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오랫만이네"
힐끗.
해미는 코치님 너머로 수영 동아리 아이들을 눈짓했다.
코치님은 아직 눈을 감은채 물에 떠있었다. 처음에 해미를 알려주는 방식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코치님만의 루틴이었다.
"뭐 하냐."
여전히 코치님은 눈을 감은채 말하시는 것이 능숙하셨다. 이젠 그거에 눈을 감고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까지 생겼나 보다.
윽.
해미가 코치님의 눈치를 보았다.
'알아채셨나?'
그렇게 얼어있는 해미에게 코치님이 말했다. 그다지 친절하지 않은, 명령조였다.
"누워라."
네, 하고 대답한 해미는 얌전히 물에……누웠다.
"근데, 코치님."
해미는 그 상태로 코치님에게 말을 걸었다. 이렇게 있으니까 아무거나 다, 물어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왜인지는 몰랐다. 코치님은 해미의 말을 듣고도 가만히 계셨다.
"코치님?"
"얘기해."
코치님의 말에 해미가 조곤조곤 말을 시작했다.
"저희 있잖아요."
"있지."
가만히 누워있었던 코치님의 얼굴에 미소가 서서히 퍼졌다. 방금 해낸 말장난이 뿌듯 한 모양이었다. 아… 하고 이해를 못 한 해미가 곧 물에서 일어났다.
"아, 코치님!"
"왜."
코치님은 씩 웃으려다가 웃지 않으려고 참으며, 입술로 약간씩 보이려는 이를 가렸다.
"좀 들어보세요, 네? Listening!"
쿡.
"눕기나 해."
그리곤 코치님은 얼른 하라는 듯, 살짝 눈을 떠서 해미를 바라보고는 눈꺼풀을 다시 닫았다.
쳇.
삐진 듯, 해미가 입을 부루퉁하게 내밀었다. 아무리 그래도 코치님은 듣지 못하셨겠지만. 해미는 장난으로 눕기 전에 코치님을 보면서 한 번 더 했다.
"쳇!"
해미는 다시 힐끗. 수영 동아리 아이들을 눈짓했다. 후……. 해미는 누워서 숨을 내쉬었다. 요즘은 이렇게 있는 것도 은근히 쉬는 것처럼 느껴진단 말이지…….
"얘기해라."
"네?"
해미는 코치님의 목소리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상상에 빠져서 코치님에게 할 말이 있다는 것을 까먹고 있었던 것이었다.
"아……. 코치이님."
해미는 괜히 뜸 들였다. 괜히 코치니을 놀려주고 싶어졌다.
"있잖아요오……."
"……."
코치님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거어……."
"야, 강해미."
"예?"
본능적으로 튀어나온 '예?' 해미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코치님을 따라 물속에서 나와 코치님의 눈치를 살폈다. 아까 분위기 안 좋았던 것이 다시금 생각났다.
코치님은 물속에서 일어나서 이번에도 역시 코치님의 얼굴을 절반정도 가린 긴 검은색 머리카락을 두 손으로 세수하듯 떼어냈다.
"……."
해미는 침묵을 유지한 채 코치님의 얼굴을 살폈다. 근데, 막상 마주 본 코치님의 표정은 화가 나거나 짜증이 나기보다는 편안한 분위기를 풍겼다. 묘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아…….
해미는 고개를 살짝 뒤로 젖히고 살짝 입을 벌리고 코치님을 자세히 관찰했다. 이렇게 보니 코치님은 꽤 크셨다. 해미보다 머리 한 개 반 정도 차이나는 위치에 서 있는 코치님은 해미를 내려다보며 정색한 듯, 웃는 듯, 애매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치켜세우고 계셨다. 해미는 눈을 굴렸다. 일단 코치님의 시선을 피했다. 그리고 빨리 머리를 굴렸다. 이건 무슨 의미지? 이제 수영하자는 의미인가? 생각이 거기까지 와닿자, 해미는 결의에 찬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럴 순 없지. 바쁜 와중에 유일한 휴식인데……! 해미는 다시 혼자 물 위에 누웠다.
