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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을 너무 믿어도 또 안 믿어도 안 된다.

관계의 한계선을 설정해라

by 엠에스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건 바로 사람?

이념이나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수백만 명을 아무렇지 않게 학살하는 동물, 비행기를 몰고 도시 한복판의 빌딩으로 돌진하여 하루아침에 수천 명의사상자를 내는 동물, 층간 소음 문제로 살인까지 저지르는 동물, 유산과 보험금을 타기 위해 친구나 가족의 등에 칼을 꽂을 수 있는 동물, 제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남의 것을 탐내는 탐욕스러운 동물, 남들이 고통스러워하든 말든 나만 아니면 된다고 생각하는 이기적인 동물, 높은 지능을 남을 속이고 파괴하는 데 사용하는 동물..., 바로 이 세상에서 가장 위험하고 무서운 인간의 모습이다.


살아갈수록 인간의 어두운 면을 마주할 기회가 늘어나면서 중년의 나이에 이르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건 바로 사람이다”라는 말을 하게 된다.


이처럼 무섭게 돌변할 수 있는 이웃으로부터 내 가족을 지키기 위해서는 항상 경계를 늦춰선 안 된다. 집과 집 사이의 담을 점점 더 높게 쌓아 올리고 창문을 굳게 닫은 채 도시 안의 외로운 섬 같은 생활을 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그럼에도 안심이 안 되는 사람들은 아이들에게 세상은 위험하고 무서운 일로 가득 차 있으니 사람을 쉽게 믿으면 안 된다고 주의시킨다.


그래도 사람을 믿어야 한다.

그러면 사람들에게 묻는다. 당신이 사람을 믿지 않고 의심하면 배신당할 일은 분명히 줄어들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매일 누군가를 경계하고 의심하는 불안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다. 사람을 믿지 못하면 고립되고 외로워질 것이다. 그런데 사람을 믿으면 세상은 살만한 곳이 된다. 남에게 속을지 언정 불안에 떨며 지내지 않아도 된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하겠는가?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래도 사람을 믿으면 안 된다고 답했다. 속는 것보다 날마다 모든 이를 의심하여 불안에 떠는 게 차라리 낫다는 것이다.


“그러는 당신은 사람을 믿으세요?”


사람을 믿어야 한다. 사람을 믿으면 일단 마음이 편하다. 물론 그러다 배신을 당하면 크게 상처를 받을 것이다. 하지만 상처가 두려워 사람을 믿지 않으면 행복도 없어져 버린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 때문에 행복을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여행 갈 때 좀도둑이 많으니까 가방을 도둑맞지 않고 싶으면 항상 조심하라고 한다. 그런데 길거리를 다니며 만나는 사람마다 혹시 도둑이 아닐까, 내 지갑을 훔쳐가지는 않을까 의심한다고 해 보자. 그러면 지갑은 지킬 수 있을지 몰라도 여행을 줄길 수가 없게 된다. 그렇게 지킨 지갑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여행의 의미를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믿는 범위 설정과 안목을 키워야

그렇다고 무작정 모든 사람을 믿을 수는 없다. 중요한 것은 어디까지 믿느냐 하는 범위의 문제이며 믿을 수 없는 사람을 가려낼 수 있는 안목도 키워야 한다. 그러나 속이려 마음만 먹으면 쉽게 속아 넘어가는 게 사람이다. 더구나 사람은 흔들릴 수 있는 존재다. 무엇이든 유혹될 수 있고 욕망에 휩싸여 사리분별을 못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인간이 치닫기 쉬운 내적 욕망이나 갈등에서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일종의 한계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 관계를 맺게 되면 그 관계를 보호하기 위해 함부로 넘어서는 안 될 적정선을 만들고 지키는 것이다.


이를 테면 친구 사이에 돈거래를 하지 않는다. 친구가 돈이 필요하다면 받지 않을 생각으로 줄 수 있는 만큼을 줘 버린다. 혹시 받지 못하게 되더라도 마음이 상해서 우정에 금이 가지 않을 정도의 돈을 주는 것이다. 내가 곧 써야 할 돈인데 친구가 갚기로 해 놓고 안 갚으면 친구를 미워하게 된다.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 하더라도 원망하는 마음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의 성격을 바꾸려고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사랑한다는 이유로 상대방에게 못하는 것을 강요하는 것은 옳지 않다. 유머가 없는 사람에게 유머러스 해지라고 강요해 봐야 그가 하루아침에 바뀔 리 만무하다. 그렇다면 그가 못하는 것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여야 한다. 이처럼 한계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관계를 잘 끌고 갈 수 있다.


친한 친구 사이는 비밀이 없어야 한다고 하는데 그렇다고 굳이 밝히고 싶지 않은 비밀을 털어놓을 필요는 없다. 나를 보호하기 위해 어느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았는데, 단지 친함을 증명하기 위해 비밀을 드러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부모와 자식 사이도 마찬가지다. 긴 병에 효자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부모라 해도 병 수발을 해 주는 자식에게 고마워해야 하고 폐를 덜 끼치려고 노력해야 한다. 자식이니까 부모에게 헌신하는 게 당연하다며 아프다는 핑계로 자식에게 막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자신에 맞는 한계를 설정하자.

이처럼 각자가 가진 욕심과 욕망이 충돌할 때 한계를 미리 설정해 놓으면 나와 상대방 모두를 보호할 수 있고 관계를 더 안전하게 지속시킬 수 있다. 물론 누구나 나에게 무언가를 기대하고 있다는 걸 뻔히 알면서도 그 기대를 저버리는 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기대를 저버린다는 건 ‘당신이 나에게 실망하고 나를 싫어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다 받아들이겠다’고 말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서로 존중하고 진심으로 아끼는 관계는 각자의 감정을 상하게 하지 않는 선이 어디까지 인지 섬세하게 조율할 수 있을 때 만들어진다. 즉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친구 사이가 틀어진다면 그는 애초부터 당신의 진짜 친구가 아닐 확률이 높다.


그러므로 관계를 만들어 갈 때는 먼저 나의 능력이 어디까지 인지 마음이 상하더라도 스스로 회복할 수 있는 감정적 한계가 어디까지 인지 파악해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한계선을 기준으로 아무리 가까운 사람이라고 해도 내 삶까지 망가질 것 같을 때는 ‘미안하지만 더는 도와줄 수 없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마음에 상처가 남지 않도록 관리해야 한다.

자신보다 남을 더 신경 쓰느라 정작 자기 마음이 곪아 터진 것을 보지 못하고 좋은 관계를 망치고 싶지 않아서 솔직한 감정을 억누르며 혼자 상처받아 온 사람일수록 한계 설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끝까지 사람을 믿고 사람과 더불어 살기 위해 해야 할 최소한의 장치가 바로 한계설정인 것이다.


명심해야 한다. 내 마음에 상처를 주면서까지 그 관계를 억지로 유지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한계를 설정해 놓고 그 선을 넘으면 당신의 행복을 지키기 위해 오히려 그 관계는 끊는 게 좋을 것이다. 그렇다고 그 관계가 나의 문제가 아니고 그의 문제일 가능성이 훨씬 높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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