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의 철학자 『호세 오르테가 이 가세트』는 그의 저서 ‘대중의 반역’에서 급격히 부상하는 대중이 만들어낼 사회적, 정치적 위기를 통찰했다. 20세기 초반 유럽 사회 전반에 퍼진 대중화 물결을 주시한 결과 대중이 자율적 성찰과 비판적 사고를 결여한 채 스스로를 절대화하는 위험성을 경고했다.
신기하게도 그의 100년 전 통찰이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직면하고 있는 “과대민주주의” 현상을 정확히 예측하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정치, 사회,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다수 대중의 목소리가 ‘당연한 정당성’을 얻으려는 경향"은 그가 지적한 대중사회의 병리적 요소들을 환기시키고 있다.
대중은 “특별한 재능이나 소양보다는 평균적인 삶에 만족하는 다수”다. 개인 스스로 자기 삶의 목표와 가치 체계를 심도 깊게 고민하기보다는 편 가르기 사회가 제시하는 편의적, 표면적 기준에 맞춰 살아가는 태도에 맞닿아 있다. 한국에서는 이러한 태도가 정치, 사회, 문화 및 미디어 전반에 퍼져 있다. 개인의 개성보다는 ‘유행’을 따르려는 심리가 더욱 자극받고, 주관적 문제의식을 지닌 소수의 목소리보다는 내가 속하는 단체의 다수가 선호하는 콘텐츠가 훨씬 쉽게 주목받고 있다.
특히 오늘날 끼리끼리 팬덤문화가 미디어플랫폼, YouTube, SNS등의 발달로 정보를 공유하고 그 조직의 문화에 채색이 되어 대중의 간편한 정보에 의존한 감정적 호응만을 좇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사람들은 길고 복잡한 설교 대신 짧고 자극적인 자막이나 밈으로 이슈를 소비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그가 우려한 ‘깊이 있는 이해 없이도 곧바로 확신에 도달하는 태도”가 더욱 강화된다.
대중 사회의 또 다른 특징은 기존의 지식층이 구축해 온 권위와 전문성을 불신한다. 공공 의제에서 “자신들은 모두 알고 있으며, 어느 전문가나 지식인보다 옳다”라고 믿는 경향이 뚜렷해진다고 지적했다. 현재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지식인, 학계, 공공 기관, 방송국, 전문기자가 제공하는 정보가 일정 부문 신뢰를 받아왔지만, 최근에는 그것들에 대한 신뢰가 급격히 무너지고 오히려 근거가 미약한 유튜브 영상이나, 자극적인 음모론 게시글 하나로 전체 여론이 뒤집히는 경우를 흔히 볼 수 있다. 이는 최근의 각 기관들이 외부 세력(광고주, 해외 자본)에 의하여 공공성을 상실하거나 상업화되어 가는 경향으로 인하여 이런 현상들이 더욱 뚜렷해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전문가들은 자신의 분야에서 평생 연구해 온 경험을 통해 쌓아 온 지식 체계를 기반으로 복잡한 문제에 대한 합리적 해법을 일반적으로 제시해 왔다. 그러나 다수 대중은 ‘시간이 오래 걸리고 머리가 아픈’ 과정 대신에 ‘내가 보고 들은 것’ 혹은 ‘내가 속한 단체가 주장하는 것’이 더욱 공감하는 경향으로 바뀌고 있다. 이런 과정의 문제는 이해관계가 첨예하고 과학적 근거가 필요한 사안일수록 전문가의 의견이 배제되거나 묵살될 위험이 커진다는 것이다. 이는 사회의 합리적 발전을 가로막을 뿐 아니라, 특정 정치 세력이나 대중 단체에 의하여 악용되거나 왜곡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삶의 질이 보편적으로 향상되고, 일정 수준의 민주적 제도가 갖추어지면, 사람들은 더 나은 방향으로 스스로를 계발하거나 지성의 수준을 높이기보다는, 지금의 편안함이나 안락함에 안주하게 되며 무분별한 소비와 자극을 추구하기 쉽다. 이러한 태도가 정치 영역으로 이어질 때, 민주주의는 양적 확대만을 지향하는 ‘과대민주주의’로 전락할 위험을 맞게 된다.
한국에서 대중은 간단한 구호나 이슈에 빠르게 결집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구조가 형성되었다. 편향된 방송국, YouTube, SNS, 각종 커뮤니티, 댓글 창 등에서 나타나는 끼리끼리 여론의 위력은 놀라울 정도다. 특정 이슈에 대해 감정적으로 과열된 반응이 나오면, 정치인들은 “민심”이라는 명분 아래 즉각적으로 정책 방향을 선회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 ‘민심’이 충분한 토론이나 정보 검증을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고, 나아가 쉽게 변한다는 데 있다. “모든 것을 너무나 쉽게 확신하며, 곧 잊어버리는” 대중의 속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셈이다. 이는 방송국뿐만 아니라, YouTube, SNS 등 참여자의 양적인 수에 의하여 운영되는 사업화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 참여가 확대되는 것은 분명 민주주의 발전의 핵심 목표이자 가치다. 다만 대중 참여로 인하여 오히려 성숙한 시민 여론 형성과는 거리가 멀어지는 현상이 우려되는 것이다. 최근 한국에서는 지나친 편 가르기 현상으로 정치적 의사 표현이 사실적 근거나 이성적 판단보다는 “우리가 옳고 너희는 틀렸다”는 분열과 집단적 선동에 치우치는 경향이 날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
이는 사회 환경이 클릭 수를 우선하는 상업화 미디어들로 인하여 대중이 즉각적으로 반응할 수 있는 자극적 기사나 편파적 해설을 제공한다. SNS 알림이나 포털 실시간 검색어 등은 더 극단적인 여론을 부추긴다. 그 결과, 시민들이 의견을 나누며 함께 진실에 다가가는 공론이나, 합리적 토론의 장은 사라지고 소음으로 가득 찬 정쟁의 장으로 변질된다.
