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연함의 증표
"너 왜 이렇게 나사가 빠져있어?"
우리가 흔히 덤벙대거나, 맡은 일들을 잘 해내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종종 하는 말입니다
저도 이전에 자주 들었던 말 중 하나인데요 (?)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이 말이 저에게는 조금씩 다르게 해석되기 시작했습니다
잘 조여진 나사를 보면 그 안에서는, 어떤 충격과 하중에도 잘 견뎌줄 것 같은 굳건함, 안정감들이 느껴집니다
하지만 잘 조여지지 않은, 혹은 빠져있는 나사들을 보면, 언제라도 무너질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전해집니다
이러한 불안정함의 이유로, 우리는 언제나 제대로 박혀있는 나사들을 좋아합니다
규격 외로 박힌, 혹은 아예 나사가 빠져있는 경우에는 불량품으로 인식되며, 대부분은 반품처리가 됩니다
그렇다면, 그 나사는 왜 빠져있었을까요?
저는 여기서 두 가지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나사를 한 번도 조이지 않아 봤거나, 아니면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나사를 조여봤거나
저는 이 두 가지 이유 중, 후자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보려 합니다
나사를 어느 수준 이상으로 조였을 때, 원목에는 균열이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그 균열이 조금씩 벌어져, 결국엔 나사가 헛돌고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그 균열의 직전 지점까지 나사를 조여야만, 나사는 원목을 튼튼하게 지지해 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나사를 조일 때의 생기는 미세한 마찰력들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는 수없이 많은 실패와 경험들로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결국 나사가 빠져있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보면 열심과 최선의 흔적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살아봤었기에, 그렇기에 생기게 되는 증표이자 흔적들입니다
그리고 이 흔적들을 통해, 우리는 다음 나사를 더욱 완벽하게 조여줄 수 있게 됩니다
또한 나사가 빠진 사람들에게는 불안함을 넘어선 새로운 것을 부여받게 됩니다
바로 유연함입니다
불안전해 보이고, 규격 외라고 느껴질지 모르지만 사실은 그 무엇보다 안전합니다
수없이 앉아보며 나에게 최대한으로 편하고 안전한 방향으로, 다른 지점들에 나사들을 고정시켰기 때문입니다
정답이라고 일컬어지는 것들은 모두 똑같은 결과만을 만들어냅니다. 오직 창의적인 오답들을 통해서만 우리는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저는 나사가 빠진 사람들을 좋아합니다
최선을 다해 살아본 흔적이 있는, 그리고 그 흔적들을 통해 발현되는 여유와 유연함으로 다른 이들을 편하게 해주는
또한 고정된 사고의 틀을 넘어, 자신만의 유연한 정답들을 만들어가고 있는, 그런 사람들을 좋아하고, 또 제 스스로 그렇게 되야겠다고 다짐합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