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튜브 알고리즘과 인간의 타락

극단적 콘텐츠, 대중은 왜 멈추지 못하는가?

by 엠에스

<유튜브 알고리즘과 인간의 타락>

― 극단적 콘텐츠, 대중은 왜 멈추지 못하는가?


디지털 문명은 인간에게 새로운 가능성과 자유를 제공했다. 그러나 그 문명은 인간의 어두운 본성까지도 확대·증폭시키는 거대한 증폭기가 되고 있다. 그 증폭기의 가장 앞에 선 존재가 있다면, 단연 ‘극단적 유튜버’ 들일 것이다.


그들은 조회수라는 현대의 새로운 마약을 위해 인간의 고통을 ‘소재’로 삼고, 우리 모두는 때로는 방관자, 때로는 소비자, 때로는 공범이 된다.


조회수, 그것은 디지털 시대의 통화다


유튜브는 더 이상 단순한 동영상 플랫폼이 아니다. 전 세계 20억 명 이상이 사용하는 이 플랫폼은 ‘조회수’라는 디지털 경제의 통화로 움직인다. 한 번의 클릭은 돈이 되고, 반복되는 클릭은 권력이 된다.


구글은 밝힌다. 유튜브 이용 시간의 약 70%는 알고리즘이 추천한 영상으로 채워진다고. 알고리즘은 철저히 ‘관심’을 추적한다. 무엇이 클릭되는가, 무엇에서 오래 머무는가. 그리고 인간의 관심은, 지성보다 자극에 반응하는 속성을 지닌다.


극단적 콘텐츠가 알고리즘에 의해 우선순위를 갖게 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우리는 자극 앞에서 멈추지 못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우리의 뇌가 그렇게 설계되어 있다.


인간의 뇌는 ‘선함’보다 ‘자극’에 반응한다


심리학자들은 이를 ‘부정성 편향(Negativity Bias)’이라고 부른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부정적인 정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진화적 장치다.


하지만 이 편향이 디지털 환경에서 극단 콘텐츠와 결합하면, 정상적 감수성의 붕괴, 폭력의 일상화, 자극 중독의 사회화가 벌어진다.


이때 유튜브 알고리즘은 그 편향을 영리하게 이용한다. 독일 마인츠 대학의 연구에 따르면, 유해하거나 허위 정보가 담긴 콘텐츠는 일반 콘텐츠보다 25% 더 자주 추천된다. 플랫폼은 우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가 아니라, 무엇에 '반응하는지'에만 관심이 있다.


알고리즘이 만들어낸 괴물들


이 구조 안에서 극단적 유튜버들은 등장했다. 그들은 클릭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까지 침범하며, 타인의 고통을 돈으로 환산한다.


배우 설리,

방송인 잼미,

연기자 이선균,

그리고 수많은 ‘일반인 피해자들’…


그들의 삶과 죽음은 콘텐츠가 되었고, 사건이 벌어지면 수백, 수천 개의 추측 영상과 허위 기사들이 쏟아진다. 죽음조차 ‘소비 대상’이 되는 사회. 그들의 가족, 친구, 동료들 역시 ‘2차 피해자’가 되며 또 다른 트라우마를 겪는다.


더 충격적인 진실: 그들을 키운 건 우리다


우리는 클릭한다.

‘설마 진짜일까?’, ‘아니겠지?’, ‘한 번만 보고 말자.’

그 클릭은 곧 수익이 되고, 수익은 곧 정당화가 된다.


뉴욕타임스는 “대중의 호기심이 극단 콘텐츠를 움직이는 원동력이며, 플랫폼은 그것을 알고리즘에 반영한다”라고 지적했다.


이 지점에서 제니 홀저(Jenny Holzer)의 문장이 울린다: “Protect me from what I want.”– 내가 원하는 것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줘.


이 말은 지금 우리 모두의 경고문이다. 우리는 무엇을 원하는가? 그리고 그 욕망은 누구를 파괴하는가?


그럼에도 왜 멈추지 못하는가?


사람들은 자주 말한다.

“저 유튜버는 왜 저런 짓을 하지?” “그걸 누가 보냐?”


하지만 더 정확히는 이렇게 묻는 것이 맞다:

“왜 나도 클릭하게 되는가?”, “왜 나는 멈추지 못하는가?”


우리의 뇌는 도파민(쾌락 신경전달물질)의 분비에 따라 자극을 반복하게 만든다. 이것은 거의 ‘디지털 중독’에 가깝다. 결국 알고리즘은 우리의 무의식을 학습한다. 우리가 무엇을 보고 싶어 하는지, 우리가 얼마나 멈추지 못하는지.


기업은 왜 방관하는가?


유튜브의 연간 광고 수익은 2023년 기준 약 400억 달러(52조 원)에 달한다. 자극적인 콘텐츠는 평균보다 2~3배 더 긴 시청 시간과 클릭률을 유도한다. 수익성 면에서 플랫폼 입장에서는 ‘불편하지만 이득이 되는 콘텐츠’들이다.


BBC가 보도한 로건 폴 사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그는 일본의 자살 장소인 ‘아오키가하라’를 촬영해 논란을 일으켰지만, 오히려 구독자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영상 수익도 늘었다. 이는 “윤리적 비난”보다 “조회수 증가”가 더 강력하게 작동하는 디지털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이대로 두면 어떻게 되는가?


만약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10년 안에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회에 도달할 것이다:


사람의 죽음이 하나의 ‘트렌드’가 되고,

누군가의 고통이 엔터테인먼트가 되며,

인간 존엄은 콘텐츠 전략에 따라 거래되는 세계.


그때가 되면, ‘선한 콘텐츠’는 클릭조차 받지 못하고 사라질 것이고, 우리는 “왜 아무도 바꾸려 하지 않았는가”를 되묻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첫째, 플랫폼의 책임 강화

알고리즘 설계의 투명성 공개

악성 콘텐츠에 대한 수익 차단

사용자 신고에 대한 신속한 대응 시스템 구축


둘째, 디지털 시민의식 교육

중·고등 교육 과정에 ‘디지털 미디어 윤리’ 포함

클릭의 의미와 책임을 교육해야 한다


셋째, 무관심으로 저항하기

클릭하지 않는 것

댓글을 남기지 않는 것

공유하지 않는 것


이 ‘아무것도 하지 않음’이 오히려 가장 적극적인 윤리적 행동이 될 수 있다.


결론: 조회수는 양심의 지표다


이제 조회수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윤리, 감수성, 인간됨의 지표다. 다시 한번 되새겨보자.


“죽음을 소비하지 마라. 고통에 손뼉 치지 마라. 자극 앞에서 침묵하라. 그 침묵이 바로 인간다움이다.”


당신의 다음 클릭이,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지킬 수도 있다.


✔ 요약 문장: “조회수는 선택이다. 그 선택은 인간의 존엄을 향한 선택일 수도, 파괴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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