그는 이런 현상을 “대중 스스로가 자기 이해에 근거하지 않고, 끼리끼리 단체의 부정확한 확신에 기대어 행동한다”라고 묘사했다. 또한 이러한 대중이 권력을 쥐게 될수록, 공동체의 합의와 균형이 위협받게 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민주주의 역시 현재 그러한 도전에 직면했다고 볼 수 있다.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그렇다면 과대민주주의로 치닫는 대중 사회의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그는 ‘엘리트’가 제 역할을 회복하고, 대중에게 건강한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지성인’이나 ‘전문가 집단’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정치인, 공공기관, 언론인, 교육자, 문화예술인 등 다양한 영역의 ‘의제 설정자(agenda setter)’가 공적 책임 의식을 갖고 참여해야 한다는 뜻이다.
첫째, 지식인과 전문가 그룹은 과학적 근거와 심층적 분석을 바탕으로 문제를 해설하는 데 더욱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대중의 요구에 맞춰 지나치게 단순화된 메시지만을 전달할 것이 아니라, 다소 어려운 내용이라도 공공담론을 풍성히 하고 정확성을 높이는 방식으로 기여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미 상당부문 전문가들이 정치 편향적으로 오염이 되어 있어 우려가 크다.
둘째, 언론과 미디어는 자극적 클릭 수 경쟁 대신 ‘진실과 사실’을 중시하는 보도 행태를 되찾아야 한다. 대중이 쉽게 소화할 수 있는 형식도 필요하지만, 중요한 사안만큼은 분량과 시간을 들여 해설하고 토론하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 언론은 이미 좌우파로 구분이 될 만큼 편파적 방송을 하고, 특정 노조가 점령하고 외국 자본이 침투하여 과연 공공성을 객관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지 의문이 크다.
셋째, 교육 현장에서 시민 교육과 미디어 리서치가 강화되어야 한다. 정보의 홍수 시대에 학생들이 제대로 된 정보를 분별하고 비판적으로 사고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한국 민주주의의 미래를 위한 필수 투자다. 그런데 이미 편향 노조가 장악하고 있어 객관성에 의문이 크다.
넷째, 정치권은 ‘인기 영합’보다 ‘공익 추구’가 우선해야 한다. 대중이 원하는 것만 즉각적으로 수행하기보다, 장기적인 국가 발전 방향과 가치를 고려해 정책을 제시하고, 그 정당성을 대중에게 끊임없이 설명해야 한다. 더 이상의 포퓰리즘으로 표를 구걸하지 않도록 국민이 깨어나야 한다. 포플러쯤 정책은 결국 미래 세대에게 남겨진 부채인 것이다.
한국 사회에 주는 우려
대중이 권력을 쥐었을 때, 그것이 반드시 ‘더 나은 사회’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역설은 역사를 통해 수도 없이 증명되었다. 포퓰리즘은 유권자 표를 얻을 수는 있어도 국가 경쟁력을 얻는 데는 별 효과가 없다.
민주주의가 다수의 뜻을 반영한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소중하지만 "제대로 된 숙의나 성찰 없이 대중의 순간적 열망에 휘둘리는 정치", 즉 ‘과대민주주의’는 공동체를 깊은 분열과 혼란으로 몰고 갈 가능성이 높다. 정치의 편 가르기 문제점이다.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려면 대중이 지식인을 통하여 배우고, 지식인들은 대중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라고 했다. 이는 단순히 지배층의 대중과의 위계질서를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전문성을 갖춘 이들이 책임감을 가지고 방향을 제시하고 대중은 비판적이고 주체적인 태도로 함께 협력한다’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안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사회는 각 공공기관의 정치적 편향성을 배제해야 하며 특히 언론기관은 공정과 공익성을 강화하기 위하여 오로지 ‘진실과 사실’만을 토대로 정치적 편향성과 자본으로부터 종속되지 않은 중립적 운영이 되어야 하며 교육기관 등도 전교조 등 특정 세력으로부터 독립된 중립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리고 대중들은 특정 세력의 끼리끼리 문화의 틀 속에서의 안주에서 벗어나, 다양한 정보를 취득하고 자신의 성찰과 통찰로, 사회적 잣대나 타인의 시선에 관계없이, 독립적 자아실현이 되도록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