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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애하는 당신께

사그라들 영원으로부터

by 조앤

당신의 마음 속에서 이 글을 썼습니다.

아니, 사실은 당신의 마음을 찾지 못해, 당신의 이름에서 글을 시작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지금 어디에 계실까요.

저처럼 길을 찾기 위해 미로를 헤매고 있을까요.

아니면 저를 잊기로 결심하고, 잊어버린 채 미로를 벗어나셨을까요.

바래진 이름, 흐려진 추억 속에서 당신은 저를 잊었을지도 모릅니다.

지우려 애쓰지 않아도 되는 순간이 이미 당신을 찾아왔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이제는, 제 잔상을 떠올리기 위해 오히려 공을 들여야 할지도요.

그럼에도 당신은 분명 저를 기억하겠죠.

당신은 저를 잊지 못하겠죠.

하필이면 우리는 영영 서로를 잊지 못하겠죠.


이상합니다.

편지를 쓰는 순간에도 목이 메이다니요.

편지 넘어 입 밖으로 어떠한 말도 꺼낼 수가 없습니다.

목구멍에서 뜨거운 것이 밀려오고 저는 힘을 주어 그걸 눌러냈습니다.

제 입을 여는 순간 이 모든 것들이 떠나가리라는 걸 알았습니다.

소리 내어 당신을 부르는 순간,

저 푸른 달 아래 서 계실 당신에게 말을 건네는 순간

이 편지는 또 한 번 길을 잃고 말겠죠.

그 무엇도 전해지지 못한 채 바래지고 말겠죠.


그래서는 안 됩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그저, 그뿐입니다.


지금 이곳에는 비가 내립니다.

검은 비가 창문 위로 빗금을 긋는 중입니다.

어쩌면,

지쳐버린 마음이 더는 버티지 못했나 봅니다.

쓰러지지 않고는 살 수 없었나 봅니다.

흔한 변명이라도 내뱉지 않으면 콱 죽어버릴 것 같았나 봅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아니, 그렇게라도 생각해야만 비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제가 뭐라고, 멋대로 비를 용서했습니다.


비를 싫어하던 당신은 어떤가요.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에 더는 놀라지 않습니까.

번개와 천둥을 피해 웅크리지 않나요.

온몸을 꽁꽁 감싸던 옷은 조금 가벼워졌나요.

이제 겨우 숨을 쉬고 있나요.

당신이 그러하듯, 저 역시 비가 내리는 날이 두렵습니다.

우스운 일입니다.

이미 멀어진 인연을 위해 두려워하다니.

나를 닮은 사람을 위해 두려워하다니.

당신이 이미 그 두려움을 극복했을지도 모르는데, 나는 여전히 무섭습니다.

당신의 과거밖에 알지 못하는 나의 무지가 결국 제 숨통을 죄는 올가미가 되었으니까요.

부디, 당신은 아프지 않기를,

이 편지가 길을 잃더라도, 그 마음만은 닿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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