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요 속에서 자라는 또 다른 결핍
― 풍요 속에서 자라는 또 다른 결핍
인류 역사에서 인간은 오랫동안 가난과 결핍 속에서 살아왔다. 먹을 것이 부족했고, 집은 불안정했으며, 삶은 늘 자연과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그런 시대에 부유함은 단순한 사치가 아니라 생존의 안전망이었다. 더 많은 곡식을 저장하고, 더 넓은 땅을 소유하며, 더 많은 재산을 축적하는 것은 곧 삶의 안정과 직결되었다. 그래서 인간의 마음속에는 아주 오래된 본능이 자리 잡았다.
“가능하면 더 확보하라.”
이 본능은 오랜 진화의 과정에서 형성된 생존 전략이었다. 문제는 오늘날의 세계가 과거와는 전혀 다른 환경이 되었다는 점이다. 현대 사회는 역사상 유례없는 물질적 풍요를 이루었지만, 인간의 욕망 구조는 여전히 결핍의 시대에 맞춰져 있다. 그 결과 우리는 충분히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더 가지려 한다.
이 역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인간 욕망의 구조를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비교가 만드는 끝없는 욕망
인간은 절대적인 기준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타인과의 비교 속에서 만족을 느끼거나 불만을 느낀다.
프랑스 사상가 René Girard은 인간 욕망의 특징을 “모방 욕망”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했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인간은 스스로 욕망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이 욕망하는 것을 따라 욕망한다.
누군가가 더 좋은 집을 가지면 그 집이 갑자기 더 매력적으로 보인다. 누군가가 더 높은 지위를 얻으면 그 지위가 더 중요해 보인다.
이렇게 욕망은 개인 내부에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관계 속에서 증폭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큰 부를 이루어도 곧 새로운 비교 대상이 등장한다. 어제의 성공은 오늘의 평범함이 되고, 오늘의 평범함은 내일의 부족함이 된다.
행복은 생각보다 빨리 익숙해진다
인간의 마음에는 또 하나의 특징이 있다. 행복과 만족에 빠르게 익숙해지는 성질이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쾌락의 적응” 혹은 “행복의 러닝머신”이라고 부른다. 이 개념을 연구한 심리학자 중 한 사람이 Daniel Kahneman이다.
사람은 새로운 차를 사거나, 더 넓은 집으로 이사하거나, 더 높은 연봉을 받게 되면 처음에는 큰 만족을 느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 만족은 점차 줄어든다. 결국 그것은 다시 일상의 일부가 되어 버린다.
그래서 인간은 다시 새로운 자극을 찾는다. 더 큰 집, 더 높은 지위, 더 많은 부. 마치 러닝머신 위를 달리는 것처럼 계속 움직이지만 실제로는 같은 자리에서 달리고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다.
부는 안전을 주지만 평온을 보장하지 않는다
물론 부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가난은 분명 인간에게 큰 고통을 준다. 기본적인 생활이 불안정하면 인간의 정신 역시 쉽게 흔들린다.
심리학자 Abraham Maslow가 설명한 인간 욕구 단계에서도 생리적 욕구와 안전 욕구가 먼저 충족되어야 더 높은 욕구를 추구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나 일정 수준 이상의 부가 확보되면 상황이 달라진다.
그 이후의 부는 생존을 위한 것이 아니라 상징적 의미를 갖기 시작한다. 부는 단순한 재산이 아니라 성공, 지위, 영향력, 그리고 인정의 상징이 된다. 이때부터 부는 삶을 안정시키는 도구라기보다 경쟁의 도구가 되기 쉽다.
인간이 원하는 것은 사실 부가 아니다
흥미로운 점은 사람들이 실제로 원하는 것이 단순한 돈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많은 경우 사람들은 돈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감정을 원한다.
● 안정감
● 자유
● 존중
● 자신감
● 의미
문제는 이런 것들이 반드시 돈으로만 얻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는 이 모든 것이 마치 돈으로 환산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사람들은 종종 내면의 공허를 물질적 성취로 채우려 한다.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 Viktor Frankl은 인간의 가장 깊은 동기를 “의미에 대한 의지”라고 설명했다. 인간은 단순히 행복하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의미 있는 삶을 살기 위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삶의 의미가 분명할 때 부는 삶을 돕는 도구가 되지만 삶의 의미가 희미할 때 부는 끝없는 추구의 대상이 된다.
풍요로운 삶과 풍성한 삶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등장한다. 풍요로운 삶과 풍성한 삶은 같은 것일까?
풍요로운 삶은 많은 것을 소유한 삶일 수 있다. 그러나 풍성한 삶은 다른 차원에 있다.
풍성한 삶은
● 깊은 관계가 있고
● 의미 있는 일이 있으며
● 현재의 순간을 느낄 수 있는 삶이다.
많이 가진 사람이 반드시 풍성하게 사는 것은 아니지만 풍성하게 사는 사람은 대개 이미 충분히 가진 사람처럼 보인다.
만족은 소유에서 오는 것이 아니다
결국 인간이 부자가 되어도 만족하지 못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욕망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소유는 끝이 없다. 그러나 존재는 깊어질 수 있다. 우리가 끊임없이 더 가지려 하는 이유는 사실 더 많은 것을 원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깊이 살고 싶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삶의 지혜는 이렇게 말한다. 많이 가지는 삶보다 깊이 존재하는 삶이 더 풍요롭다고. 그리고 어쩌면 진짜 부자는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이미 충분하다고 느낄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