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우며 채워지는 것

by 엠에스

< 비우며 채워지는 것 >


삶은 끊임없는 ‘비움과 채움’의 변증법 속에 있습니다. 우리는 채움 속에서 충만을 얻는다고 믿지만, 채움은 언제나 비움을 전제로 합니다. 이 단순한 진실은 농업의 지혜, 기억의 흐름, 철학의 성찰, 그리고 현대 사회의 과잉 현실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농부의 경험은 이를 잘 보여줍니다. 논에 물을 늘 가득 채워두면 벼는 연약해져 작은 태풍에도 쓰러집니다. 그래서 농부는 시기마다 물을 빼내어 땅을 말립니다. 그 과정에서 벼는 더 깊이 뿌리를 내리고 강인하게 자랍니다. 삶 또한 그러합니다. 끊임없이 채우는 것만으로는 온전한 성장이 불가능하며, 비움이 있을 때에만 내적 힘이 길러집니다.


기억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기억의 소멸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기억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흐름 속에서 형성되고 사라집니다. 철학자 헤라클레이토스가 말했듯, “우리는 같은 강물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는 사실은, 존재가 언제나 흐름과 변화 속에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기억의 결핍은 존재의 상실이 아니라, 새로운 정체성을 구성하는 또 다른 방식입니다.


동양 사상은 오래전부터 비움의 가치를 일깨워 왔습니다. 불교의 ‘공(空)’은 허무가 아니라, 집착을 벗겨내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자리입니다. 노자는 “가득 차면 기울고, 비워야 채워진다”라고 하여, 존재의 충만은 결핍을 통해서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이는 단순한 절제가 아니라 역설적 진리입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우리를 정반대의 길로 몰아갑니다. 소비주의는 더 많은 소유가 행복을 보장한다고 속삭이고, 디지털 환경은 알림과 정보로 잠시도 마음을 비울 틈을 주지 않습니다. 자기 계발 담론은 끊임없이 ‘더 나은 나’를 요구하며, 끝없는 채움을 강요합니다. 결과는 피로와 불안, 산만함입니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비움의 기술’입니다. 비움은 소멸이 아니라 가능성의 조건이며, 채움은 단순한 소유가 아니라 의미와 관계의 확장입니다. 과잉의 시대일수록 성장과 성숙은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덜어내는 데서 비롯됩니다.


비움을 위한 실천 지침


(1) 디지털 비움

하루 일정 시간은 알림을 끄고, 휴대폰을 손에서 내려놓으십시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하지 않은 것’을 과감히 삭제하고, 필요한 만큼만 남기십시오. SNS에서의 ‘팔로우’와 ‘좋아요’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정신은 훨씬 가벼워집니다.


(2) 소비의 절제

물건을 살 때마다 ‘정말 필요한가, 혹은 순간적 욕망인가’를 물어보십시오. 소유보다는 사용의 경험을, 사치보다는 필요의 충족을 우선하십시오. 덜 가질수록 삶의 여백은 넓어지고, 그 여백에서 감사가 싹틉니다.


(3) 시간의 비움

하루에 10분이라도 ‘의도적인 공백’을 마련하십시오. 책을 보지 않고, 음악도 끄고, 단순히 고요히 앉아 있어 보십시오. 일정은 빼곡히 채우기보다 여백을 두어야 새로운 통찰과 기쁨이 들어섭니다.


(4) 관계의 단순화

억지로 유지하는 관계, 피로만 남기는 만남을 줄이십시오. 진정한 관계는 ‘숫자’가 아니라 ‘깊이’에 있습니다. 가벼운 관계를 줄이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에게 시간을 쓰십시오.


(5) 마음의 비움

욕망과 열정, 집착과 사랑을 스스로 분별하십시오. 무겁게 누르는 감정은 내려놓을수록 여백이 생깁니다. ‘와비사비’ 미학처럼 불완전 속에서 아름다움을 보고, 불교의 ‘공’처럼 집착을 벗어날 때 충만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결국 질문은 하나로 귀결됩니다.


“나는 무엇을 채우고, 무엇을 비울 것인가?”


확실한 미래는 없습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이 충분하다’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이미 비움 속에서 채움을 발견한 증거입니다.


비워낸 하루는 고요하게 빛나는 저녁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우리를 채웁니다. 덜어냄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더 풍성해지고, 가벼워짐 속에서 삶은 더 선명해집니다. 비움은 결핍이 아니라, 더 깊은 충만을 위한 준비입니다.


오늘도 나는 조금 더 비워냅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여유와 감사, 평온을 담습니다.


비워진 하루가 고요하게 빛나는 저녁처럼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를 채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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