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주권과 국가 경쟁력에 대한 불편한 질문
― 기술 주권과 국가 경쟁력에 대한 불편한 질문
현대차그룹 정의선 회장이 자율주행 기술과 관련해 “중국 기업의 기술을 도입하자”는 내부 보고를 강하게 질책했다는 일화는, 단순한 경영 판단의 문제가 아니다. 설령 그 표현이 다소 과장되었을지라도, 그 메시지만은 분명하다.
핵심 기술을 외부에 의존하는 순간, 기업은 물론 국가의 미래까지 외주화 된다는 경고다.
1조 5천억 원. 웬만한 국가 연구개발 예산에 맞먹는 금액이다. 그 돈을 투입하고도 “외부 기술을 사다 쓰자”는 결론에 이르렀다면, 이는 실패한 프로젝트를 넘어 전략적 사고의 실패에 가깝다. 정의선의 반응이 분노로 읽혔다면, 그것은 감정의 폭발이 아니라 기술 주권을 잃는 것에 대한 본능적 거부였을 것이다.
기술은 상품이 아니라 ‘권력’이다
기술은 언제나 중립적이지 않았다. 특히 인공지능, 자율주행, 반도체, 배터리 같은 핵심 기술은 더 이상 단순한 상품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며, 질서이며, 종속과 자율을 가르는 기준선이다.
당장 중국 기업의 기술을 도입하면 개발 비용을 줄일 수 있다. 출시 속도도 빨라진다. 주가는 방어될지 모른다. 그러나 그 순간 기업의 정체성은 바뀐다. 기술을 설계하는 주체에서, 기술을 빌려 쓰는 하청업체로.
소프트웨어의 뇌를 외주 준 하드웨어 기업은, 결국 가격 경쟁 외에는 남는 것이 없다. 애플과 삼성, 엔비디아와 단순 조립업체의 차이가 바로 여기에서 갈린다. 정의선이 택한 길은 불편하고 고통스럽지만, 그 선택은 명확하다. “느려도, 비싸도, 실패하더라도 핵심은 우리가 쥔다.”
이 결단에서 사람들은 자연스레 그의 할아버지를 떠올린다. 정주영이 불모지에서 조선소를 짓겠다고 나섰을 때, 그 역시 “비효율”과 “무모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무모함이 없었다면 오늘의 한국 조선업도 없었다. 불도저 DNA는 시대에 맞게 업데이트된다. 과거엔 철과 콘크리트였다면, 지금은 코드와 알고리즘이다.
기업은 버티는데, 국가는 무엇을 선택하는가
이 대목에서 불편한 질문이 생긴다. 기업은 자기 돈을 태워가며 기술 독립을 외치는데, 국가는 과연 같은 방향을 보고 있는가.
외교는 현실이다. 실리도 중요하다. 그러나 실리와 종속은 다르다. 실리는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만, 종속은 선택지를 제거한다. 한쪽에서는 “남의 기술로 연명하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겠다”라고 판을 엎는데, 다른 한쪽에서는 기술·공급망·산업 전략에서 명확한 원칙 없이 눈치 외교를 반복하는 모습이 겹쳐 보일 때, 국민이 느끼는 혼란은 커질 수밖에 없다.
국격은 말로 세워지지 않는다. 셀카와 수사로 유지되지도 않는다. 국격은 산업 구조와 기술 자립도, 그리고 장기 전략에서 드러난다.
국가 경쟁력은 ‘편한 선택’을 거부하는 데서 나온다
국가 경쟁력은 복지 지출이나 단기 경기 부양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생산성의 문제이며, 더 정확히 말하면 기술을 설계할 수 있는 능력의 문제다.
진짜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국가는 다음 질문에 답해야 한다.
● 우리는 어떤 기술을 끝까지 가져갈 것인가
● 어떤 영역에서는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국내 생태계를 유지할 것인가
● 인재를 단기 성과 평가로 소모할 것인가, 10년 단위로 키울 것인가
● 정치 주기와 산업 주기를 분리할 용기가 있는가
기업 혼자서는 이 싸움을 완주할 수 없다. 정부는 ‘지원자’가 아니라 공동 설계자가 되어야 한다. R&D 예산은 나눠주기식이 아니라 집중형 전략 투자로 전환되어야 하고, 규제는 관리의 도구가 아니라 기술 실험을 허용하는 안전망이 되어야 한다. 무엇보다 정치권은 산업 전략을 이념의 도구로 소비하지 말아야 한다.
쉽게 가는 길은 늘 내리막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사유하지 않는 복종이 전체주의를 낳는다”라고 했다. 이는 정치만의 문제가 아니다. 기술과 산업에서도 마찬가지다. 남의 기술을 아무 생각 없이 가져다 쓰는 순간, 우리는 편해질 수는 있어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정의선의 선택이 항상 옳을 수는 없다. 실패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다. 그는 ‘나라의 미래를 남의 손에 맡길 것인가’라는 질문 앞에서, 가장 불편한 답을 선택했다.
기업가는 뼈를 깎아 독립을 꿈꾸는데,
정치가 그 고통을 함께 짊어질 각오가 없다면,
그 나라는 결국 기업보다 먼저 종속된다.
국가 경쟁력은 애국 구호에서 나오지 않는다.
불편한 선택을 감내하는 구조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선택은, 늘 쉽지 않은 쪽에 있다.
그래서 우리가 국산품에 손길이 가는 이유이다.
