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와 가족 관계에서 반복되는 상처의 구조
― 부부와 가족 관계에서 반복되는 상처의 구조
사람은 낯선 관계에서는 어느 정도 변한다. 회사에서는 참다가, 사회에서는 조심하다가, 집에 돌아오는 순간 다시 예전 모습으로 돌아온다. 그래서 우리는 가장 많이 이렇게 말한다.
“밖에서는 멀쩡한데, 집에서만 그래.”
“남들한테는 잘하는데, 가족한테만 이래.”
“왜 나한테만 저러는지 모르겠어.”
부부와 가족 관계에서 변화가 가장 어려운 이유는 단순하다. 그 관계가 가장 오래된 생존의 무대이기 때문이다.
가족은 사랑의 공간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성격과 반응이 처음 만들어진 장소다. 부부는 그 오래된 반응이 다시 재현되는 가장 친밀한 관계다.
우리는 흔히 부부 갈등을 ‘성격 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성격보다 훨씬 오래된 정서적 생존 전략의 충돌에 가깝다.
말하면 혼났던 사람은, 배우자의 침묵 앞에서 더 불안해진다. 감정을 드러내면 무시당했던 사람은, 배우자의 무심함을 공격으로 느낀다. 버텨야 사랑받았던 사람은, 상대의 요구를 거절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소진시킨다.
이 반응들은 결혼 이후에 새로 생긴 것이 아니다. 이미 몸과 신경계에 각인된, 오래된 반사 작용이다.
그래서 부부 상담 현장에서 이런 장면은 반복된다. 한 사람은 말한다. “왜 그때 그렇게 말했어?” 다른 사람은 답한다. “그럴 의도는 아니었어.”
두 사람 모두 어느 정도는 진실을 말하고 있다. 문제는, 이 관계에서 작동하는 반응이 의도의 영역이 아니라 자동 반응의 영역이라는 점이다.
신경과학적으로 보면, 가까운 관계일수록 우리의 뇌는 더 빠르게 위협을 감지한다. 배우자의 표정, 말투, 침묵은 과거의 기억을 자극하고, 이성적 판단보다 먼저 몸이 반응한다. 그래서 부부는 이해하면서도 같은 싸움을 반복한다.
“다음엔 안 그러겠다고 했잖아.”
“알면서 왜 또 그래?”
그러나 뇌는 이렇게 판단한다. “이 방식은 아팠지만, 그래도 관계를 유지하게 해 줬다.”
그래서 변화는 쉽게 일어나지 않는다.
또 하나의 이유는 더 현실적이다. 부부와 가족은 변하지 않아도 관계가 유지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 상대가 참아주고,
● 상대가 먼저 사과하고,
● 상대가 상황을 정리해 주면,
굳이 바뀌지 않아도 일상은 계속된다. 그래서 많은 가족 관계는 사실상 이런 구조로 굳어진다.
● 한 사람은 계속 조정하는 사람,
● 다른 한 사람은 조정받는 사람.
이 구조에서 문제는 ‘누가 더 나쁜가’가 아니다. 누가 계속 관계를 떠받치고 있는가이다.
그래서 “왜 우리 남편(아내)은 안 바뀌지?”라는 질문은 사실 이렇게 바뀌어야 한다.
“이 사람이 안 바뀌어도, 우리 관계는 어떻게 유지되고 있는가?”
변화는 사랑에서 시작되지 않는다. 아이를 위해서, 가정을 위해서라는 명분에서도 잘 시작되지 않는다.
변화는 기존 방식이 더 이상 통하지 않을 때 시작된다.
● 침묵이 더 이상 상황을 덮어주지 않을 때,
● 분노가 관계를 통제하지 못할 때,
● 희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지지 않을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은 다른 방식을 고민한다.
중요한 사실이 하나 있다. 우리는 배우자나 가족을 바꿀 수 없다. 그러나 그들이 나를 대하는 방식에 반응하는 나의 태도는 바꿀 수 있다.
계속 설명하고, 설득하고, 이해시키려 할수록 관계의 힘은 상대에게 더 기울어진다. 반대로 “이 방식에는 더 이상 협조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관계의 구조 자체를 흔든다.
그래서 부부와 가족 관계에서 진짜 변화는 상대를 향한 질문이 아니라, 나를 향한 질문에서 시작된다.
“왜 저 사람은 저럴까?”가 아니라
“나는 왜 이 관계에서 늘 같은 역할을 맡고 있을까?”
이 질문을 하기 시작한 순간, 비록 상대가 당장 바뀌지 않더라도 관계의 역학은 이미 달라지고 있다.
사람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특히 가족 안에서는 더 그렇다.
그러나 내가 나를 보호하는 방식, 내가 관계에 참여하는 방식은 지금 이 순간에도 바꿀 수 있다.
그리고 부부와 가족 관계에서 그 작은 변화 하나가 가장 큰 균열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