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다움의 그림자, 그리고 새로운 삶의 지혜
– 남자다움의 그림자, 그리고 새로운 삶의 지혜
오래 산다는 것의 의미
대한민국 여성의 평균 수명은 약 86세, 남성은 80세다. 단지 6년이라는 숫자의 차이가 아니다. 이 간극은 고독의 시간이며, 존재가 천천히 사라지는 ‘사회적 퇴장’의 과정이다.
여성은 노년기에도 친구들과의 대화, 가족 돌봄, 지역 공동체에서의 역할을 유지하며 사회적 활기를 이어간다. 반면 많은 남성은 은퇴 이후 ‘집 안의 투명인간’이 되어간다. 대화는 줄고, 관계는 끊기며, 술병과 리모컨만이 말벗이 된다.
“그는 죽은 게 아니라, 잊혔다.”
이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 개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우리가 오랫동안 만들어온 구조와 문화가 만들어낸 집단적 비극이다.
여성의 장수, 생물학만으로 설명될까?
여성의 장수는 일부 생물학적 요인에서 비롯된다. 예를 들어, 여성 호르몬 에스트로겐은 심혈관계 질환을 예방하는 역할을 하며, 두 개의 X염색체는 면역력을 보완하는 생물학적 이점이 있다.
그러나 이를 모든 수명 차이의 이유로 돌리기는 어렵다.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 중 유전·생물학적 요인은 약 30%, 사회문화적 요인은 무려 70%를 차지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즉, 남성의 조기사망은 유전이 아니라 사회가 기른 삶의 방식의 결과이며, 사회적 학습된 남성성(masculinity)이 남성 건강을 위협하는 주범일 수 있다.
‘남자다움’이라는 사회적 가면
1️⃣ “감정 없는 인간”으로 길러진 남성들
남자아이들은 어릴 적 울면 “남자가 왜 울어?”라는 말을 듣는다. 감정을 드러내는 것은 ‘약함’이라 배운다. 그 결과, 남성은 기쁨도 슬픔도 내면에 억누르며 살아간다.
그러나 융(C.G. Jung)은 “억압된 감정은 반드시 다른 방식으로 튀어나온다”라고 했다. 이렇게 억눌린 감정은 종종 우울증, 분노, 알코올 의존, 관계 단절로 드러난다. 실제로 남성의 우울증은 ‘침묵의 우울증’이라 불릴 만큼 스스로 자각하지 못한 채 자해적 방식으로 표출되곤 한다.
2️⃣ 친구를 잃어버린 남성 문화
20대엔 군대, 30~40대엔 직장과 가정, 50대 이후엔 관계가 뚝 끊긴다. 여성은 취미·대화·돌봄 등을 통해 관계망을 유지하지만, 남성은 관계의 퇴화 속에 사회적 고립을 경험한다. “나는 괜찮아”라는 말은 종종 무너지는 마음을 숨기려는 방어 기제다.
그 결과, 한국 50대 이상 남성의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외로운 죽음은 단지 나이의 문제가 아니라, 관계 부재의 병리학적 결과다.
건강을 해치는 또 하나의 그림자: 흡연과 음주
남성의 조기사망 원인 중 가장 큰 요인 중 하나는 생활습관이다. 특히 한국 남성의 흡연율(약 30%)과 음주율은 세계적으로도 높은 편이다.
흡연은 폐암, 심장질환, 뇌졸중, 만성폐쇄성폐질환(COPD) 등 조기사망 원인과 직결된다.
과도한 음주는 간경화, 고혈압, 우울증, 낙상, 암 발생률을 높인다. 게다가 음주는 관계 단절과 폭력, 고독사와도 연관된다.
즉, 사회가 남성에게 ‘스트레스 해소는 술과 담배로’라는 메시지를 내면화시킨 결과, 건강은 방치되고, 수명은 줄어든다. 남성적 해소 방식이 남성의 생명을 갉아먹고 있는 셈이다.
장수의 비밀은 ‘관계’에 있다 – 세계의 사례
장수로 유명한 지역, 일명 ‘블루존(Blue Zones)’에서는 다음과 같은 공통점이 있다.
오키나와(일본): 매일 친구들과 이웃과 공동 식사를 하며 정서적 유대감 유지
사르데냐(이탈리아): 남성도 노동 후 마을 광장에서 친구들과 대화와 와인
이카리아(그리스): 고령 남성이 공동체 활동, 종교 모임, 농사 일로 활기찬 삶 유지
이 지역들의 공통점은 단순한 식습관이 아니다. ‘연결된 삶’, ‘자기 효능감’, ‘감정 표현’이 장수를 만든다.
남성이 바꿔야 할 생활 습관들 – 구체적 제안
✅ 정기 건강검진은 생존의 기본 무기
아프지 않을 때 가는 병원이 생명을 살린다. 특히 간·폐·심혈관 건강, 전립선 검사, 치매 조기검진은 필수다.
✅ 감정 표현은 약함이 아니라 용기
명상, 일기, 대화, 상담은 정신 면역력을 높이는 방식이다. “울 수 있는 남자”가 더 강하고 오래 산다.
✅ 흡연·음주와 이별할 때, 삶은 더 깊어진다
담배는 그 어떤 ‘스트레스 해소법’보다 위험하다. 술은 관계를 망가뜨리고 우울을 심화시킨다. 대화와 산책, 공동체 활동이 진짜 해독제다.
✅ ‘관계 근육’ 회복하기
운동 모임, 봉사활동, 아버지학교, 지역 공동체 등에서 새로운 소속감을 찾아야 한다. 혼밥이 아닌 ‘공동의 식사’가 필요하다.
사회가 해야 할 일 – 남성 생애전환기 정책
① 중년 남성 전용 커뮤니티 센터 구축
예를 들어 일본의 ‘사토야마 카페’, 독일의 ‘남성 셰어하우스’처럼 남성이 머무르고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공간 필요
② 성 역할 해체 교육 강화
“강한 남자”라는 낡은 틀에서 벗어나 “돌보고 나누는 인간”을 키우는 교육이 필요하다. 감정 표현, 갈등 조정, 공감 훈련 등 소프트 스킬 교육 확대가 중요하다.
③ 고립남성 정신건강 국가사업화
고령 남성 우울증과 자살 예방을 위한 심리상담, 정서지원 네트워크, 디지털 소통 교육 강화 필요
마무리하며: 남자여, 자기 삶의 주인이 돼라
이제 우리는 질문을 바꾸어야 한다. “왜 남자들은 일찍 죽는가?”가 아니라 “왜 우리는 남자를 그렇게 길러왔는가?”
남성의 삶은 더 이상 침묵과 책임의 서사일 필요가 없다. 이제는 감정을 표현하고, 관계를 맺고, 자기를 돌보며, 웃는 남자가 되어야 한다. 그것이 곧 진짜 ‘자기 인생을 사는 남자’, 그리고 장수하는 남자의 길이다.
한 문장 요약: “강한 남자”가 오래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를 돌볼 줄 아는 남자”가 오래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