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준&해미
푸하.
수면 밖으로 올라온 해미가 숨을 골랐다.
헉헉거리고 있는 해미 앞엔 코치님이 있지…… 않았다.
스윽.
"어, 뭐야!"
탄성과 함께 해미는 방금 자신옆을 미끄러지듯 지나간 코치님의 실루엣을 지켜보았다. 해미가 넋을 놓고 지켜보는 동안, 코치님은 벌써 반대쪽 벽을 찍고 돌아오는 중이었다.
"뭐 하냐."
현준의 목소리였다.
"뭐 한다."
해미는 장난스럽게 대꾸하곤, 현준을 향해 혀를 쏙 내밀었다.
팡.
현준이 해미에게 물을 밀쳐내듯 보냈다. 표정에 장난기가 100% 함유되어 있었다.
"야!"
맑은 해미의 목소리가 수영장에 울렸다.
수영 동아리 코치님과 수영동아리, 현준, 수영부 아이들까지 죄다 해미를 쳐다보았다.
해미의 목소리는 물방울 같이 맑고, 밝았지만, 수영을 하던 아이들 모두에게는 충분히 소음으로 판단될 수 있는 정도의 톤이었다.
"아, 죄송합니다!"
해미는 고개를 꾸벅, 숙여서 죄송하다는 메시지를 확실하게 전했다. 여전히 목소리는 평상시보다는 살짝, 아니 어쩌면 많이 상기되어 있었다. 고개를 든 해미의 눈에 해미의 눈치를 보고 있는 현준의 모습이 비쳤다.
훗.
해미는 비웃음과 웃음의 중간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웃음을 현준에게 보이며, 손으로 물을 잔뜩 떴다. 봐, 하고 해미의 눈동자가 말하는 것 같았다. 어, 어, 하며 현준의 눈동자가 잠깐 전율했다.
헤헤, 하고 맑은 웃음 끝에, 해미가 손에 있던 물을 그대로 현준의 수영모 위로 부었다. 물은 천천히 슬로우모드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물방울들은 마치 사람들이 달려가는 것처럼 우르르 떨어졌고, 첫 번째 물방울, 두 번째 물방울, 수영모에 닿는 물방울 수 가 많아질수록 현준의 어깨는 점점 모아지며 현준의 미간은 점점 좁혀졌다. 하지만, 현준은 아까의 그, 눈치를 보는 표정을 감추고, 장난기를 표정 가득 내비쳤다. 아마도 그것이 끝까지 굳힐 수 없는 현준의 마지막 자존심이었으리라.
현준에게 자신이 쏟은 물이 떨어지는 것을 보면서 해미는 까르르, 하고 웃었다. 아마 옛날에 물과 떨어져 지낸 나날들 때문에, 지금 더 재밌게, 더 신나게 즐기는 걸 지도 몰랐다. 어릴 때 물과 함께 웃어야 했던 그 순간까지… 해미는 지금 다 웃고 있었다. 해미의 웃음은 많은 것을 담고 있었다.
톡.
마지막 물방울까지 다 현준을 치고 물속으로 내려갔다.
"……."
조용히 있던 현준이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그리고 장난기는 조금도 없는 표정으로 해미를 바라보았다. 평소에 해미가 현준을 보아왔던 모습과는 많이 상반되는 표정이어서, 해미는 겁이 났다.
'얘가 왜 이러지?'
그 조용한 모습 그대로, 현준이 입을 열었다.
"…자네, 움직이지 않는데 물이 위에서 떨어지면 물방울 하나하나가 다 눈에 보인다는 것을 아나?"
풉.
해미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기 힘들었다. 다시 보니, 현준의 얼굴에는 여느 때와 비교할 수도 없는 장난기가 가득 차 있었다.
'어? 아까는 분명….'
"아주 아름답다네. 당신도 언젠가 한 번, 경험해 보는 날이 있었으면 좋겠군."
푸흡….
해미는 입술을 다물어 터져 나오는 웃음을 입안에 가두었다. 웃음이 터져 나와서 현준에게 현준의 개그가 해미에게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려주기 싫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준이 손 가득 물을 그러모았다.
어디서 많이 보던 건데…. 해미가 현준의 손을 눈짓했다.
손을 보았다가, 현준의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보았다가, 다시 손을 보았다가…
"당신도 한 번 경험해 보는 것이 어떤가."
현준의 얼굴을 보곤, 물속으로 들어갔다.
꼬르륵.
물속에 들어간 해미는 얼린 주위를 살폈다.
"자네! 어디 가는 가!"
물 위에서 현준이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고, 물 안에서는 갈팡질팡 움직이는 현준의 다리가 보였다.
후후후.
물속에서 해미는 현준을 실컷 비웃었다.
"강해미! 자네, 이렇게 숨으면 안 되네! 이건 비겁한 짓이야!"
위에선 현준의 목소리가 들렸다. 물속에 들어올 수도 있었지만, 물속에 들어가면 해미에게 물을 뿌릴 수는 없었다.
'날 이렇게 찾다니! 그럼 올라가 줘야지?'
물속에서 해미의 눈이 수상하게 반짝였다. 해미는 수영장 바닥을 발에 힘을 주어 밀었다. 동시에 해미의 몸이 떠올랐고,
푸하.
하며 수면 밖으로 해미의 얼굴이 드러난 동시에, 해미는 미리 모아두었던(온통 물이어서 딱히 모아둘 수도 없었지만) 물을 현준에게 뿌렸다.
"……오, 자네! 이제 준비가 됐……. 악!"
그대로 물을 맞은 현준이 손으로 물을 얼른 털어내고, 주위를 살폈다.
첨벙.
하지만, 해미는 금세 물속으로 사라진 뒤였다.
"……나."
현준은 힘없이 남은 말을 뱉고는 해미가 남긴 물거품을 가만히 응시했다.
그리고 픽, 웃음을 터뜨렸다.
"얘랑 물로 논다고? 말도 안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