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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양극화 시대: 사라지는 희망

부와 권력의 집중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절망

by 엠에스

<초양극화 시대: 사라지는 희망>

— 부와 권력의 집중이 만들어내는 구조적 절망


현대 사회는 부와 기회의 쏠림이 극단으로 치달은 ‘초양극화’의 시대로 진입했다. 전 세계 상위 1%의 부는 눈부시게 불어나지만, 대다수의 삶은 오히려 팍팍해지고 있다. 국제 구호단체 보고에 따르면, 2024년 한 해 동안 전 세계 억만장자의 자산은 무려 2조 달러 증가했다. 하루 평균 57억 달러씩 불어난 셈이다. 이는 전년 대비 세 배나 빠른 속도이며, 그 배경에는 애초부터 부유층에 유리하게 설계된 경제 시스템이 자리하고 있다.


“현재의 경제 시스템은 부유한 소수를 더 부자로 만들도록 설계되었고, 그 대가는 평범한 사람들이 치르고 있다.” — 한 국제 구호단체 관계자의 지적


그 결과, 전 세계 인구의 44%에 해당하는 36억 명이 여전히 하루 6.85달러 미만으로 살아가고 있다. 부의 불평등이 단순한 ‘격차’를 넘어 ‘심연’으로 벌어지는 동안, 한국 사회에서도 중산층 붕괴는 가속화되고 있다. 부동산, 고용, 소득, 디지털 접근성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벌어지는 격차는 일상을 잠식하고, 결국 희망 자체를 소거해 버린다.


부동산 초양극화 — “내 집 마련”이 신기루가 된 시대


한국에서 부동산은 자산 양극화의 대표 상징이다. 집 한 채가 자산의 운명을 결정하는 현실에서, 서울 상위 20% 아파트 평균 가격은 27억 3천만 원, 전국 하위 20% 평균 가격(1억 1천만 원)의 23.6배에 달한다. 서울 강남권은 불황에도 가격이 오르지만, 지방 저가 주택은 하락세를 보여 지역 간 격차는 24배까지 벌어졌다.


그 결과, 청년과 서민들은 ‘벼락거지’가 되었고, 한때 사회의 허리였던 중산층도 주거 절벽 앞에서 무력감을 느낀다. 결혼·출산 포기는 자연스러운 수순이 되었고, 2023년 한국 합계출산율은 0.72명으로 세계 최저치를 기록했다. 집값과 교육비 부담이 미래 포기의 직접적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다.


일자리와 소득 격차 — “계층 상승 신화”의 붕괴


한국 전체 임금 노동자의 37%가 비정규직이며, 정규직과의 월평균 임금 격차는 167만 원에 달한다(2023년 기준). 대기업 정규직이라는 ‘안정된 일자리’는 소수의 몫이 되었고, 청년 세대는 절반 가까이가 비정규직이다.


이들은 연애·결혼·출산, 나아가 인간관계와 내 집 마련까지 포기하는 ‘N포 세대’가 되었다. “노력하면 된다”는 말은 더 이상 통하지 않고, 남는 것은 빚과 불안정뿐이다. 사회는 더 이상 미래를 향한 ‘도전’이 아니라 현재를 버티는 ‘생존’의 무대가 되었다.


디지털·AI 시대의 새로운 양극화


대한민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인터넷 인프라를 갖추었지만, 세대·계층 간 디지털 역량 격차는 OECD 최고 수준이다. 청년층 63.4% 대비 65세 이상 장년층은 3.9%에 불과하다.


AI와 자동화는 생산성을 높이지만, 동시에 노동시장의 40%를 대체할 수 있다는 경고가 있다. 새롭게 창출되는 AI 관련 고급 일자리는 고 숙련자와 자본 보유자에게 집중되고, 저 숙련·저소득층은 일자리 상실의 직접적 피해자가 된다. 플랫폼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에도 불안정한 수입을 감수해야 하고, 콘텐츠 시장에서도 상위 1%가 대부분의 수익을 독식한다.


기술 발전이 소수만을 위한 ‘혁신’이 될 때, 다수는 소외와 박탈감을 느끼며 미래 불안에 시달린다.


중산층 붕괴 — “부유한 소수 vs. 불안한 다수”의 사회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의 양극화는 꾸준히 악화되었고, 중산층은 빠르게 사라졌다. 통계상 중산층이라 해도 과거의 ‘중산층 생활’을 영위하기 어렵다. 내 집 마련, 자녀 교육, 노후 대비라는 세 가지 조건이 상식에서 벗어나면서, 사회는 상위 극소수와 하위 대다수의 양극 구도로 재편되고 있다.


2024년에는 자수성가한 억만장자보다 상속으로 부를 얻은 억만장자가 더 많았고, 30세 미만 억만장자는 전원 상속 부자였다. 향후 10년간 대규모 부가 과세 없이 상속될 예정이어서, 현대판 ‘세습 귀족 사회’가 고착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이는 능력주의 신화의 붕괴이자, 금수저·흙수저의 운명이 태어날 때부터 결정되는 ‘폐쇄적 계급 사회’의 경고다.


희망의 실종 — 사회적 동력의 붕괴


부의 집중과 계층 고착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희망이 사라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미래를 꿈꾸기보다 현재를 버티는 데 급급해지고, 공동체적 유대와 신뢰는 붕괴한다.


상류층은 자신들의 성을 더욱 견고히 하고, 하층은 체념 속에 살아간다. 정부가 내놓는 단편적 대책은 구조적 불공정을 뒤집기엔 역부족이다. 결국, 희망이 없는 사회는 지속 불가능하다.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은 “희망이 사라진 사회는 스스로를 소모하며 붕괴한다”라고 말했다. 지금의 한국 사회가 그 전조를 보이고 있다면, 이는 단순한 경제 문제를 넘어 정치·문화적 위기의 신호다.


결론 — 초양극화, 문명 지속의 시험대


오늘날의 초양극화는 통계상의 격차를 넘어, 인간의 존엄과 공동체의 기반을 위협하는 문명적 위기다. 부와 권력이 소수에 집중되는 구조를 방치한다면, 우리는 ‘모두가 패배자로 느끼는 사회’라는 디스토피아를 맞게 될 것이다.


이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재분배 정책이 아니라,

계층 이동 사다리의 복원

교육·주거·노동의 구조적 불평등 완화

기술 발전의 과실을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


희망은 ‘있는 자’의 특권이 아니라 ‘모두의 권리’여야 한다. 초양극화의 흐름을 제어하지 못하면, 사회 붕괴는 선택이 아니라 필연이 될 것이다. 이 기록이 과장이 아닌 경고로서 작동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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