에서 온갖 비난을 들었다.
그럼에도,
아니 그렇기에,
사랑을 잃어가는 우리들에게 사랑이 멸종위기에 처해있다고 말하는, 내일이면 사라질 그 사랑을 살려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노래를 들려주고 싶다.
“옛날엔, 사람들 마음속에 사랑이 하나씩 있었단다. 옛날엔, 따듯한 불을 만들 수 있는 사랑이 있었단다. 그런데 아빠 시대엔 사랑이 멸종할 뻔했었어, 티라노 사우르스처럼.“
”결국 사랑이 멸종하지 않은 건, 음 글쎄…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아빠는 이 노래 덕분인 것 같아.“
”너는, 너희는 꼭 사랑 해.”
“사랑해! 정말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