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한 말보다는 제도가 필요하다

분노의 언어를 넘어, 책임의 문명으로

by 엠에스

<강한 말보다는 제도가 필요하다>

— 분노의 언어를 넘어, 책임의 문명으로

최근 대통령의 발언을 둘러싼 논란이 잦다. 쿠팡 물류 현장의 사고를 언급하며 “기업이 망한다는 생각이 들게 해야 한다”는 취지의 발언, 그리고 건설 현장의 산업재해와 관련해 특정 기업을 지목하며 “사망 사고가 나면 주가가 폭락하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언급은 사회적 파장을 불러왔다. 반복되는 산업재해, 기업의 안전 불감증, 책임 회피에 분노해 온 국민 정서를 자극했다는 점에서 공감 또한 적지 않다.

국가가 비극 앞에서 침묵한다면 그것은 방조다. 그러나 국가는 분노만으로 말해서도 안 된다. 반복되는 산업재해와 대형 기업의 무책임 앞에서 대통령의 강한 발언이 나오는 것은 자연스럽다.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기업은 없다”는 선언은 도덕적으로도, 정치적으로도 정당하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국가는 언제 분노를 거두고 제도로 말해야 하는가.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분노와 폭력을 구분했다. 분노는 부당함에 대한 인간적 반응이지만, 폭력은 사고의 중단에서 비롯된다고 보았다. 국가 권력이 분노의 언어에 머무를 때, 정치는 도덕적 판단에서 제도적 책임으로 나아가지 못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사회적 공분을 대변할 수는 있어도, 그 자체가 해법이 될 수 없는 이유다.


말의 정치, 그리고 시장이 읽는 신호

대통령이 전하고자 한 핵심 메시지는 분명하다. “사람의 생명보다 중요한 기업은 없다.”

이 명제는 민주국가에서 더 이상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특히 건설·물류·플랫폼 산업에서 반복되는 산재 사망, 그리고 대형 기업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는 개인의 부주의가 아니라 구조적 문제에 가깝다. 위험은 하청으로 전가되고, 책임은 법인 뒤에 숨고, 처벌은 비용 처리된다. 이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문제의식은 정당하다.

그러나 문제는 의도보다 언어의 파장이다. 대통령의 말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국가의 신호로 작동한다. “망하게 해야 한다”, “주가가 폭락해야 한다”는 표현은 분노의 정서에는 부합할지 몰라도, 정책 언어로는 과잉이다. 시장은 이를 규범적 선언이 아니라 정치적 개입의 전조로 읽는다. 그 순간 메시지는 ‘안전 강화’가 아니라 ‘기업 응징’으로 오해될 위험을 안는다.

기업은 단순한 이윤 기계가 아니다. 수많은 노동자와 협력업체, 연금 투자자, 지역경제가 얽힌 복합 생태계다. 대통령의 한마디는 주가와 투자 심리를 흔들고, 고용과 산업 전반에 연쇄 반응을 일으킨다. 그래서 민주국가에서 지도자의 언어는 언제나 절제와 설계의 언어여야 한다.

역사는 이 지점에서 반복적으로 경고를 보낸다. 1970년대 영국은 대기업과 노조를 향한 강경한 정치적 언사가 난무하던 시기를 거쳤다. 결과는 산업 경쟁력 약화와 만성적 투자 위축이었다. 반면, 독일은 산업재해와 기업 책임 문제를 ‘도덕적 규탄’이 아니라 공동결정제도, 산업안전 규범, 보험 시스템으로 풀었다. 독일 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전 기준을 유지하면서도 경쟁력을 잃지 않았다. 차이는 분명했다. 언어의 강도가 아니라 제도의 설계였다.

책임이 없는 처벌은 비용이 된다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이유는 기업이 ‘악해서’가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합리적으로 계산했을 때 안전을 희생해도 손해가 아니기 때문이다. 경제학자 게리 베커가 말했듯, 인간은 도덕 이전에 선택을 계산한다. 벌금이 이익보다 작으면, 그것은 처벌이 아니라 비용이다.

한국 사회가 직면한 문제도 유사하다. 법은 존재하지만 책임은 조직 내부에서 증발한다. 사고는 현장의 과실이 되고, 경영 판단은 추상화된다. 이 구조를 바꾸지 않는 한, 아무리 강한 말도 현장을 바꾸지 못한다.

