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이 다시 만들어야 할 경쟁력의 본질
— 한국이 다시 만들어야 할 경쟁력의 본질
한국은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다. 반도체, 자동차, 조선, 배터리, 디스플레이 등 세계 시장에서 ‘Made in Korea’의 위상은 한때 국가 자부심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세계 질서는 이제 달라지고 있다. 미국은 ‘인플레이션 감축법(IRA)’과 ‘반도체 지원법(CHIPS Act)’으로 자국 내 제조 부흥을 선언했고, 유럽 역시 ‘유럽 산업주권’을 내세워 핵심 산업을 보호하고 있다. 한마디로, “글로벌화의 시대”에서 “경제안보의 시대”로의 전환이다.
이런 변화 속에서 한국의 수출 주도 성장모델은 한계에 부딪히고 있다. 단순히 기술력과 근면성으로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는 세상이 온 것이다. 각국은 이제 자국 내 생산과 기술 자립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다. 세계화의 파도에 올라타 성장하던 한국 경제가 이제는 새로운 생존 방식을 모색해야 하는 이유다.
한국이 경쟁력을 잃어가는 이유
한국의 수출 구조는 극도로 집중적이다. 반도체 한 품목이 전체 수출의 약 18~20%를 차지하며, 그 외 자동차·배터리·디스플레이·석유화학 등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다. 이는 “한 줄로 선 구조(one-line structure)”다. 어느 한 분야가 흔들리면 국가 전체가 휘청거리는 불안한 형태다.
게다가 한국 기업들은 오랫동안 ‘하청형 기술 모델’에 머물러 있었다. 핵심 기술은 미국, 일본, 유럽이 쥐고 있고, 한국은 이를 빠르게 흡수·응용해 효율화로 승부해 왔다. 그러나 이제 그 모델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기술이 민주화되고, 인공지능·양자컴퓨팅·바이오테크처럼 지식집약적 산업으로 중심축이 이동하면서, ‘추격자’가 아니라 ‘창조자’가 되어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한국이 반드시 강화해야 할 세 가지 핵심 분야
① 첨단 기술자립 — 반도체, AI, 양자, 바이오의 삼각축
반도체는 여전히 한국의 생명선이지만, 미국의 ‘공급망 동맹’ 구상 안에서 한국은 기술 주도권이 아니라 생산기지 역할로 밀려날 위험이 있다. 이에 대한 해법은 AI 반도체(뉴로모픽 칩), 양자컴퓨팅 알고리즘, 차세대 바이오칩 같은 차세대 융합 영역에서 독자적 기술을 확보하는 것이다.
② 그린테크와 에너지 자립
탄소중립, 재생에너지, 수소 경제 등은 이제 단순한 환경 문제가 아니라 산업 주권의 문제다. 한국은 여전히 에너지 수입 의존도가 90%를 넘는다. 태양광, 원전, 수소, 이 세 축에서의 국가적 R&D 투자와 표준화 전략이 시급하다.
③ 디지털 사회혁신 인프라
기술만으로는 경제가 돌아가지 않는다. 사회 전체가 디지털 기반 위에 서야 한다. 행정, 교육, 금융, 의료, 국방까지 모두 데이터 기반의 효율적 의사결정 체계를 갖추어야 한다. 이것은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디지털 문화혁신”의 문제다.
문제의 뿌리 — 제도의 경직성과 사회의 리스크 회피
한국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육열을 갖고 있지만, 동시에 가장 낮은 수준의 창업률과 높은 실패 공포를 지닌 사회다. 혁신은 리스크를 감수하는 문화에서 나온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여전히 ‘안정된 직장’, ‘확실한 답’, ‘틀리지 않는 선택’을 강요한다. 또한 정부의 연구개발 지원은 여전히 관료적 구조에 묶여 있고, 기업은 단기 이익 중심 경영에 치우쳐 있다. 이 두 가지가 맞물리면서, 장기적 기술 축적과 산업생태계의 지속가능성이 무너지고 있다.
정부, 기업, 사회, 개인의 역할
▪ 정부 — 규제의 국가에서 전략의 국가로
정부는 기술·산업정책을 단순한 보조금이 아닌 국가 생태계 설계의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 즉, 규제 완화와 함께 기술 인재의 국제 순환, 창업 실패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공공 데이터 개방 등 혁신 인프라의 토대를 만들어야 한다.
▪ 기업 — 이익에서 비전으로
한국 기업은 이제 ‘팔아서 버는 기업’이 아니라 ‘만들어서 바꾸는 기업’으로 진화해야 한다. 기술 내재화, 연구 중심 조직, 글로벌 파트너십의 다양화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단기 주가보다 장기 기술 축적을 중시하는 문화적 대전환이 절실하다.
▪ 사회 — 실패를 허용하는 사회로
새로운 시대의 경쟁력은 ‘두려움을 얼마나 줄일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창업 실패, 전직, 경력 단절을 사회적 낙오로 보지 않고, 도전의 과정으로 인정하는 문화적 포용력이 필요하다.
▪ 개인 — 창조적 사고와 평생학습의 내면화
AI가 인간의 반복 노동을 대체하는 시대에, 인간의 경쟁력은 상상력과 통찰력, 그리고 협력 능력에서 나온다. 따라서 개인은 “직업인”이 아니라 “학습하는 존재”로 살아가야 한다. 지식을 소비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새롭게 조합하고 연결할 수 있는 힘이 미래를 결정한다.
결론 — 기술과 문화가 만날 때, 국가 경쟁력은 완성된다
한국은 지금 거대한 변곡점에 서 있다. 수출 중심 경제의 성공 신화가 끝난 자리에 새로운 생존 전략이 요구된다. 그 전략은 단순히 기술을 더 많이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기술과 문화가 조화롭게 맞물리는 국가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다. 정부의 전략, 기업의 철학, 사회의 포용, 개인의 창의 — 이 네 가지가 하나로 엮일 때, 비로소 한국은 다시 세계 속에서 새로운 길을 열 수 있다.
“수출의 시대는 끝나지 않았다. 다만 이제는 무엇을, 어떻게, 그리고 왜 수출할 것인가를 새롭게 묻는 시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