철퍽.
하지만 너무 급하게 눕는 바람에 해미는 '풍덩'하고 그냥 물속에 빠져버렸다.
'엥?'
해미는 빠지고 나서도 머리가 빨리 돌아가지 않아서 한동안 어리둥절하게 있었다.
난 지금 뭐 하는 거지? 여긴 물 속인가? 물 속인데…… 왜 이렇게 예쁘지? 아, 이래서 사람들이 바다를 좋아하는구나.
그리고 잠시뒤…….
스르륵. 해미의 몸을 수면 위로 저절로 떴다.
"정말 대단한 애야."
지켜보던 코치님이 고개를 저으며 중얼거렸다. 올라온 대로 고개도 든 해미가 코치님을 보고 순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얼굴에는 하고 싶은 말이 엄청나게 많아 보였지만, 해미는 숨이 찬 듯 헉헉거리기만 했다. 그러다가…….
"배신자."
해미가 장난기 조금과 꽤 많은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아니, 물속이 이렇게 좋은 곳이라고 왜 아무도 말 안 해 줬어요?"
코치님은 당황했다. 갑자기 이렇게 훅 치고 들어오면 어떡해. 코치님의 얼굴에서 물방울 한 개가 뚝. 하고 떨어졌다. '와! 그냥 저절로 뜨네요?'나, '대박! 물속에서도 생각보다 잘 보이네요?', '물속으로 보니까, 저 자유형으로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같은 간단한 감탄사를 예상했는데, 갑자기 원망이 한 80% 정도 섞여 있는 말을 들으니까 얼수밖에 없었다.
"코치님도 꽤 순진하시다!"
말을 끝낸 해미가,
헤헤헤.
하고 웃어 보였다.
'뭐? 순진해? 내가? 와~ 야, 승현이가 들으면 놀라겠네.'
코치님은 아직 상황 파악을 못 하고 '승현'이, 그러니까 수영 동아리 코치를 바라보았다. 마침 눈을 마주친 수영 동아리 코치님, '최승현'이 수영부 코치님을 향해 씩 웃었다.
'누나 연습 잘하고 있어?'
최승현 코치님이 입모양으로 물었다. 코치님은 약간 고민했다. 이걸 잘하고 있다고 해야 하나……. 사실, 엄청 힘들게 나가고 있는 수영 동아리에 비하면 잘하고 있는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아이들은 열심히 해주고 있었다. 수영부 코치님의 시선이 해미에게서 멈췄다.
"아, 코치님! 장난이잖아요, 장난!"
하면서 해미는 깔깔대고 있었다. 웃는 사람이 해미, 혼자 뿐이라는 것도 해미의 웃음을 막을 만큼 가치 있지는 못 했다.
"근데 물속으로 보니까, 저 자유형으로 끝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풋.
코치님의 입 밖으로 웃음이 살짝 튀어나왔다. 아까 예상했던 말이 그대로 해미의 입에서 나오고 있었다.
"왜요!"
풍덩.
그 말이 물속에 들어간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었을까. 해미는 그대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후후. 해미를 보고 있던 코치님에 표정에 활짝 미소가 피었다. 정말 해미랑 같이 있으면 해미의 에너지를 몸으로 다 받는 느낌이었다. 코치님은 그 느낌이 좋았다.
'승현이랑 있는 것 같아…….'
감상에 젖어 코치님은 눈을 감았다.
"자, 얘들아. 자유형 1바퀴 전손력으로 해 보자! 시작! Go, Go, Go, Go, Go! 그래, 그래. 빨리, 빨리, 빨리! 어, 서……찬이! 맞지? 어, 서찬이! 힘내, 이걸로 지치면 안 되지! 그치? 가자."
코치님의 귀에 익숙한 리듬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여기에 진짜 승현이도 있지?'
아까는 너무 바빠서 미처 수영 동아리 코치가 후배 '김승현'인 것을 아무 생각도 없이 받아들였다.
"진짜 오랜만이네."
왠지 기분이 좋아졌다.