<현대자동차가 ‘사람’으로 답을 내놓았다>
— 자율주행 경쟁력과 조직 전환의 교차점
현대자동차그룹이 2026년 초 테슬라·엔비디아 출신의 자율주행 기술 리더 박민우 박사(48)를 그룹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 겸 대표·사장으로 영입한 결정은 단순한 인사가 아니다. 이는 현대차가 제조 중심의 과거에서 벗어나 소프트웨어·AI 중심의 미래로 방향을 전환하겠다는 명백한 신호다.
박민우 박사: 기술력과 실전 경험을 겸비한 인재
박민우 박사는 테슬라의 자율주행 소프트웨어 개발 초기 멤버로서 카메라 기반 ‘Tesla Vision’ 시스템 개발에 핵심 역할을 했고, 이후 엔비디아에서 자율주행 소프트웨어를 양산·상용화 단계까지 끌어올린 실전형 기술 리더로 인정받았다.
그의 경력은 오늘날 산업 기술 전환의 핵심인 연구와 양산, 시장 실행 능력을 하나로 잇는 다리다. 기술이 실험실의 이론과 현실 시장의 제품 사이 어딘가에 멈춰 있는 것이 아니라, 고객이 실제로 경험할 수 있는 제품과 서비스로 이어질 수 있어야 한다는 점을 증명한다.
정의선 회장의 선택: 전략적 전환의 무게
정의선 회장은 그동안 “소프트웨어 중심의 차량(SDV: Software-Defined Vehicle)으로의 전환”을 강조해 왔다. 그러나 내부적으로는 하드웨어 중심 문화와 연공서열 중심 조직이 변화의 속도를 제약했다. 박민우 사장의 영입은 조직 문화 전환과 인재 구조 혁신 의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결정이다.
이는 단지 나이·직급 파격이 아니라, 능력·실행력·미래 경쟁력 중심의 새 인사 기준을 세우겠다는 선언과 같다. 이는 현대차가 직면한 복잡계적 문제 — 과거의 성공 공식으로는 미래를 열기 어렵다는 사실 — 에 대한 전략적 응답이다.
기술은 방향과 조직에서 완성된다
박민우 사장이 공공연히 말한 것처럼, 기술보다 방향이 중요하다는 지적은 자율주행 산업의 본질을 정확히 짚는다.
자율주행 기술 경쟁은 더 이상 단순히 알고리즘 성능 대결이 아니다. 이는 사회적 책임, 안전 기준, 글로벌 규제·신뢰의 문제와 결합된 매우 복합적인 “실세계 지능” 문제로 확장되었다. 기술 주도 국가들의 경쟁 속에서 단순히 속도만 빠른 기업이 승리하지 않는다. 속도와 신뢰 사이의 균형, 그리고 실증과 양산 사이의 체계적 실행력이 결정적이다.
박민우 사장 자신도 “한 사람의 리더로 모든 것을 바꿀 수 없다”면서, 조직 전체의 조화와 실천 역량을 강조했다. 이는 기술결정론을 넘어서 조직·문화·철학이 기술의 실현을 완성한다는 통찰에 닿는다.
현대차의 전략적 기회와 위험
모빌리티 산업은 이제 자동차라는 하드웨어를 넘어 ‘서비스·데이터·AI 생태계’ 경쟁으로 진화하고 있다. 과거 하드웨어 품질 중심의 강점은 여전히 유효하지만, 미래 경쟁은 소프트웨어 플랫폼, 데이터 네트워크, AI 신뢰성이 무대가 된다.
현대차가 기존의 ‘품질 DNA’와 ‘양산 경쟁력’을 갖고 있다는 평가는 유효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글로벌 소프트웨어 주도 경쟁에서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 따라서 현대차는 다음 세 가지 방향에서 전략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
● 자율주행을 단순 옵션이 아니라 브랜드 정체성으로 통합: 자동차는 이제 기계가 아니라 AI가 탑재된 이동성 플랫폼이다.
● 소프트웨어 인재를 조직 중심으로 포진시키는 구조 혁신: 조직 경계와 직급 중심의 계층이 아니라 지식·기술·실행 중심의 유연한 조직 구조가 필요하다.
● 테슬라를 모방하는 속도 경쟁을 넘어서, 안전·책임·글로벌 표준으로 승부: 기술의 윤리·책임·사회적 신뢰는 브랜드 존속의 조건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전략적 원칙은 단기적인 기술 경쟁을 넘어, 현대차가 글로벌 생태계에서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반이 될 것이다.
철학적 성찰: 기술·조직·시대정신
기술혁신은 종종 단순히 더 좋은 제품을 만드는 과정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철학자 토마스 쿤이 말했듯이, 패러다임 전환은 기존 질서와 사고를 근본에서 흔드는 순간이다. 이때 필요한 것은 단지 기술력이 아니라 새로운 방식의 사고, 조직, 책임의 틀이며, 그 중심에는 항상 “사람”이 있다.
박민우 사장의 영입은 그런 관점에서 읽을 때 현대차가 인간 중심의 기술 전환을 선언한 순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기술은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운용하고 방향을 정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와 합의, 문화이다.
결론
박민우 사장의 영입이 개인의 성공 신화로 끝날지, 한국 자동차 산업의 전환점이 될지는 이제 현대차의 조직·문화·전략 실행력에 달려 있다. 정의선 회장이 던진 이 승부수는, 기술 경쟁의 장을 넘어서 조직 문화와 시대정신의 전환을 요구하는 도전이다.
세계는 이제 한국 “자동차”가 아니라 한국 “소프트웨어 자동차 시대”를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