문제의 핵심은 발언이 아니라 제도다

산업재해가 반복되는 이유는 처벌이 없어서가 아니다. 법은 존재한다. 문제는 책임이 분산되고, 결정권자에게 실질적 부담이 가지 않는 구조에 있다. 최고 의사결정자는 안전 투자 대신 비용 절감을 선택해도 개인적으로 잃는 것이 거의 없다. 개인정보 유출 또한 마찬가지다. 과징금은 매출 대비 미미하고, 사고는 “관리 부서의 실수”로 정리된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왜 말은 세지만, 기업의 행동은 바뀌지 않는가?” 답은 단순하다. 말은 감정을 움직이지만, 제도만이 선택을 바꾼다. 말이 아니라 시스템으로 책임을 묻는 방법, 해법은 이미 알려져 있다. 문제는 실행의 정교함이다.


미국에서도 2010년 딥워터 호라이즌 원유 유출 사고 이후, 단순한 과징금 강화만으로는 기업 행태가 바뀌지 않는다는 반성이 나왔다. 이후 강조된 것은 최고경영진의 책임, 보험료와 금융 조건의 변화, 그리고 장기적 평판 리스크였다. 그 결과 안전 투자는 ‘착한 행동’이 아니라 기업 생존 전략이 되었다.

첫째, 중대재해 발생 시 경영진 책임의 실질화다.

형식적 처벌이 아니라, 반복 발생 기업의 최고 의사결정자에게 민·형사 책임이 예측 가능하게 귀속되도록 해야 한다. 여기에 공공입찰 제한, 정책금융·보증 접근 제한 등 제도적 불이익이 결합되어야 한다.

둘째, 안전과 보안에 대한 명확한 인센티브 구조다.

산업안전 투자, 정보보안 강화에 대해 세제 혜택, 보험료 인하, 금융 우대 등 눈에 보이는 보상을 제공해야 한다. 처벌만으로는 행동이 바뀌지 않는다. 합리적 기업은 비용과 이익을 비교해 움직인다.

셋째, 시장의 자율 규율을 활용한 구조적 압박이다.

ESG 공시 강화, 연기금의 스튜어드십 코드, 보험·금융 조건 연계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이는 시장을 ‘도덕 교사’가 아니라 규율 장치로 활용하는 방식이다. 안전하지 않은 기업의 자본 조달 비용이 높아지고, 반복 사고 기업이 장기 투자자에게 외면받을 때, 그 주가는 시장의 판단으로 움직인다.

말 대신 구조로 주가를 움직여야 한다

대통령의 발언이 겨냥한 지점—“주가가 반응해야 한다”—은 사실 옳다. 그러나 그것은 정치적 압박이 아니라 제도적 메커니즘으로 이뤄져야 한다.

프랑스의 ‘기업의 주의의무법’, 네덜란드의 산업안전 보험 차등제, 북유럽 국가들의 반복 사고 기업 공공조달 제한은 모두 같은 철학에서 출발한다. 국가는 심판이 아니라 경기 규칙을 만드는 존재라는 인식이다.

강한 국가는 감정을 통제할 수 있는 국가다

정치철학자 토크빌은 민주주의의 위험으로 ‘다수의 감정적 압력’을 경고했다. 민주주의는 분노에 쉽게 동조하지만, 국가 운영은 냉정해야 한다. 지도자의 언어가 감정의 파도를 키울수록, 제도는 흔들린다.

강한 국가는 분노를 억누르는 국가가 아니다. 강한 국가는 분노를 제도로 번역할 수 있는 국가다.

기업을 살릴지 죽일지는 정치인의 말이 아니라, 법과 시장의 공정한 규칙이 결정해야 한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면서도, 기업이 예측 가능한 환경에서 책임 있게 혁신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그 복잡한 균형을 설계하는 일이 국가의 역할이다.

말은 하루를 지배하지만, 제도는 시대를 지배한다. 우리가 필요한 것은 더 센 언어가 아니라, 더 오래 작동하는 시스템적 제도이다. 그것이 문명국가가 분노를 다루는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