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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본성의 투쟁과 지혜

by 엠에스

<인간 본성의 투쟁과 지혜>


삶은 작은 전쟁의 연속


우리는 흔히 “삶은 전쟁터다”라는 말을 한다. 니체의 사유를 요약하자면, 인간의 삶은 끊임없는 갈등과 투쟁 속에서 전개된다. 이 전쟁은 꼭 총칼을 들고 싸우는 외부와의 전쟁만은 아니다. 더 큰 전장은 바로 우리의 내면이다. 욕망과 두려움, 질투와 비교심, 끝없는 불안과 싸우는 것이 바로 인간의 운명이다. 누구도 이 싸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이 전쟁을 외면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할 때 비로소 우리는 성숙해진다.


인간에 대한 기대와 실망


알렉산더 포프는 인간관계에 대한 냉소적인 통찰을 남겼다. "인간에게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는 자가 복된 자"라는 그의 풍자는, 인간 본성의 불완전함을 전제한다. 이는 니체의 냉철한 직시와 맞닿아 있으며, 지나친 기대가 결국 배신과 실망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정치철학자 홉스는 인간 사회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이라 했고, 마키아벨리도 인간의 이기심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권력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하지만 여기서 멈추면 세상은 너무 비관적으로 보인다. 니체는 달랐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냉정히 보되, 거기에 가능성을 덧붙였다. 인간은 불완전하지만, 스스로를 넘어서는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불완전하기 때문에 성장할 수 있고, 넘어설 수 있다.


동양의 지혜와의 만남


이 생각은 동양 사상과도 맞닿아 있다. 순자는 인간이 본래 악하다고 보았지만, 교육과 수양을 통해 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말했다. 불교도 인간이 집착과 번뇌에 사로잡혀 있지만, 수행을 통해 해탈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즉, 인간은 본능적으로 완벽하지 않지만, 노력과 깨달음을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서양의 니체가 말한 ‘자기 극복’과 동양의 ‘수양과 수행’은 다른 언어로 말할 뿐,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다.


오늘의 전쟁터, 디지털 세상


오늘날 우리의 전쟁터는 어디일까? 총칼이 아니라, 스마트폰 속에 있다. SNS에서 누가 더 많은 ‘좋아요’를 받았는지, 누가 더 화려한 삶을 보여주는지, 이런 것들이 새로운 권력이 된다. 때로는 거짓 정보와 자극적인 뉴스가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고, 분노와 혐오가 순식간에 퍼져 나간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휩쓸리지 않는 지혜다. 진짜와 가짜를 구분하는 눈, 순간의 분노보다 긴 호흡의 신뢰를 선택하는 용기다. 인간은 언제나 배신할 수 있는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협력을 포기한다면 사회는 무너진다. 믿음은 상처를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우리를 살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진화심리학과 게임이론은 이러한 현실을 설명한다. 죄수의 딜레마는 협력과 배신 사이에서 인간이 어떻게 선택하는지를 보여준다. 배신은 단기적으로 이득을 가져오지만, 장기적으로는 신뢰를 붕괴시킨다. 따라서 진정한 지혜는 상대방의 결함 가능성을 인정하면서도 협력을 지속할 수 있는 용기에서 비롯된다.


사회학자 로버트 퍼트남은 신뢰와 협력이 쌓일 때 '사회자본'이 형성된다고 말한다. 사회자본은 공동체의 지속성과 번영을 가능하게 한다. 그러나 그것은 순진한 낙관에서 비롯되지 않고, 배신과 실망을 견디며 여전히 연대를 선택하는 의지에서 태어난다.


한국 사회의 현실 속 지혜


우리 사회를 돌아보면, 정치적 갈등, 세대 갈등, 남녀 갈등이 끊이지 않는다. 인터넷 댓글 하나가 사람을 쓰러뜨리기도 하고, 서로를 향한 불신과 혐오는 깊어져만 간다. 모두가 싸우고 있지만, 정작 지혜롭게 싸우는 법을 배우지 못한 듯하다.


그러나 진짜 지혜는 갈등을 무조건 피하는 것이 아니다. 갈등 속에서도 상대를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 협력할 여지를 남기는 것이다. 상대를 완전히 굴복하게 하는 것은 승리가 아니라 다 같이 멸망의 길로 가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면서도 함께 살아가려는 노력을 포기하지 않을 때, 사회는 조금씩 건강해진다.


마무리: 투쟁 속에서 피어나는 삶의 지혜


삶은 결국 작은 전쟁들의 연속이다. 때로는 나와의 싸움, 때로는 타인과의 갈등이다. 하지만 그 전쟁은 단순한 파괴가 아니다. 상처 속에서 배우고, 실망 속에서 성숙하며, 배신을 겪으면서도 여전히 믿음을 선택하는 용기 ― 그것이 바로 인간이 길어 올려야 할 지혜다.


니체가 말한 초인은 거창한 존재가 아닐지 모른다. 어쩌면 그것은 오늘 하루, 분노에 휘둘리지 않고, 작은 갈등 속에서도 신뢰를 잃지 않는 평범한 우리일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성숙해지려면, 이 싸움의 지혜를 배우는 것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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