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의 연못 위에 비친 시대의 그림자
— 마음의 연못 위에 비친 시대의 그림자
저녁 바람이 천천히 저물어가는 산골의 연못처럼,
요즘 세상을 바라보면 마음 한편이 잔잔히 흔들립니다.
TV 프로그램 "나는 솔로"의 한 장면도
겉으로는 소소한 대화에 불과하지만
그 말끝에 맺힌 한 줄기 바람이
우리 시대의 그림자를 슬며시 스치고 지나갑니다.
마주 앉은 두 남녀.
밥 한 숟가락을 들기 전,
여성이 낮은 음성으로 조심스레 말합니다.
“저는… 그냥 평범하게 살고 싶어요.
결혼하고, 아이도 낳고…
아주 평범하게요.”
그 말은
등불 아래 놓인 쪽지처럼 작고 담박하지만
그 안에는 이 시대가 잃어버린 커다란 진실이 숨어 있습니다.
나무 아래서 햇빛을 쬐듯,
그저 편안히 흘러가야 할 삶이
이제는 꿈이라는 이름을 달아야 하는 세상.
남자는 한참을 머뭇거리다 조용히 대답합니다.
“문제는…
그 ‘평범함’이 너무 어렵다는 것이죠.”
그 짧은 문장은 마치
연못 위에 떨어진 작은 돌멩이 같아
그 주변으로 잔물결이 길게 퍼져 나갑니다.
평범함을 잃어버린 마음의 풍경
평범한 삶이란 본디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었습니다.
아침에 눈 뜨면 따뜻한 밥이 있고,
저녁이면 등불 아래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고,
아이의 웃음소리가 풍경이 되어 흐르는 삶.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 세상은 사람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은 하늘 높이 솟아올라
손이 닿지 않는 산정이 되었고,
아이 한 명을 키우는 일은
마치 황야를 홀로 건너는 모험처럼 버겁게 느껴지며,
일과 삶을 함께 지키는 일은
바람을 손으로 움켜쥐려는 시도처럼 어렵습니다.
세상은 사람에게
너무 많은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부드럽게 살아가려면
딱딱한 현실을 먼저 견뎌야 하는 시대.
어쩌면 우리는
삶이 아니라 삶의 부담을 짊어지고
산을 오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삶을 잃어버린 시대에 관하여
옛 선사들은 말했습니다.
“사람이 바빠진 것은
세상이 바빠진 것이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 바빠졌기 때문이다.”
우리 시대의 ‘평범함의 상실’은
바로 이 마음의 혼란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요.
사람은 본디 느린 존재입니다.
꽃이 피고 지듯,
해가 뜨고 지듯,
삶은 제때 피어나고 제때 쉬어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자연의 호흡을 잃어버렸습니다.
평범한 삶이란
따로 노력해야 얻어지는 특별한 성취가 아니라
그저 마음이 고요할 때
저절로 몸에 내려앉는 일상이었음을
잊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선(禪)의 세계에서 말하는 ‘평상심(平常心)’이란
특별함이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삶’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평상심을
가장 얻기 어려운 가치를 만들어 버렸습니다.
어찌 보면
평범함은 사회가 빼앗은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놓쳐버린 것인지도 모릅니다.
평범함 속에 깃든 가장 깊은 행복
홀로 숲길을 걷다 멈춰 서면
가장 인상적인 것은
크고 특별한 나무가 아니라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잔가지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입니다.
삶도 그렇습니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은
높이 오른 날보다
누군가와 함께 저녁을 먹던 시간이고,
아이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걷던 순간이며,
하루 끝에 “수고했어”라고 말해주던 목소리입니다.
평범함은 사소함이 아니라
사람이 사람답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아주 본질적인 기반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그 가장 소중한 것을
가장 먼 곳에 두고 살아갑니다.
평범함이 다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며
그 두 남녀의 대화는
하나의 시대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
작은 물결을 남기고 돌아갑니다.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말이
이젠 꿈이 아니라
그냥 마음의 속삭임으로 들릴 수 있는 날.
삶이 우리에게 지나친 무게를 요구하지 않고,
사람이 사람 곁에 서는 일이
다시 자연스러운 일이 되는 날.
그날을 우리는
기다리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평범함이 꿈이 되지 않는 시대.
평상심이 다시 삶의 중심이 되는 시대.
그 시대는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마음을 조금 덜어내고
서로의 삶을 조금 더 가볍게 해 줄 때
슬며시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오늘도 조용히 되뇌어 봅니다.
평범함은 잃어버린 것이 아니라,
잠시 우리가 등 돌린 것일 뿐이라고.
그리고 언젠가
평범함이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오는 날,
우리는 잊고 지냈던
삶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다시 맞이하게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