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수가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다윗이 떠오른다.
8월 초에 인스타 지운다고 떵떵거리고 안 지웠던 적이 있지요. 그때 원래 게시물에 이 내용을 넣으려고 했습니다. 그때도 얘기했지만 길이가 길어서 그런지 복붙이 안 되는 겁니다. 그래서 별소리 없이 사진만 세 장 올렸었는데, 오랜만에 써 본 무언가라 어디 올리고는 싶었습니다. 그러던 참에 제가 브런치 작가였다는 사실을 떠올렸습니다.
그 수요일에 썼던 것을 밑에 붙여 넣었습니다. ( 잘 붙여 넣어집니다, 인스타랑 다르게!)
원래 교회 수련회를 안 갈 생각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공부를 하면 했지, 공부를 안 해도 농구라도 나가서 하는 게 나았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엄마도 그 생각에 동의하셨고, 그래서 나는 당일 날 노쇼할 준비를 이미 마친 상태였습니다.
주일 예배를 드린 후 출발하는 일정이었습니다. 어차피 안 갈 예정이었기에, 예배를 마치고 집에 돌아와 조용히 공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때까지도 수련회에 갈 마음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예배를 드리고 돌아오시더니, 수련회에 가고 싶지 않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고등부 학생 한 명이 수련회에 가기 위해 부모님을 설득하려고 새벽 기도회를 개근하고… 그런 이야기를 설교 시간에 들으셨다며, 괜히 반성하게 되더라고 하셨습니다. 그냥 수련회에 다녀오라고 하셨습니다.
두영이네 차를 얻어 타고, 결국 수련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나를 용인까지 끌고 오신 것도 하나님의 일하심이었겠거니 생각하는 편이 편했습니다.
막상 지내다 보니, 재미있었습니다. 오랜만에 학업에 대한 생각을 내려놓고 즐기는 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율동 만들고, 퀴즈 놀이 하고, 식사 시간 틈틈이 농구하고, 밤늦게까지 떠들고 웃고… 얼마나 오랜만인지도 몰랐습니다. 소중한 시간이었습니다. 문득 내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던 궁내중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근심 걱정 없이 forte 나아가던 시절, 그런대로 괜찮았던 시절. 졸업하고 처음으로 그때와 비슷한 감정을 느껴보았습니다. 모두에게 참 많이 고마웠는데, 그 고마움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한 게 아쉽습니다. 고맙습니다.
생각해 보면, 고등학교가 마귀의 학교라는 말이 전혀 틀린 말은 아니었나 봅니다. 목사님이신 외할아버지와 장로의 사모님이신 할머니는 학교를 마음에 들어 하시지 않았습니다. 최명재 설립자가 유교 사상을 따르고, 종교적 억압이 있다는 이유에서 입학 자체를 반대하셨습니다. 나는 학교에서 나름 기도모임에도 나가고, 주일마다 횡성 시내 교회에 예배도 드리러 다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다는 착각 속에서 오히려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힘든 것이 많았습니다. 무엇보다도, 나는 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산본을 ‘집’으로 여기는 경향이 강했습니다. 2주, 4주씩 강원도 산골짜기에 갇혀 있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산본도 횡성도 모두 집 같지 않다 보니 마음이 붕 떠 있는 기분이었습니다. 이미 거미줄로 집을 다 지어놨는데, 엉뚱한 곳에 증축을 시도하는 느낌이랄까요. 당연히 제대로 세우기도 어렵고, 유지보수도 안 되겠지요. 그래서 집에 돌아오는 금요일 밤이면 산본 여기저기를 떠돌다가, 다시 학교로 돌아가기가 싫어 전학과 자퇴를 고민하곤 했습니다. 이종배 목사님 말씀대로 동산고를 갔어야 했던 걸까, 아니면 안외를 갔어야 했던 걸까… 그런 생각들이 들었습니다.
두서가 참 없습니다. 학교에서 나는 나름대로 선교사의 사명을 지키려 했습니다. 믿지 않는 친구들에게 하나님을 전하려고 애썼는데, 말이 통하지 않는 걸 넘어서 오히려 내가 그들의 말에 흔들리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걸 왜 믿냐”, “신을 믿음으로 인해 내게 좋은 게 생긴다는 확신이 없으면 안 믿겠다”, “성경은 사람이 쓴 책이라 왜곡되었을 것이다”라는 말들 앞에서요.
언젠가부터 기도를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힘들 때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사람을 찾게 되었습니다. 설교 시간마다, 묵상 시간마다 성경의 오류와 모순만 눈에 들어왔습니다. 어쩌다 기도를 해야 할 일이 생기면, “하나님, 정말 거기 계시다면 나에게 그 모습을 보여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수련회 내내 그런 기도를 했습니다. Lord, now it’s time for YOU to show yourself to me.
그런데 어떤 은혜가 있었던 건지, 아니면 오랜만에 생각을 깊게 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문득 저 기도가 제가 해야 할 기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 내게 필요한 건 하나님의 존재를 증명할 논리도, 하나님의 역사를 증거할 체험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그저 힘든 나를 안아줄 하나님이 필요했던 것 같습니다.
징징대는 건 여전한데, 징징대는 이유가 바뀌었습니다. 왜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들었던 시기에 하나님은 옆에 계시지 않았는지, 왜 가장 추운 계절을 지나는 동안 손길 한 번 내밀어 주시지 않았는지, 얼마나 지쳐 있었으면 기도조차 잊고 하나님을 떠올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나를 그냥 두셨는지… 억울하고 서운해서 울었습니다. 왜 그랬을까 흐르는 눈물을 참으려던 나는, 이를 어찌 참을 수 있었겠습니까.
하나님을 만난 것 같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고 “힘들다”라고 말할 수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치유의 감동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모든 과정, 이 용인으로 나를 끌고 오심도 하나님의 일하심이었겠거니, 확신이 들었습니다. 어디 뭐 라오스 비금도가 아닌 이상,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불러주시는구나 싶었습니다.
오랜만에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이 참 감사했습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내게 그것을 이겨낼 수 있는 팔이 있다는 것이 큰 위안이었습니다.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께서 이렇게 입히시거늘, 하물며 나를 돌보시지 않으시겠습니까. 믿음이 작은 자였나 봅니다.
사람들은 하지 못한 것에 대한 후회보다 해본 것에 대한 후회가 낫다고들 합니다. 나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학교도 그렇고, 수련회도 그렇습니다. 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될 때는 그냥 하는 겁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십니다. 설령 그렇지 않더라도, 저지르고 나서 후회하는 걸로!
p.s. 수련회의 주제가 ‘찬양의 이유’ 였습니다. 그리고 며칠 전에 인스타에서 정상수가 찬양하는 영상을 몇 개 보게 되었는데 다윗처럼 찬양하라는 게 저거구나 싶었습니다. 정상수가 술 마시고 테이저건 맞고 이래저래 방황하더라도 결국 어떻게든 일하셔서 찬양의 길로 돌아오게 하시는 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